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밝히는 귀여운 곰 인형과 철없는 30대 남자의 이야기 - <19곰 테드>와 함께 본 발칙한 영화들
원제 <테드>를 ‘19금’이 가진 은밀한 뉘앙스를 풍기는 <19곰 테드>로 바꾼 기발한 한국 제목은 사실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얘기해 준다. <19곰 테드>는 발칙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로 <행 오버>와 <내 여자 친구의 결혼식> 등 섹스 코미디의 흥행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201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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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테드>를 ‘19금’이 가진 은밀한 뉘앙스를 풍기는 <19곰 테드>로 바꾼 기발한 한국 제목은 사실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얘기해 준다. <19곰 테드>는 발칙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로 <행 오버>와 <내 여자 친구의 결혼식> 등 섹스 코미디의 흥행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주인공 존은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곰 인형 테드가 존의 유일한 친구. 존은 테드가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고, 동화처럼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 27년 후, 35세가 된 존은 여전히 테드와 절친이다.
영화에서 주목해 봐야 할 점은 주인공 사람들이 나이가 들 듯, 겉으로는 귀여워 보이는 테드 역시 능구렁이 어른이 되어있다는 기발한 상상력이다. 귀여운 곰 인형이 30대 성인 남자처럼 철없고 거칠고 밝히고 놀기 좋아한다는 설정은 ‘섹스 코미디’로서 상상 가능한 가장 발칙한 농담이 된다.
테드는 단순히 말을 할 수 있는 곰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귀여운 외모를 십분 활용, 여성들에게 과감한 스킨십을 서슴지 않는다. 적절한 애교, 그리고 유려한 말솜씨까지 모두 섭렵한 테드는 그 어떤 여성이라도 단 10분 만에 공략한다.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고의 카사노바, 테드의 발칙한 연애사는 노골적일 정도로 섹시하다. 게다가 테드는 하루 종일 맥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술, 담배, 여자가 모두 존재하는 파티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테드는 음주가무의 절정을 보여준다.
문제는 존의 여자 친구 로리와 함께 동거하는 테드의 기행이, 두 연인 사이를 사사건건 방해하면서 시작된다. 여자 친구 입장에서는 어엿한 자신의 남친이 곰 인형을 끼고 사는 걸 지켜봐야 하고, 그야말로 속 터지는 상황의 연속이다. 하지만 존에게 테드는 단순한 곰 인형이 아니라, 유년시절의 추억이며 인생의 동반자이다. 존과 여자 친구 사이의 갈등의 주원인이 테드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여자 친구의 뜻에 따라 존은 테드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야기의 드라마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떠들썩한 막장 개그에서, 두 남자(?)의 진한 우정과 그 의미를 되짚어가는 후반부는 잔잔하게 성인 남성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성인용 애니 <패밀리 가이 Family Guy>의 제작자이자 다양한 엔터테이너로 미국에선 유명한 세스 맥팔레인이 직접 감독 및 테드의 목소리연기까지 맡으면서 영화는 더욱 쫀쫀하고 풍성해졌다. 게다가 최근 트렌드인 복고적 감수성을 담은 에피소드가 더해져 성인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스타워즈, 전격 Z작전, 플래시 고든 등의 80년대 작품은 물론, 주연을 맡은 마크 월버그, 카메오 노라 존스, 라이언 레이놀즈, 주조연급 지오바니 리비시 까지 반가운 얼굴들이 불쑥 등장하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불쾌, 발칙, 난잡, 경쾌 사이에서
<디바인 대소동>
거슬러 올라가 발칙한 상상력의 영화하면 바로 떠오르는 건 존 워터스 감독의 초기 영화들이다. 그는 약한 비위를 마구 휘젓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영화로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우리에겐 <핑크 플라멩고>로 알려진 여장 남자 디바인이 주인공으로 나선 1974년 <디바인 대소동>과 1977년 <막가는 인생> 등은 구역질나는 이미지로 가득한데도 관객들은 킬킬거리게 된다.
물론 불쾌함에 몸서리를 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세상과 관객을 조롱하는 과격한 이미지는 노골적이고 발칙하다. 섹스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나이가 되자마자 8mm 카메라를 손에 들고 페티시 포르노에 가까운 홈 무비들을 만들기 시작했던 그는 첫 번째 장편영화 <몬도 트라쇼>(69)의 시사회가 열리기도 전에 외설죄로 체포되는 소동을 겪으며 언더그라운드 영화계에서 악명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70년대 내내 싸구려 작품들을 잉태했고,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통해 컬트의 반열에 올랐다.
