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 벤야민 그리고 달걀 허브 치즈 오믈렛
200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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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 야콥은 코가 양탄자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여 절했다. 요리장은 야콥의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더니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뭐라고? 자네가 요리사로? 자넨 주방의 화덕이 자네가 겨우 발돋움을 하고 머리를 어깨에서 똑바로 펴야만 겨우 올려다 볼 수 있을 정도란 걸 모르는가? 오, 꼬마양반, 자넬 요리사로 고용하도록 나에게 보낸 사람들은 자넬 바보 취급한 거야.”라며 주방장이 미친 듯이 웃자 시종장을 위시해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어댔다. 그러나 난쟁이 야콥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달걀 한 두어 개, 약간의 시럽과 포도주, 밀가루와 향신료가충분히 있습니까? 나에게 필요한 재료를 주시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이 보는 앞에서 재빨리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그걸 보면 나를 정말 훌륭한 요리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 빌헬름 하우프Wilhelm Hauff, 「매부리코 난쟁이」
구두장이인 아버지와 채소를 파는 어머니 사이에서 사랑받는 아들로 자라고 있던 야콥은 어느 날 자신들이 파는 채소를 까다롭게 고르며 불만을 표시하는 할머니에게 대들게 된다. 노파는 많은 양의 야채를 사서 야콥에게 배달을 요청하고, 배달하러 간 노파, 마녀의 집에서 사례로 마법의 수프를 얻어 마시고는 난쟁이가 되어 요리와 잔심부름을 하며 오랜 세월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난쟁이가 되어 마녀 밑에서 일한 꿈에서 깬 듯한 느낌에 신기해하며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지난 세월 동안 난쟁이로 일한 것은 사실이었다. 고향에서 부모님들은 몇 년 전 아들을 잃어버린 슬픔에 여전히 괴로워하고 동네 사람들은 물론 부모들마저도 그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다. 슬픔에 잠겨 공작의 성으로 흘러 들어간 그는 늙은 마녀 밑에서 갈고 닦은 요리 솜씨로 인정받고 공작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하지만 어느 날 이웃나라 귀족이 방문한 자리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의 맛을 허브 하나를 덜 써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자 공작은 그에게 똑같이 요리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사형시키겠다고 한다. 야콥은 역시 마법에 걸려 거위로 변한 마법사의 딸 미미의 도움으로 요리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자신을 마법에서 풀어줄 그 허브를 찾아내 다시 정상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다시 요리를 만들어내지는 않고 말끔하게 변한 모습으로 조용히 거위 미미와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아 성을 빠져 나온다.
엄마가 죽어서 계모에게 구박받고, 누구는 구박받다 못해서 독살의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남자한테 반해서 자신의 혀를 끊어 팔아버린 인어는 결국에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지도 못하고 거품이 된다. 마귀할멈이 잡아먹으려고 과자로 토실토실 남매를 살찌우는 이야기와 마법에 걸려 백조가 된 오빠들을 위해 사형대로 끌려가면서도 가시풀을 손과 발에 피가 맺히도록 실로 뽑아서 옷으로 만드는…… 정말 슬프고 가슴이 답답해서 더 이상 못 나열하겠다. 하지만 이보다 더 잔인한 동화들이 쌓이고 쌓여있다. 우리나라 전래동화도 마찬가지다. 권선징악과 ‘벌 안 받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그렇게 무섭고 잔인한 이야기들을 꼭 만들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어렸을 때 그 이야기들을 읽은 기억들은 평생 희미하게 남아 있으니 조기교육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옛 동화작가들은 아무래도 따로 교육을 받지 않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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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신났던 장면은 아콥이 공작의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어 인정받는 장면. 커서 다시 구해 본 책에는 좀 다르게 나와 있었지만 그가 작은 몸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요리든지 만들 수 있다며 재료를 가져다 달라고 하는 말을 난 20년이 넘도록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달걀과 양파와 소금이 있으면 무슨 요리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가면서 정리해서 모두 바자회에 넘긴 동화책 안에 아마도 그런 번역으로 되어 있었나 보다. 그때 그 문장이 너무나 자신만만하고 멋져서 나는 무슨 수학 공식이나 진리의 말씀처럼 혼자 그 말을 중얼거리곤 했었다. 달걀과 양파와 소금만 있으면 혼자서 달걀국을 끓일 때도, 대학교 때 엠티 가서 달걀말이를 만들 때도, 요리학교에서 오믈렛을 만들 때도 그 문장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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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학부 때 미술이론 수업을 들으면서 읽게 된 한 책에서 난 내 생의 두 번째 달걀 요리를 만나게 됐다. 바로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안에 나오는 짧지만 묵직한 글 「산딸기 오믈레트」이다.
짧은 글이지만 전체를 다 옮길 수는 없고 내용을 요약하자면 한 왕이 오랫동안 자신을 위해 요리를 만들었던 요리장에게 자신이 젊은 시절 전쟁 중에 도망을 다니다가 우연히 숨어들어간 시골집에서 한 노파에게 대접받은 산딸기 오믈렛을 요리해줄 것을 명령하며 똑같은 맛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한다. 요리장은 자신은 모든 산딸기 오믈렛의 레서피를 알고 있으며 들어가는 재료들도 훤히 꿰뚫고 있지만 젊은 시절 왕이 불안해하며 산을 헤매고 우연히 몸을 숨기러 들어간 시골집의 분위기, 노파의 소박하지만 진심 어린 마음 등등 모든 분위기와 함께하는 산딸기 오믈렛은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오믈렛은 역사적으로도 너무나 오래된 음식이다. 고대 페르시아 때부터 오믈렛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는데 로마에 넘어와서 우유를 섞어 오믈렛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시대의 오믈렛은 좀 더 평평하고 납작했는데 그때의 구이그릇들은 대부분 진흙으로 만든 편편한 그릇들이 대부분이었다. 거의 달걀지단에 가깝게 얇게 부치고 고추와 꿀을 뿌리면 로마풍의 오믈렛이 완성된다. (꿀은 거의 대부분의 로마요리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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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요리사임을 증명하는 재료로도, 전쟁통에 시골에서 나그네에게 가장 빠르고 맛있게 대접할 수 있는 요리를 뚝딱 만들어내는 재료로까지, 달걀은 무궁무진하게 변신해준다. 늘 먹는 샐러드에도, 가끔 아침에 식구들을 위해 만드는 햄과 감자를 넣은 오믈렛에도, 그리고 내가 가끔 아파서 드러누울 때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엄마가 끓여주시는 묽은 달걀찜까지. 달걀은 어떤 요리로든지 변신 가능한 그야말로 마법 같은 재료다. 달걀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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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얼마전에 산 유정란은 요리하기 귀차나서;;;다 삶아버렸다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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