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으로 우리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푸른 개 장발』
『푸른 개 장발』은 실제로 작가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개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목청 씨가 씨어미 개를 키워 강아지를 분양하며 용돈 벌이를 하는 모습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봐 왔던 풍경이었다. 많은 개들이 작가의 집을 거쳐 갔고, 그 모습들이 한 데 모여 ‘장발’의 캐릭터로 탄생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가족들의 모습이 드러나는 이야기이기에 힘든 부분들도 있었다.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른 개 장발』 속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이 많은 부분 담겨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목청 씨와 장발, 두 캐릭터의 모습 속에 녹여냈다. 목청 씨처럼 그의 아버지도 개와 함께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었다. 삶의 막바지에서 공감을 나누는 대상으로 서로의 곁을 지켰다. 그것이 참 다행이지 않은가, 작가는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푸른 개 장발』의 집필을 끝마쳤을 때, 내내 작가를 괴롭히던 부담감은 사라지고 마음이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모델은 아버지
“많은 사람들이 『마당을 나온 암탉』을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자 쓴 것으로 생각하는데, 제가 대표적으로 모델로 삼은 사람이 아버지였어요. 문학이라는 것은 보여 지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작가가 의도했던 것들이 많이 숨어있는 거죠. 그것들을 독자와 더불어 숨기고 찾으면서 소통하는 데 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작가 황선미에게 아버지는 특별한 존재다. 작품을 쓸 때 중심에서 큰 지주 역할을 해 주는 대상이 바로 아버지였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는 여성으로 변주된 모습으로, 『내 푸른 자전거』에서는 사실적인 스케치 속에 아버지를 담아냈다.
『푸른 개 장발』의 이야기 안에서 작가의 아버지는 목청 씨와 장발, 두 캐릭터 안에 녹아들어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유달리 강하고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장발과 도통 표현할 줄 모르는 무뚝뚝한 아버지인 목청 씨.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오히려 작가는 아버지 세대의 진짜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마음 속 깊은 곳에 넣어두고 꺼내어 보일 줄 몰랐던 아버지, 누구보다도 자식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도 ‘사랑한다, 보고 싶다’ 한 마디를 할 줄 몰라 외로웠던 아버지. 목청 씨와 장발의 반목과 화해의 과정을 지켜보며 둘이 아닌 한 명의 아버지 모습이 그려질 때, 독자의 마음속에도 저마다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백번 고치더라도, ‘재밌어야’ 독자를 만날 수 있다
“작가가 처음 써서 책이 되는 일은 결단코 없어요. 백번 이상을 읽고 고치죠. 자기가 쓴 글이 끝까지, 정말 백번 넘게 고치고 읽어도 재밌어야 그것이 독자를 만나는 일이 돼요. 쓰는 것이 고통스럽고 너무 힘들면 그것이 책이 될 리가 없죠. 작가들이 피고름으로 글을 쓴다고 하는 것조차도 희열 중에 한 가지 표현이에요. 그것 자체가 다른 것보다 즐겁고 좋고 기쁘고, 그런 것의 반어적인 표현이죠. 그걸 해내지 못하면 글을 쓸 수가 없고 작가로 살 수 없어요.”
작가와의 만남을 위해 주말의 늦잠과 가족나들이를 기꺼이 포기하고 온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황선미가 읽은 것은 ‘열정’이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동화책을 읽다가 어두워져 더 이상 글씨가 보이지 않을 때쯤 도서관을 떠나던 작가의 초등학교 시절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자연스럽게 작가의 어린 시절, 그 시간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작가가 되겠다, 거창하게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도 평생 책을 읽고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 생각은 한 번도 변함이 없었다.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고, 어느 순간 꿈꾸던 것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것이 좋았고 동시에 무척 쓰고 싶어졌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의 머릿속에서 화학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에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현상이다. 다만 그것이 생각에 그치고 마느냐, 실제로 쓸 수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똑같이 쓰더라도 그것을 남다르게 써내는 것이 작가의 기질이다. 물론 타고난 기질만으로 작가가 되고 책을 쓸 수는 없다. 자신이 쓴 글을 완성하는 구체적인 연습이 있어야 하고, 완성된 글을 수도 없이 고치는 과정을 거칠 때 마침내 성공적인 작가가 될 수 있다.
“남다른 것들을 채워주는 부분은 경험이에요. 책을 읽어서, 글 쓰는 연습을 많이 해서 작가가 되는 일은 없어요. 정말 글을 잘 쓰고 싶으면 나보다 남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야 돼요. 글은 나에 대해서 쓰는 것만이 아니에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주인공 한 사람만은 아니잖아요. 개성적인 하나하나의 인물들을 가지고 뭔가를 쓰려면, 내가 이렇게 생각할 때 또 다른 사람은 같은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받아들이고 표현하고 행동하는지 알아야 해요. 나에게 머물러 있던 생각들을 남에게 보여주고, 관찰하고 대화하고, 만나는 과정이 필요해요. 궁금증을 그렇게 확대시켜 나가야 해요.”
