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강연회]인간이 단맛에 강렬한 욕구를 느끼는 이유 - 『미각의 제국』 황교익
맛. 인생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 혹은 행복이다. “그깟 맛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면, 워워, 그 사람과는 일절 상종을 않을 일이다. 그리하여, 세상엔 ‘미식가(美食家·味食家)’들이 차고 넘친다.
201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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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인생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 혹은 행복이다. “그깟 맛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면, 워워, 그 사람과는 일절 상종을 않을 일이다. 그리하여, 세상엔 ‘미식가(美食家?味食家)’들이 차고 넘친다. 블로그 등에는 온갖 음식과 맛에 관한 알록달록한 사진과 이야기가 군침을 돌게 한다. 지금 시대의 세헤라자데는 아마도, 맛 혹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맛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도시 생활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 온갖 공장음식이 사람들 입맛을 길들여 놨다. 조미료 천국이다. 짜고 매운 것, 특히 조미료 듬뿍 들어간 음식에 치를 떠는 나로선, 아주 간혹 가뭄에 콩 나듯 만나는 무조미료 음식에 감격도 해주신다. 주인장 혹은 요리사 얼굴 한 번 쳐다봐주시고. 미각적으로 강한 자극을 싫어하는 까닭도 있을 게다.
물론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 찾아먹는 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하지만, 미각을 훈련하는 태도는 게으르다 하겠다. 먹는 것에만 집중했던 내 이십대의 잔상이 남은 까닭이다. 하지만, 커피를 만드는 사람인 나로선, 미각이 중요하다. 귀(음악)로 듣고 눈(미술)으로 보는 일만큼이나 혀와 코가 느끼는 감각도 중요하다. 그 감각이 짜릿함을 느낄 때, 생은 또 하나의 행복을 사유하게 된다.
뭣보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 음악이나 미술에 비해 요리가 뒤질 이유도 없다. 물론 식당의 화려함, 가격의 높음에 맛이 못 미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건 음악회나 미술전이 형편없었다고 말하는 것과 동등하게 말해주면 된다.
“미각은 일상에서 느끼는 감각이다. 집중을 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 스스로 미각 깨우는 훈련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그가 일상에서 미각 깨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신의 오랜 내공을 축약한 책을 내놨다. 『미각의 제국』(황교익 지음|따비 펴냄).
이런 책이다. “늘상 먹는 음식이고, 가끔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즐기는 것과 음식을 관찰하고 공부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을 쓴 것이다. 쉽게 말해, ‘보통 사람들을 위한 미각 입문서’인 것이다.”(p.6) 부제라면, ‘잃어버린 우리의 입맛을 찾아서…’ 정도가 될 수도 있을 텐데, 공장음식 즉, ‘영향력 확장의 본능이 집단화하고 정치화한’ 음식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된 미각 기준에 딴죽을 건다.
얼마 전 읽었던, 『미식견문록』에서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말했다. “아무튼 엄청난 먹보가 많은 우리 친지들은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먹이고 싶어하는 습성이 있다. 또 그것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미식견문록』, p.174) 이 책을 읽고, 단순하게 내린 나의 결론은 이랬다. ‘좋은’ 음식 만나면 ‘나눠’ 먹자. 미식이 별건가. 미식가가 별건가. 내 주변을, 작지만 내가 품은 세계를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섭생을 하고 싶다.
『미각의 제국』은 말하자면, 맛있고 좋은 음식이다. 나눠 먹어야 한다. 식욕과 성욕은 통한다는데, 뇌 안에 식욕중추와 성욕중추가 거의 붙어있어서 그렇다는데, 과장하자면 이 책은 오르가슴을 느끼게 한다. 강연도 그랬다. 지난 7월14일, 서울 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열린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의 미각교실 ‘수요악식세설’. 당신과 함께 나누겠다. 좋은 것을 향유하고 느끼고, 좋고 나쁜 것을 분간하는 건, 좋은 일이다. 그것을 나눈다면 더욱 좋겠지. 자, 황교익의 음식을 즐기기 위한 팁부터 보고 들어가자.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는 그 음식에 대한 거부감부터 없애야 한다. 그 음식의 특징들을 무시하지 말고 그 안에 푹 빠져 즐기는 것이다. 사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듣기 싫은 랩도 마음을 열고 한번 푹 빠지면 그 즐거움을 알게 되고, 저 무서운 걸 왜 할까 하고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보던 행글라이더도 한두 번 타기 시작하면 금세 마니아가 될 수 있다.(p.178)
맛이란 무엇인가
황교익은 기자 출신이다. 농산물 취재 담당으로 2년을 지내자, 지겨워졌다. 그저 농산물의 품종과 재배에만 매몰될 뿐,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먹는 이야기를 해보자. 그러면 사람 사는 이야기가 나오겠지. 시작은 그랬는데, 음식으로 확장됐다. 그렇게 지낸 세월이 20여 년. 『미각의 제국』은, 그 20여 년 황교익의 내공이 축적된, 그것을 축약한 결과물이다.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추렸다. 왜냐면 동어반복도 많아서. 그래서 핵심만 전달할 필요가 있겠다, 해서 만들어진 책이다.”
좋다. 본론으로 가자. 맛이라는 게 뭔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겠다. 하지만 책에는 넣지 않았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의 농간(?)이다. 변명, 들어보자.
“맛이란 무엇인가를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나의 가치관은, 이 세상은 ‘일리(一理)’다. 김명민 교수가 쓴 책을 보고, 평생 가치관으로 가져가자, 한 것이 일리다. 누구나 자기만의 논리를 갖고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이 있다. 그게 일리다. 진리는 잘못하면 지적인 허영이 되지만, 나는 진리 아닌 일리를 갖고 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일리가 보인다. 나는 일리고, 여러분이 가진 생각도 일리다. 그런 생각을 갖고 들어 달라.”
그러니까, 맛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맛이 아닌, 오롯이 당신만의 맛. 맛도 그렇게 곧 취향의 문제다. 다만, 그 전에 알고 느껴라. 알아야 잘 느낄 수 있다.
인간이든 짐승이든 뭇 생명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자기만의 제국을 건설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이런 꿈이 없으면 살아있어도 생명이 아니다. 이 책은 내가 이룬 제국의 한 성이다. 독자들이, 그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자기만의 제국을 건설하는 데 이 책으로 조그만 영감이라도 얻으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p.45)
맛의 탄생 혹은 쾌락의 시작
음식에는 3가지 요소가 있다. 영양적 요소, 쾌락적 요소, 영성적 요소. 영양적 요소는 영양사가, 영성적 요소는 음식문화를 이야기하는 부분이므로, 이날의 테마는 쾌락적 요소.
