과거를 숨겨야 하기 때문에 위험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 ‘버려진 이들’이 이삼십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죠. | ||
이 소설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사고로 다친 다리 때문에 휴직 중인 형사 혼마에게 어느 날 가즈야가 찾아온다. 가즈야는 사고로 죽은 아내의 친척이었는데 사라진 자신의 약혼자를 찾아달라며 도움을 청해왔다. 그녀의 이름은 세키네 쇼코. 1여 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약속한 그들은 함께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편의를 위해 쇼코의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발급해줬는데 문제가 생겼다. 그녀에게는 파산을 신고한 전적이 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가즈야가 쇼코에게 확인을 하기 위해 묻자 다음 날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불쑥 찾아와 이런 부탁을 하는 친척이 얄밉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 사건은 묘한 흥미를 끄는 구석이 있었다. 혼마는 그 사건을 수락하고 쇼코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녀의 파산신고를 도왔다는 변호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파산신고를 한 쇼코와 가즈야가 약혼한 쇼코가 동일인이 아님을 알게 된다. 가즈야에게서 건네받은 사진을 보여 주자 변호사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다. 대체 사라진 쇼코는 어디로 갔고, 파산신고를 한 쇼코는 누구란 말인가? 이때부터 그 의문을 풀기 위한 본격적인 탐문이 시작된다.
앞서 《화차》가 《이유》나 《모방범》의 밑바탕이 된 소설이라고 한 것은, 《화차》의 주제가 바로 ‘신용사회’에 대한 고발에 있기 때문이다. 《화차》의 그 문제의식은 《이유》에서 가장 따뜻해야 할 가족의 보금자리를 자본주의의 도구로 탈바꿈시킨 부동산 문제로 이어졌고, 《모방범》에서는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문제로 확장되었다. 《화차》는 신용카드와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신용대출로 인해 망가진 선량한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신용불량자를 단순히 개인의 무절제한 삶으로, 사치스러운 소비행태로 치부해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그들은 오히려 기업과 정책, 제도로 인해 만들어진 피해자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혼마가 파산신고를 도운 변호사를 찾아갔을 때 더욱 극명화된다. 갖가지 수치로, 수많은 상담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그의 이야기는 암울한 현실을 투영한다.
영화 <화차> 中 |
“지금 상황은 완전히 ‘정보파산’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하면 돈을 왕창 벌 수 있다. 입는 옷은 이게, 차는 저게 좋다……. 제도와 법률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자들은 너나없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설쳐대고. 그것이 성실하고 소심한, 그리고 나이 어린 소비자들을 움직여 다중채무의 빚더미에 올려놓죠.” | ||
세키네 쇼코도, 신조 교코도 모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느 순간 이 사회에서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빚쟁이로부터 쫓기는 도망자가 되었다. 버는 족족 빚을 갚지만 빚은 줄기는커녕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고, 평범한 직장인이나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는 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극단적 선택에 그 누가 돌을 던지고, 그 누가 비난의 말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화차》도 역시 미미 여사의 명성에 걸맞게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던 작품이다. 쇼코가 한 시간을 기점으로 두 명의 사람으로 나뉘고, 사건의 끈이 하나둘 밝혀질 때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했다. 쇼코와 교코가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나란히 발견되었을 때, 신조 교코를 만나기 위해 커피숍에서 대기하고 있는 순간, 그리고 다모쓰(쇼코의 친구)가 신조 교코의 어깨에 손을 얻는 순간은 나 역시 숨을 죽이며 읽어내려 갈 정도로 긴장됐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더더욱 영화가 원작을 뛰어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행간의 긴장감을 스크린으로 옮겨 올 수 있을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연기로 표현할 수 있을지, 작품 전반에 심어놓은 문제의식을 진부하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게 영화에서 나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고 몇 달 뒤 나는 영화관을 찾았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듯이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240만을 동원하며 나쁘지 않은 흥행 성적을 거뒀다. 각본도 영화에 맞게 잘 변주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그래도 여전히 난 소설이 더 좋다. 아직까지 그 어떤 영화도 소설 이상의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 야밤산책 리듬 저 | 라이온북스
어떻게 살고 사랑하고 꿈꾸며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네이버 파워블로거 ‘리듬’의 독서 에세이. 그녀는 [달콤 쌉싸름한 일상]이라는 블로그를 통해 지금까지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과 자신의 책 이야기를 나눴다. 책에 대한 짧은 감상과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여 놓은 그녀는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내 안에 남겨야 하는지에 대한 독서 팁도 꼼꼼히 챙겨준다. 잠도 오지 않는 헛헛한 밤에 읽기를 권하는 《야밤산책》은 마치 책의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듯 당신을 고요하고도 명랑하게 위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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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6년 전 어느 날 누군가가 버리고 간 책 무더기에서 《리듬》이란 책을 발견하고 그 책에 감명 받아 그날부터 ‘리듬’이 되기로 했다. “나는 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바람처럼 하늘처럼 달처럼…… 변하지 않고 있어주는 것이 좋다”는 책 속 구절처럼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를 지켜주는 책의 매력에 빠졌고,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흔들리던 20대 중반 책으로부터 큰 위로를 받아 출퇴근길 지하철을 독서실 삼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읽은 책은 꼭 블로그에 기록을 남겼고, 그렇게 남긴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이제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녀간 유명 블로거가 되었다. 애서가이기는 하나 장서가는 아니라 소장한 책이 1,000권을 넘은 뒤로는 적정량의 책을 유지하게 위해 읽은 책은 과감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22개 성 모두를 여행하는 게 꿈이다. [대학내일] 인터뷰와 [우먼센스], [쎄씨] 등에서 책벌레로 소개되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4년 연속 네이버 책 분야 파워블로거로 선정되었다. 지금은 제이 콘텐트리엠앤비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잘나가는 회사는 왜 나를 선택했나?》(공저) 등이 있다.
<리듬의 달콤 쌉싸름한 일상 블로그>
nayana0725.blog.me
우렁각시
2014.11.12
즌이
2013.08.31
공우민
2013.08.31
사실 마음이 너무 울먹해질까봐 못읽은게 사실인데, 작가에 대해 궁금해져서
꼭 읽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