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식당의 뚱뚱한 남자와 마른 여자 커플
배가 고프다고 시도 때도 없이 허기를 채우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쯤 저마다 안다. 그런데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밀려온다. 잠들 수도 없고 안 잘 수도 없는 새벽 한 시. 울컥, 욕구불만이 치솟는다. 그것은 마음의 외로움이 날 좀 달래달라고 위장에게 보내는 신호다. 살찔까 봐 아침에 얼굴 부을까 봐 다음날 컨디션이 다운될까 봐 등등 여러 가지 합당한 이유를 대가며 달래보아도 외로운 마음은 발톱을 드러내며 울어댄다. 체념한 얼굴로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물 담은 냄비를 가스불에 올렸던 적, 당신은 없었나?
201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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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참을 수 없는 영혼의 허기
동네에 자주 가는 식당 겸 술집이 있다. 일본에서 요리공부를 한 젊은 처자가 운영하는 곳인데 일본식 깔끔한 레시피와 한식의 칼칼함이 어우러져 음식 맛이 아주 좋다. 열 개 남짓의 메뉴를 안주로 내놓는다. 매운 떡볶이, 바지락볶음, 돼지고기 볶음, 문어숙회 같은 것들. 자주 오는 손님의 경우 취향을 파악해 알아서 맵거나 싱겁게 간을 해주고, 국물을 바특하게 혹은 자박자박하게 잡는 등 단골의 묘가 있다. 한마디로 이자카야와 대폿집이 합쳐진 묘한 분위기다. 직사각형의 작은 공간에 시멘트로 칠한 벽은 횅하니 아무것도 없다. 주방이 열려 있고 옆으로 테이블이 놓여 있다.
젊은 오너 셰프는 한때 밴드활동으로 음악을 했다는데, 포지션은 알 수 없다. 키보디스트나 기타리스트였지 않을까 추측만 할 뿐이다. 노래 잘하느냐고 물었더니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음악이 좋다. 얘기를 방해하지 않을 만한 볼륨이다. 음악과 얘기가 좁은 술집 천정에 너울너울 춤을 춘다.
술을 마시다 갑자기 대화가 끊길 때가 있다. 이곳에 흐르는 음악은 튀지도 처지지도 않아 어색해진 술상에 안정감을 준다. 그냥 가만히 음악만 듣고 있어도 좋을 만큼 선곡이 이지(easy)하다는 것인데, 이건 아무렇게나 튼다고 되는 게 아니다.
주종은 소주와 맥주. 테이블은 예닐곱 개뿐이다. 거의 고정된 안주를 파는 데도 갈 때마다 늘 북적북적 입추의 여지가 없다. 원래는 오후 여섯 시에 문을 열었는데 입소문에 탄력을 받은 데다 낮 동안 빈 공간으로 놀리는 게 아까웠던지 낮 시간엔 주인 처자의 부모가 점심 백반을 판다.
이곳엔 주로 친한 지인들과 간다.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땐 아지트처럼 곧잘 갔는데 알려지고 나서는 워낙 사람이 많아 자리 잡기가 여의치 않아졌다. 그래서 우리끼리 이런 얘기를 하며 아쉬워했다. “우리들만의 심야식당이 생겨서 좋았는데 역시 벌집이 돼버렸네.”
실연하거나 꿈을 잃었거나 직장에서 핍박받는 사람들
이런 심야식당은 단순히 돈 내고 음식만 먹는 곳이 아니다. 돈 내고 문화를 나누는 곳이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곳이다. 보통 잠들기 전 밤 시간에는 먹지 않는 것이 인간의 상식이다.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은 마음이 고장 나 있다는 뜻이다. 내 주변엔 자정을 넘겨 극렬한 허기를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 의외로 많더라. 외로운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거다.
배가 고프다고 시도 때도 없이 허기를 채우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쯤 저마다 안다. 그런데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밀려온다. 잠들 수도 없고 안 잘 수도 없는 새벽 한 시. 울컥, 욕구불만이 치솟는다. 그것은 마음의 외로움이 날 좀 달래달라고 위장에게 보내는 신호다. 살찔까 봐 아침에 얼굴 부을까 봐 다음날 컨디션이 다운될까 봐 등등 여러 가지 합당한 이유를 대가며 달래보아도 외로운 마음은 발톱을 드러내며 울어댄다. 체념한 얼굴로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물 담은 냄비를 가스불에 올렸던 적, 당신은 없었나?