왜 쾌락이 중요한가. 침팬지의 경우다. 보통 과일, 열매를 많이 먹지만, 육식도 한다. 그런데, 그 육식, 고기만 씹지 않는다. 야채를 함께 씹는다. 영양적으로 밸런스가 맞아서? 글쎄. 황교익은 그런 영양적 사고보다, 고기가 갖고 있는 맛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래 더 많은 양으로 느껴지게끔 다른 것을 집어넣지 않을까. 미각적 판단에 의해 그렇게 한다. 그렇게 먹는 것은 영양적 요소 외에 뭔가 입안에서 기분 좋은 것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상도 그러지 않았을까. 생존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입안에 느끼는 쾌감을 위해 먹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보노보의 경우, 쾌락을 공유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한단다. 대개의 짐승은 짝짓기 시즌이 되면, 방해되는 것과 싸움을 하고, 발정기에야 생식 본능이 발동하지만, 보노보는 생식과 관계없이 수시로 섹스를 하는 특이한 경우다. 생식 본능보다 쾌락으로 즐기는 것. “쾌락을 즐긴다는 자체가 다른 동물과 달리 무언가를 만드는 거다. 음식으로 생존 너머의 쾌락을 즐기는 것도 같다. 보노보를 보면 먹이와 섹스의 관계가 나온다. 섹스에 대한 대가로 먹이를 지불한다. 먹는 쾌감과 성적인 쾌감이 동질의 것으로 생각한다는 거지. 맛이라는 쾌락은 동물에서 다른 뭔가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말. “생존, 그 너머의 것을 탐하다.” 쾌락의 탄생이다. 부디, 쾌락하라.
미각은 모든 감각과 통한다. 섬세하게 다듬으면 세상이 보이고 들린다.(p.227)
문명의 탄생과 요리의 시작
그 다음 단계. 불이다. 그야말로, 먹는 것에도 혁명이 일어났다. 덩달아 미각도 달라졌다. 요리의 탄생이다. 저장 등 새로운 일도 벌어졌다. 불은 곧, 미각의 확장이었다. 이렇게도 먹어보고 저렇게도 먹어본다. 신기하다. 맛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여유가 생기면서 음식에 대해, 미각에 대해 좀 더 다양하게 먹어보는 실험을 하게 됐다. 문명의 발달 자체가 요리의 시작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밥이 곧 하늘이다
이젠 부족국가로 넘어가보자. 당시 최고 우두머리는, 정치적인 지도자의 성격도 가진 제사장이었다. 제사장이라는 위치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그 제물은 음식이었다. 제사장의 역할은 그리하여, 음식을 준비하고 나눠먹는 것이었다. 지금으로 보면, 일종의 요리사. “지금 우리 생활 안에 제사장의 형태가 있다. 웃어른이 수저를 들어야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다. 그래서 음식은, 그 음식을 우리에게 준 하늘이라고 봤다. 하늘에서 온 것을 하늘에게 갖다 바치고 먹는 거지.”
우리는 이 말을 잊고 사는 것 아닐까. “밥이 하늘이다.” 동학의 교주, 해월 최시형 왈. “일완지식(一碗之食 ) 함천지인(含天地人)” 밥 한 그릇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즉, 음식 안에 자연에 있는 것이 다 있다. 그때 사람들 입장에선 밥을 잘하고 맛있게 먹는 것이 하늘(신)을 잘 섬기는 것과 같았으며, 먹는 것 자체가 자연이고 성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황교익은, 방랑식객 임지호의 얘기를 꺼냈다. 그를 존경하고, 음식철학 자체가 제사장의 철학을 갖고 있다는 설명을 곁들여. “요리사가 자연을 자신의 철학으로 해석하고, 그 해석으로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이 요리사가 자연을 어떻게 해석했다 하는 것을 느끼면 그것이 훌륭한 요리다. 요리사는 자연과 그것을 먹는 인간의 매개자일 뿐이다. 요리사는 자신이 먹기 위해 요리하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을 먹이는 사람이 요리사다. 이 분의 이야기가 제사장의 이야기이다. 이 분을 십여 년 전에 만나서 그 얘길 듣는 순간, 머릿속이 깨끗이 정리됐다. 음식이라는 것이 뭔지. 요리사는 자연의 전달자다. 그런데 이 양반이 제일 좋아하는 건 라면이다. (웃음)”
맛에는 순수한 맛과 변형된 맛이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요리는 자연을 다치지 않고, 그 재료의 원초적인 맛을 그대로 먹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수한 맛입니다. 순수한 맛은 순수한 마음과 통합니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은 정신적인 행위입니다. 마음을 열고 풀잎을 보면 풀잎과 제가 일체를 이루게 됩니다. 저와 일체가 된 풀잎을 무념무상의 지경에서 요리합니다. 그러면 이 음식을 먹는 사람도 이 음식과 일체가 되고…… 즉, 요리사-요리-손님이 일체가 되는 겁니다. 사람을 보면 느낌이란 것이 있지요. 음식에도 이런 느낌이란 게 있습니다. 음식을 제대로 먹으면 그 음식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지요.(p.147)
공장음식에 현혹당하다
그러나 알다시피, 지금은 공장음식 천국(?)이다. 밥이 하늘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콧방귀를 뀔 일이다. 산업사회는 밥이 곧, 하늘이라는 관념을 철저히 부쉈다. 농민이 산업노동자로 넘어가면서 농산물 혹은 음식 생산현장에서 사라졌다! 먹는 것은 자연과 단절됐고, 공장 음식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보면 그런 장면 나오잖나. 기계가 음식물을 섭취하도록 하는 장면. 산업사회의 음식은 그 전과 완전히 다르다. 영양 밸런스를 먼저 생각하고, 간편하고 쉽게 싸게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 것을 생각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보면, 이런 공장음식을 먹은 것은 200~300년, 우리나라는 100년도 덜 잡아야겠지.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음식이나 그 관념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황교익의 주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 숱하게 도처에 있는 공장음식은, “음식이 아니라 음식 비슷한 것이라고 이름 붙여야 하지 않을까”라고 직설이다. 입에만 맞으면 되고, 원초적인 ?(자연)과는 전혀 관계없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에 대한 안타까움. 혹은 “음식 비슷한 것을 음식으로 먹”는 세태에 대한 에두른 비판.
가령, 햄버거 속의 패티. 고기처럼 보이게 만든 음식 비슷한 것이다. 음식이 아닌 음식스러운 것이다. “그런 것이 너무 많다. 이런 음식 비슷한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원래 자연에서 느꼈던 원래 음식을 잊고 있는 거다.”
모유의 당도와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입에 무는 것이 모유다. 모유 당도는 11브릭스(당의 함량을 나타내는 정도)로, 과일의 당도가 11브릭스 정도로 비슷하다. “정식품의 관계자에게 들은 것이다. 한 의사가 모유나 분유를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콩으로 영양식을 만든 것이 ‘베지밀’이었다. 그게 두유였다. 정식품의 두유는 11브릭스에 맞췄다. 모유와 같은 당도로. 그것을 생산해서 파니까,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이 분유회사였다. 그러자 분유회사도 두유를 만들었는데, 당도를 13브릭스로 올렸다. 그러니까, 애들이 13브릭스 두유를 먹고는 11브릭스를 먹으면 뱉고 절대 안 먹는다는 거다. 그렇게 단맛에 대한 욕구는 모든 동물이 같다.”
단맛은 모든 동물에게 중독을 일으킨다. 개미나 파리 같은 미물에서부터 고등동물이라는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단맛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대박 음식점 주인들은 단맛에 대한 이런 ‘무뇌아적 반응’을 잘 파악하고 있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고등어조림에도 강정을 만들 만큼 설탕을 푼다.(p.34)
사람들은 단맛에 대해 왜 그렇게 강렬한 욕구를 느낄까. 당은 먹자마자 에너지원으로 바뀌기 때문이란다. 가장 강렬한 에너지원이며, 달면 다 맛있다고 하는 것이 동물이요, 사람이다. 얘기는 이어진다.
