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이다. 지난 6월 방한했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한국에 온 그는, 대규모 정리해고 뒤 세상을 뜬 스물두 명의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을 추모하는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희생자 영정에 분향했다. 그는 그것이 ‘사회적 살인’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말, 던졌다. “자본은 ‘회사 결정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필요한 조처’라며 정리해고를 하지만, 이 모든 게 다 거짓말이죠. (쌍용차 투쟁은)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 것입니다.”
“지젝은 우리가 자명하다고 믿는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질문을 통해 의미 있는 파열음을 남긴다.”(p.8) | ||
우리는 매일 같이 행복하지 않음을 확인한다. 그 분향소는 곧 우리 모두의 사회적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현실에 대한 자각이다. 우린 그렇게 아프고, 행복하지 않음을 실감해야 한다. 지젝 또한 그것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묻는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우리에게 공동선은 있는가?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바쁘다는 핑계, 너무 익숙하지만,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공부공동체’ 인디고, 지금의 한국 사회에 대한 고민을 품고 ‘동유럽의 기적’ 지젝을 찾았다. 그리고 인터뷰 집을 냈다.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인디고 연구소 기획|궁리 펴냄). 지젝이 한국을 찾기 전, 영상을 통해 독자들과 먼저 만났다. 지난 4월27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출간 기념 강연회였다. 지금 우리가 왜 <무한도전>을 볼 수 없으며, 왜 허구 한 날 ‘경제위기’를 맞닥뜨려야 하는지, 만날 투쟁과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사유하게 만든 시간.
“자,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바디우는 오늘날 우리가 처한 후기사회주의적 곤경을 “악(Evil)이 파멸된 자리에서 악이 춤추는 것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문제적 상황”이라고 인상적으로 규정했다.”(p.231) | ||
지젝을 말하다
지젝 인터뷰를 기획하고 인터뷰어로 나섰던 인디고 연구소의 박용준 편집장이 이야기를 푼다. 그에 의하면, 지젝은 난잡한 사람이다. 글쓰기가 사유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지젝의 글쓰기는 그래서 머릿속에 떠오른 모든 것을 쓴다. 이른바 천재들의 방식. 인터뷰할 때도 이 얘기를 했다가 저 얘기를 하는 종횡무진 했단다. 책은 많이 다듬어진 편이다.
지젝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문구 중의 하나는 “이성의 공적인 사용”이다. 칸트의 짧은 에세이로서, 지젝의 모든 저작과 활동을 관통하는 아이디어라고 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이성의 공적인 사용과 발휘에 있다. 지젝은 그것을 실천한다. 아울러 책을 통해 우리에게도 그 문제의식을 던진다. 다만, 혼자 책을 읽는 건 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보편적인 목적에 부응하는, 즉 진실에 부응하고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공적인 행위다.
“지젝은 우리를 흔든다.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 지젝의 책을 잘못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책을 읽고 나면 가슴이 뜨거워지거나 눈물이 난다. 첫 번째 단락의 마지막 문장인데, ‘과감히 알려고 하라(Sapere Aude)!’ 올해 나올 지젝의 책 서문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진실은 늘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
박 편집장은 우리나라처럼 밀실회담이 많은 곳이 있을까, 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얼마 전에도 당했다. 이명박 정부는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고자 시도했다. 그들 외엔 아무도 몰랐다. 거칠게 말해, 그들에게 국민이라는 존재, 호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도 그랬다.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협정임에도 우리는 배제됐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데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끊임없이 알고자 해야 하나 우리는 무심한 국민일지도 모른다. 많은 청년들이 세상에 대해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서도.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내가 어떤 인간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연애를 많이 하라는 것도, 자신에 대해 많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인디고의 공동선총서, 지젝을 인터뷰이로 삼은 이유, 다음 인터뷰 등에 대한 설명이 따랐다.
“홀로 태어나는 사람이 없다. 태생부터 함께 살아가게 돼 있다. 관계 속에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공동선’은 우리의 투쟁이 향하는 지점이다. 지젝을 선택한 이유도 공동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가 지젝이었고, 두 번째로 일본의 대문호 가라타니 고진을 인터뷰했다. 올해 고진 인터뷰 책을 내는 것이 목표다. 고진은 세계 공화국이 목표다. 세 번째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으로 『액체근대』라는 책으로 유명하다. 마지막이 철학자 알랭 바디우로, 내후년까지 책이 나올 것이다.”
