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요?
물론 어렸을 때 나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악동이었지만, 어른이 되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을 조금 배운 것 같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9.11.30
작게
크게
주변에서 한 사람도 찬성하지 않는 결정을 내려본 적이 있나요?

나는 대체적으로 무엇인가 결정을 할 때 주변의 지인들과 꽤 상의하는 편이기는 하다. 살다 보면 중요한 결정의 순간들이 종종 오는데, 어떤 때에는 단 한 번의 선택만으로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 때론 좋을 수도 있고, 후회스러울 수도 있는데, 정작 그 선택 앞에서는 미래를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쨌든 나는 사람들과 다른 선택을 많이 내리는 편의 삶을 살았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중에 두 번의 선택은 내 주변에서 단 한 명도 찬성하지 않았다. 그냥 찬성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부모를 비롯해서 친한 친구들 혹은 가까운 사람들이 매우 격렬하게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혼자서 선택을 내린 적이 있었다.

맨 처음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공부를 하러 가기로 했을 때였다. 많은 사람들은 유학이 좋은 선택이라고 축하해주었지만,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로 간다는 사실을 듣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선택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고, 미국 대신 프랑스를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 평생 한국에서 마이너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고, 그 시절에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이 모두 교수가 되는 와중에도 나는 시간강사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선택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공부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나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파리에서 내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그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반대했던 두 번째 선택은 에너지관리공단의 부장 자리를 그만두고 회사를 퇴사한 것이다. 총리실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지 육 개월쯤 지났을 때의 일이고, 노무현 정부가 막 출범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나는 월급 받는 편한 생활에 너무 오래 길들여져 있다고 생각했고, 삼 년만 회사생활을 경험해본다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 길어졌다고 느끼던 터였다. 회사의 상사들이나 동료들 그리고 친구들이 모두 반대했고, 이제 어떻게 먹고살 것이냐는 부드러운 회유에서, 다시는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고 한국에서 직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협박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모두가 만류했다. 그러나 그냥 사직서를 내고 무작정 놀기 시작하면서 나는 다시 대학의 시간강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육 년이 흘렀는데, 안정적인 직장과 연봉을 포기한 대신에 나는 아주 마음이 편해졌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조금은 더 푸근한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아등바등하는 일이 없어졌고, 사소한 일로 화를 내는 일도 없어졌다. 그리고 비로소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배운 것 같다.

가끔 생각해보면, 이 두 개의 결정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 결정에서 축복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찬성해주는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결정이 내가 내린 수많은 결정 중에서 가장 잘 내린 결정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결정을 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좋은 결정을 또 내릴 자신은 없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요?

난 거짓말은 안 한다. 물론 ‘미필적 고의’라고 부르는, 남들이 약간 오해를 했을 때 일부러 나서서 “그것은 잘못된 정보다.”라고 바로 정정하지 않은 적은 있다. 혹은 잘못된 기억 때문에 잘못된 얘기를 우겼던 적도 가끔 있기는 하다. 그러나 거짓말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설령 그 한 번의 거짓말이 나를 구할 수 있을지라도 말이다. ‘침묵’은 소극적 거짓말이다. 불의가 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소극적 거짓말이다. 이런 소극적 거짓말도 어지간해서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상당히 괜찮은 대학의 교수 임용 절차에서 총장과의 면접이라는 맨 마지막 단계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받았던 질문이, 만약 대학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너무 뻔한 질문인데, 이 질문은 내가 얼마나 대학의 행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춰인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거짓말을 한다면 그 대가는 아주 달콤했을 것 같다. 그러나 현대 그룹에 특채로 들어갈 때나, 에너지관리공단에 팀장으로 들어갈 때나, 나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아마 사안마다 다르겠지요. 만약 학생들이 맞다면, 저는 열심히 데모하라고 할 것 같은데요…….”

이렇게 대답했고, 그 결과는 가혹했다. 그러나 그 가혹한 결과를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삶이 조금 남루해지고, 인생살이가 누더기가 되기는 했지만, 그 대신 학문이 나에게 아주 약간, 문을 열어주었고, 내가 찾아보고 싶은 진실을 학문이라는 틀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을 얻은 것 같다.

거짓말의 대가는 달콤할 것 같지만, 그 달콤함은 치명적인 독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렸을 때 나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악동이었지만, 어른이 되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을 조금 배운 것 같다. 정말로 자기 삶을 걸고 찾고 싶은 길이 있다면,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이 거짓의 공화국에서 거짓들과 싸우는 전략 1번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늘 내가 하는 생각, 내가 하는 말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안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만난다. 몰래 숨어서 하는 일들, 그런 것들은 결국 모두가 알게 된다. 거짓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모를 것이라는 생각은 결국 자기 혼자서만 모르는 사실이다. 전부 안다고 생각하는 편이 진실을 찾아가기에는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글 / 우석훈

경제학자, 『88만원 세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괴물의 탄생』 『조직의 재발견』 『직선들의 대한민국』의 저자



#인생기출문제집
2의 댓글
User Avatar

toc1318

2010.08.02

안녕하세요. 북하우스 출판사 박정우 입니다.
님께서 쓰신 인생기출문제집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이번에 인생기출문제집2권이 새로 출간되어서 홍보도 할겸 이벤트 소식도 전할겸해서 이렇게 쪽지 보냅니다.

인생기출문제집2권 출간기념 파티를 엽니다. 까페 가입 하셔서 댓글 다시면 추첨해서 파티 초대권을 드립니다. 음식도 많이 준비했고, 1권의 저자들도 참석하는 자리이니 함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뿐만아니라 인생기출문제집2권을 드리는 이벤트도 진행중이구요. 앞으로도 다양한 서평 이벤트가 펼쳐지니까 한번 들러주시면 좋겠네요.

날씨가 많이 무덥습니다. 감기도 더워도 조심하셔요~
아참 저희 까페 주소는요
http://cafe.naver.com/myfirstbook 입니다.
답글
0
0
User Avatar

seheeys

2009.12.01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선의의 거짓말도..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저는 너무나 많은 것에 굴복하고 거짓을 말하고 타협하는 거 같네요... 다시 저를 생각해봐야겠어요
답글
0
0
Writer Avatar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 영화, 공연, 음악, 미술, 대중문화, 여행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