실패해보지 않으면 성공의 기쁨도 느낄 수 없다
경험. 그것은 모든 작품의 시작점이고, 모든 이의 삶을 채우는 요소다. 이 날 황선미 작가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들도 모두 경험에 대한 것이었다. 작품을 쓰게 한 경험, 작가가 되기까지의 경험. 이어진 독자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작가의 또 다른 경험들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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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무척 유명해졌는데, 그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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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처음 원고를 줄 때는 그림도 없는 상태의 거친 원고에요. 그 후의 일을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죠. 유명해졌을 때라는 건 12년이 흘렀을 때 얘기에요(『마당을 나온 암탉』은 2000년도에 처음 출간됐다). 그건 결과죠. 처음 원고를 넘길 때는 ‘내용이 너무 어려우니까 청소년용으로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저는 동화로 내고 싶다고 했고요. 『마당을 나온 암탉』이 독자를 확보하고 연극이 되고 또 영화가 되고, 지금 가족 뮤지컬로 제작이 되는데 이렇게 된 건 세월이 쌓인 거예요. 한참 지나면서 생겨난 일들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아, 내가 아버지한테서 정말 든든한 용돈을 하나 받아놨네’ 그런 생각이 들죠. 아버지를 모델로 쓴 이야기니까요. ‘이것은 이제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가는구나’하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작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썼지만 읽는 사람들은 늘 자기만의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어내니까 ‘이것은 어쩌면 독자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유명해질 거란 건 처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행운이었다고 생각하죠. -
작가가 되기 전부터 글쓰기대회에서 상을 많이 타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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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대회를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고 상을 받아본 적도 한 번도 없어요. 심지어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주는 상, 데뷔라고 하는 것도 받아본 적이 없어요. 『마당을 나온 암탉』도 떨어진 거고 『내 푸른 자전거』도 떨어졌고 『샘마을 몽당깨비』도 떨어졌고 『여름나무』도 떨어졌고 다 떨어졌어요. 떨어지는 건 정말 기분 나쁘고 속상하죠. 어쨌든 경쟁에서 졌다는 거니까. 그런데 지금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떨어진 것만큼 큰 공부가 없었다는 거예요.
만약에 첫 번째에 굉장히 좋은 상을 받고 성공을 크게 했으면 추락하는 일 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실패하게 되면 그 전까지 명작 같았던 것들이 바로 쓰레기처럼 느껴지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 냉정해지면서 ‘뭐가 잘못되었던 거지? 뭐가 부족했던 거지?’ 이런 생각이 들죠. 그래서 객관적으로 거리감을 가지고 다시 볼 수 있게 돼요. 사실 이건 굉장히 큰 경험이에요. 그래서 떨어지는 경험은 아프고 힘든 거지만 좋은 일이기도 하더라고요. 실패해 보지 않았으면 성공의 기쁨도 몰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사실은 굉장히 멋진 조명을 받으면서 데뷔를 해도 그게 끝인 작가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몇 번 실패했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죠. 그건 그렇게 큰 게 아니에요. 내가 이걸 내 인생에서 끝까지 좋아하면서 잘하려고 노력할 수 있나가 제일 중요해요. -
작가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작품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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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 보람이 있었던 첫 번째 책이 『나쁜 어린이 표』에요. 출간 후 첫 번째 독후감대회를 했을 때, 대상을 받았던 친구의 이야기가 책의 내용보다 훨씬 더 가슴이 아팠어요. 훨씬 더 슬픈 내용이었고 아이가 상처를 받은 내용이었죠. 그 아이가 정말 마음에 담아두고 꺼내지 못할 상처였을 것 같은데 그 책을 읽고 나서 자기 얘기를 했어요.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고 그 당시에 어떤 마음이었는지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글을 읽고 눈물이 났는데, 그 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문학이 삶의 환기라고 하더니, 어쩌면 이 아이한테는 『나쁜 어린이 표』가 자신의 감춰두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지 않았나.’ 그래서 작가가 글을 쓸 때는 훨씬 더 많은 책임감이 요구되는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를 꺼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책이 하는 역할과 작가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끔 해 준 책이에요. 『나쁜 어린이 표』가 100만 부, 100쇄, 이런 기록도 갖고 있지만 작가로서의 생각을 한 번 더 다지게 해줬다는 면에서 저한테는 아주 중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황선미 작가의 동화는 어른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동화는 많지만, 어른과 아이의 마음을 모두 울릴 수 있는 동화는 흔치 않다.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아이들 동화인데 의외로 재밌네’라는 감탄보다 ‘어른인 내가 느끼는 이 감성을 아이들도 읽을 수 있단 말이야?’ 놀라움이 먼저 터져 나온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선사했던 놀라움은 『푸른 개 장발』에도 숨어 있었다.
동화는 어린 아이들이나 읽는 이야기라는 편견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은 ‘어리니까 모를 거야’라는 성급한 판단일지도 모른다. 황선미 작가의 작품이 어떻게 이런 깨달음을 주는 것인지, 어린이 독자들을 대하는 작가의 진지한 태도에서 엿볼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푸른 개 장발』을 읽으며 많은 부모님들이 동화를 읽는 재미는 물론, 미처 알지 못했던 아이의 세상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 푸른 개 장발 황선미 글/김동성 그림 | 웅진주니어(웅진닷컴)
『마당을 나온 암탉』을 쓴 황선미 작가의 책입니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강아지를 팔아 용돈벌이를 하는 주인 목청씨와 새끼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모성애 강한 장발의 갈등과 화해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장발은 혼자 다른 외모로 태어나 어미로부터 무시당하고 형제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 큰 개입니다. 그런 장발이 낳은 강아지들을 파는 목청씨는, 무뚝뚝하고 말수 적지만 가족에겐 헌신적인 사람입니다. 이 둘이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화해하며 함께 보내는 시간을 보면서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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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쿠쿠
2012.12.10
sind1318
2012.12.04
팡팡
201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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