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일제의 부역자가 되었는가? -『북성로의 밤』 조두진
지난 4월19일, 서울 홍대부근의 ‘쏘울언더그라운드’,『북성로의 밤』출간기념 작가와의 만남에서 조 작가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홍대의 봄밤에서 대구의 근대와 북성로의 밤을 떠올렸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근대를,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글ㆍ사진 김이준수
201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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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는 근대의 흔적을 간직한 골목이 있다. 이른바 ‘대구 근대골목’. 대구를 홍보하는 책자에도 ‘근대’라는 단어가 곳곳에 있을 정도다. 대구는 근대의 시간을 다른 대도시에 비해 잘 보존하고 있는 편이다. 근대골목에는 영남대 국문과 출신의 소설가 김원일이 전쟁 직후의 사회상을 다룬 『마당 깊은 집』의 배경이 된 곳도 있고, 계산성당, 계산예가,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 3ㆍ1 만세운동길, 여성 국채보상운동 발상지인 진골목, 화교거리,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감상실 제1호인 ‘녹향’ 등 근대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대구시는 이곳을 대구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키우고 있다. 지난해에만 3만 여명이 근대골목을 방문했다. 이곳은 지금 ‘2012 한국관광의 별’ 최종후보에 올라 있다. 그런 것을 보면, 대구는 근대의 숨결이 현대까지 맥을 잇는 도시다. 그런 대구의 근대를 조명한 『북성로의 밤』(조두진 지음/한겨레출판 펴냄)은 1940년대 대구 북성로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이 근대화를 명분으로 침탈한 근대사에 편입된 사촌 삼형제의 이야기.




일제의 충실한 순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태영과 독립운동을 하는 노치영 형제의 갈등, 실제로 있었다는 ‘미나카이 백화점’의 배달부이자 태영과 치영의 사촌동생 노정주와 백화점 사장의 딸 나카에 아나코의 사랑이 주요한 두 축이다. 대구의 북성로는 이 두 축을 뒷받침하는 근대사의 공간이다.

문학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드러난 실체 이면의 지점을 드러내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함이다. 잠재태로 존재하는 침묵의 세계를 가시화하기. 우리의 인식은 늘 겉으로 드러난 것에 머물기 때문이다. 조두진 작가가 일제 순사 노릇을 하는 노태영에게 좀 더 시선을 둔 이유일 것이다. 그저 그런 소설이었다면, 독자의 쾌감에 집중했다면 노치영이 일제를 향해 폭탄이라도 던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두진 작가는 그것을 거부했다. 일제의 부역자로 손가락질 받는 나쁜 놈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것에 더 주목했다. 지난 4월19일, 서울 홍대부근의 ‘쏘울언더그라운드’,『북성로의 밤』출간기념 작가와의 만남에서 조 작가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홍대의 봄밤에서 대구의 근대와 북성로의 밤을 떠올렸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근대를,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북성로, 근대사의 불행했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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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 대구의 실재 지명이다. 동서남북로가 있으며 북성로는 북쪽에 위치한다. 대구의 유흥가 중 하나로 알려진 동성로는 젊은 층이 많이 모이는 장소다. 작가에 의하면, 이들은 조선시대엔 성(城)이었다. 일본이 이를 신작로로 닦았다.



“대구 사람들도 잘 모르는 이야기지만 대구 도심 한복판에 있는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는 100여 년 전만 해도 대구성(城)의 성벽이었습니다.”(p.350)



“성(城)이라고 하면 왕조국가를 상징하는데, 신작로는 상업적인 제국주의 국가를 상징한다. 전면적으로 마주친 공간이었다. 일제강점기, 일본 기업들이 이를 배경으로 엄청나게 뻗어나갔다. 역사적인 장소인 셈인데, 북성로는 근대사의 불행한 공간이다. 왕조국가가 무너지고 새로운 자본이 들어오면서, 대체로 다 불행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1906년부터 1945년까지 불행한 시간, 불행한 공간을 북성로가 상징한다고 봤다. 왕조국가의 제국주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던 시간과 공간. 그 북성로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미나카이 백화점은 북성로에서도 중요 공간이다. 참고로 미나카이 백화점은 현 북성로 대우 주차빌딩 자리에 있던 조선의 3대 백화점 중 하나였다. 사장 나카에 가쓰지로는 부자가 되겠다며 조선에 온 가난한 상인이었다.