<프라이빗 스쿨>, <포키스>
80년대에는 피비 케이츠 등 청춘스타들이 등장하는 <프라이빗 스쿨> 등의 영화가 인기를 끌었는데, 섹스 코미디 영화의 원조 격이라면 밥 클락 감독의 1981년 작품 <포키스> 시리즈를 들 수 있다. <포키스>는 단 400만 달러로 제작되어 1억 달러가 넘는 80년대 섹스 코미디 중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였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미국 청소년들에겐 필수 관람 작이라고 추천될 만큼(90년대 한국영화 <몽정기>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섹스에 대한 호기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웃음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공부보다는 여자의 몸에 더 많은 관심과 열정을 보여주는 악동들의 귀여운 애정행각과 함께 나름대로 당시 미국사회의 이슈였던 유태인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도 꼬집고 있다. ‘포키스’라는 성인 클럽에 출입하려다 망신을 당한 고등학생들이 클럽 주인에게 복수하는 것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1편의 흥행에 힘입어 80년대에 3편까지 제작되었고, <섹스 앤 더 시티>의 킴 캐트럴의 젊은 시절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아메리칸 파이>
80년대 <포키스>에 이어 90년대 말에는 화장실 유머의 진수를 보여준 <아메리칸 파이>가 섹스 코미디의 강자로 부각되었다. 파이의 새로운 용도를 발견시킨 이 영화는 고등학생들의 발칙한 몽정기였다. 이 영화는 다양한 고등학생들의 성적 호기심과 함께, 그런 아들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고민까지도 끌어안으면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편의 성공에 힘입어 대학생이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아메리칸 파이 2>는 섹스라는 화두에 지나치게 민감하지만, 대학생이 되어 어느 정도 성숙해진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섹스 파트너가 아니라 소통 가능한 이성친구로 관계를 자리매김하려는 케빈과 비키의 이야기나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말초적인 성욕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서로에 대한 애정을 쌓아나가는 오즈와 헤더의 에피소드는 단순한 섹스 코미디가 아닌, 일종의 성장 영화로서의 균형감을 보여준다.
중간에 만들어진 비디오 용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를 제외하자면, 영화판으로서는 네 번째 이야기인 <아메리칸 파이 : 19금 동창회>에서는 3편에서 결혼에 성공한 미셸과 짐 커플이 부모가 된 이후를 보여준다. 고등학생의 발칙한 상상력이 사라지고, 노숙해진 주인공들이 전편의 에피소드를 반복하는 점이 다소 식상하긴 하지만 <아메리칸 파이>라는 시리즈 영화의 명맥이 유지되면서, 전편의 배우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영화 제목처럼 하나의 동창회처럼 반가운 일이다.
결혼과 섹스에 대한 농담 : <행 오버>, <내 여자 친구의 결혼식>
<섹스 앤 더 시티>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TV 시리즈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는 다양한 섹스의 담론은 큰 인기를 얻었고, 세상의 모든 여성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여주인공들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TV 시리즈가 끝난 후, 좀 더 자극적인 에피소드로 채워진 영화판으로 이어졌다.
1편의 성공에 비해, 2편의 에피소드가 식상했던 이유는 할까 말까 망설이던 캐리의 결혼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혼 이후의 섹스 코미디는 아무래도 도덕적 망설임 때문에 다소 김이 빠지는 감이 있다. 결혼이라는 담론으로 파고들면 너무 무겁고 진지한 영화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미혼과 결혼이라는 사이, 그 경계선에 선 순간 ‘결혼식’ 자체를 영화의 소재로 다루는 영화가 많이 있는데, 결혼식 해프닝은 ‘결혼생활’이라는 묵직한 담론으로 빠지지 않아도 되지만, 결혼식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에 꽤 매력적인 영화의 소재가 된다.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행 오버>
<내 여자 친구의 결혼식>과 <행 오버> 시리즈는 각각 동성친구의 결혼식을 앞두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다. <내 여자 친구의 결혼식>은 쉽게 흥행하기가 힘든 R등급 여성 코미디 영화지만 <섹스 앤 더 시티> 극장판의 흥행기록을 가뿐히 넘어섰다.