“13브릭스를 먹고 난 뒤 11브릭스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니까, 정식품에서 1년 동안 고민했단다. 결론은 13브릭스에 맞춰 시장에 냈다. 시장논리지. 처음의 건전한 생각이 공장식품 때문에 바뀐 거지. 나는 답답해서, 왜 소비자상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소비자에게 구원요청을 했어야 하지 않나. 그러자 답변이, 설득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달면, 가짜든 진짜든 입에 넣는다. 생각 안 한다. 떡볶이를 봐라. 엄청난 당도다. 그런데도 입에 집어넣는다. 아무 생각 않는다. 동물이 가진 미각 수준과 인간이 가진 미각 수준은 거의 같다고 봐야 한다.”
단맛의 음식을 두고 맛있다 찬사를 보내는 것은 미식가로서 자질이 없다는 증거이다.(p.35)
맛있는 음식이란
그렇다면 맛있는 음식이란 무엇일까. 황교익의 기준에서 맛은 이런 거다. “자연을 내 몸으로 깃들이다.” 산업사회 살면서 왜곡되고 잘못 길들여진 입맛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자연에서 벗어난 미각에선, 우리가 먹는 음식이 자연이라는 것을 잊고 산다. 그렇다고 철학적인 문제로 넘어갈 것은 아니다. 입도 단순하다. 미각의 문제에 국한해보자.
“우리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자연과 같이 살려고 한다. 휴가 때마다 바다, 산으로 가고 틈만 나면 자연으로 가려고 하잖나. 그런데 우리 입, 미각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안 한다. 왜곡된 미각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을 않는다. 자연 상태의 음식은 현 상황에서 맛없다, 달지도 않다, 거칠다는 말이 나오겠지만, 그게 가장 맛있는 것이다. 11브릭스의 사과가 더 맛있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고 단순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자연 부르짖으면서, 내 몸 생각한다면, 더구나 ‘먹는 것이 곧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음식 비슷한 것과 음식을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맛있다는 표현. 함부로 쓸 일이 아니로다. 단맛에 홀딱 넘어가 맛있다고 설레발 쳐놓고선, 그것을 ‘미식’이라고 표현해선 안 될 일이로다. “우리는 원래 자연이 가진 맛을 잊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맛있는 것은 자연이 내는 순수한 상태의 것이다. 쓴맛이든 신맛이든, 상관없다. 달콤한 맛에 길들여진 미각이 기준이 아니다.”
화학조미료의 가장 큰 해악은 식재료의 질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최하질의 재료이든 최고급의 재료이든 이 화학조미료 한 방이면 맛을 다 비슷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그러니 좋은 음식 먹자면 화학조미료부터 없애야 한다.(p.39)
한국의 맛이란 무엇인가
덧붙여, 대통령 부인까지 나서서 별 생각 없이 세계화랍시고 떠들고 있는 한식 세계화. 그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 한국의 맛이 무엇인지. 대답할리 만무하고. 황교익에게 들어보자. 한국의 맛.
“자연의 맛이라고 얘기했듯이, 한국 자연에 대한 관찰이 한국의 맛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디에 (음식)취재를 간다 하면, 먼저 인터넷 지도검색을 통해 산과 강, 들과 같은 지형을 본다. 그걸 봐야 자연이 어떻다고 감을 잡는다. 자연을 알고 가면 산물의 맛이 좀 더 확고하게 온다. 바다에서 나는 것도 똑같다. 조수간만의 차 등을 보면 뻘, 경계수심 등이 나오는데, 어떤 바다겠구나, 하는 감이 생긴다. 이걸 알면 지역 산물에 대한 느낌을 좀 더 정확하게 받을 수 있다.”
결론은 이렇다. “한국의 자연을 알면 한국의 맛에 대한 집중이 잘 된다.”
최소한 한국의 맛을 알고 싶다면 자연을 관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 알면 더 맛있어진다. 알면 더 풍부해진다.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도 생긴다. “입에서 느끼는 쾌감뿐 아니다. 좀 더 확장돼 머리로 더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더 깊이 빠지면 환경 운동해야 한다. (웃음)”
그러니, 지금 정권이 한국의 맛, 한식 세계화라고 떠드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아니, 한국의 자연을 모르잖나. 4대강이랍시고, 쥐가 강에 집을 짓고 있는데, 이게 얼마나 한국의 맛을 변화시키고 퇴보시키겠나. 이건 단순히 자연을 파괴하는 것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먹을거리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어쨌든 황교익의 맛. 진리가 아닌 일리라고 했던 그 맛. 그도 자신만의 맛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요리사, 영양사, 생리학자도 아니지만, 그는 자신만의 맛을 갖기 위해, 일리를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체험하고 정리했다. 그러니, 우리도 충분히 우리만의 맛, 우리만의 일리를 가질 수 있다.
“여러분이 음식마다 일리를 가질 수 있다. 『미각의 제국』도 이런 생각을 갖고 썼다. 내가 말한 제국은 내가 생각하는 제국이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제국과 다르다. 이건 미각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일을 하건, 자기만의 일리를 확보해야만 흔들리지 않는다. 일리를 확보하는 방법이 많은데, 이건 내가 공부한 내용을 짧게 추려 얘기한 거고, 다른 분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우리 몸 안에 들어와 있는 제국주의자들의 미각 기준을 털어내려고 시도하였다. 오로지 내 몸이 느끼는 것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시도하였다.… 써 놓고 보니 오시마 감독의 <감각의 제국>이 떠올랐다. 그의 반제국주의 시선은 나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 이름을 빌려 책 제목을 달았다. 그러니, 『미각의 제국』은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제국주의자들의 미각 기준에 버팅기는 나만의 미각의 ‘제국’인 것이다.(p.45)
Q & A
TV 등을 보면 맛없어 보이는 음식도 많더라. 칼럼 쓸 때, 음식을 맛 볼 텐데, 진짜 맛있어서 맛있다고 하는 건가.
“맛없으면 맛없다고 얘기한다. 맛없는 것을 맛있다고 얘기한 적은 없다. 다만 맛있다는 기준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가진 오랜 미각의 경험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식욕은 성욕과 통한다는데, 맛 기행을 하면서 여성과의 에피소드는 없었나.
“음식과 섹스는, 생존이 아닌 쾌락을 느끼는 단계로 진화하면서 같은 단계로 나타난다. 식욕과 성욕을 느끼는 부위가 서로 옆에 있다고 하더라. 음식 이야기에 여성을 섞으면 굉장히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된다. 한 번은 그렇게 칼럼을 써 본 적이 있다. 각 지역 음식을 그 지역 여성의 품성과 연결해서 써 봤는데, 비난이…… 특히 아내도 ‘당신이 뭔 여자를……’ 하면서... (웃음) 우리나라는 유교적 관념이 강해서 그런지 그런 이야기를 쓰기가 어렵다. 그런 걸 쓰고 싶은 욕망은 ???, 내가 쓸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한 번 써 보세요. (웃음)”
책에 왜 간장 이야기는 쓰지 않았나. 또 하나, 남해 죽빵멸치가 유명한데, 한 마리에 3500원짜리가 나왔다더라. 그만한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간장은 된장과 같다. 간장이라는 게 콩을 메주로 만들어서 아미노산을 추출해내는 거다. 전통적인 간장은 웬만큼 시간이 걸려야 하고, 산분해간장이라고 있다. 이것은 콩 등의 곡물을 넣어서 산처리하면 3일 만에 아미노산이 추출되고, 시럽 등을 타서 내놓는다. 한때 말이 많았다. 산분해간장이 값이 싸서 외식업체에서 많이 쓴다.
