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과 ‘충격’ 수식어가 부족한 영화
그의 카메라는 눈을 돌리는 법이 없다. 사람이라면 눈을 질끈 감아버리면 안볼 수 있는 잔인한 장면을 향해 그의 카메라는 깊숙이 파고든다.
글ㆍ사진 최재훈
201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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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크라이스트>

그의 카메라는 눈을 돌리는 법이 없다. 사람이라면 눈을 질끈 감아버리면 안볼 수 있는 잔인한 장면을 향해 그의 카메라는 깊숙이 파고든다. 이미 개봉 자체가 이슈가 될 만큼 그의 최근작 <안티크라이스트>는 상상 그 이상의 잔혹함을 가득 담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영화가 전개될 이미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부부간의 가장 은밀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채우는 푸른색의 이미지 이면에는 아이의 죽음이 숨어있다. 아이가 죽은 후 두 남녀의 삶은 그야말로 지옥이 된다.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파고드는 카메라는 인간의 성욕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 특유의 정서를 담아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순간은 아이의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에 대처하는 부모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남편은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이성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며, 오히려 큰 정신적 충격에 빠진 부인을 직접 치료하려 한다. 반면 부인의 정신적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에덴동산처럼 낙원의 이미지를 가진 그들의 거주공간은 지옥 그 자체로 변화한다. 흔히 논쟁이 되는 영화를 표현할 때 자주 쓰는 ‘파격’과 ‘충격’이란 단어가 영화를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수식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영화는 줄곧 보여준다.

<안티크라이스트>

매 작품마다 논쟁이 끊이지 않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만든 가장 논쟁적인 영화 <안티크라이스트>는 인간의 본성에 감춰진 악마성을 보이는 이에 따라서는 탐미적인 영상이거나, 실험적인 영상이거나, 혹은 징그러운 영상으로 뚫어지게 응시한다. 감독의 카메라와 인간의 눈의 대결에서 늘 승리하는 것은 감독의 카메라이다.

<안티크라이스트>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 철학에 앞서 감독의 태도와 하나의 문구, 그리고 잔혹한 장면(신체와 성기 훼손 등)으로 더 많은 화제를 낳았다. 일례로 영상 시인으로 불리는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문구 자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소를 금치 못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칸 영화제 상영 후 ‘예술을 가장한 사기’라는 악평은 차라리 온유해 보인다.

이러한 악평에 대처하는 감독의 태도 역시 논란을 일으켰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몇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관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말하고, 자신은 정말 위대한 감독이라며 스스로를 추켜세웠기 때문이다.

잔인한 신체 훼손 장면이 삭제된 채 개봉될 이 영화는 솔직히 다수의, 그리고 선의의 관객에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의 문제, 호불호를 논하기에 앞서 이 영화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의 영역 안에서 절대적인 악함과 추악함도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영역도 숨겨져 있기에, <안티크라이스트>는 공포와 흥분을 동시에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압도적인 열연으로 그녀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트로피를 거머쥔 그녀의 얼굴 뒤에 계속 겹치는 <안티크라이스트>의 그 잔인한 장면들 때문에 유쾌한 기분을 느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는 그의 앞선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듯 가학과 피학의 관계를 훔쳐보며, 인간의 악마적 본성을 사유하고 ‘마녀사냥’이라는 집단적 광기가 묻어나는 종교적 소재도 매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능욕과 변화의 역사들

<범죄의 요소>

1984년 필름 느와르와 독일 표현주의 영화를 섞어놓은 듯한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 <범죄의 요소>를 통해 프랑스 고등기술위원회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영화의 주제와 소재의 파격에 앞서 관습적 영화 만들기의 방법론 자체를 반성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화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영국에서 촬영한 <범죄의 요소>는 연쇄살인극에 대한 이야기이며, 상상 이상의 비주얼을 과시하면서 열광적인 찬사를 얻었지만, 과도한 이미지의 남발이라는 악평도 동시에 얻은 작품이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NG없이 단 한 번씩만 촬영하여 총 촬영기간 2주에 완성되는 기록을 낳았다. 대중과의 만남보다 영화제와의 인연이 더욱 많았던 그는 2000년 <어둠 속의 댄서>로 칸 국제영화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 전, 1991년 <유로파>로 심사위원 대상, 1996년 <브레이킹 더 웨이브>로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전작들인 <전염병 1987>, <도그빌 2003>, <만덜레이 2005>가 연속으로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등 영화제가 사랑한 감독 중의 한 명이었다.

