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헨드릭스의 뒤를 잇는 발군의 흑인 로커 -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
첫 정규 앨범 < Let Love Rule >이 나온 때는 1989년 9월이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앨범 크레디트에 있었다. 작곡과 편곡은 물론이고 기타와 오르간, 베이스, 드럼, 퍼커션 등을 직접 연주하며 타고난 천재성을 트랙 전체에 담았을 뿐만 아니라 프로듀싱까지 단독으로 진행하며 갓 데뷔한 신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능력을 드러냈다. 여기에 어렸을 때부터 갈고 닦은 보컬 또한 레니 크라비츠가 가진 또 다른 장점이었으니 아티스트 그 자신이 토털 패키지였던 셈이다.
201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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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는 록 음악이 본래 흑인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흑인 로커가 생각 외로 흔치 않다는 것입니다. 레니 크라비츠는 그 흔치 않은 (지미 헨드릭스와 프린스의 계보를 잇는) 흑인 로커 계보의 적자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죠. 첫 등장부터 작곡과 편곡은 물론, 기타와 오르간, 베이스, 드럼, 퍼커션 등 악기 연주와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 하는 등 엄청난 재능을 뽐낸 바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앨범은 바로 그 잊을 수 없는 데뷔작, < Let Love Rule >입니다.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 < Let Love Rule > (1989)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가 본격적으로 아티스트의 길에 뛰어든 것은 21살이 되던 1985년이었다. LA에서 유소년기를 보내고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레코딩 엔지니어이자 키보디스트였던 헨리 허쉬(Henry Hirsch)와 색소폰 주자 칼 덴슨(Karl Denson)을 만나 공연과 병행하며 데모 곡들을 녹음했다. 음반을 완성시킬 1988년 무렵, NBC 방송사에서 음악 감독을 하던 친구 스티븐 스미스(Stephen Smith)의 도움으로 그는 워너 브라더스와 캐피톨 사(社) 등 5개 레코드사와 계약할 기회를 얻어냈고 마침내 버진 레코드와 계약하며 메이저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첫 정규 앨범 < Let Love Rule >이 나온 때는 1989년 9월이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앨범 크레디트에 있었다. 작곡과 편곡은 물론이고 기타와 오르간, 베이스, 드럼, 퍼커션 등을 직접 연주하며 타고난 천재성을 트랙 전체에 담았을 뿐만 아니라 프로듀싱까지 단독으로 진행하며 갓 데뷔한 신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능력을 드러냈다. 여기에 어렸을 때부터 갈고 닦은 보컬 또한 레니 크라비츠가 가진 또 다른 장점이었으니 아티스트 그 자신이 토털 패키지였던 셈이다.
음반에는 1960년의 소울과 펑크(funk)에 기반으로 한 록 사운드가 깊게 배어있다. 그루비한 리듬의 진행을 기저에 배치해놓은 「Sittin' on top of the world」과 오르간을 더해 레트로의 느낌을 자아내는 「Let love rule」에서는 펑크의 흔적이 드러나고, 「My precious love」에서는 소울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호소력 깊은 보컬이 단번에 귀를 잡아끈다. 올드 팬들을 충분히 유혹하고도 남을 작품의 킬링 트랙들이다.