지젝에 의하면, 카니발은 금방 썩는다. 시위 현장은 그것으로 끝이다. 다음날 회사를 가야 하기 때문. 그래서 지젝은 오큐파이(Occupy) 시위자에게 열광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중요한 것은 혁명, 시위의 다음날! 지젝은 우리가 공동의 것, 공동체의 삶, 공동의 자연 등을 논의하고 이것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젝의 분노는, 국제협정이나 정책에 당사자들이 한 번도 개입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FTA, 누가 통과시켰냐는 물음도 해당한다. 생각해보라. 고기는 우리가 먹는 것임에도 우리는 배제됐다. 지젝은 따라서,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라고 말한다. 혁명의 열광적인 순간에서 벗어나 이성의 공적인 사용을 주장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구조적으로 바꿔야할지 주문하며, 막혀 있다면 뚫을 것. 지젝이 급진적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다.
“중대한 경제적 사안들, 즉, 북미자유무역협정과 같은 국제무역협정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투표권이 없고 논의 과정에서도 배제되어 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결정되어버리는 것이지요.”(p.114) | ||
지젝과의 인터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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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은 무엇이며, 이 문제의식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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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전통에서 보자면 미학은 신, 인간 등으로 이런 것은 늘 최고의 실체적인 선이었다. 그러나 근대는 그렇지 않았다. 오늘날 공동선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정치는 윤리보다 우선이다. 우리가 고차원적인 공동선을 이야기할 때 우리의 은밀한 목적에 의해 정의된다.
“제가 보기에 정치는 윤리에 우선합니다.(…) 우리가 ‘선(좋음)’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p.27) -
지금이 이론의 시대라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이론적 질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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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질문이 가능하다. 사회민주의의는 딱히 실패했다고 할 수 없지만, 공산주의나 지방자치에 근거한 시도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대안을 상상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진정 어떠한 정치적 모델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네그리와 하트에게 갖는 문제의식도 이 지점이다. 그들에 의하면 국가가 사라지고 다중이 스스로 지배하게 되는 최후의 순간이 올 거라고 예견하지만, 사실상 어떤 징후도 없다.
오늘날 인간됨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유전자 조작이나 생태계 파괴 등은 인간됨에 대한 근본 개념을 바꾸고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인간됨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게 한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말할 때, 가능과 불가능 사이의 구분에는 분명한 문제가 놓여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모든 것이 가능해지고,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고,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난 구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가능과 불가능, 이 두 가지 측면을 하나의 추상적인 문제로 합칠 수 있다면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 불가능한 것들도 일어난다. 나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유의 방식을 재정의 하는 것,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구분을 없애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인간 사유의 궁극적인 과제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한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입니다.”(p.2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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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공동선은 무엇이며, 공동선을 향한 추구는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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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은 투쟁의 문제다. 내게 공동선은 자유를 향한 공동 투쟁을 의미한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의 허점을 뚫고 가는 것이다. 해답을 제시할 수 없지만, 이는 매우 중요하다.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제공해주는 좋은 영화들은 유럽이민자 출신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많다. 외부에서 보는 것이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보다 더 적절한 시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는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 데카르트를 좋아한다. 자신을 바라볼 때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자는 것이다. 자신만의 관점에 스스로를 가둬선 안 된다.
““보편적 선(좋음)을 향한 유일하게 훌륭한 길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바라볼 때, 이방인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보고 또 상상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인류에게 가장 훌륭한 사유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pp.197~198) | ||
‘혁명 그 다음날’을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혁명대세)
신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가녀린 떨림들이 서로의 요람이 되었다. 구해야 할 것은 모두 안에 있었다. 세상 모든 종교의 구도행은 아마도 맨 끝 회랑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 갸날프지만 함께 우는 손들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을 위해 눈물 흘리는 그 손들이 서로의 체온을 엮어 짠 그물을 검은 하늘로 던져올릴 때... 수만개의 그물코를 가진 하나의 그물이 경쾌하게 띄워올려졌다.. ...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 - 김선우,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중에서 - | ||
동영상 상영이 끝나고, 박 편집장은 김선우 시인의 詩를 꺼냈다. 그는 서로를 신으로 대하는 것도 하나의 혁명이라고 말했다. 혁명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 그러면서 △윤리적 표준 △슬럼의 정치화 △혁명 그 다음날 등을 언급했다. 우선, 윤리적 표준. 그에 의하면 우리 사회는 윤리적 표준이 특히 낮다. 지젝의 지적처럼 이방인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 곧, 윤리적 표준은 스스로에게 잣대를 가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령, 남자들은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한 걸음 더 가까이 오라’는 말을 찢어야 한다. 순종적으로 따르지 말고. 굳이 그런 말이 없어도 우리는 스스로 그런 윤리적 표준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젝은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던진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바닥에 침을 뱉지 마세요. 음식을 버리지 마세요” 등의 문구가 적힌 식당은 유럽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상식을 강요받을 이유가 없죠. 이것이 바로 한 사회의 윤리적 표준입니다. 허용되거나 금지되는 것들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죠.”(p.63) | ||
그는 이것을 위해 감각을 살릴 것을 주문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에 대처해야 할지는 두 번째, 감각을 살리는 것이 최우선이다. 박 편집장은 또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는 공적인 생활을 박탈당하고 있다. 사생활에만 집착한다.
