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이지성) 한때 아이들에게 무한히 영향 받는 교사였다. 교탁 위에 올라가 누워 있는 아이, 책상 위에 올라가 춤을 추는 아이, 책상 밑에 숨어 있어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아이, 자극적인 유행어로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아이. 교실에 들어가면 나는 늘 이런 아이들을 만나고, 이런 아이들과 수업을 해야 했다. 나는 늘 흥분 상태였다. 굉장히 예민한 상태라서 누가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도 화가 났었다.
그때 내 삶을 ‘스위치 같은 삶’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아이들이 누르는 대로 ‘켜졌다 꺼졌다’ 반복하는 바보 스위치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들으면 기뻐하고 힘을 냈지만,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어김없이 기분 나빠하고 화를 냈다. 어떤 아이가 다른 아이를 때리는 것을 보면 나도 그 아이를 때렸고, 소리 지르는 아이를 보면 나는 더 크게 소리 질렀다. 아이들은 이런 나를 따라하며 무한히 영향 받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나름 허리를 숙이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춘 교육을 하려고 애를 썼지만, 아이들이 나를 힘들게 하면 또다시 스위치가 꺼지고 말았다. 나는 아이들과, 아이들은 나와 전혀 교감을 하지 못했다. 나는 교실을 지옥으로 만든 것이다. 그때 문득 ‘의사는 한 번에 한 명을 해치지만, 교사는 한 번에 수십 명의 삶을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실을 지옥으로 남겨둘 수는 없었다. 아이들과 마주보기 위해 교사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행동을 했다. 학교 근처 문방구점에 들러 아이들이 가장 많이 먹는 불량식품을 사먹었고, 놀이터에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면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마음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또한 선배들이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받는 아이들의 마음을 느끼기 위해, 텅 빈 화장실이나 학교 구석진 소각장 같은 곳에 한참을 서 있기도 했다. 이런 행동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백 퍼센트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창문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들은 나에게 마음을 문을 열었고 그런 일련의 노력이 쌓인 결과 ‘피노키오 상담실’을 열 수 있었다. 난 이 상담실에서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상담했다. 하지만 난 상담실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해법을 제시한 적이 없다. 사실 상담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다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컵떡볶이나 파인애플 맛 음료 같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사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은 내게 고민이 해결됐다고 말했다. 내가 그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던 건, 내게 있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창’이 덕분이었다. 작은 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자신의 고민을 해결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억울하게 깨지고 집에 돌아오면 기분이 어떤가? 아마 배우자가 자신의 그런 기분을 이해하고, 따뜻한 말 한 마디 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어이없게 배우자가 “상사가 깰 만하니까 깼겠지. 네가 좀 잘해라!” 하고 말하면 기분이 어떤가?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가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오늘 선생님한테 혼났어”라고 했을 때, 만약 부모가 “넌 좀 혼나야 해. 선생님이 혼낼 만하니까 혼내셨겠지”라고 대답하면 아이의 기분이 어떨까? 상사에게 깨지고 돌아와 배우자의 이해를 받지 못해 느꼈던 배신감을 아이도 똑같이 느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이렇게 말해준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창피했었겠구나.”
“선생님이 많이 미웠겠네.”
“혼날 때, 엄마 보고 싶었지?”
아이들도 나와 같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럴 때 부모와 아이는 비로소 마주할 수 있다. 아이의 태도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방법을 쓰면 안 된다. 이런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와 마주하지 못했을 때, 아이는 자신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교사 시절에 상담했던 정윤이(가명)라는 아이 역시 그랬다. 정윤이는 부모와도 친구들과도 마주하지 못했다. 한눈에 봐도 자신이 설 자리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 당시 정윤이는 4학년이었는데 내게 상담치료를 받기 전까지는 자신이 나쁜 외계인들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윤이는 자신을 아쿠라시아별에서 도망쳐온 왕자 외계인으로 믿었는데, 내게 나쁜 외계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어쨌든 정윤이는 아쿠라시아 별과 수시로 교신을 했고 교신을 마칠 때마다 나쁜 외계인들에게 쫓겨 다녔다. 물론 나는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 정윤이와 친해진 뒤 이렇게 물어보았다.