진상 남자들의 여행기, <행 오버> 시리즈는 한 번 취하면 필름이 끊겨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결혼식을 앞두고 벌이는 기상천외한 사건을 다룬 코미디이다. 노골적이고 잔인한 미국식의 유머가 불편한 관객이라면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장면들도 있지만, 아마 영화가 가지고 있는 남자들의 철없는 모습에 주목한다면 <행 오버> 시리즈는 여전히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19금 코미디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행 오버> 시리즈는 역대 R등급 코미디영화 1위, 2위, 장르불문 역대 R등급 영화 3, 4위에 오른 초특급 흥행작의 반열에 올랐으니, 남자 친구들 사이의 뻔뻔하고 발칙한 섹스 코미디는 2000년대에도 여전히 흥행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팬티 속의 개미>
<너무 밝히는 소녀 알마>
미국식 농담에 식상한 관객에겐, 독일의 재기 넘치는 코미디 <팬티 속의 개미>라는 작품이 신선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느 날 자신의 성기가 말을 걸기 시작한다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솔직히 기발한 상상력에 비해 완성도가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섹스를 숨겨야 하는 금기의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담은 유럽 섹스 코미디의 전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 정도는 볼만한 영화이다.
노르웨이의 상큼한 섹스 코미디 <너무 밝히는 소녀 알마>는 호르몬 분비를 주체 못하는 사춘기 소녀가 주인공이다. 노골적인 제목과 달리, 이 영화는 사춘기 소녀의 성적 모험이나 욕망 보다는 사춘기 소녀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현실을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태도도 함께 보여주는 이 영화의 결말은 제법 흐뭇하다. 발칙하지만 순수한 사춘기 소녀의 성장담을 보고 싶은 관객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페스티발>
우리나라에도 드물지만 섹스 코미디 영화가 몇 편 개봉되었다. 청소년 관람가인 섹스 코미디 <몽정기> 시리즈는 소년 혹은 소녀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영화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2010년 이해영 감독의 <페스티발>은 근래 보기 드문 섹스 코미디로 제 몫을 해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변태’같다. 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샤방하고 쾌활하다. ‘변태’들의 애정행각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공정하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서 변태인 주인공들이 온전하다고 주장하는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힐 때 발생하는 폭소가 이 영화의 웃음의 원천이다. <페스티발>의 인물들은 세상과 맞서기에 앞서 ‘변태’인 자신을 당당하게 긍정하는 것이 먼저임을 배운다. 근래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유쾌하면서도 발칙한 영화였다.
<숏 버스>
앞서 섹스 코미디 영화를 언급하면서 사용한 ‘발칙하다’는 의미는 사전적으로 버릇없고 무례하다는 뜻이 아니라, 참신하고 재기 넘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밝혀야겠다. ‘성’적인 관심과 호기심은 깊은 담론으로 빠지면 끝없이 음울하고, 조금만 노골적으로 다루면 외설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급된 영화들은 담론과 외설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섹스를 위험하고 음침한 것이 아닌 경쾌하고 즐길만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코미디는 아니지만 2006년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숏 버스>는 섹스와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 그리고 섹스를 통해 서로를 끌어안는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다.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로 구별되는 성 정체성은 이 영화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클럽 ‘숏 버스’에 모인 사람들은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다가갈 대상과 환경을 찾지 못해 절뚝거리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는 공간이다. 수 차례의 난교 장면은 음란하지 않고, 오히려 환상적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음악과 미첼 감독의 낙관적인 시선은 그 노골적인 성애 장면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건강하게 만든다. 외설과 예술, 무거운 담론과 가벼운 농담 사이에서 <숏 버스>는 관객의 호기심이 지향하는 바와 영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환상, 담론을 무력화시키는 농담이 어떤 건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영화이다. 어쩌면, 섹스 코미디가 지향해야하는 방향성은 <숏 버스>라는 드라마 안에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 19곰 테드(Ted, 2012)
세스 맥팔레인
마크 월버그 | 밀라 쿠니스 | 세스 맥팔레인
코미디,환타지
청소년 관람불가
2012.09.27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5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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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aquarid
2013.02.17
did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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