“햅쌀로 지은 밥, 당신이라면 어떻게 먹겠어?”로 시작하는 6권의 ‘햅쌀 편’에서는 동양인의 주식인 밥을 먹는 다양한 방식이 소개되면서 각자의 삶의 형태도 슬쩍 들춰낸다.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슬픔을 간직한 호스트 출신이 햅쌀 편의 주인공이다. 책의 화자는 심야식당의 주인인데 주인공은 어림잡아 백여 명에 이른다. 이 식당에 찾아오는 손님들이다. 아직 완결되지 않았으니 수백 명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얼굴에 선명한 칼자국이 트레이드 마크인, 과거를 알 수 없는 주인장은 겉보기와 달리 배려심 많은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다. 티 내지 않으면서 각종 손님들의 ‘술꼬장’ 즉 눈물과 한숨을 다 받아준다.
어떤 술집이 손님의 단골가게가 되려면 맛있는 안주와 기똥찬 특제 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이 관건이다. 주인장의 품성이 곧 술집의 내력이 된다. 출중한 외모, 빼어난 눈치의 종업원의 역할도 크겠다. 하지만 이 역시 장기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종업원의 매력에 의지할수록 주인은 뒤로 처지면서 술집의 중심이 흔들린다. 결국 주인의 매력이 술집의 매력이 된다. 특히 동네 술집일수록 그렇다.
이 책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 된 지 오래다. 책 내용을 일부 발췌해 만든 동명 드라마는 책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아시는 바 새벽까지 깨어 있는, 외로운 사람들이 심야에 찾아와 한잔 술과 함께 가벼운 안주를 먹고 도란도란 얘기하다 돌아가는 내용이다. 주인장이 대개 말상대가 돼주고, 이따금 손님들끼리 서로의 벗이 돼주기도 한다. 연말에는 파티도 한다. 지난해 대지진이 났을 때 작가는 만화를 통해 대동단결을 호소하기도 했다. 무튼, 단골손님들끼리는 속사정을 꿰고 있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축하하고 위로한다. 드물지만 손님끼리 눈도 맞는다. 호오, 이쯤 되면 ‘외로미들의 파라다이스’라 할 만하다.
나를 위해 냄비에 물을 부어 요리를 준비하는 곳
손님이 나가고 나면 남아 있는 손님들과 주인장이 꼭 당사자에 대한 뒷담화를 꺼내는데, 남에게 폐를 주지 않으려는 일본인들의 식물성과는 상반된 대목이다. “방금 나간 코스즈씨는 언제부터 게이가 된 거죠?” “그 뒤 두 사람은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나 봐요” 같은 식. 실연하거나 꿈을 잃었거나 직장에서 핍박받는 오늘의 사람들이 한 접시의 음식을 먹고 내일의 힘을 얻는다.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점은 일본식이라 할 만하다. 드물게 등장하는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는 매번 특별하다. 아마도 작가는 ‘맛있는 것은 곧 엄마 요리’ ‘먹는 것은 곧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이라는 등식을 남모르게 갖고 있는 것 같다.
일본 만화답게 게이, 호스트, 호스티스 등 범상치 않은 캐릭터들의 열전인데 다들 입체적이어서 자주 등장해도 읽는 맛이 있고, 그럼에도 질리거나 구차하지 않다. 깔끔하니 뒷맛도 길다. 메뉴로 치면 수제두부 샐러드를 곁들인 돼지고기 숙주볶음 같다. 이런 안주에는 소주도 맥주도 소맥도 시원하게 목을 넘는다.
