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정신병에 요절해야 한다고?
대학교 때 담당교수였던 신영상 교수님이 학적부에 나에 대해 쓰기를 “성격이 명랑하고 성실하고…….” 그런데 난 그게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글: 채널예스
201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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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박재동 저 | 한겨레출판
손바닥 그림 속에 담긴, 내가 본 세상, 내가 만난 사람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에서는 생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온갖 찌라시와 생활용품을 소재로 한 박재동의 ‘찌라시 아트’가 처음 소개된다. 눈물의 바겐 세일 포스터, 과자나 아이스크림 봉지, 퀵 서비스 영수증, 대리운전 유인물, 술집 광고 전단, 식당 냅프킨 등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린 그는 이 것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진짜 증인이라고 말한다. 그림의 소재나 대상에 상관없이 새로운 특별함과 소중함, 예술로서의 독창성이 만들어진다는 박재동 고유의 예술관은 그의 그림이나 그가 명명한 '찌라시 아트'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학교 때 담당교수였던 신영상 교수님이 학적부에 나에 대해 쓰기를 “성격이 명랑하고 성실하고…….” 그런데 난 그게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친구 용균이(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감독)는 “우울하고 어떻고……”로 씌어 있었는데 난 그게 더 맘에 들었다.

천재는 정신병에 걸리는 법이고 요절해야 하는데 난 이렇게 멀쩡할 뿐 아니라 명랑하다니, 이거 원 초등학생도 아니고…… 난 정말 천재가 아닌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하다보니 나중엔 정말 사람이 괴상하게 변해 갔다. 정신병이라고 해도 무방(?)할 괴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시절을 지나 또 변하고 변하고 변해 왔다. 작품도 극히 예술을 위한 예술에서 극히 사회적인 내용으로까지……. 그리고 난 지금 이렇게 순간순간 삶을 즐기고 맛보려 하고 있다. 그리고 또 뭔가에 몰두하려 하고 있다. 할 만한 일에…….





◈ 작가소개

박재동
1952년 경상남도 울주군(현 울산광역시) 범서읍 서사리에서 태어나 물장구 치고 소 먹이면서 자랐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그림을 그린다며 방바닥 장판을 송곳으로 모조리 뚫어놓았는데, 부모님은 야단 대신 “잘 그렸다”는 짧은 심사평을 남겼고, 이때 일은 그의 그림 인생에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 된다. 열 살 전후 부산으로 이사, 아버지가 차린 만화방에서 실컷 만화를 볼 수 있었고, 이후 대학 때까지 만화를 끼고 살았다.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 휘문고?중경고 등에서 미술교사로 일했으며, 1988년 <한겨레> 창간 멤버로 참여하여 8년 동안 한 컷짜리 ‘한겨레그림판’을 그렸다. 박재동의 만평은 기존의 시사만화의 형식을 과감하게 깬 캐리커처와 말풍선 사용, 직설적이면서도 호쾌한 풍자로 “한국의 시사만화는 박재동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는 세간의 평을 들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 1, 2』 『인생만화』 『십시일반』(공저) 등의 책을 펴냈다. 예술이란 특별한 예술가들이 대중들에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꽃피워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10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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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2012.06.30

저도 웃고 싶지 않을 때 웃는게 참 힘든데, 그래도 웃는 게 낫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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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peach12

2011.12.05

웃지 않고 심각해지는 건 내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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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병아리

2011.11.21

일부러라도 웃으려 한다. 왜? 그래야 그순간이라도 내맘이 행복하기 때문에 란 말이 너무 와닿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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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박재동>

출판사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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