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에 빠진 여인에게 “이건 짐승이야!”
욕망은 매력적이고 섹시하다. 땀에 흠뻑 젖도록 짜릿한 파티를 즐기다가 적당한 때에 ‘오케이, 충분해’ 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과감히 외투를 집어드는 자세로, 더 즐기고 싶지만 돌아설 줄 알 때 비로소 그렇다.
201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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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방정 떨며 웃다간 반드시 울 일이 생긴다
9월과 10월은 다이어트의 공백기다. 여름내 보디라인에 신경을 쓰다가도 한 겹의 옷이 더 걸쳐지면 국토방위의 임무를 벗은 말년병장의 마음이 된다. 최소한 더 찌지는 말자고 다짐하던 지난여름의 맹세 따위 개나 물어가라지. 관리의 촉수가 게을러지고 안도감이 든다. 마치 다시 여름이 오지 않을 것처럼, 이대로 겹겹이 옷 속에 살을 감추고 살 것처럼.
얼마나 다이어트에 목숨 거는 삶을 살았다고 가을이 반가우랴. 또 내 셀룰라이트의 분포라는 것이 여름이 지난 것에 안도할 지경까진 아니(라고 믿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창을 넘나드는 바람이 여름과 달리 눅진하지 않고 서늘한 것이 참 좋아서, 그 김에 큰 숨을 한 번씩 쉬어 본달까.
여름내 감정을 소진하느라 살이 내리기 전에 얼굴이 내려앉았다. 거울을 보다가 세면대에 찬물을 받아놓고 영화배우처럼 얼굴을 담갔다가 휙 쳐들어본다. 영화처럼 멋지지는 않았다. 숭숭 뚫린 모공 위로 물이 주룩 흐르는데, 피부가 함께 늘어지고 있었다. 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다가 너무 오랫동안 산에 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성가실 만큼 걸음을 세우게 되는 계절, 이제 가을인 거야.
그렇게 추석 연휴에 후배 하나를 달고 산에 올랐다. 이따 내려오는 길에 작설차를 끝내주게 끓여주는 집에서 한잔하는 게 좋겠네, 아니네 양이 푸짐한 할머니네 순대를 먹는 게 진리네, 어쩌네 오두방정을 떨며 내디딘 지 십분도 되지 않아 나는 그만 악 소리를 내며 주저앉고 말았다. 발을 잘못 디뎌 발목이 거의 직각으로 꺾인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발등과 발목 전체가 부어올랐다. 선배 따라 산행에 맛을 들이려던 후배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제 어깨에 내 체중을 실었다. 내가 오죽 잘난 척을 했으면 후배는 앞으로 주말마다 선배랑 산에 올라야겠다며 등산용품 일습을 장만한 터였다. 미안하고 겸연쩍어 자꾸만 끙 소리가 났다.
찜질과 물리치료를 충실히 했음에도 발목에는 차도가 없었다. 인대가 끊어지지 않길 다행이지만 꽤 느슨하게 풀려버린 데다 충격이 커서 근육 손실이 불가피했다. 결론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선조의 격언과 깨방정 떨며 웃다간 반드시 울 일이 생긴다는 엄마의 훈계를 재확인한 셈.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다쳐본 사람을 알 것이다. 인대를 다치면 성격이 괴팍해진다. 신경과 근육이 일타쌍피로 약을 올리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당연히, 낫기는커녕 하루하루 짜증과 신경질의 나날을 보내느라 몸과 마음이 애를 먹었다.
돼지의 욕망과 인간의 욕망을 동시에 갖게 된 슬픈 존재 『암퇘지』
초등학교 이후로 두 발로 힘차게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깨닫고 있다. 직립보행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증거인데, 그게 안 되니 사고까지 아둔해지는 것 같다. 병원으로부터 “발목의 움직임을 아끼라”는 처분을 받았는데, 때는 바야흐로 시월과 십일월의 길목. 오곡백과가 익는 계절에 움직임을 줄이라니 이거 큰일이다. 게다가 살짝 찬바람까지 불어 핑곗김에 더 게을러지고 있으니, 아이고 무럭무럭 몸 불어날 일만 남았다.태생은 속일 수 없다. 나는 먹는 일엔 잽싸고 움직이는 데엔 늘 변명을 일삼기로 태어났다. 열매가 익어 온 세상에 진동하는 맛있는 냄새를 킁킁대며 탐하고, 두 번 움직일 것을 한 번으로 줄이며 한들한들 가을바람에 취해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그 여자(라기보다 존재)가 생각났다. 한때 아름다운 여성이었던 분홍빛 피부의 ‘암퇘지’.