“상인들은 성을 허물고 4성로를 건설했고, 그 도로를 따라 자신들의 점포를 세웠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나카에 도미주로 형제가 북성로에 설립한 미나카이 백화점입니다.”(pp.350~351)


작가는 개인에 초점을 맞췄다. 왜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을 그런 소용돌이로 몰아간 것은 무엇이었는지. 소설 속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일본 순사가 됐던 노태영은 단죄가 됐다. 일본인으로 한국에 와서 돈을 벌었던 사람도 제국주의 침략자로서 단죄가 됐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서 그들의 삶,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었다. 피치 못할 사정과 고통.

“소설은 이성과 거리가 있다. 질서정연하거나 과학적인 것과 거리가 있다. 소설가로서 역사의 평가나 철학적 평가에서 벗어나 개인에게 초점을 맞췄다. 불행한 공간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통념이나 평가와 다른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인은 실존 인물이고, 노태영은 실존 인물을 토대로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는 소설을 탈고한 뒤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비판도 많이 받았단다. 노태영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냐는 반응도 나왔다. 물론 면죄부를 주자고 한 건 아니었으나, 그런 반응에 공감도 갔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더라도 노태영에게도 공감을 했다.

“불행한 여자의 일생에 대해 남자인 내가 읽으면 공감이 덜 할 텐데, 반감을 많이 가진 친구들은 공감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지. 나는 나약해서인지 몰라도, 만약에 그런 시대, 그런 입장이라면 노태영과 비슷한 길을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 공감을 하고 비교적 우호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게 됐다.”



“북성로를 걸으면서 100년 동안 이 거리를 걸었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삶에 대해 내가 할 말은 없습니다. 나는 다만 그들을 통해 세월의 도도한 흐름과 촌음에 불과한 사람살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p.352)

조두진이 글을 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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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진 작가는 몰아치듯 글을 쓴다. “흔히 시인들은 영감으로, 소설가는 엉덩이로 쓴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하루에 몇 장씩 꼬박 쓰는 스타일은 아니고, 하룻밤에 100장씩 쓰다가 몇 개월 안 쓰다가 다시 몰아서 쓴다. 내게 소설은 노동이 아닌 열기나 영감 같은 것으로 쓰는 것이다. 그렇게 쓰고, 두세 달 지나서 다시 읽어본다. 그때는 영감이나 열기에서 빠져나온 상태라 이성적으로 다듬어 본다. 특별히 통제해야겠다고 생각한 부분만 손질한다.”

그는 전업 작가가 아니다. 대구에서 언론사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업으로 소설을 쓸 생각은 없다. 주변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면 더 잘 쓰지 않겠느냐는 말도 듣지만, 소설만 써서 가족을 부양하는 건 우리나라에서 극히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소설을 정말 많이 쓰고 싶었다. 지금도 열심히 쓰고 있긴 하나, ‘소설을 쓸래, 처자식 부양 할래’ 물으면 처자식 부양을 택하는 인간이다. (웃음) 당장 소설을 그만 두지. 나쁘게 말하면 예술적인 깜냥이 부족하고 좋게 말하면 책임감이 강한 부류의 사람이다.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처자식을 뒤로 하는 사람에 대해선 이해는 할 수 있는데, 내 삶으로 받아들일 순 없는 거지. 말하자면 지질한 인간이지. (웃음) 대의나 이념을 위해 살 수는 없고, 생활을 가장 중요시하는 인간이다. 단점도 많고 장점도 많은.”

그는 기자생활의 장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기자라는 직업,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야하다 보니, 인물들을 억지 고민해서 창조할 필요가 없단다. 각각의 입장에 처한 인물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점이라면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날 작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웃음) 변명을 하자면 종일 글에 매달리고 있다고 소설이 잘 써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직장에 다닌다고 좋은 소설을 못 쓰는 건 아니다. 재능이 부족해서 못 쓰는 것이지, 직장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의 큰 비극은 약한 사람들에게만 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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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순사이지만 일본에 부역해서 살고, 독립운동을 하지만 하수인이고, 수동적 형태로 살아갔던 인간이 우여곡절로 사장이 되고, 가슴이 아팠다. 삼형제를 좀 더 크게 그리고 싶진 않았나?