“정윤이는 자신의 비밀을 친구들에게 왜 털어놓지 않니? 왜 나쁜 외계인들을 쫓아달라고 부모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니?”
그러자 정윤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구인들은 이런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아요. 지구인들은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쉽게 무시해버리죠. 우주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닌데 말이에요.”
겉으로는 괜찮은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 나는 정윤이의 말에 깜짝 놀랐다.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아이와 마주보지 않으면 절대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보통의 교사나 부모 같았으면 정윤이와 이런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어른의 시선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윤이는 상담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외계인 친구들을 멀리 떠나보냈다. 방법은 간단했다. 내가 정윤이를 괴롭히는 나쁜 외계인들을 음악실 복도에서 멋진 포즈로 체포했고, 우주경찰관에게 인계하며 “김정윤, 당신은 이제 완벽한 지구인입니다. 아쿠라시아별의 모든 기억은 이제 잊어도 좋습니다”라고 선언했다. 나는 정윤이의 세계를 인정해주었고, 그 세계에 동참해주었다. 그러자 정윤이가 스스로 상상 속의 친구들을 떠나보낸 것이다.
눈높이만 맞추는 척하지 말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간절하게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정윤이가 나쁜 외계인에게 쫓기고 있다며 상담실로 피신해올 때마다 빗자루 광선총을 들고 나가서 외계인들을 퇴치해주었다. 그리고 정윤이가 아쿠라시아별에서 메시지가 왔다며 호들갑을 떨 때마다 정윤이를 상담실 안의 비밀기지, 프로젝션 텔레비전과 교실 벽 사이의 작은 공간으로 데려가서 메시지를 해독해주었다.
분명 “그건 교사로서 도를 넘은 좀 이상한 행동 아닌가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신하건데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다. 교사는 아이들 위에서 군림하는 아이들 나라의 왕이 아니라 함께 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 질문에 한번 대답해보라. ‘정윤이의 눈에도 내 행동이 이상해 보였을까?’
아니다. 정윤이는 자신의 세계에 열심히 동참하는 나를 보면서 좋은 지구인 친구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정윤이는 나를 진정한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하고 날마다 나를 찾아왔다. 그러다 보이지도 않는 외계인을 친구로 생각하는 이상한 애가 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지 말라. 그것도 한때일 뿐 정윤이는 외계인과 나에게 흥미를 잃고 진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덤으로 외계인에 빠져 떨어졌던 성적도 다시 올랐다. 아이들은 모두 그렇다. 그렇게 순수하다. 마주보고 끊임없이 사랑을 전하면 기특하게도 알아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전구에 끈을 감아 팽이를 돌리는 아이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팽이를 돌리며 놀았다. ⓒ유별남
톤도 교사들의 마주보기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교사 시절 상담했던 많은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한국이 굉장히 걱정스럽다. 한국의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은 대부분 마주보기 교육에 익숙하지 않고, 그 방법조차 잘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 대구에서 들려온 소식에 내 고민은 더 깊어졌다. 대구에서 학교폭력 등으로 학생들이 계속 자살하자, 대구시교육청이 마련한 대책이라는 게, 학교 건물 3층 이상의 창문을 20~25㎝만 열리게 하는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교육청이 학교를 감옥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대구시교육청은 단지 ‘안 죽도록 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죽으려면 학교 밖으로 나가 죽으라는 말이다. 학생들과 마주보려는 의지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이다. 이런 현실이 아프지만, 공교육에 기대할 수 없다고 한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가정에라도 마주보기 교육의 뿌리를 심어야 한다. 뿌리만 있으면 어떻게든 스스로 자랄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톤도는 환경이 아주 다르다. 다른 교육적인 부분은 그대로 따라 해도 되지만, 마주보기 교육은 그대로 따라 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이지성, 김종원) 톤도의 마주보기 교육 행동지침을 한국식으로 변형해 네 가지로 정리했다.