양조간장은 콩을 발효하는 방법이 다르다. 밀이나 쌀을 섞어 발효기간을 단축시킨다. 공장마다 다르지만, 몇 달 정도로 알고 있다. 일본 간장과 비슷한데, 전분질이 많아서 단맛이 강하다. 지금은 양조간장에 우리 입맛이 적응돼 있다. 집에서 만든 조선간장을 일본식 양조간장의 당도로 맞추기 위해 실험해 봤는데, 거의 간장과 동량의 설탕을 넣어야 그 정도 당도가 나오더라. 조선간장으로 음식을 해서 먹기 시작하면 단맛이 이상야릇하게 걸려들 때가 있다. 되도록 양조간장을 안 먹는 게 낫다. 너무 달다.
죽빵멸치에 대해서라면, 그 허구를 쓴 적도 있다. 고기를 잡는 방법 중에 정치망이 있다. 그물을 한 곳에 고정시켜놓고 고기를 잡는 방법인데, 죽빵도 정치망의 일종이다. 그물이 아니라 대나무로 해놨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리고 죽빵염은 물살이 빠른데 있다. 멸치 중에 단단한 것들을 멸치 생산자들은 참멸치라 하는데, 연구자들은 참멸치라는 종자가 없단다. 멸치 중에 단단한 멸치가 있긴 한다더라. 그런 것들이 죽빵염에 많이 들어가는데, 그것을 비싸게 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치망멸치라는 게 있는데, 죽빵멸치와 같다. 멸치의 맛은 싱싱한 상태에서 얼마나 빨리 가공하는가가 생명이다. 정치망이나 죽빵이나 그물에서 곱게 떠서 멸막(멸치 삶는 곳)에 가는데, 10분이면 끝난다. 제가 보기엔 죽빵망이나 정치망이나 똑같다. 죽빵멸치가 높은 가격에 형성돼 있는 것은, 비판해야 한다. 그건 허구다.”
집에서 주로 먹는 음식은 어떤가.
“집에서 먹는 것이 바깥에서 먹는 것보다 나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장하는 대로만 살진 않는다. 이렇게 못 산다. (웃음) 공장음식에 이미 길들여진 부분이 있고, 그것을 많이 빼내지만 빼내는데 한계가 있다. 결국 취재를 다니면 싸구려 음식, 최악의 음식도 먹거든. 공장의 식재료만으로 만들어진.
대형마트 등에 가면 외식업체를 위해 식재료를 모아놓고 파는 곳도 있다. 거기에 보면 외식업체들이 사용하는 저가의 식재료들이 다 있다. 최악의 식재료들이다. 우리가 식당에서 먹는 대부분이 최악의 식재료로 만든다. 되도록 바깥에서 음식을 안 먹으려고 한다. (웃음) 그런데 아내는 바깥에서 혼자 좋은 음식 다 먹고 와서는 외식을 안 한다고 징징거린다. 나도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환경이 그만큼 따라주진 않는다. 그러니까, 내 말은 저렇게 살겠다가 아니고, 알고 있으라는 거다.”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어떤 마음으로 책을 썼나.
“핵심은 속지 말라는 거다. 우리가 가진 미각이 왜곡돼 있고, 왜곡된 미각에 맞춰 내놓는 산업 생산자들에게 속지 말라는 거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감동을 받고, 감이 생기면 싸구려 유행음악을 덜 듣게 되잖나. 영화나 사진도 그렇고. 진짜를 알게 되면 가짜와 구별할 수 있다. 미각도 마찬가지다. 뭔가 속이는 것이라는 실체를 알고, 바르고 좋은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즐거워진다. 좋은 음악과 좋은 음식을 먹는 건 똑같다. 대등한 문화생활이다. 『미각의 제국』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속고 있지 않았느냐, 내 경험으로 주의를 환기시켜보자, 그런 의미다. 책은 핵심만 추린 거다.”
짧은 글들이지만 내 오랜 경험을 농축한 것이다. 꼼꼼히 읽는다면 진정한 미식가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p.6)
악식을 풀어준다면. 약식에 대해서도.
“‘악식’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슴, ‘미식’이라는 허위를 뒤집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그럴 듯하게 차려진 음식,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다는 아니지만, 많은 요리사들이 자신이 쓰는 재료에 대한, 요리에 대한 관(점)이 없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 미식해라, 나는 악식할게, 이런 거다. (웃음)
미식과 악식은 통한다는 관은, 종교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인류 역사를 보면 우리는 대부분 썩고 거친 것을 먹으면서 생명을 유지했다. 가령, 중국 음식점에서 ‘리찌’를 달콤하다고 먹는다. 사람들이 왜 리찌를 좋아할까. 고구마 썩는 냄새를 넣었다더라. 전분질이 썩는 냄새다. 이걸 알고 먹어봐라. 다시 말하지만, 미각은 교육되고 훈련되는 거다.
커피에서도 그런 게 있다. 짐승이나 식물의 썩는 냄새가 있다. 그런 냄새가 나는 것들이 대부분 중독을 일으키고 특별한 맛이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미식은 가장 원초적인 죽음의 향내를 우리가 몸 안에 넣고 욕구하는 거다. 그래서 미식이나 악식이 통한다고 얘기한 거다. 먹는 것에 대해 냄새를 맡으려고 노력해봐라. 특히 와인 안에도 썩는 냄새 있다. 약식은 내 영역이 아니라 모르겠다. 죄송하다.”
미식. 악식과 동의어이다. 어둠이 있어야 빛의 황홀도 있는 것이다. 미식이란, 음식에서 어둠의 맛까지 느끼는 일이다.(p.224~225)
우리가 향유하는 식습관, 우리의 식문화가 잘 돼가고 있는 건가.
“우리나라 외식업체 수준으로 보자면, 형편없다. 멜라민 식기에 스텐 밥그릇…… 그런 것, 집에선 안 쓰잖나. 그런데 대중음식점에서 쓴다. 멜라민 식기를 쓰는 나라가 OECD 국가 중에 어디에 있나. 외국인이 우리나라 음식점에 와서 먹는 것을 보면, 난감하다. 먹고 죽는 거 아닌가, 싶은 표정들이다. 한식 세계화를 부르짖는데,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음식을 먹어봐야 자신의 나라에 가서도 찾지 않겠나.
당장 우리 스스로 먹는 것에 대한 업그레이드 필요하다. 한식을 세계화하려면 우리 것부터 바꿔야 한다. 중국 음식의 수준이 낫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은 비슷하다. 저급함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없이 한식 세계화와 같이 겉만 번지르르한 구호를 외치는데, 엉뚱한데 돈을 쓰는 거다.”
건강한 식탁을 이야기하지만, 매일 유기농을 사먹을 순 없다. 가장 현명한 자세는.