답변

당시 한국인으로 태어나 아무리 노력해도 출세하는 건, 한국인 전체를 손꼽아 몇 명 안 됐다. 또 하나, 북성로에는 지금도 제화점이 많다.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도 많이 들었다. 그 일대에서 100~200리 떨어진 먼 시골에서 왔던 사람이 제화공이 되면 정말 크게 성공한 것이었다. 그만큼 여지가 없었다. 물론 스케일을 크게 하면 좋은 건데, 내가 보아왔던 것과 괴리가 생기더라. 평생의 꿈이 재봉틀 하나 사는 것이었고,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다.

실제로도 백화점 주인이었던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철저하게 한계를 뒀다. 일본에 줄을 선다고 해도, 한국인이라는 꼬리표가 작용해서 어찌 할 수 없는 차별을 받는 상황이었다. 내가 본 현실과 거리가 있어선 곤란하겠다는 게 있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아마 스케일이 크지 못한 인간이어서 그럴 거다. 내 꿈이 기껏해야 얼마 안 된다. (웃음) 판타지 소설을 쓰는 분은 산을 움직이고 불도 뿜겠지만, 나의 인간적인 한계도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길을 가도 불행한 사람이 눈에 많이 띠고, 결말이 좋은 것보다 비극이 더 눈에 띤다. 이상하게 그런 것이 눈에 많이 띠고 감정이입이 많이 된다. 어릴 때 가난해서인지 가난이 눈에 더 쉽게 눈에 띠고. 부모님이 아침에 일찍 일하러 나가셨다가 늦게 돌아오시고 한 것 등에 연결이 돼 있는 것 같다. 노는 물에 따라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일본 사람한테 무시당했고, 해방 뒤에는 일본 사람 밑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한국 사람들한테 배척받았소. 사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었소. 일본 사람 편도, 조선 사람 편도 아니었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누구를 위해 살았는지, 무엇 때문에 살았는지도 모르겠소.”(p.348)

질문

동생이 형에게 선물 폭탄을 전해주는 상황이 가슴 아팠다. 자신의 진로를 의지적으로 선택한 부분인데, 너무 비극적으로 몰지 않았나?

답변

세 사람이 선택한 것은 자기 길이며 진로는 자기가 선택했는데, 진로 속에선 명령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인다. 나는 그게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내 이념에 따라 선택했다고 해도 혈육을 어찌할 순 없잖나? 아무리 이념이 투철해도 그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단호하게 내 형을 죽일 순 없다. 내 자식이나 부모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면 내가 단죄할 수 있겠나? 내가 흉악범죄를 저지른 아버지를 신고하지 않아서 죄를 받는다면, 죄 받는 쪽을 택하겠다.

형이 절망하는 장면도 그런 것이다. 나의 배신은 단죄 받아 마땅하다 할지라도 동생인 네가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비극으로 몰렸던 사람들이 정말로 잘 나가면 덜 미웠을 텐데, 셋 다 잘 나가지도 못하고. (웃음) 실제 많은 비극이 그렇지 않을까? 확신을 갖고 잘 나가는 사람은 그렇게 큰 불행에 내몰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큰 비극은 약하고 비리비리한 사람들에게 닥친다.

질문

노정주가 아나코를 자전거 태워주는 장면이 부럽더라.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었나? (웃음)

답변

늘 받는 지적 중의 하나가, 연애하는 부분을 못 쓴다. (웃음) 그런 부분의 묘사가 서툴다. 심하게 얘기하면, 장난 하냐? 그것도 스타일일지도 모르겠다. 손잡고 입 맞추고 한 연애를 하지 못했다. 아내와 결혼할 때도, 둘이서 만나 본 적이 없다. 나는 프러포즈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내는 프러포즈로 받아들였더라. (웃음) 하여튼 나는 연애장면이 어색하고 서툴다. 그래도 그런 부분이 좋았다니, 기분이 좋다.



“아나코는 자전거를 따라 뛰다가 걸었고, 정주의 자전거는 미끄러져 나가는 듯하다가 다시 넘어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아나코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었고, 정주는 진땀을 흘렸다.”(p.83)

질문

백화점 사장이 실존인물이면, 행방불명도 진짜 있었던 일인가?