1. 아이가 ‘공감’하게 하라
마주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아이처럼 느끼고 아이처럼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 아이가 돼서 아이의 입장을 느껴봐야 아이를 바르게 이해하게 된다. ‘공감’에 이를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보는 것이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 장소에 앉아보고, 축구를 하는 운동장도 달려보라. 아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학교다. 때문에 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으로 생활을 하는지를 느껴보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둘째, 아이의 하루를 간접적으로 체험해보라. 아이가 학교에 등교해 수업을 하는 동안 부모도 똑같이 집에 있는 책상에 앉아 플라톤이나 데카르트 같은 어려운 고전을 읽어보라. 그리고 아이가 학원에 가 있는 시간에는 읽은 책을 노트정리하며 복습해보라. 그리고 만일 누군가 당신에게 그런 하루 일과를 앞으로 365일 동안 반복하라고 하면 당신의 마음은 어떨지 생각해보라. 아이의 눈높이에서 공부를 바라보면 아이의 공부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바뀐다.
셋째, 사람들을 일주일간 만나지 말아보라. 물론 휴대전화로 전화도 하지마라. 죽을 맛일 것이다. 사람은 함께 어울려야 한다. 당신의 아이도 사람이다. 깔깔거리며 친구들과 대화하고, 소리치며 놀아야 되는 사람이다. 이 세가지 방법을 통해 부모는 아이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법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그런 당신의 말과 행동에 공감할 것이다.
톤도의 아이들. 마주보면 웃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 ⓒ유별남
2. 아이를 미친 듯이 몰입해서 바라보라
교사시절 나는 아이들을 몰입해서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다. 매일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쉬는시간에 책상을 뛰어 넘으며 웃고 떠들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1번에서 60번까지 아이 하나하나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때까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수업 시간엔 아이 바로 앞에 가서 아이의 두 눈을 쳐다보았고, 쉬는 시간엔 다른 모든 아이를 망각한 채 그 아이만 몰두해서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내 가슴에 굵은 느낌표 하나가 선명하게 찍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니 말을 넘어선 어떤 깨달음. 나는 아이들 속에 있는 인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를 귀하게 여겨주세요, 나를 사랑해주세요. 나는 당신과 똑같은 인격을 가진 존재랍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낳은 아이지만 그 속은 알 수 없다. 그래서 매일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이를 느껴야 한다. 아이가 공부하고 있는 모습, 만화책을 읽는 모습,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아이도 나와 같은 인격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미친 듯이 몰입해서 아이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산만한 시선은 아이 자체를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고, 그것은 아이의 본질을 바라볼 수 없게 하고, 아이의 영혼이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한다. 정 시간이 없다면 아이가 자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사랑이다.
3. 세상의 말에 귀를 닫고, 더 가깝게 다가가라
부모의 마음속은 대개 온갖 부정적인 교육 정보들로 가득 차 있다. 매스컴을 통해서 들어온 아이들이 저지른 충격적인 사건들, 부모 기준에 못 미치는 아이를 생각하면서 생긴 감정들, 부모와 아이 모두를 불안하게 만드는 각종 수험 루머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마음속이 부정적인 정보로 가득 차 있으면 아이를 부정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고함과 잔소리와 협박과 간섭과 규제와 폭행과 복종 요구 등이다. 아이와 마주보기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이런 모든 정보에 눈과 귀를 닫고, 마음을 비우자. 그리고 아이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 아이의 내면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자.
우리가 착각하는 게 하나 있는데, 매사에 거칠게 굴어서 다가가기 힘든 아이들은 강해 보이지만, 사실 너무나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은 학교와 부모와 싸우는 동시에 자신과도 싸우는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잘못된 아이를 다룰 때면 더욱 더 아이의 마음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교사 시절, 수업 시간에 마치 수영장에서 하듯 자유형을 구사하면서 교실 바닥을 돌아다니는 아이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만약 교실에 그 아이와 나 단 둘뿐이었다면 나 역시 자유형을 하면서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것이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웬만하면 수영 연습은 진짜 수영장에 가서 하지 그래? 되게 힘들구먼.”