내가 찾던 심야식당에서 자주 보이던 커플이 있었다. 뚱뚱한 남자와 마른 여자였다. 남자는 푸근한 동네 오빠 인상이었고 여자는 흰 피부에 약간 힘없어 보이는 인상이랄까. 둘은 스쿠터를 타고 와서 안주 하나 시켜놓고 소주 한 병을 나눠 먹고 일어났다. 가끔 한 병을 더 주문해 반쯤 남기고 일어서기도 했다. 뚱뚱한 남자는 거의 먹지 않고 여자만 안주를 먹는 것 같았다. 여자가 이 집 안주를 좋아해 남자가 부러 여자를 데리고 와 함께 먹어준다는 인상이었다. 아무튼 보기 좋았다. 자리가 좁고 워낙 잘 어울리는 커플이어서 가끔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흐뭇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각각 따로 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회사 동료들과 오는 것 같았고 여자는 친구들과 왔다. 술집 주인도 나처럼 안타까웠나 보다. 일부러 담담한 척 주문을 받고 술과 안주를 날랐다. 두 남녀가 함께 있을 때는 보기 좋았는데 각각 혼자가 되니 매력이 반감됐다. 늘 웃고 있어서 전에는 몰랐는데 남자는 무표정이 어울리는 강퍅한 인상이었고, 여자는 무척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횟수도 줄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줄기차게 이 집을 찾는다는 게 의외였다.
우연히 라도 마주치고 싶은 마음.
새 사람을 만날 엄두도 용기도 없다. 헤어진 사람을 잊을 자신은 더더욱 없다. 우연히 라도 만나서 어떻게 지내느냐 안부를 묻고 내가 지금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남았느냐 타진하고 싶은데, 도무지 마주쳐지지 않는다. 술에 취한 남자가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재가 타들어 가는 담배를 물고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봤다. 가슴이 아렸다. 사랑의 감정은 이렇게 주변에 전이된다.
외로운 밤, 사람보다 공간이 힘이 될 때가 있다. 귀에 감기는 음악과 낮게 울리는 이야기 소리, 주방에선 뭔가 맛있는 것이 요리되고 있고, 혼자 오거나 일행이 있는 사람 할 것 없이 저마다 뭔가를 먹으면서 추억에 잠겨 있다. 누가 으악 하고 뛰쳐나가거나 우왕 하고 울어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 찾아가면 언제나 조그맣게 간판에 불을 밝히고 있고 나를 위해 냄비에 물을 부어 요리를 준비하는 곳. 단 두 음절로 말하자면 ‘위로’다.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우리 동네에 새벽까지 하는 술집이 있다. 각자의 사연이 벚꽃처럼 피고 지는 이곳을 나는 심야식당이라 부른다.
동네에 자주 가는 식당 겸 술집이 있다. 일본에서 요리공부를 한 젊은 처자가 운영하는 곳인데 일본식 깔끔한 레시피와 한식의 칼칼함이 어우러져 음식 맛이 아주 좋다. 열 개 남짓의 메뉴를 안주로 내놓는다. 매운 떡볶이, 바지락볶음, 돼지고기 볶음, 문어숙회 같은 것들. 자주 오는 손님의 경우 취향을 파악해 알아서 맵거나 싱겁게 간을 해주고, 국물을 바특하게 혹은 자박자박하게 잡는 등 단골의 묘가 있다. 한마디로 이자카야와 대폿집이 합쳐진 묘한 분위기다. 직사각형의 작은 공간에 시멘트로 칠한 벽은 횅하니 아무것도 없다. 주방이 열려 있고 옆으로 테이블이 놓여 있다.
젊은 오너 셰프는 한때 밴드활동으로 음악을 했다는데, 포지션은 알 수 없다. 키보디스트나 기타리스트였지 않을까 추측만 할 뿐이다. 노래 잘하느냐고 물었더니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음악이 좋다. 얘기를 방해하지 않을 만한 볼륨이다. 음악과 얘기가 좁은 술집 천정에 너울너울 춤을 춘다.
술을 마시다 갑자기 대화가 끊길 때가 있다. 이곳에 흐르는 음악은 튀지도 처지지도 않아 어색해진 술상에 안정감을 준다. 그냥 가만히 음악만 듣고 있어도 좋을 만큼 선곡이 이지(easy)하다는 것인데, 이건 아무렇게나 튼다고 되는 게 아니다.
주종은 소주와 맥주. 테이블은 예닐곱 개뿐이다. 거의 고정된 안주를 파는 데도 갈 때마다 늘 북적북적 입추의 여지가 없다. 원래는 오후 여섯 시에 문을 열었는데 입소문에 탄력을 받은 데다 낮 동안 빈 공간으로 놀리는 게 아까웠던지 낮 시간엔 주인 처자의 부모가 점심 백반을 판다.
이곳엔 주로 친한 지인들과 간다.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땐 아지트처럼 곧잘 갔는데 알려지고 나서는 워낙 사람이 많아 자리 잡기가 여의치 않아졌다. 그래서 우리끼리 이런 얘기를 하며 아쉬워했다. “우리들만의 심야식당이 생겨서 좋았는데 역시 벌집이 돼버렸네.”
