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서설』
대부분의 철학사 관련 개설서, 교과서에서 근대 인식론의 시초로 꼽는 책이 『방법서설』이고, 철학서 치고는 그 흐름이나 내용도 크게 어렵지 않은 수준입니다.
글: 채널예스
2009.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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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뭐냐고 물었을 때 들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지식에 대한 탐구’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보고 듣고 느끼는 현상 자체를 탐구하고, 거기서부터 지식이란 무엇인지를 이끌어내고, 그 지식을 더욱 지혜롭게 만들기 위한 방법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마도 철학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식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개념은 심하게 뜬구름을 잡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우선 지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할뿐더러, 결국 철학도 지식의 한 갈래인데 지식으로 지식을 다룬다는 것이 마치 망치로 망치를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순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근대라고 불리는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기 시작할 무렵, 철학에서도 근대철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책 한 권이 등장합니다. 앞서 말한 뜬구름식의 이야기를 최대한 배제하고, 정말 명백한 지식을 알고 습득하는 방법을 소개하기 위해, 그것도 대중 전반에 알리기 위해 라틴어 대신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쓴(당시 대부분의 지식서적은 라틴어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목표했던 명백한 지식을 탐구하는 길을 안내하는 효과 외에도, 철학사적으로 새로운 사조를 열어젖혔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늘날까지도 철학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입니다.

『방법서설』이란 제목 그대로 책은 방법을 소개합니다. 그 방법이란, 명확한 진리를 찾고자 하는 탐구자가 써야 하는 탐구 방법, 일종의 노하우입니다. 진리를 명확하게 탐구하는 방법이 책으로 나온 이유는, 당대의 지식이 그만큼 명백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방법서설』이 출간되던 1637년의 유럽은 올바른 과학적 방법론이 절실했던 시기였습니다. 완전히 중세 초기처럼 암흑의 시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합리적 사고가 도입된 시기도 아니었습니다. 아직까지 당대 학문과 인식의 주류는 종교철학에 기반한 사유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아랍에서 넘어온 과학기술과 르네상스로 인해 재발견된 고대 그리스의 수학적 지식과 같은 새로운 학문적 방법론들에 의해 큰 도전을 맞던 시기였습니다.

재미있는 사례가 될 수 있는 것이 금창약 개념입니다. 연금술의 일파로 분류되는 이 기술은 전쟁에서 얻은 상처를 치료하는 방식 중 하나인데, 예를 들어 한 병사가 칼에 베어 상처를 입은 경우, 상처가 아닌 ‘찌른 칼’에 약을 바르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상처를 준 무기 자체에 약이 영향을 주어 입힌 모든 상처를 치료한다는 개념입니다. 이런 개념들이 매우 당연하게 통용되던 시대가 그 시대였습니다.

『방법서설』은 그래서 데카르트의 개인적 노작이라기보다는, 종교와 과학이 인식론을 두고 대립했던 시기에 일종의 정리자로서 등장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입니다. 화학과 연금술이 대립하고, 철학과 미신이 마주했던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 『방법서설』은 합리성이라는 흐름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맡은 책이었습니다.

데카르트가 진리를 사고하기 위해 생각하는 방식의 기초는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이었습니다. 수학과 기하는 모두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로부터 또 다른 사실을 이끌어 내는, 이른바 연역적 추리의 방식을 사용합니다. ‘1 1=2’라는 자명한 전제로부터 시작되는 수학은 단순 사칙연산으로부터 시작해서 방정식, 함수, 기하공식, 제곱과 제곱근, 미분과 적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엄밀한 공식들을 개발해 내며 과학의 한 축을 담당해 왔습니다.

이런 수학적인 연역 방식이 일상의 사고에서도 적용 가능하리라 믿은 데카르트는 이를 위해 수학과 마찬가지로 가장 엄밀하고 의심받을 수 없는 사고를 찾아낸다면, 그 사고로부터 연역을 통해 ?리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고 중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100% 진실인 사고 하나를 찾기 위해 그가 먼저 꺼내 든 개념은 판단 중지입니다.

명증된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일상에서의 모든 판단을 중지하고, 중지된 상태에서 우선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진리를 찾기 위해 모든 것에 대한 회의만을 거듭하는 것이 그 첫 단추입니다. 이를 가리켜 ‘방법론적 회의’라고 하는데, 고대 그리스의 회의와 달리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는 회의 자체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절대 진리를 찾기 위한 도구로서의 회의에 무게를 둡니다.

데카르트는 스스로 이 방법을 통해 의심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완벽한 명제를 찾아내는데, 이것이 바로 ‘회의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존재한다’라는 점입니다. 유명한 ‘코기토 COGITO ERGO SUM’의 의미이기도 한 이 구절은, 결국 모든 판단을 중지한 채 자명한 사실이 무엇인지를 사고하는 자아 자신의 존재 여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부정할 수 없다는, ‘나는 존재한다’라는 인식론의 출발점이 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사조에서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 지점이 됩니다. 중세의 철학에서 주체는 신이었습니다. 진리는 신의 뜻, 신이 구현한 세상이었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 또는 철학자는 단지 현상을 인식하는 인식자였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개념부터는 인식론의 근본이 달라집니다. 이제 진리는 주체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것을 회의하는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이 유일하게 확정된 진리이고, 주체는 이를 기점으로 하여 모든 탐구를 시작합니다. 인식의 출발점은 주체이고, 주체가 스스로의 존재를 먼저 인식한 뒤에 세계와 신이 따라오는, 순서의 병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르네 데카르트
(Rene Descartes, 1596~1650)
이 순서가 바뀌는 것은 인간의 위상 자체를 변화시킵니다. 과거 인간의 존재 이유는 ‘신이 만들어서’였습니다만, 그 순서는 이제 뒤바뀝니다. 인간이 사고하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는 순서의 역전을 통해 신 중심의 세계관은 흔들리게 됩니다.