답변

해방 직전에 죽었다. 뇌경색으로 죽었고, 그 회사(백화점)는 미 군정에 몰수당해서 세무서 건물로 쓰이다가 그 뒤 다른 용도로 활용됐으나, 지금은 주차장이다. 1층에 점포가 있고, 뒤쪽으로 입구를 만들어서 여러 층의 주차장으로 만들어졌다.

질문

노치영의 과거에 대해 언급이 없다. 독립군이 됐는지도 나오질 않고. 덜 주목받는 것 같다.

답변

마지막 부분에 좌익 활동을 했다고 딱 한 줄 나온다. 쌍놈 양반이 없어졌는데도 시중들어야 하고, 종처럼 사는 그게 싫었던 거고. 물 떠주고 발 씻어주고 3년을 한 거라. 세상이 개화됐다는데, 개화도 안 돼 있고, 늘 차별 당했다. 노치영은 노태영에 비해 감정적인 부분이 많은 캐릭터다. 좀 더 충동적이고. 노태영은 수재니까 주목도 사랑도 많이 받았는데, 노치영은 그러질 못하던 터에 자신의 쓸모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났던 거다. 그렇게 쓰지 않았지만, 나는 그리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노치영에게 왜 덜 주목했느냐면, 노치영으로 대변되는 삶은 뮤지컬, 영화, 연극, 책 엄청 많다. 나까지 그러고 싶진 않았다.

질문

작가가 장남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전적인 장차남의 역할 분담 같은 게 있어서.

답변

나는 차남인데, 그런 건 별로 안 느꼈다. 노치영에 대해서도 그리 생각해서 한 건 아니다. 노치영으로 대변되는 삶에 대해선 추모도 많이 했지만, 노태영으로 대변되는 삶에 대해선 그런 건 같지 않았다.



“통념의 입장에 설 때, 노태영이 나라를 빼앗은 적의 목덜미에 저하의 송곳니를 쑤셔 박았더라면 더 나았을 것입니다. 노태영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맞서 싸우다가 죽는 대신 그는 일본 경찰이 되어 살길을 도모했습니다. 그가 장렬한 죽음을 택하지 않았다고 나까지 나서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p.353)

질문

읽다가 의아했던 부분이 있다. 아나코가 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그 시대 일본 여성이 그렇게 교육 받는 것이 가능했나?

답변

아나코는 의전을 다닌 배운 여자였다. 실제로도 당시에 일본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당시 일본은 소학교가 이미 의무교육이었고, 여자라도 중학교를 안 나온 사람이 드물었다. 문헌에 그렇게 나온다.

질문

호흡이 짧다는 생각도 들었다. 2권까지 분량이 길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답변

그렇게 하면 늘어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내가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서 아무도 사 보지 않을 것 같다. (웃음)

질문

언제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나?

답변

신춘문예에 처음 응모 한 것이 1989년이었다. 제대하고, 23~24살 무렵인데, 3~4년 연속 떨어졌다. 나중에는 본선에 올라가고 그래서 내년엔 붙겠지, 이랬는데, 내년엔 2등도 안 되고. (웃음) 신춘문예는 7~8년을 응모했다. 문학담당기자를 4년 했는데, 가장 기뻤던 순간이 신춘문예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 때였다. 전화 받는 사람의 호흡을 느낄 수 있거든. 내가 축하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행복했다. 당선자의 행복함도 전해지고.




질문

신춘문예는 천운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답변

실력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은 운이 많이 좌우한다. 90% 이상은 운이 아닐까 싶다. 99% 운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어떤 환경, 어떤 부모님, 정신상태, 몸 상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는 거고, 날 때부터 상당히 운에 좌우된다. 한국에 태어났다는 것만 해도 그렇다. 지금 잘 나가는 사람도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질문

글이 건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태영이 죽는 마지막 부분에 울컥한 부분이 있었다. 독자들 감동을 주기 위해 한방을 노린 것도 있는 것 같다.

