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굼벵이 주부 파이팅! - 『굼벵이 주부』
201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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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 집에 도둑이 들었다. 물건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집주인 아저씨는 문고리며 도어락이며 현관문까지, 싹 다 새 것으로 바꿔야 한단다. 이사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우리 집도 아닌데……. 구시렁대며 근처 열쇠집과 공업사에 전화해 문고리와 도어락, 현관문 교체 비용을 알아 봤다. 이어서 집주인 아저씨에게 총 비용을 보고할 차례. 어찌나 까다로운지 통화 한 번 하고 나면 최소 2개월씩은 수명이 주는 것 같다. 이래서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을 부르짖나, 잠시 씁쓸해졌다.
그리고 다음 날. 현관문 수리만으로도 힘이 부치는데, 부엌 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다. 싱크대에서 물이 샌 것이다. 왜 하필이면 오늘……. 피곤했다. 누가 이런 일 좀 대신해 줬으면……. 그 순간,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이런 일을 늘 대신해 주던 사람. 바로 엄마였다.
가족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던 온갖 귀찮은 일들을 도맡아 온 엄마. 밥솥을 열면 밥이 있었고, 냉장고를 열면 반찬이 있었고, 당연히 가스불도 들어 오고, 전기도 들어 왔다.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꼬박꼬박 밀리지 않고 가스비와 전기세를 내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줄 알았던 모든 일들의 배후에는 엄마가 있었음을, 내 살림을 시작하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읽은 책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굼벵이 주부』라는 책이다.
내가 알고 지내는 가족들 가운데 대부분은 힘들고 귀찮은 일을 분담할 때 특이한 언어 규칙을 사용한다. 포도주를 꺼내러 지하 창고에 들어갔다가 시커먼 먼지와 거미줄을 뒤집어쓰고 나오면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누가 창고 좀 제대로 정리해야겠어!"
그는 이 말로써 깨끗하게 치운 창고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나, 그 숭고한 정리 작업을 몸소 실행할 의사는 없다는 뜻을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시사한다. “누가 차 안쪽에 걸레질 좀 해야겠어!” 하는 탄식도 이러한 기본 태도를 나타낸다. (중략) 가족 중에 아무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 곳에서는 언제나 ‘누가’ 나서야 한다. 그 ‘누가’가 백에서 아흔아홉은 ‘엄마’라는 사실을 굳이 말로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본문 중에서)
중년의 아줌마가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하며 느낀 점들을 옆집 아줌마와 수다 떨 듯 편하게 써내려 간 『굼벵이 주부』.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것 같아 뜨끔할 때도 있고, 이제 막 살림을 시작한 내 이야기를 읽는 것 같아 반가울 때도 있다. 어느 장을 펼쳐도 대한민국 평범한 주부들의 이야기 같은데, 저자는 오스트리아 아줌마다. 역시 사람 사는 모양새는 어디나 비슷한가 보다.
엄마에게 가방을 선물해 놓고 딸 본인이 더 자주 쓰는 것도 모자라 결국에는 ‘내 가방 어디 있느냐’며 엄마에게 묻는 일, 헤어 살롱에 처음 가 본 아줌마의 엄청난 소외감 등 공감 100%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게 과연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닿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맞나 싶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생활과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제목인 『굼벵이 주부』는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 즉 집안일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주부들을 뜻한다. 다른 주부가 1킬로그램의 감자 껍질을 벗길 동안 굼벵이 주부는 감자 한 개를 가지고 한숨을 쉰다. 저자는 이런 굼벵이 주부들에게도 위안을 준다. 굼벵이들은 모두 엄청난 고령에 죽었거나 아직도 살아 있다나.
억척 아줌마가 되어 버린 중년의 주부님, 이제 막 신혼살림을 시작한 20대 주부님, 아이 키우랴 회사 다니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30대 주부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안일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굼벵이 주부님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대한민국 아줌마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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