배를 곯을 것이 늘 걱정이던 주인공은 향수가게에 가까스로 취직해 돈을 받고 몸을 판다.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육감적인 몸매를 가졌고, 수치심을 모르는 뻔뻔한 성격은 가게 점원 일보다는 매춘에 더 적합했다. 남자들은 그녀의 몸을 당당하게 욕심냈다.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일은 점점 생활수단을 넘어 그녀를 거대한 탐욕의 덩어리로 만든다. 쾌락을 얻고 돈을 받으면서 그 돈으로 맛있는 것을 사먹고 예쁜 옷을 사 입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절제를 모르는 젊은 주인공에겐 마땅히 즐거운 나날이었다. 실제로도 우리는 그러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탐욕의 위력은 한계가 없다는 데 있다. 욕망할수록 거대한 탑이 쌓인다. 그녀가 자본주의와 섹스에 탐닉할수록 욕망의 원천이자 입구로 상징되는 여성성, 즉 가슴과 엉덩이가 거대해지기 시작한다. 급기야 속옷이 보이지 않을 만큼 볼썽사나워졌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그녀를 배 밑에 깔고 욕망의 대상으로 삼던 남자들은 거침없는 그녀의 (가슴과 엉덩이의) 과도한 발육에 대고 “이건 짐승이야!”라며 도망쳤다. 두 개였던 가슴이 여섯 개로 불어났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오물을 던지기 시작한다. 허리를 펼 때마다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부터 그녀는 급기야 네 발로 걷기 시작한다.
더러운 음식과 잠자리, 참기 힘든 욕설과 모욕을 견디면서도 그녀는 향기로운 것, 신선한 것, 풍요로운 것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는 않는다. 돼지의 욕망과 인간의 욕망을 동시에 갖게 된 슬픈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벌레가 돼버린 카프카의 ‘변신’보다는 고민이 덜할까. 욕망의 이중구조 속에서 몸부림치느라 오감으로 스미는 슬픔은 오히려 강도 높다. 작가 자신이 여자이면서도 추하고 적나라하게 여성성을 짓이긴 시도에 대해 프랑스 문단은 반겼고, 독자는 논쟁했다. 1999년 세기말에 나온 문제작이었다.
오만함을 버려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
여성이 욕망의 덫에 빠지기 쉬운 예는 다이어트와 성형이다. 그리하여 남자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천부당만부당한 착각이다. 욕망이라고 꼭 나쁘진 않다. 건강한 욕망은 발전을 가져온다. 더 예뻐지고 날씬해지고 싶다는 욕망은 여자라면 누구나 품어봄 직하고, 어느 정도의 선에서 그칠 수 있다면 안전하다. 168cm에 49kg의 신체사이즈는 첫눈에 보기 좋을지 몰라도 인생을 바꿀 만큼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다. 각선미와 센스, 지성미, 경제력까지 보태져야 저 수치가 도드라진다. 몸매야 다이어트해서 빼면 되지만 나머지는 어쩔 건데? 이쁘고 날씬한 여자는 ‘팔자를 쉽게 고친다’는 구시대적 망상에서 제발 벗어나자. 남자들,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고, 우리 여자보다 훨씬 현실적인 계산에 능하신 존재다.
주인공은 왜 이제야 이런 순리를 터득한 것일까. 의아했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보니 답이 나왔다. 인간의 오만함이었다. 먹고 쌀 줄밖에 모르는 하급의 생물이 돼서야 세상의 순리를 알게 된다. 섣부른 욕망에는 반드시 파국이 뒤따른다는 것을 인간일 때는 알지 못한다. 오만함을 버려야만 욕망의 실체를 목도하고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러니, 돼지와 인간의 차이가 무엇인가. 절제할 수 있으면 인간이고, 끝없이 먹이에 코를 박고 창자가 터져나가도록 욕심부릴 줄밖에 모르면 그건 돼지다. 사람이면서 돼지다.
욕망은 매력적이고 섹시하다. 땀에 흠뻑 젖도록 짜릿한 파티를 즐기다가 적당한 때에 ‘오케이, 충분해’ 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과감히 외투를 집어드는 자세로, 더 즐기고 싶지만 돌아설 줄 알 때 비로소 그렇다.