실연하거나 꿈을 잃었거나 직장에서 핍박받는 사람들
이런 심야식당은 단순히 돈 내고 음식만 먹는 곳이 아니다. 돈 내고 문화를 나누는 곳이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곳이다. 보통 잠들기 전 밤 시간에는 먹지 않는 것이 인간의 상식이다.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은 마음이 고장 나 있다는 뜻이다. 내 주변엔 자정을 넘겨 극렬한 허기를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 의외로 많더라. 외로운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거다.
배가 고프다고 시도 때도 없이 허기를 채우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쯤 저마다 안다. 그런데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밀려온다. 잠들 수도 없고 안 잘 수도 없는 새벽 한 시. 울컥, 욕구불만이 치솟는다. 그것은 마음의 외로움이 날 좀 달래달라고 위장에게 보내는 신호다. 살찔까 봐 아침에 얼굴 부을까 봐 다음날 컨디션이 다운될까 봐 등등 여러 가지 합당한 이유를 대가며 달래보아도 외로운 마음은 발톱을 드러내며 울어댄다. 체념한 얼굴로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물 담은 냄비를 가스불에 올렸던 적, 당신은 없었나?
“햅쌀로 지은 밥, 당신이라면 어떻게 먹겠어?”로 시작하는 6권의 ‘햅쌀 편’에서는 동양인의 주식인 밥을 먹는 다양한 방식이 소개되면서 각자의 삶의 형태도 슬쩍 들춰낸다.
“반찬은요?” “오코노미야키.” “돼지고기랑 달걀요!” “다시요. 가지에 오이, 양파, 파, 차조기 그리고 오크라와 다시마 등을 전부 잘게 썰어 섞고 간장으로 간을 한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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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술집이 손님의 단골가게가 되려면 맛있는 안주와 기똥찬 특제 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이 관건이다. 주인장의 품성이 곧 술집의 내력이 된다. 출중한 외모, 빼어난 눈치의 종업원의 역할도 크겠다. 하지만 이 역시 장기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종업원의 매력에 의지할수록 주인은 뒤로 처지면서 술집의 중심이 흔들린다. 결국 주인의 매력이 술집의 매력이 된다. 특히 동네 술집일수록 그렇다.
이 책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 된 지 오래다. 책 내용을 일부 발췌해 만든 동명 드라마는 책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아시는 바 새벽까지 깨어 있는, 외로운 사람들이 심야에 찾아와 한잔 술과 함께 가벼운 안주를 먹고 도란도란 얘기하다 돌아가는 내용이다. 주인장이 대개 말상대가 돼주고, 이따금 손님들끼리 서로의 벗이 돼주기도 한다. 연말에는 파티도 한다. 지난해 대지진이 났을 때 작가는 만화를 통해 대동단결을 호소하기도 했다. 무튼, 단골손님들끼리는 속사정을 꿰고 있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축하하고 위로한다. 드물지만 손님끼리 눈도 맞는다. 호오, 이쯤 되면 ‘외로미들의 파라다이스’라 할 만하다.
나를 위해 냄비에 물을 부어 요리를 준비하는 곳
손님이 나가고 나면 남아 있는 손님들과 주인장이 꼭 당사자에 대한 뒷담화를 꺼내는데, 남에게 폐를 주지 않으려는 일본인들의 식물성과는 상반된 대목이다. “방금 나간 코스즈씨는 언제부터 게이가 된 거죠?” “그 뒤 두 사람은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나 봐요” 같은 식. 실연하거나 꿈을 잃었거나 직장에서 핍박받는 오늘의 사람들이 한 접시의 음식을 먹고 내일의 힘을 얻는다.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점은 일본식이라 할 만하다. 드물게 등장하는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는 매번 특별하다. 아마도 작가는 ‘맛있는 것은 곧 엄마 요리’ ‘먹는 것은 곧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이라는 등식을 남모르게 갖고 있는 것 같다.
일본 만화답게 게이, 호스트, 호스티스 등 범상치 않은 캐릭터들의 열전인데 다들 입체적이어서 자주 등장해도 읽는 맛이 있고, 그럼에도 질리거나 구차하지 않다. 깔끔하니 뒷맛도 길다. 메뉴로 치면 수제두부 샐러드를 곁들인 돼지고기 숙주볶음 같다. 이런 안주에는 소주도 맥주도 소맥도 시원하게 목을 넘는다.