그런가하면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풍의 기타 리프를 배킹으로 구성한 「Freedom train」은 흑인 록 스타의 직계 후배임을 증명하는 듯한 로킹한 곡이며 펑크 리듬 위에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얹은 「Fear」는 다운 템포로 연주하는 펑카델릭(Funkadelic) 곡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또한 흥겨운 기타 연주 속에서 블루스 록의 모습이 보이는 「Mr. cab driver」나 묵직한 디스토션 음향 너머로 오르간과 현악기의 편곡 구성이 매력적인 「I building this garden for us」는 현대와 과거를 아우르는 아티스트의 재기발랄한 결과물이다.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61위와 영국 앨범 차트 58위라는 기록만 놓고 보면 그리 준수한 성적은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3백만 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리며 꾸준한 인기를 올렸다. 새로운 천재의 등장에 평단과 대중들은 아낌없는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었으나 반대의 의견 또한 존재했다. 독자적인 영역은 분명 존재하나 영향을 준 뮤지션들의 향기가 다소 짙다는 평가가 그것으로, 앨범이 지닌 한계점과 동시에 레니 크라비츠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박수를 보내고 싶은 지점은 1960년대, 1970년대의 레트로 사운드를 현대의 감성에 맞게 훌륭히 뽑아냈다는 것이다. 이는 옛 음악에 대한 아티스트의 탁월한 이해와 열정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부분으로, < Let Love Rule >이라는 결과물만으로도 충분히 레니 크라비츠라는 뮤지션과 그의 작품이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물음표보다도 느낌표에 무게가 더 쏠리는 이유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 Mama Said >와 < Are You Gonna Go My Way > 등을 차례대로 거치며 레니 크라비츠는 전성기를 맞는다. 흑인 록 스타 역사에서 지미 헨드릭스와 프린스(Prince)를 이을 적자(適者)는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복고에 대한 오랜 경험과 천재성이 반짝이는 재능을 가진 그 자신이 곧 계보를 연장할 후계자였던 것이다. 그 해 9월에 발표된 < Let Love Rule >은 지난 10년의 문을 닫는 1980년대의 마지막 앨범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10년의 록 스타를 소개하는 1990년대의 첫 앨범이기도 했다.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 < Let Love Rule > (1989)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가 본격적으로 아티스트의 길에 뛰어든 것은 21살이 되던 1985년이었다. LA에서 유소년기를 보내고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레코딩 엔지니어이자 키보디스트였던 헨리 허쉬(Henry Hirsch)와 색소폰 주자 칼 덴슨(Karl Denson)을 만나 공연과 병행하며 데모 곡들을 녹음했다. 음반을 완성시킬 1988년 무렵, NBC 방송사에서 음악 감독을 하던 친구 스티븐 스미스(Stephen Smith)의 도움으로 그는 워너 브라더스와 캐피톨 사(社) 등 5개 레코드사와 계약할 기회를 얻어냈고 마침내 버진 레코드와 계약하며 메이저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음반에는 1960년의 소울과 펑크(funk)에 기반으로 한 록 사운드가 깊게 배어있다. 그루비한 리듬의 진행을 기저에 배치해놓은 「Sittin' on top of the world」과 오르간을 더해 레트로의 느낌을 자아내는 「Let love rule」에서는 펑크의 흔적이 드러나고, 「My precious love」에서는 소울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호소력 깊은 보컬이 단번에 귀를 잡아끈다. 올드 팬들을 충분히 유혹하고도 남을 작품의 킬링 트랙들이다.
그런가하면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풍의 기타 리프를 배킹으로 구성한 「Freedom train」은 흑인 록 스타의 직계 후배임을 증명하는 듯한 로킹한 곡이며 펑크 리듬 위에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얹은 「Fear」는 다운 템포로 연주하는 펑카델릭(Funkadelic) 곡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또한 흥겨운 기타 연주 속에서 블루스 록의 모습이 보이는 「Mr. cab driver」나 묵직한 디스토션 음향 너머로 오르간과 현악기의 편곡 구성이 매력적인 「I building this garden for us」는 현대와 과거를 아우르는 아티스트의 재기발랄한 결과물이다.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61위와 영국 앨범 차트 58위라는 기록만 놓고 보면 그리 준수한 성적은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3백만 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리며 꾸준한 인기를 올렸다. 새로운 천재의 등장에 평단과 대중들은 아낌없는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었으나 반대의 의견 또한 존재했다. 독자적인 영역은 분명 존재하나 영향을 준 뮤지션들의 향기가 다소 짙다는 평가가 그것으로, 앨범이 지닌 한계점과 동시에 레니 크라비츠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박수를 보내고 싶은 지점은 1960년대, 1970년대의 레트로 사운드를 현대의 감성에 맞게 훌륭히 뽑아냈다는 것이다. 이는 옛 음악에 대한 아티스트의 탁월한 이해와 열정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부분으로, < Let Love Rule >이라는 결과물만으로도 충분히 레니 크라비츠라는 뮤지션과 그의 작품이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물음표보다도 느낌표에 무게가 더 쏠리는 이유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 Mama Said >와 < Are You Gonna Go My Way > 등을 차례대로 거치며 레니 크라비츠는 전성기를 맞는다. 흑인 록 스타 역사에서 지미 헨드릭스와 프린스(Prince)를 이을 적자(適者)는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복고에 대한 오랜 경험과 천재성이 반짝이는 재능을 가진 그 자신이 곧 계보를 연장할 후계자였던 것이다. 그 해 9월에 발표된 < Let Love Rule >은 지난 10년의 문을 닫는 1980년대의 마지막 앨범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10년의 록 스타를 소개하는 1990년대의 첫 앨범이기도 했다.
글/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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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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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rostw
2013.04.30
브루스
2013.03.31
이때의 주름잡는 음악이 이거였군요 들아뷸께요~
Enkaist
2013.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