“비립종이 뭔지 아나? 이효리 씨 얼굴에 비립종이 있고, 이영애 씨가 파주로 이사했다는 것을 포털을 통해 봐야 한다. 그게 우리 사회의 화두다. 그것이 우리 삶의 윤리적인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해야 한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면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그걸 얘기해야 함에도, 소녀시대, 꺾기도 얘기를 안 하면 친구 사이에 왕따 당한다.”
도덕적 다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논문 표절에도 불구, 그럼에도 거짓말을 일삼고 국회의원이 된 문대성에 대해, 굉장히 관용적인 우리사회에 대한 언급. 뼈아픈 지적이다. 헝가리 대통령은 논문 표절 때문에 사임했다. 또 다른 예. 호주의 한 장관이 영국 출장을 가면서 자녀를 동반했는데, 아들이 아버지 전화를 빌려 여자친구에게 국제전화를 했다. 호주에 돌아왔는데, 아들이 공적인 전화기로 사적사용을 했다며 여론이 들고 일어났고, 장관은 결국 물러났다. 몇 시간 통화가 아니었다. 짧다면 짧은 5분이었다.
“관용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조롱?풍자에 그쳐선 안 된다. 박탈해야 한다. 도덕적인 다수가 이 사회를 차지해야 한다. 삼성가의 권력세습. 이것도 굉장히 우습다. 인간의 태생은 우리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는다. 문명화의 특징은 재성취가 가능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미개한 사회다. 우리는 재성취가 불가능하다. 어느 집안에 태어나는지가 우리 인생의 절반을 결정한다. 이런 것을 조금씩 버려가는 것, 그것이 혁명적인 것이다.”
아울러 생각해볼 것. 우리는 공적인 결정에 개입한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면, 난 이 나라 시민이 아닌가? 그런 회의를 가져볼 필요가 있다고 박 편집장은 강조한다. 공적인 결정에는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목소리를 수렴하는 기구나 장치가 없다. 우리나라는 소외된 자들, 의미 없는 자들로 치부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지젝의 ‘프롤레타리아 되기’를 생각해보자. 육체의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는 존재를 프롤레타리아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 프롤레타리아다. 지젝이 볼 때, 개인은 병약하다. 장벽, 분할, 그런 걸 깨려면 집단적으로 해야 한다. 희망도 거기 있다. 분할, 장벽을 없애고 연대, 협력해야 사회가 바뀌지 않겠는가. 거기서 희망을 발견한다고 지젝은 말한다.”
박 편집장은 “스스로와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지젝의 말을 꼭 기억할 것을 권했다. 인문학의 메시지 중 하나는, 허영을 경계하는 것으로 자만도 허영이라는 것. 최근 유행처럼 번진 인문학에 대한 지적도 뒤따른다. 많은 사람들, 인문학 강연을 들으러 갔다는 사실에 만족할 뿐, 뭘 배웠고, 강연을 다녀온 이후 내 삶의 무엇이 바뀌었는지에 관심이 없다.