“산업화를 되돌릴 수는 없다. 일상에서 눈에 보이고 일상을 채우는 건, 공장음식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이 제대로 된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도 사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나도 생협 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도 일부 있다. 제대로 된 유기농이 아닌 것도 많고. 나는 어쨌든 의심하는 부분이 있다. 믿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그러고 난 뒤 가끔씩 시골 등에 가서 제대로 된 것을 발견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봉지 안 씌운 사과를 먹으면 인생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다. 항상 그것을 먹겠다는 것이 아니고 진짜 가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오페라 명작 한 편 보는 것과 봉지 안 씌운 사과를 먹는 것이 같은 감동으로 올 때가 있다. 그게 인생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게 있다고만 알고, 그것을 먹을 때 진짜 행복하구나, 느끼는 것이 음식을 즐기고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다.”
물론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 찾아먹는 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하지만, 미각을 훈련하는 태도는 게으르다 하겠다. 먹는 것에만 집중했던 내 이십대의 잔상이 남은 까닭이다. 하지만, 커피를 만드는 사람인 나로선, 미각이 중요하다. 귀(음악)로 듣고 눈(미술)으로 보는 일만큼이나 혀와 코가 느끼는 감각도 중요하다. 그 감각이 짜릿함을 느낄 때, 생은 또 하나의 행복을 사유하게 된다.
뭣보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 음악이나 미술에 비해 요리가 뒤질 이유도 없다. 물론 식당의 화려함, 가격의 높음에 맛이 못 미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건 음악회나 미술전이 형편없었다고 말하는 것과 동등하게 말해주면 된다.
“미각은 일상에서 느끼는 감각이다. 집중을 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 스스로 미각 깨우는 훈련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그가 일상에서 미각 깨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신의 오랜 내공을 축약한 책을 내놨다. 『미각의 제국』(황교익 지음|따비 펴냄).
이런 책이다. “늘상 먹는 음식이고, 가끔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즐기는 것과 음식을 관찰하고 공부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을 쓴 것이다. 쉽게 말해, ‘보통 사람들을 위한 미각 입문서’인 것이다.”(p.6) 부제라면, ‘잃어버린 우리의 입맛을 찾아서…’ 정도가 될 수도 있을 텐데, 공장음식 즉, ‘영향력 확장의 본능이 집단화하고 정치화한’ 음식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된 미각 기준에 딴죽을 건다.
얼마 전 읽었던, 『미식견문록』에서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말했다. “아무튼 엄청난 먹보가 많은 우리 친지들은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먹이고 싶어하는 습성이 있다. 또 그것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미식견문록』, p.174) 이 책을 읽고, 단순하게 내린 나의 결론은 이랬다. ‘좋은’ 음식 만나면 ‘나눠’ 먹자. 미식이 별건가. 미식가가 별건가. 내 주변을, 작지만 내가 품은 세계를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섭생을 하고 싶다.
『미각의 제국』은 말하자면, 맛있고 좋은 음식이다. 나눠 먹어야 한다. 식욕과 성욕은 통한다는데, 뇌 안에 식욕중추와 성욕중추가 거의 붙어있어서 그렇다는데, 과장하자면 이 책은 오르가슴을 느끼게 한다. 강연도 그랬다. 지난 7월14일, 서울 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열린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의 미각교실 ‘수요악식세설’. 당신과 함께 나누겠다. 좋은 것을 향유하고 느끼고, 좋고 나쁜 것을 분간하는 건, 좋은 일이다. 그것을 나눈다면 더욱 좋겠지. 자, 황교익의 음식을 즐기기 위한 팁부터 보고 들어가자.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는 그 음식에 대한 거부감부터 없애야 한다. 그 음식의 특징들을 무시하지 말고 그 안에 푹 빠져 즐기는 것이다. 사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듣기 싫은 랩도 마음을 열고 한번 푹 빠지면 그 즐거움을 알게 되고, 저 무서운 걸 왜 할까 하고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보던 행글라이더도 한두 번 타기 시작하면 금세 마니아가 될 수 있다.(p.178)
맛이란 무엇인가
황교익은 기자 출신이다. 농산물 취재 담당으로 2년을 지내자, 지겨워졌다. 그저 농산물의 품종과 재배에만 매몰될 뿐,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먹는 이야기를 해보자. 그러면 사람 사는 이야기가 나오겠지. 시작은 그랬는데, 음식으로 확장됐다. 그렇게 지낸 세월이 20여 년. 『미각의 제국』은, 그 20여 년 황교익의 내공이 축적된, 그것을 축약한 결과물이다.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추렸다. 왜냐면 동어반복도 많아서. 그래서 핵심만 전달할 필요가 있겠다, 해서 만들어진 책이다.”
좋다. 본론으로 가자. 맛이라는 게 뭔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겠다. 하지만 책에는 넣지 않았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의 농간(?)이다. 변명, 들어보자.
“맛이란 무엇인가를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나의 가치관은, 이 세상은 ‘일리(一理)’다. 김명민 교수가 쓴 책을 보고, 평생 가치관으로 가져가자, 한 것이 일리다. 누구나 자기만의 논리를 갖고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이 있다. 그게 일리다. 진리는 잘못하면 지적인 허영이 되지만, 나는 진리 아닌 일리를 갖고 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일리가 보인다. 나는 일리고, 여러분이 가진 생각도 일리다. 그런 생각을 갖고 들어 달라.”
그러니까, 맛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맛이 아닌, 오롯이 당신만의 맛. 맛도 그렇게 곧 취향의 문제다. 다만, 그 전에 알고 느껴라. 알아야 잘 느낄 수 있다.
인간이든 짐승이든 뭇 생명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자기만의 제국을 건설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이런 꿈이 없으면 살아있어도 생명이 아니다. 이 책은 내가 이룬 제국의 한 성이다. 독자들이, 그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자기만의 제국을 건설하는 데 이 책으로 조그만 영감이라도 얻으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p.45)
맛의 탄생 혹은 쾌락의 시작
음식에는 3가지 요소가 있다. 영양적 요소, 쾌락적 요소, 영성적 요소. 영양적 요소는 영양사가, 영성적 요소는 음식문화를 이야기하는 부분이므로, 이날의 테마는 쾌락적 요소.
왜 쾌락이 중요한가. 침팬지의 경우다. 보통 과일, 열매를 많이 먹지만, 육식도 한다. 그런데, 그 육식, 고기만 씹지 않는다. 야채를 함께 씹는다. 영양적으로 밸런스가 맞아서? 글쎄. 황교익은 그런 영양적 사고보다, 고기가 갖고 있는 맛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래 더 많은 양으로 느껴지게끔 다른 것을 집어넣지 않을까. 미각적 판단에 의해 그렇게 한다. 그렇게 먹는 것은 영양적 요소 외에 뭔가 입안에서 기분 좋은 것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상도 그러지 않았을까. 생존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입안에 느끼는 쾌감을 위해 먹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보노보의 경우, 쾌락을 공유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한단다. 대개의 짐승은 짝짓기 시즌이 되면, 방해되는 것과 싸움을 하고, 발정기에야 생식 본능이 발동하지만, 보노보는 생식과 관계없이 수시로 섹스를 하는 특이한 경우다. 생식 본능보다 쾌락으로 즐기는 것. “쾌락을 즐긴다는 자체가 다른 동물과 달리 무언가를 만드는 거다. 음식으로 생존 너머의 쾌락을 즐기는 것도 같다. 보노보를 보면 먹이와 섹스의 관계가 나온다. 섹스에 대한 대가로 먹이를 지불한다. 먹는 쾌감과 성적인 쾌감이 동질의 것으로 생각한다는 거지. 맛이라는 쾌락은 동물에서 다른 뭔가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말. “생존, 그 너머의 것을 탐하다.” 쾌락의 탄생이다. 부디, 쾌락하라.