하지만 근대의 시작을 쉽게 데카르트로 놓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도 한 것이 『방법서설』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결국 신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장 문제는 주체로부터 시작되는 인식론 자체부터 발생합니다.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의 대상은 『방법서설』을 통해 철저하게 분리되는데, 완전히 분리된 상태에서 과연 인식의 주체가 대상을 얼마나 정확히 인식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인식 주체의 완전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중세적 의미의 신이 아닌, 보장자로서의 또다른 신을 끌어들입니다.

사실 여기서부터 『방법서설』은 독자에게 ‘이게 뭐지?’ 하는 느낌을 주기 시작합니다. 완벽한 인간 이성 주체를 설명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오히려 다시 신의 힘을 빌리고, 이성에 의해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는 인간 육체가 정신과 연관되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송과선이라는 존재 자체도 불분명한 상상의 기관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책 전반에서 ‘엄정하고 확정성있는 진리’를 주장하던 저자의 입장과 달리, 후반부에서 스스로 몰락하는 과정은 좀 씁쓸한 느낌마저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서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 이후의 대학 체제에서 항상 필독도서로 자리잡습니다. 미혹의 시대에서 명명백백한 진리를 찾기 위해 제시하는 데카르트의 방법론 자체는 아직까지도 매우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데카르트는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론으로 방법론적 회의 외에도 탐구 대상을 가능한한 잘게 나누어 분석하고, 끊임없는 검증과 퇴고를 요구합니다. ‘확실한 앎’을 위해 그가 제시하는 방법론과 그 자세는 사실 근대 학문의 방법론에 가장 근간이 되는 기초를 제공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데카르트나 칸트의 방법론은 현대 대학에서까지도 매우 중요한 탐구자의 자세와 방법론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대륙합리론’으로 통칭되는 데카르트 이후의 프랑스 철학은 경험의 취합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영국경험론’과 마주하면서 근대 초기 인식론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칸트 대에 이르면서 인식론의 토대를 완성시킬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철학사 관련 개설서, 교과서에서 근대 인식론의 시초로 꼽는 책이 『방법서설』이고, 철학서 치고는 그 흐름이나 내용도 크게 어렵지 않은 수준입니다. 어느 정도의 철학 관련 교양서 중 읽기 편한 원전을 꼽으라면, 이만한 책도 없을 것입니다. 참고로, 이 글이 올라가는 3월 31일은 데카르트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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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철학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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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논

2009.04.01

영원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서설]이군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생각하는 자들이 많이 추천해줘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근대적 인간이 되려면 데카르트를 읽어라고 할 만큼 반향이 컸다고 하던데 요즘 세대는 낡은 사고방식이라며 고개를 돌릴까봐 걱정도 되네요.
어제가 그의 생일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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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

<르네 데카르트> 저/<이현복>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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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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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

1596년 3월 31일, 현재는 그의 이름을 따 데카르트로 지명을 바꾼 프랑스 중서부 투렌의 라 에이에서 조아킴 데카르트(Joachim Descartes)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일 년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고전어, 수사학, 철학, 물리 등을 공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는 “우주는 무한”이라고 말한 브루노(Giordano Bruno)가 화형당하는 한편,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천체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는 등 중세의 기독교적 도그마와 근대과학의 희미한 서막이 공존하는 때였다. 데카르트는 프아티에 대학에 입학해 법학사 학위를 받았지만, ‘세상이라는 큰 책’을 배우고자 여행길에 올랐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 그는 놀라운 학문의 기초를 직관하도록 한 세 가지 꿈을 꾸고 나서 지혜를 추구하며 보편학을 정립할 것을 삶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정신지도규칙(Regulae ad directionem ingenii)》을 집필했고, 그가 쓴 최초의 철학서라 할 수 있는 《방법서설(Discours de la methode)》을 비롯해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철학의 원리(Principia philosophiae)》 등을 차례로 내놓았다. 1643년 데카르트를 사숙 (私淑)했던 엘리자베스 왕녀와 서신을 주고받기 시작했으며, 2년 후 그녀의 요청으로 《정념론》 을 집필하기 시작해 1649년 책이 출간되기에 이른다. 평소 몸이 약해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는데, 매일 이른 아침 만나 대화하길 요청하는 스웨덴 여왕 크리스틴으로 인해 면역 체계에 문제가 생겨 이듬해 폐렴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끊임없는 의심으로 도달할 수 있는 명증한 진리를 모든 학문의 시작으로 보았으며, 사유의 확신자를 신에게서 인간으로 옮겨놓음으로써 근대의 철학적 주체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철학사에 큰 획을 그은 위대한 사상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