9월과 10월은 다이어트의 공백기다. 여름내 보디라인에 신경을 쓰다가도 한 겹의 옷이 더 걸쳐지면 국토방위의 임무를 벗은 말년병장의 마음이 된다. 최소한 더 찌지는 말자고 다짐하던 지난여름의 맹세 따위 개나 물어가라지. 관리의 촉수가 게을러지고 안도감이 든다. 마치 다시 여름이 오지 않을 것처럼, 이대로 겹겹이 옷 속에 살을 감추고 살 것처럼.
얼마나 다이어트에 목숨 거는 삶을 살았다고 가을이 반가우랴. 또 내 셀룰라이트의 분포라는 것이 여름이 지난 것에 안도할 지경까진 아니(라고 믿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창을 넘나드는 바람이 여름과 달리 눅진하지 않고 서늘한 것이 참 좋아서, 그 김에 큰 숨을 한 번씩 쉬어 본달까.
여름내 감정을 소진하느라 살이 내리기 전에 얼굴이 내려앉았다. 거울을 보다가 세면대에 찬물을 받아놓고 영화배우처럼 얼굴을 담갔다가 휙 쳐들어본다. 영화처럼 멋지지는 않았다. 숭숭 뚫린 모공 위로 물이 주룩 흐르는데, 피부가 함께 늘어지고 있었다. 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다가 너무 오랫동안 산에 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성가실 만큼 걸음을 세우게 되는 계절, 이제 가을인 거야.
그렇게 추석 연휴에 후배 하나를 달고 산에 올랐다. 이따 내려오는 길에 작설차를 끝내주게 끓여주는 집에서 한잔하는 게 좋겠네, 아니네 양이 푸짐한 할머니네 순대를 먹는 게 진리네, 어쩌네 오두방정을 떨며 내디딘 지 십분도 되지 않아 나는 그만 악 소리를 내며 주저앉고 말았다. 발을 잘못 디뎌 발목이 거의 직각으로 꺾인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발등과 발목 전체가 부어올랐다. 선배 따라 산행에 맛을 들이려던 후배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제 어깨에 내 체중을 실었다. 내가 오죽 잘난 척을 했으면 후배는 앞으로 주말마다 선배랑 산에 올라야겠다며 등산용품 일습을 장만한 터였다. 미안하고 겸연쩍어 자꾸만 끙 소리가 났다.
찜질과 물리치료를 충실히 했음에도 발목에는 차도가 없었다. 인대가 끊어지지 않길 다행이지만 꽤 느슨하게 풀려버린 데다 충격이 커서 근육 손실이 불가피했다. 결론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선조의 격언과 깨방정 떨며 웃다간 반드시 울 일이 생긴다는 엄마의 훈계를 재확인한 셈.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다쳐본 사람을 알 것이다. 인대를 다치면 성격이 괴팍해진다. 신경과 근육이 일타쌍피로 약을 올리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당연히, 낫기는커녕 하루하루 짜증과 신경질의 나날을 보내느라 몸과 마음이 애를 먹었다.
돼지의 욕망과 인간의 욕망을 동시에 갖게 된 슬픈 존재 『암퇘지』
초등학교 이후로 두 발로 힘차게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깨닫고 있다. 직립보행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증거인데, 그게 안 되니 사고까지 아둔해지는 것 같다. 병원으로부터 “발목의 움직임을 아끼라”는 처분을 받았는데, 때는 바야흐로 시월과 십일월의 길목. 오곡백과가 익는 계절에 움직임을 줄이라니 이거 큰일이다. 게다가 살짝 찬바람까지 불어 핑곗김에 더 게을러지고 있으니, 아이고 무럭무럭 몸 불어날 일만 남았다.태생은 속일 수 없다. 나는 먹는 일엔 잽싸고 움직이는 데엔 늘 변명을 일삼기로 태어났다. 열매가 익어 온 세상에 진동하는 맛있는 냄새를 킁킁대며 탐하고, 두 번 움직일 것을 한 번으로 줄이며 한들한들 가을바람에 취해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그 여자(라기보다 존재)가 생각났다. 한때 아름다운 여성이었던 분홍빛 피부의 ‘암퇘지’.
탐욕의 위력은 한계가 없다는 데 있다. 욕망할수록 거대한 탑이 쌓인다. 그녀가 자본주의와 섹스에 탐닉할수록 욕망의 원천이자 입구로 상징되는 여성성, 즉 가슴과 엉덩이가 거대해지기 시작한다. 급기야 속옷이 보이지 않을 만큼 볼썽사나워졌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그녀를 배 밑에 깔고 욕망의 대상으로 삼던 남자들은 거침없는 그녀의 (가슴과 엉덩이의) 과도한 발육에 대고 “이건 짐승이야!”라며 도망쳤다. 두 개였던 가슴이 여섯 개로 불어났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오물을 던지기 시작한다. 허리를 펼 때마다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부터 그녀는 급기야 네 발로 걷기 시작한다.