미각은 모든 감각과 통한다. 섬세하게 다듬으면 세상이 보이고 들린다.(p.227)
문명의 탄생과 요리의 시작
그 다음 단계. 불이다. 그야말로, 먹는 것에도 혁명이 일어났다. 덩달아 미각도 달라졌다. 요리의 탄생이다. 저장 등 새로운 일도 벌어졌다. 불은 곧, 미각의 확장이었다. 이렇게도 먹어보고 저렇게도 먹어본다. 신기하다. 맛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여유가 생기면서 음식에 대해, 미각에 대해 좀 더 다양하게 먹어보는 실험을 하게 됐다. 문명의 발달 자체가 요리의 시작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밥이 곧 하늘이다
이젠 부족국가로 넘어가보자. 당시 최고 우두머리는, 정치적인 지도자의 성격도 가진 제사장이었다. 제사장이라는 위치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그 제물은 음식이었다. 제사장의 역할은 그리하여, 음식을 준비하고 나눠먹는 것이었다. 지금으로 보면, 일종의 요리사. “지금 우리 생활 안에 제사장의 형태가 있다. 웃어른이 수저를 들어야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다. 그래서 음식은, 그 음식을 우리에게 준 하늘이라고 봤다. 하늘에서 온 것을 하늘에게 갖다 바치고 먹는 거지.”
우리는 이 말을 잊고 사는 것 아닐까. “밥이 하늘이다.” 동학의 교주, 해월 최시형 왈. “일완지식(一碗之食 ) 함천지인(含天地人)” 밥 한 그릇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즉, 음식 안에 자연에 있는 것이 다 있다. 그때 사람들 입장에선 밥을 잘하고 맛있게 먹는 것이 하늘(신)을 잘 섬기는 것과 같았으며, 먹는 것 자체가 자연이고 성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황교익은, 방랑식객 임지호의 얘기를 꺼냈다. 그를 존경하고, 음식철학 자체가 제사장의 철학을 갖고 있다는 설명을 곁들여. “요리사가 자연을 자신의 철학으로 해석하고, 그 해석으로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이 요리사가 자연을 어떻게 해석했다 하는 것을 느끼면 그것이 훌륭한 요리다. 요리사는 자연과 그것을 먹는 인간의 매개자일 뿐이다. 요리사는 자신이 먹기 위해 요리하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을 먹이는 사람이 요리사다. 이 분의 이야기가 제사장의 이야기이다. 이 분을 십여 년 전에 만나서 그 얘길 듣는 순간, 머릿속이 깨끗이 정리됐다. 음식이라는 것이 뭔지. 요리사는 자연의 전달자다. 그런데 이 양반이 제일 좋아하는 건 라면이다. (웃음)”
맛에는 순수한 맛과 변형된 맛이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요리는 자연을 다치지 않고, 그 재료의 원초적인 맛을 그대로 먹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수한 맛입니다. 순수한 맛은 순수한 마음과 통합니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은 정신적인 행위입니다. 마음을 열고 풀잎을 보면 풀잎과 제가 일체를 이루게 됩니다. 저와 일체가 된 풀잎을 무념무상의 지경에서 요리합니다. 그러면 이 음식을 먹는 사람도 이 음식과 일체가 되고…… 즉, 요리사-요리-손님이 일체가 되는 겁니다. 사람을 보면 느낌이란 것이 있지요. 음식에도 이런 느낌이란 게 있습니다. 음식을 제대로 먹으면 그 음식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지요.(p.147)
공장음식에 현혹당하다
그러나 알다시피, 지금은 공장음식 천국(?)이다. 밥이 하늘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콧방귀를 뀔 일이다. 산업사회는 밥이 곧, 하늘이라는 관념을 철저히 부쉈다. 농민이 산업노동자로 넘어가면서 농산물 혹은 음식 생산현장에서 사라졌다! 먹는 것은 자연과 단절됐고, 공장 음식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보면 그런 장면 나오잖나. 기계가 음식물을 섭취하도록 하는 장면. 산업사회의 음식은 그 전과 완전히 다르다. 영양 밸런스를 먼저 생각하고, 간편하고 쉽게 싸게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 것을 생각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보면, 이런 공장음식을 먹은 것은 200~300년, 우리나라는 100년도 덜 잡아야겠지.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음식이나 그 관념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황교익의 주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 숱하게 도처에 있는 공장음식은, “음식이 아니라 음식 비슷한 것이라고 이름 붙여야 하지 않을까”라고 직설이다. 입에만 맞으면 되고, 원초적인 ?(자연)과는 전혀 관계없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에 대한 안타까움. 혹은 “음식 비슷한 것을 음식으로 먹”는 세태에 대한 에두른 비판.
가령, 햄버거 속의 패티. 고기처럼 보이게 만든 음식 비슷한 것이다. 음식이 아닌 음식스러운 것이다. “그런 것이 너무 많다. 이런 음식 비슷한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원래 자연에서 느꼈던 원래 음식을 잊고 있는 거다.”
모유의 당도와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입에 무는 것이 모유다. 모유 당도는 11브릭스(당의 함량을 나타내는 정도)로, 과일의 당도가 11브릭스 정도로 비슷하다. “정식품의 관계자에게 들은 것이다. 한 의사가 모유나 분유를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콩으로 영양식을 만든 것이 ‘베지밀’이었다. 그게 두유였다. 정식품의 두유는 11브릭스에 맞췄다. 모유와 같은 당도로. 그것을 생산해서 파니까,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이 분유회사였다. 그러자 분유회사도 두유를 만들었는데, 당도를 13브릭스로 올렸다. 그러니까, 애들이 13브릭스 두유를 먹고는 11브릭스를 먹으면 뱉고 절대 안 먹는다는 거다. 그렇게 단맛에 대한 욕구는 모든 동물이 같다.”
단맛은 모든 동물에게 중독을 일으킨다. 개미나 파리 같은 미물에서부터 고등동물이라는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단맛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대박 음식점 주인들은 단맛에 대한 이런 ‘무뇌아적 반응’을 잘 파악하고 있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고등어조림에도 강정을 만들 만큼 설탕을 푼다.(p.34)
사람들은 단맛에 대해 왜 그렇게 강렬한 욕구를 느낄까. 당은 먹자마자 에너지원으로 바뀌기 때문이란다. 가장 강렬한 에너지원이며, 달면 다 맛있다고 하는 것이 동물이요, 사람이다. 얘기는 이어진다.
“13브릭스를 먹고 난 뒤 11브릭스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니까, 정식품에서 1년 동안 고민했단다. 결론은 13브릭스에 맞춰 시장에 냈다. 시장논리지. 처음의 건전한 생각이 공장식품 때문에 바뀐 거지. 나는 답답해서, 왜 소비자상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소비자에게 구원요청을 했어야 하지 않나. 그러자 답변이, 설득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달면, 가짜든 진짜든 입에 넣는다. 생각 안 한다. 떡볶이를 봐라. 엄청난 당도다. 그런데도 입에 집어넣는다. 아무 생각 않는다. 동물이 가진 미각 수준과 인간이 가진 미각 수준은 거의 같다고 봐야 한다.”