만약 내 아이가 거실 바닥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나처럼 아이와 함께 수영을 할 수 있겠는가? 아마 아이가 이런 증상을 보이면 이것을 의심하라는 세상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내 아이가 미친 건 아닌가?’ 생각하며 불안해 할 것이다. 이제는 세상의 말은 모두 잊어라. 그리고 웃으며 다가가 기꺼이 함께 수영을 할 수 있는 부모가 되라.
“이번에 어렵게 휴가를 내서 아이와 하루 여행을 다녀왔는데, 아이가 제 마음을 잘 몰라주는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아이에게 사랑을 전했지만, 아이는 이런 제 마음을 일 년이 지나도 알 수 없겠죠? 언제쯤 마주보며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말하며 아이가 부모 마음을 몰라준다며 하소연한다. 이런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하루만 사랑을 전하니까, 아이가 일 년이 지나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반대로 일 년 내내 사랑을 전하면 하루 만에 아이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되지 않을까요?”
아이가 당신의 마음과 사랑을 알아주기를 바라는가? 그렇게 간절하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이의 마음을 너무 쉽게 얻으려고 하지 말라.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이의 마음이라면, 한국의 모든 부모와 아이 들은 이미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결국 ‘마주보기 교육은 사랑의 결정체’라고 생각하면 맞다. 성공을 위해 당신이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는 것처럼 아이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끊임없이 아이에게 깊은 사랑을 전하라. 혼신의 노력을 다해 당신의 사랑을 아이에게 전하라. 수백 번을 전하면 아이는 겨우 한 번 알아차릴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끝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노력을 통해 아이도 부모를 마주보게 될 것이다. 이제는 마음 놓고 부모를 친구처럼 생각하고 피하지 않을 것이다. 마주볼수록 자신에게 긍정적인 격려를 보내는 부모의 마음에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주보는 것이 고통이었던 과거를 잊고 함께 바라보고 웃는 게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을 찾기 위해 의자에 방석까지 얹은 톤도 교육센터의 아이.
마주보기 교육은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를 만든다. ⓒ유별남
아쉽게도 사랑의 효과는 딱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굉장히 강력하다. 그건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효과이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다시 또 사랑하라. 그렇게 교사와 학생 그리고 부모가 행복한 교실이 완성될 것이다.
이지성 김종원
이지성
1993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 소설, 교육, 자기계발, 인문, 기독교, 어린이 등의 분야에서 스물다섯 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다. 대표작으로 『꿈꾸는 다락방』 시리즈,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리딩으로 리드하라』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공저) 등이 있다. 주요 저서들은 미국,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등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자기계발과 인문고전 독서의 바탕은 ‘사랑’이라는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팬카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서울역, 왕십리, 대전, 대구, 부산 등지의 빈민촌에서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 자료를 팬카페에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그 밖에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와 함께 세계 최빈국 어린이들을 일대일로 후원하고, 마을에 우물을 파고 학교와 병원을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김종원
‘자기계발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믿는다. 모든 문제를 환경 탓으로 돌리며 불평으로 일관하는 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롤 모델을 찾아내 치열하게 연구한다. 현재 경제경영, 자기계발 관련 콘텐츠 디렉터 및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부진 스타일』 『삼성가 여자들』 『전략기획자로 승부하라』 『킹피셔』(공저) 『블루마켓을 찾아라』(공저) 등이 있으며, 이중 일부가 일본, 중국, 대만 등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
사진/ 유별남
한 장의 그림을 그리듯 심혈을 기울여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 다른 문화 속에서 같은 삶의 무늬를 찾아내는 그의 사진은 무척 정적이면서도 밝고 따뜻하다. 지은 책으로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 사진 작업을 함께한 책으로 『신의 뜻대로』 『아이 러브 드림』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 등이 있다. 'EBS 세계테마기행'의 요르단, 가이아나, 인도 편에 출연했으며, 'In PAKISTAN'(파키스탄 국립현대미술관) 외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sh8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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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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