걷다가 나는 벤치에 주저앉고 말았다. 관절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잠시 쪼그리고 앉았더니 한결 나아졌다.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티티새도 있었고 이시 레 물리노 쪽으로는 종달새도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종달새의 울음소리를 구별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수구 근처에서는 생쥐 몇 마리가 먹을 것을 찾고 있었고 생쥐를 노리고 있는 고양이도 한 마리 보였다. | ||
나는 대지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은 먹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몸은 불편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나는 조심조심하며 될수록 고기에 관련된 것들, 즉 순대 모양을 한 것이나 피 색깔을 띤 것, 혹은 햄이나 곱창을 떠올리는 것들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주인공은 돼지가 되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욕망에 충실한 거대동물이면서 스스로를 가장 낮은 곳으로 위치시키며 살아가는 존재. | ||
오만함을 버려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
여성이 욕망의 덫에 빠지기 쉬운 예는 다이어트와 성형이다. 그리하여 남자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천부당만부당한 착각이다. 욕망이라고 꼭 나쁘진 않다. 건강한 욕망은 발전을 가져온다. 더 예뻐지고 날씬해지고 싶다는 욕망은 여자라면 누구나 품어봄 직하고, 어느 정도의 선에서 그칠 수 있다면 안전하다. 168cm에 49kg의 신체사이즈는 첫눈에 보기 좋을지 몰라도 인생을 바꿀 만큼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다. 각선미와 센스, 지성미, 경제력까지 보태져야 저 수치가 도드라진다. 몸매야 다이어트해서 빼면 되지만 나머지는 어쩔 건데? 이쁘고 날씬한 여자는 ‘팔자를 쉽게 고친다’는 구시대적 망상에서 제발 벗어나자. 남자들,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고, 우리 여자보다 훨씬 현실적인 계산에 능하신 존재다.
나는 내 운명을 탓할 생각이 없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곁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흙과 부식토에 섞여 풍겨오는 몸 냄새와, 채 눈을 뜨기도 전에 입으로 한입 베어 무는 신선한 풀 맛보다 이 세상에 더 좋은 것은 없다. 도토리와 밤은 꿈속에서 발길질만 해도 언제나 수북이 쌓였다. | ||
이러니, 돼지와 인간의 차이가 무엇인가. 절제할 수 있으면 인간이고, 끝없이 먹이에 코를 박고 창자가 터져나가도록 욕심부릴 줄밖에 모르면 그건 돼지다. 사람이면서 돼지다.
욕망은 매력적이고 섹시하다. 땀에 흠뻑 젖도록 짜릿한 파티를 즐기다가 적당한 때에 ‘오케이, 충분해’ 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과감히 외투를 집어드는 자세로, 더 즐기고 싶지만 돌아설 줄 알 때 비로소 그렇다.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몇 가지 tip_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순대를 못 먹었습니다. 남의 창자에 당면과 고기를 우겨넣은 것이 내 창자에 들어가는 게 역겨웠습니다. 지금은 순대국을 먹어야 술이 깹니다. 돼지순대,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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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인생 충전기 안은영 저 | 해냄
베스트셀러 『여자생활백서』를 통해 40만 독자들에게 일과 사랑에 관한 멘토로 활동해온 안은영 작가가 신작 『여자 인생 충전기』를 내놓는다. 18년이라는 오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작가 스스로도 충전의 시간을 보내며 써내려간 이 책 속에는 "뭘 하기보다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성장과 치유의 시간을 통해 '나 자신 찾기'를 해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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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5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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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안은영
여성들의 사랑과 연애, 직장생활과 인간관계에 대한 상큼발랄한 조언서 『여자생활백서』로 40만 독자를 사로잡으며 2030 여성들의 멘토로 자리잡았다. 남자와 연애에 관한 지침서 『여자생활백서2』, 연애와 결혼의 갈림길에서 좌충우돌하는 이 시대 여성들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충고와 따듯한 위로를 담은『여자공감』이 있으며, 소설로는 『이지연과 이지연』이 있다.
브루스
2013.02.28
rostw
2013.02.13
허영이 단순함을 넘어서면 인간이라는 본잘적인 존재까지 위협을 하는 군요
Enkaist
201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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