내가 찾던 심야식당에서 자주 보이던 커플이 있었다. 뚱뚱한 남자와 마른 여자였다. 남자는 푸근한 동네 오빠 인상이었고 여자는 흰 피부에 약간 힘없어 보이는 인상이랄까. 둘은 스쿠터를 타고 와서 안주 하나 시켜놓고 소주 한 병을 나눠 먹고 일어났다. 가끔 한 병을 더 주문해 반쯤 남기고 일어서기도 했다. 뚱뚱한 남자는 거의 먹지 않고 여자만 안주를 먹는 것 같았다. 여자가 이 집 안주를 좋아해 남자가 부러 여자를 데리고 와 함께 먹어준다는 인상이었다. 아무튼 보기 좋았다. 자리가 좁고 워낙 잘 어울리는 커플이어서 가끔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흐뭇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각각 따로 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회사 동료들과 오는 것 같았고 여자는 친구들과 왔다. 술집 주인도 나처럼 안타까웠나 보다. 일부러 담담한 척 주문을 받고 술과 안주를 날랐다. 두 남녀가 함께 있을 때는 보기 좋았는데 각각 혼자가 되니 매력이 반감됐다. 늘 웃고 있어서 전에는 몰랐는데 남자는 무표정이 어울리는 강퍅한 인상이었고, 여자는 무척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횟수도 줄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줄기차게 이 집을 찾는다는 게 의외였다.
우연히 라도 마주치고 싶은 마음.
새 사람을 만날 엄두도 용기도 없다. 헤어진 사람을 잊을 자신은 더더욱 없다. 우연히 라도 만나서 어떻게 지내느냐 안부를 묻고 내가 지금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남았느냐 타진하고 싶은데, 도무지 마주쳐지지 않는다. 술에 취한 남자가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재가 타들어 가는 담배를 물고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봤다. 가슴이 아렸다. 사랑의 감정은 이렇게 주변에 전이된다.
외로운 밤, 사람보다 공간이 힘이 될 때가 있다. 귀에 감기는 음악과 낮게 울리는 이야기 소리, 주방에선 뭔가 맛있는 것이 요리되고 있고, 혼자 오거나 일행이 있는 사람 할 것 없이 저마다 뭔가를 먹으면서 추억에 잠겨 있다. 누가 으악 하고 뛰쳐나가거나 우왕 하고 울어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 찾아가면 언제나 조그맣게 간판에 불을 밝히고 있고 나를 위해 냄비에 물을 부어 요리를 준비하는 곳. 단 두 음절로 말하자면 ‘위로’다.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우리 동네에 새벽까지 하는 술집이 있다. 각자의 사연이 벚꽃처럼 피고 지는 이곳을 나는 심야식당이라 부른다.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몇 가지 tip_ 모두가 잠든 후에야 문을 여는 식당이 진짜 심야식당. 그곳은 내 주방. 너무 고독해서 참을 수 없을 때 신김치를 송송 썰어 국수를 삶아요. 따순 김이 피어나는 면발을 후루룩 삼키면 위로받는 기분이 들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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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인생 충전기 안은영 저 | 해냄
베스트셀러 『여자생활백서』를 통해 40만 독자들에게 일과 사랑에 관한 멘토로 활동해온 안은영 작가가 신작 『여자 인생 충전기』를 내놓는다. 18년이라는 오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작가 스스로도 충전의 시간을 보내며 써내려간 이 책 속에는 "뭘 하기보다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성장과 치유의 시간을 통해 '나 자신 찾기'를 해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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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1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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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안은영
여성들의 사랑과 연애, 직장생활과 인간관계에 대한 상큼발랄한 조언서 『여자생활백서』로 40만 독자를 사로잡으며 2030 여성들의 멘토로 자리잡았다. 남자와 연애에 관한 지침서 『여자생활백서2』, 연애와 결혼의 갈림길에서 좌충우돌하는 이 시대 여성들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충고와 따듯한 위로를 담은『여자공감』이 있으며, 소설로는 『이지연과 이지연』이 있다.
가비
2013.02.28
브루스
2013.02.28
엠제이
201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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