“혁명 그 다음날이 어떻게 바뀌느냐가 지젝이 말하는 핵심이다. 열광 이후 내 삶의 구조를 바꾸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또 우리는 늘 ‘이게 될까?’라며 많이 고민한다. 지젝의 희망적인 메시지는, 그런 경계를 흐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던져줬다. 금융위기 터졌다고 700조를 월가에 퍼부으면서 의료보험은 안 된단다. 우주로 날아갈 수 있는데, 의료보험은 안 된단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언가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등록금 반값을 가능한 방안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젝, 새로운 것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결정을 공동으로 내리고, 그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지는 삶으로서의 정치. 슬럼가 사람들도 정치적인 영역, 사회적 삶의 영토 안으로 끌어오는 정치. 지젝, 정의와 희망을 서로에게 북돋아 주고, 서로가 의지하면서 따끔한 충고를 해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임을 상기시켜준다. 쌍용차를 찾아가 말한 것도 그러한 것이다. 가능한 사회의 모습, 가능한 나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물음을 던져야 한다. 자, 지젝은 다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답은 각자의 몫이다.
묻고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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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질문이 있다. 지젝을 인터뷰하면서 이런 말도 하는구나 싶은 게 있었나? 둘째, 이 책이 기존 지젝의 책에 어떤 주춧돌을 놓을 것이라고 보나? 마지막은 지젝은 자본주의 이후 세계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혁명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 대해 사유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는데, 지젝 역시 사유를 말하는 게 지식인이라는 한계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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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을 만나서 참신했던 건 외설적인 부분이었다. 인종주의적인 농담 역시도. 터부시 되는 것을 너무 쥐고 있으면 해소가 안 된다. 외설적, 인종주의적인 것도 다 까발릴 필요가 있다. 인간이란 존재는 수동적으로 되기 쉽다. 책을 사는 게 목적이 아니고, 책이 많다고 흡족해할 것도 아니고, 읽고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 TV의 녹음된 웃음소리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수동적인 모델이다. 나라는 주체가 웃을 때 웃고 안 웃을 때 안 웃는 게 중요하다.
둘째, 지젝의 책이 한국에 많이 번역됐는데, 많은 책이 어렵다. 참신하고 재밌는 얘기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인문학 도구에 가리거나 현학적이거나 난잡한 논의 방식 때문에 묻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핵심적인 주제를 공유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아카데믹한 것을 희석하고 대중과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었다.
셋째, 지젝이 해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새로운 형태의 정치모델은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 다만 지젝은 전체주의를 옹호한다. 네그리나 하트의 것을 반대한다. 지젝은 파시즘이 아닌 전체주의의 모습을 본인이 구상하는 것 같다. 철학자는 답이 아닌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그건 문제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더라. 그것으로부터 표상되고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모델을 구상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
지젝의 공동선에 대해 좀 더 듣고 싶고, 인디고는 지금 한국의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어떤 기획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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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모든 공공의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 공동의 선택의 문제로 본다. 가령 국민성은 유전자가 아닌 살면서 내재화하는 건데, 우리가 어떤 국민성을 가질 것인지 토론을 하거나, 결정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윤리적 표준이다. 근대이후 절대선이 있다고 상정한 것과 달리, 지젝의 공동선은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더한다. 그래서 지젝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회의를 뚫고 나온 것이다.
공동선은 있을 수 없다기보다 빈개념이다. 시대적 상황이나 정치구조적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공공의 문제는 당사자들이 알려고 하는 태도를 통해 공공의 문제가 무엇이고,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나온다. 지젝의 공동선은, 구체적 보편성을 직시하고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장에 우리를 위치시키는 것, 그것이 정치적 실천이다.
지젝 인터뷰는 그가 유명해서 한 것이 아니다. 공공적인 문제에 대해 왜 우리는 관심을 가지지 못할까, 문제의식을 가졌다. 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한 시스템에 관심을 가졌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는 목적성 때문이었다. 인디고는 여전히 그런 문제에 대해 기획, 구상중이고, 진행되고 있는 것이 많다. 기대해 달라.
-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인디고 연구소 편저 | 궁리
슬라보예 지젝.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혁명가의 이름이다. 그런 그를 인디고 서원 학생들이 직접 만나 궁금한 것들을 묻고 그에 대한 답을 기록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순히 철학자 한 명과의 만남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지젝이 수많은 저서들을 통해 말해왔던 사유의 궤적과 정치적 지향점이 압축적으로 제공되고 있으며, 충실한 주해(註解)를 통해 그의 사상사적 연대기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gda223
2012.07.10
시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위 그 다음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공적인 것에 참여할 수 있는 장치, 장비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연대해야 한다는 것.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 배운 이 내용이 저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변화하기 위해 노력할게요. 공적인 것에 참여하고, 세상에 감춰진 진실을 알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천사
2012.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