<킹덤>

한국에서는 4시간 40분에 이르는 긴 상영시간으로 심야에 편성되어 심야영화 관람의 붐을 일으켰던 <킹덤 1994년>은 사운드와 빛, 색채의 미학을 과도하게 추구하던 장르 영화의 특징에서 벗어나 라스 폰 트리에만의 새로운 미학을 제공한 첫 영화로 기억된다. 애초 덴마크 방송국의 제의를 받아 만들어진 TV 영화를 재편집하여 해외 상영하여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는 ‘킹덤’이라는 이름을 가진 병원에서 일어나는 귀신 이야기이다. 병원의 내부와 사람을 찍어내는 다큐멘터리 같은 형식을 통해 ‘죽었으나 살아있는 사람들’과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들’이라는 소제목의 에피소드로 구성하여, 무서우면서도 웃기는 기묘한 상황들을 포착해 냈다. 단 한 번도 출구를 보여주지 않는 병원의 미로는 점점 인체기관의 내부가 되고 관객을 그 속으로 끌어들인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

이후 1996년 작 <브레이킹 더 웨이브>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덴마크 영화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한 작품이 되었다. 스코틀랜드 서부의 장로파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70년대 이야기를 담아낸 이 영화는 초현실주의적인 감성에 리얼리즘을 녹여낸 독특한 스타일로 완성되었다. 현기증을 일으키게 하는 로비 뮬러의 핸드헬드 카메라는 사람의 시선보다 더 깊숙이 공간의 내밀한 곳까지 파고든다. 순박한 여주인공이 마치 예수처럼 걷게 되는 고난의 길은 희생과 구원에 대한 섬뜩한 우화처럼 보인다. 1991년 <유로파>를 통해 영화 영상에 대한 그의 실험은 계속되었다. 이 영화는 칼라로 촬영한 다음 흑백으로 현상한 독특한 질감을 화면에 담아내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또한 시공을 초월한 초현실주의적인 표현법으로 2차 대전 직후의 독일사회의 혼동을 드러냈다. 이 영화를 통해 라스 폰 트리에는 두 번째 고등기술위원회상을 수상하였다.

<백치들>

그는 철저한 사전 콘티 작업과 고도의 특수촬영으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초현실주의적 영화들로 유럽 영화계에 충격을 던져주었으며, ‘도그마 95’의 여러 조항들처럼 영화를 제작하는 태도는 거의 결벽증에 가까운 감독이었다. ‘도그마 95’는 덴마크의 젊은 감독들과 함께 반드시 동시녹음, 현지촬영, 핸드헬드로 촬영해야하며, 필터 등 기교적인 테크닉 사용금지 등 영화 촬영시의 기술적 조작을 거부하면서 영화의 순수성을 되찾자는 작가주의 영화에의 천명이었다. 일명 순수의 서약이라 불리던 이 선언을 통해 라스 폰 트리에는 <백치들>이라는 의뭉스러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어둠 속의 댄서>

하지만 2001년 뮤지컬 형식의 <어둠 속의 댄서>는 다양한 영화적 기교가 담긴 영화였고, 대중적인 인기도 얻은 작품이었다. <어둠 속의 댄서>의 촬영 기법은 보다 창조적이었다. 마치 디지털과 35mm 카메라를 섞어 찍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디지털 화질이 주는 확연한 거리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처럼 보인다. 완벽한 뮤지컬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100대의 카메라를 썼다. 노래와 춤, 연기 모두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비욕의 몸짓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의 욕심은 필름이라는 한계와 경계를 넘어 새로운 미학을 창출하고, 디지털 작업의 가치를 한층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라스 폰 트리에는 핸드헬드 카메라를 직접 들고 배우들의 연기의 중심으로 들어가, 카메라와 감독, 그리고 배우 사이의 거리와 경계를 없앤 것으로도 유명하다. 배우의 동선에 함께 들어가 호흡하면서 진심으로 소통하는 법을 터득하면서 배우의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도 자신의 의미를 담아내어, 영화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그가 어찌 보면 감히 ‘이 영화는 나를 위한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그가 선언한 도그마95를 통해 라스 폰 트리에는 당대 영화를 지배해온 특정한 경향에 대한 거부하면서 동시에 구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떻게 보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순결서약 같은 도그마95의 선언은 <어둠 속의 댄서>를 통해 무너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끊임없는 성찰과 변화의 과정에서는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도그빌>