단맛의 음식을 두고 맛있다 찬사를 보내는 것은 미식가로서 자질이 없다는 증거이다.(p.35)
맛있는 음식이란
그렇다면 맛있는 음식이란 무엇일까. 황교익의 기준에서 맛은 이런 거다. “자연을 내 몸으로 깃들이다.” 산업사회 살면서 왜곡되고 잘못 길들여진 입맛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자연에서 벗어난 미각에선, 우리가 먹는 음식이 자연이라는 것을 잊고 산다. 그렇다고 철학적인 문제로 넘어갈 것은 아니다. 입도 단순하다. 미각의 문제에 국한해보자.
“우리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자연과 같이 살려고 한다. 휴가 때마다 바다, 산으로 가고 틈만 나면 자연으로 가려고 하잖나. 그런데 우리 입, 미각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안 한다. 왜곡된 미각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을 않는다. 자연 상태의 음식은 현 상황에서 맛없다, 달지도 않다, 거칠다는 말이 나오겠지만, 그게 가장 맛있는 것이다. 11브릭스의 사과가 더 맛있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고 단순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자연 부르짖으면서, 내 몸 생각한다면, 더구나 ‘먹는 것이 곧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음식 비슷한 것과 음식을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맛있다는 표현. 함부로 쓸 일이 아니로다. 단맛에 홀딱 넘어가 맛있다고 설레발 쳐놓고선, 그것을 ‘미식’이라고 표현해선 안 될 일이로다. “우리는 원래 자연이 가진 맛을 잊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맛있는 것은 자연이 내는 순수한 상태의 것이다. 쓴맛이든 신맛이든, 상관없다. 달콤한 맛에 길들여진 미각이 기준이 아니다.”
화학조미료의 가장 큰 해악은 식재료의 질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최하질의 재료이든 최고급의 재료이든 이 화학조미료 한 방이면 맛을 다 비슷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그러니 좋은 음식 먹자면 화학조미료부터 없애야 한다.(p.39)
한국의 맛이란 무엇인가
덧붙여, 대통령 부인까지 나서서 별 생각 없이 세계화랍시고 떠들고 있는 한식 세계화. 그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 한국의 맛이 무엇인지. 대답할리 만무하고. 황교익에게 들어보자. 한국의 맛.
“자연의 맛이라고 얘기했듯이, 한국 자연에 대한 관찰이 한국의 맛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디에 (음식)취재를 간다 하면, 먼저 인터넷 지도검색을 통해 산과 강, 들과 같은 지형을 본다. 그걸 봐야 자연이 어떻다고 감을 잡는다. 자연을 알고 가면 산물의 맛이 좀 더 확고하게 온다. 바다에서 나는 것도 똑같다. 조수간만의 차 등을 보면 뻘, 경계수심 등이 나오는데, 어떤 바다겠구나, 하는 감이 생긴다. 이걸 알면 지역 산물에 대한 느낌을 좀 더 정확하게 받을 수 있다.”
결론은 이렇다. “한국의 자연을 알면 한국의 맛에 대한 집중이 잘 된다.”
최소한 한국의 맛을 알고 싶다면 자연을 관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 알면 더 맛있어진다. 알면 더 풍부해진다.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도 생긴다. “입에서 느끼는 쾌감뿐 아니다. 좀 더 확장돼 머리로 더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더 깊이 빠지면 환경 운동해야 한다. (웃음)”
그러니, 지금 정권이 한국의 맛, 한식 세계화라고 떠드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아니, 한국의 자연을 모르잖나. 4대강이랍시고, 쥐가 강에 집을 짓고 있는데, 이게 얼마나 한국의 맛을 변화시키고 퇴보시키겠나. 이건 단순히 자연을 파괴하는 것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먹을거리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어쨌든 황교익의 맛. 진리가 아닌 일리라고 했던 그 맛. 그도 자신만의 맛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요리사, 영양사, 생리학자도 아니지만, 그는 자신만의 맛을 갖기 위해, 일리를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체험하고 정리했다. 그러니, 우리도 충분히 우리만의 맛, 우리만의 일리를 가질 수 있다.
“여러분이 음식마다 일리를 가질 수 있다. 『미각의 제국』도 이런 생각을 갖고 썼다. 내가 말한 제국은 내가 생각하는 제국이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제국과 다르다. 이건 미각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일을 하건, 자기만의 일리를 확보해야만 흔들리지 않는다. 일리를 확보하는 방법이 많은데, 이건 내가 공부한 내용을 짧게 추려 얘기한 거고, 다른 분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우리 몸 안에 들어와 있는 제국주의자들의 미각 기준을 털어내려고 시도하였다. 오로지 내 몸이 느끼는 것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시도하였다.… 써 놓고 보니 오시마 감독의 <감각의 제국>이 떠올랐다. 그의 반제국주의 시선은 나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 이름을 빌려 책 제목을 달았다. 그러니, 『미각의 제국』은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제국주의자들의 미각 기준에 버팅기는 나만의 미각의 ‘제국’인 것이다.(p.45)
Q & A
TV 등을 보면 맛없어 보이는 음식도 많더라. 칼럼 쓸 때, 음식을 맛 볼 텐데, 진짜 맛있어서 맛있다고 하는 건가.
“맛없으면 맛없다고 얘기한다. 맛없는 것을 맛있다고 얘기한 적은 없다. 다만 맛있다는 기준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가진 오랜 미각의 경험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식욕은 성욕과 통한다는데, 맛 기행을 하면서 여성과의 에피소드는 없었나.
“음식과 섹스는, 생존이 아닌 쾌락을 느끼는 단계로 진화하면서 같은 단계로 나타난다. 식욕과 성욕을 느끼는 부위가 서로 옆에 있다고 하더라. 음식 이야기에 여성을 섞으면 굉장히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된다. 한 번은 그렇게 칼럼을 써 본 적이 있다. 각 지역 음식을 그 지역 여성의 품성과 연결해서 써 봤는데, 비난이…… 특히 아내도 ‘당신이 뭔 여자를……’ 하면서... (웃음) 우리나라는 유교적 관념이 강해서 그런지 그런 이야기를 쓰기가 어렵다. 그런 걸 쓰고 싶은 욕망은 ???, 내가 쓸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한 번 써 보세요. (웃음)”
책에 왜 간장 이야기는 쓰지 않았나. 또 하나, 남해 죽빵멸치가 유명한데, 한 마리에 3500원짜리가 나왔다더라. 그만한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간장은 된장과 같다. 간장이라는 게 콩을 메주로 만들어서 아미노산을 추출해내는 거다. 전통적인 간장은 웬만큼 시간이 걸려야 하고, 산분해간장이라고 있다. 이것은 콩 등의 곡물을 넣어서 산처리하면 3일 만에 아미노산이 추출되고, 시럽 등을 타서 내놓는다. 한때 말이 많았다. 산분해간장이 값이 싸서 외식업체에서 많이 쓴다.