답변

마땅히 이러했을 것이라는 입장에서만 썼다. 노태영 아버지가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았는데, 노태영은 어머니에게 아들이기도 하고, 남편이기도 하고, 모든 희망이었다. 어머니에게만큼은 반드시 자기가 살아서 돌아와야 했다. 마땅히 그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태영이 어머니에겐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치영아, 너는 집으로 돌아가다오. 어머니 혼자 마루에 앉아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게 하지 말아다오. 돌아가서 어머니께 내가 집으로 오고 싶어 했다고 말씀드려다오.”(p.327)

질문

태영이 일본 패망을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준비를 안 했나 싶어서 그게 아쉽더라. 사람들이 친일 경찰이라도 따뜻하게 해줘서 빠져나갈 길도 찾고, 그런 안타까움이 있었다. 해방이 그렇게 도둑같이 온 건가?

답변

정보국에 있던 사람은 날짜는 몰라도 일본이 망한다는 것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노태영은 그렇게 죽어가는 게 그 인물을 쓰겠다고 했을 때의 목표에 부합하는 것 같았다. 청산가리를 먹고 태영의 아내가 죽는 장면이 있다. 그건 지어낸 것이 아니다. 일본 패전을 앞두고 일본에 협력한 고위층에선 청산가리를 다 갖고 있었다더라. 독한 사람들이지.

질문

다음 작품 생각중인 것이 있나? 어떤 사람의 이야기인가?

답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는데, 3~4년 안에 쓰겠다고 하는 게 있다. 현대물이다. 평범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누구인가. 나는 평범한데,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이기도 하잖나. 나는 원래 사람이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었다. 그런데 앞에 마주하고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눈물 흘리며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직장에 와서 알았다. 굉장히 놀랐다. 사람이 이럴 수도 있구나 싶더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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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의 밤 조두진 저 | 한겨레출판

제10회 한계레문학상 수상 작가인 조두진의 새 장편 소설이다. 『북성로의 밤』에서 작가는 1940년대 대구 북성로에 있는 ‘미나카이 백화점’을 배경으로, 배달부 노정주와 백화점 사장의 딸 나카에 아나코의 사랑, 노정주의 사촌형인 순사일을 하는 노태영과 독립운동을 하는 노치영 형제의 갈등을 두 축으로 근대의 속살을 파고든 ‘전쟁’을 생생히 그려낸다…

 


#조두진 #북성로의 밤 #북성로 #대구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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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2012.06.30

처음 듣는 작가 이름, 처음 보는 책들이네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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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낭만푸우

2012.06.18

서울이 배경이 아닌 것도 이채롭네요. “대부분의 큰 비극은 약한 사람들에게만 닥친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전혀 몰랐던 작가에 대한 관심이 생긴 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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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히테

2012.06.18

독립투사가 아닌 시대에 순응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야기가 반감을 가지게 할법하죠..
하지만 어떻게 그렸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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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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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진

그는 기자이면서 소설을 쓰는 한국의 대표적인 언론인 작가이다. 임진왜란 때 순천 왜교성에 주둔했던 한 일본군 하급 장교의 눈으로 본 ‘임진왜란 마지막 1년’을 그린 장편소설 『도모유키』로 한겨례문학상을 받았다. 경북 안동의 400년 전 무덤에서 나온 ‘원이 엄마의 편지’를 모티브로 쓴 장편소설 『능소화』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국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을 주인공으로, 회사 창사 기념 잔칫날 하루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 『게임』으로 근로자문학제 대통령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몽혼』, 『유이화』, 『아버지의 오토바이』, 『결혼 면허』, 『북성로의 밤』등과 소설집 『마라토너의 흡연』과 『진실한 고백』을 펴냈다. 텃밭 농사를 오랫동안 지었고 도시농부학교 강사로도 활동했다. 도시농업과 관련한 책 『텃밭 가꾸기 대백과』를 펴냈다. 그는 부모님께 웃는 모습을 자주 보여드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얼굴빛이 밝은 사람, 목소리가 선한 사람을 좋아하고, 길거리에 담배꽁초나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했다. 조두진의 소설을 읽으면, 기자이면서 소설가인 사람의 글은 어떤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사회를 보는 시선은 날카롭고 문장은 담백하다. 이번 작품은 사랑과 조국 독립, 둘 모두를 지키고자 안간힘 쓰며 각자의 길을 걸어간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