기교와 기술의 문제를 떠나 홀가분해진 듯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연극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도그빌>이다.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은 것으로도 큰 화제가 된 이 작품은 충격적인 영상과 함께 여성을 대하는 그의 태도로 늘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그의 작품 중 순교자(혹은 일방적 피해자)로 그려진 여성의 역할에 응징이라는 칼날을 쥐어준 첫 영화였다.

<도그빌>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미국 로키산맥의 작은 마을 ‘도그빌’ 어느 날 총소리와 함께 아리따운 여자 그레이스가 찾아온다. 갱들한테 쫓기는 그를 마을 사람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숨겨준다. 2주 동안의 유예기간을 두고 그레이스를 관찰한 마을 사람들은 고운 심성과 지적 능력, 무엇보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노동을 높이 사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느 날 경찰이 나타나 수배 전단을 붙이자 상황은 급변한다. 숨겨주는 대가로 노예 수준으로 전락한 노동을 강요하더니 급기야 내놓고 성적 학대를 가한다.

라스 폰 트리에의 전작 <브레이킹 더 웨이브>와 <어둠 속의 댄서>에서도 순진무구한 여성이 순교의 대상으로 박해받는다. 이웃과 인간의 선의를 믿는 순진한 여성은 그 대가로 처참하게 능욕 당한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점은 <도그빌>에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순교자의 이미지에서 심판을 가하는 응징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파고드는 카메라의 시선이 가해자가 된 그레이스의 시점으로 돌아설 때, 그녀도 카메라도 멈칫거리는 순간이 없다. 한 치의 망설임도 죄의식도 없이 가해지는 복수는 칼날이 되어 화면을 피로 물들인다. 라스 폰 트리에는 인간에 대해 냉소적으로 비웃고 성찰하지만, 반성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우울증>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2011년 작품 <우울증>은 우울증에 걸린 자매가 결혼식 이후 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동안 거대한 행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은 SF 장르의 영화이다. 영화의 제목부터 시?시스까지……. 당연하게도 해피엔딩 따위는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아마 우울증에 빠진 자매를 통해 보는 지구 종말의 영화임은 분명하다. <안티크라이스트>를 통해 긴밀한 호흡을 맞춘 샤를로트 갱스부르와 커스틴 던스트가 자매로 출연한다고 하니, <도그빌>의 니콜 키드만 이후 점점 화려해지는 출연진 덕분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 셈이다.

우울증에 걸린 두 여배우를 그가 얼마나 괴롭힐지는 영화를 봐야 알겠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감내해야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관극 체험이 또 하나의 고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의 영화를 견뎌야 하는 이유가 관객에게 있냐고 묻는다면 쉽게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내장탕을 즐기는 사람과 혐오하는 사람 사이의 간극에서 내장탕이라는 음식의 완성도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는 완성도와 그 철학을 떠나 내장탕처럼 아예 혐오하여 먹어볼 생각을 않거나, 먹다가 포기하거나, 견디고 먹어보거나, 아니면 맛을 즐겨 다시 찾거나, 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분명히 갈린다. 내장탕과 그의 영화. 우연히 찾은 비유법이지만, 그의 영화를 많이 본 관객이라면 그 적절한 비유에 흠칫하거나, 비시시 웃을 지도 모르겠다. 그게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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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스트 #파격 #충격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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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rtex42

2012.03.13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도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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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1.11.21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는 유로파, 브레이킹 더 웨이브 이후 점점 이상하고 기이한 내용으로 외면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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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