양조간장은 콩을 발효하는 방법이 다르다. 밀이나 쌀을 섞어 발효기간을 단축시킨다. 공장마다 다르지만, 몇 달 정도로 알고 있다. 일본 간장과 비슷한데, 전분질이 많아서 단맛이 강하다. 지금은 양조간장에 우리 입맛이 적응돼 있다. 집에서 만든 조선간장을 일본식 양조간장의 당도로 맞추기 위해 실험해 봤는데, 거의 간장과 동량의 설탕을 넣어야 그 정도 당도가 나오더라. 조선간장으로 음식을 해서 먹기 시작하면 단맛이 이상야릇하게 걸려들 때가 있다. 되도록 양조간장을 안 먹는 게 낫다. 너무 달다.
죽빵멸치에 대해서라면, 그 허구를 쓴 적도 있다. 고기를 잡는 방법 중에 정치망이 있다. 그물을 한 곳에 고정시켜놓고 고기를 잡는 방법인데, 죽빵도 정치망의 일종이다. 그물이 아니라 대나무로 해놨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리고 죽빵염은 물살이 빠른데 있다. 멸치 중에 단단한 것들을 멸치 생산자들은 참멸치라 하는데, 연구자들은 참멸치라는 종자가 없단다. 멸치 중에 단단한 멸치가 있긴 한다더라. 그런 것들이 죽빵염에 많이 들어가는데, 그것을 비싸게 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치망멸치라는 게 있는데, 죽빵멸치와 같다. 멸치의 맛은 싱싱한 상태에서 얼마나 빨리 가공하는가가 생명이다. 정치망이나 죽빵이나 그물에서 곱게 떠서 멸막(멸치 삶는 곳)에 가는데, 10분이면 끝난다. 제가 보기엔 죽빵망이나 정치망이나 똑같다. 죽빵멸치가 높은 가격에 형성돼 있는 것은, 비판해야 한다. 그건 허구다.”
집에서 주로 먹는 음식은 어떤가.
“집에서 먹는 것이 바깥에서 먹는 것보다 나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장하는 대로만 살진 않는다. 이렇게 못 산다. (웃음) 공장음식에 이미 길들여진 부분이 있고, 그것을 많이 빼내지만 빼내는데 한계가 있다. 결국 취재를 다니면 싸구려 음식, 최악의 음식도 먹거든. 공장의 식재료만으로 만들어진.
대형마트 등에 가면 외식업체를 위해 식재료를 모아놓고 파는 곳도 있다. 거기에 보면 외식업체들이 사용하는 저가의 식재료들이 다 있다. 최악의 식재료들이다. 우리가 식당에서 먹는 대부분이 최악의 식재료로 만든다. 되도록 바깥에서 음식을 안 먹으려고 한다. (웃음) 그런데 아내는 바깥에서 혼자 좋은 음식 다 먹고 와서는 외식을 안 한다고 징징거린다. 나도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환경이 그만큼 따라주진 않는다. 그러니까, 내 말은 저렇게 살겠다가 아니고, 알고 있으라는 거다.”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어떤 마음으로 책을 썼나.
“핵심은 속지 말라는 거다. 우리가 가진 미각이 왜곡돼 있고, 왜곡된 미각에 맞춰 내놓는 산업 생산자들에게 속지 말라는 거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감동을 받고, 감이 생기면 싸구려 유행음악을 덜 듣게 되잖나. 영화나 사진도 그렇고. 진짜를 알게 되면 가짜와 구별할 수 있다. 미각도 마찬가지다. 뭔가 속이는 것이라는 실체를 알고, 바르고 좋은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즐거워진다. 좋은 음악과 좋은 음식을 먹는 건 똑같다. 대등한 문화생활이다. 『미각의 제국』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속고 있지 않았느냐, 내 경험으로 주의를 환기시켜보자, 그런 의미다. 책은 핵심만 추린 거다.”
짧은 글들이지만 내 오랜 경험을 농축한 것이다. 꼼꼼히 읽는다면 진정한 미식가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p.6)
악식을 풀어준다면. 약식에 대해서도.
“‘악식’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슴, ‘미식’이라는 허위를 뒤집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그럴 듯하게 차려진 음식,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다는 아니지만, 많은 요리사들이 자신이 쓰는 재료에 대한, 요리에 대한 관(점)이 없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 미식해라, 나는 악식할게, 이런 거다. (웃음)
미식과 악식은 통한다는 관은, 종교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인류 역사를 보면 우리는 대부분 썩고 거친 것을 먹으면서 생명을 유지했다. 가령, 중국 음식점에서 ‘리찌’를 달콤하다고 먹는다. 사람들이 왜 리찌를 좋아할까. 고구마 썩는 냄새를 넣었다더라. 전분질이 썩는 냄새다. 이걸 알고 먹어봐라. 다시 말하지만, 미각은 교육되고 훈련되는 거다.
커피에서도 그런 게 있다. 짐승이나 식물의 썩는 냄새가 있다. 그런 냄새가 나는 것들이 대부분 중독을 일으키고 특별한 맛이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미식은 가장 원초적인 죽음의 향내를 우리가 몸 안에 넣고 욕구하는 거다. 그래서 미식이나 악식이 통한다고 얘기한 거다. 먹는 것에 대해 냄새를 맡으려고 노력해봐라. 특히 와인 안에도 썩는 냄새 있다. 약식은 내 영역이 아니라 모르겠다. 죄송하다.”
미식. 악식과 동의어이다. 어둠이 있어야 빛의 황홀도 있는 것이다. 미식이란, 음식에서 어둠의 맛까지 느끼는 일이다.(p.224~225)
우리가 향유하는 식습관, 우리의 식문화가 잘 돼가고 있는 건가.
“우리나라 외식업체 수준으로 보자면, 형편없다. 멜라민 식기에 스텐 밥그릇…… 그런 것, 집에선 안 쓰잖나. 그런데 대중음식점에서 쓴다. 멜라민 식기를 쓰는 나라가 OECD 국가 중에 어디에 있나. 외국인이 우리나라 음식점에 와서 먹는 것을 보면, 난감하다. 먹고 죽는 거 아닌가, 싶은 표정들이다. 한식 세계화를 부르짖는데,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음식을 먹어봐야 자신의 나라에 가서도 찾지 않겠나.
당장 우리 스스로 먹는 것에 대한 업그레이드 필요하다. 한식을 세계화하려면 우리 것부터 바꿔야 한다. 중국 음식의 수준이 낫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은 비슷하다. 저급함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없이 한식 세계화와 같이 겉만 번지르르한 구호를 외치는데, 엉뚱한데 돈을 쓰는 거다.”
건강한 식탁을 이야기하지만, 매일 유기농을 사먹을 순 없다. 가장 현명한 자세는.
“산업화를 되돌릴 수는 없다. 일상에서 눈에 보이고 일상을 채우는 건, 공장음식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이 제대로 된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도 사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나도 생협 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도 일부 있다. 제대로 된 유기농이 아닌 것도 많고. 나는 어쨌든 의심하는 부분이 있다. 믿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그러고 난 뒤 가끔씩 시골 등에 가서 제대로 된 것을 발견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봉지 안 씌운 사과를 먹으면 인생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다. 항상 그것을 먹겠다는 것이 아니고 진짜 가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오페라 명작 한 편 보는 것과 봉지 안 씌운 사과를 먹는 것이 같은 감동으로 올 때가 있다. 그게 인생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게 있다고만 알고, 그것을 먹을 때 진짜 행복하구나, 느끼는 것이 음식을 즐기고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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