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를 작가로 만든 문장들,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채널예스에 ‘김진규의 활자중독’이라는 칼럼으로 연재된 글을 엮은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독서로 풀어간 김진규의 때 이른 자서전이다. 소설가들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는 걸 가장 힘들어한다.
200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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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가는 작품으로 독자의 냉정한 평가를 받길 바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는 작가의 인생에 끌린다. 특히,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작가에 대해서는 그의 인생이 어떠했는지, 왜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2007년 『달을 먹다』로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김진규의 경우가 그랬다. 영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금단의 사랑을 하는 오누이와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가 손끝 야문 여인네의 자수 병풍처럼 펼쳐지는 『달을 먹다』가 지닌 빛나는 문학성보다 ‘단편 하나, 시 한 줄 써본 적 없는 아줌마의 겁 없는 도전’이라는 광고 문구에 현혹되었다.
삼십 대 후반의 주부, 소설가가 되다
별다른 문학 수업을 받지 않은 삼십 대 후반의 주부. 일찍 결혼해 중학교에 다니는 딸이 있고, 평범하게 살림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소설을 쓰기 시작해, 작가가 되었다. 이것은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위의 말은 사실의 일부 부분만을 드러낸 것이다.
어떤 계시라도 받은 듯 소설이 쓰였고, 기적처럼 공모전에 당선되어 소설가가 되었다는 스토리를 사람들은 원하겠지만 사실은 좀더 지루하고 평범하다. 소설을, 그것도 장편소설을 쓴다는 건 길고도 지루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날 문득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써 냈더니 완벽한 작품이 되었다는 건,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물론 재능도 필요하다. 하지만 숙련이 필요한 창조 작업에 재능은 시작점에 불과하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근거로 말한다면,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에 3시간씩 한다면 십 년이 걸린다. 김진규는 분명 그 1만 시간을 거쳤다.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길고도 지루한 수련을 거쳤으리라고 분명히 믿는다. 그 증거가 이번에 나온 그의 책,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다.
처음은 낡은 책들로 가득한 아버지의 책장.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과 해독이 불가능한 문자들이 가득한 책이 그를 매혹시켰다. 그 막연하게 아름다운 세계를 그는 늘 두려워하면서 욕심을 냈다. 그렇게 책의 세계에 들어간 그의 20대 때는 활자 금단 증상에 시달렸고, 서른이 넘어서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아니, 우울증 때문에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수수방관하지 않기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그는 책을 읽었고,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을 썼고, 느낀 점을 글로 옮겼다.
그런 그이기에 ‘소설 한 편으로 대박을 쳤다’는 세간의 평가가 불편했다. 운 좋게 당선되었다는 질시 아닌 질시도 느껴야 했다. “단편이나 시를 쓰지 않았을 뿐이지 계속 글을 썼어요. 일기도 쓰고, 독서 노트도 쓰고, 뭐든 생각이 나는 것들은 다 노트에 끼적거렸습니다. 쓰지 않을 때도 문장을 떠올렸어요. 이런 상황, 이런 풍경은 어떤 단어를 써서 묘사해야 할까를 멍하니 생각할 때가 많았어요. 그리고 계속 이야기들을 마음에 품었어요. 앞으로 소설이 될.”
사람들의 관심은 처음엔 신기했지만 나중엔 불편해졌다. “저는 독자로 저자의 생애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작가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저에게 쏟아지는ㅡ제 작품과 전혀 상관없는ㅡ관심이 부담스럽고 불편했어요.”
그렇게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에 매달렸으면서 왜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을까? 거기에 그는 명쾌하게 답했다.
“글을 못 썼으니까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훨씬 일찍 두각? 나타내잖아요. 저는 그 흔한 백일장에서도 상을 못 탔어요.(웃음) 중고등학교 때 글 잘 쓰는 친구가 옆에 있었는데 아직도 그 친구 시의 첫 구절을 기억해요. ‘아, 이 정도는 써야지 글 쓰는 사람이 되는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죠. 인내심도 부족했고, 체력도 달렸고. 조급증이 있어서 빨리 결론을 내고 싶어 하는 편이었고요.”
그런 그가 작가가 된 건 독서 덕이리라. 그가 읽었던 수많은 책들, 그 책 속의 단어와 문장, 단락이 그의 것이 되었다. 스티븐 킹의 말을 빌리자면, 독서가 그의 ‘연장통’인 셈이다. 활자중독이라고 할 만큼 그는 책을 읽었다. ‘이러다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섭게 책을 읽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읽고 싶은 책만을 읽진 못한다. 작가가 된 후에는 작품을 위해 읽어야 할 책만 읽기에도 바쁘다고. “그 점이 제일 아쉽네요.”
김진규의 이른 자서전,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채널예스에 ‘김진규의 활자중독’이라는 칼럼으로 연재된 글을 엮은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독서로 풀어간 김진규의 때 이른 자서전이다. 소설가들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는 걸 가장 힘들어한다. 굳이 수많은 장르 중, 허구를 택한 건, 허구를 방패와 갑옷 삼아 이야기를 죄책감 없이 할 수 있어서다. 설사 누군가 그 이야기의 진위를 묻는다면 ‘그건 소설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쓰는 건 다르다. 자기 이야기에는 ‘자기’만 등장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상처를 입게 된다. 그는 본능적으로 모든 상처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가족들 이야기를 많이 썼는데 마음이 편하진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상처 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좋은 이야기만 쓴 게 아니니까. 아직 어머니께 책을 드리지 못했어요. 언니가 ‘그러면서 다 털고 가는 거지.’ 말해줬지만요. 그렇게 쉽게 떨쳐낼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첫 책이 나올 때는 사뭇 기분이 달랐다. 기쁘기도 했지만 부끄럽기도 했다.
집은 가난했고, 늦둥이로 태어나 위의 형제들보다 뭐하나 잘난 것도 없는 아이였다고 그는 책에서 고백했다. 아픈 아버지와 억센 어머니, 머리가 좋고, 재주도 많았지만 형편 때문에 대학을 가지 못한 형제들이 그의 상처였다. 열심히 뒷바라지 해 줘서 대학까지 다녔지만 번듯한 사회인도 못되고 전업주부가 되어, 형제들의 기대를 배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부채의식과 죄의식은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작가가 되어서 조금은 형제들에게 보답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장편소설 쓰기보다 칼럼을 쓰는 것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소모가 더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칼럼을 연재하면서 매 마감마다 머리를 쥐어뜯었어요. 처음엔 이 주에 한 번씩 쓰는 거였는데 마감이 얼마나 빨리 돌아오던지. 아파서 한 달 정도 쉰 적도 있었고, 나중에는 삼 주에 한 번씩 원고를 보내기도 했어요. 이 칼럼을 쓰면서 속으로 많이 앓았어요. 소설을 쓰면서도 살이 안 빠졌는데, 이 칼럼 쓰면서 살이 빠졌어요. 옆구리에 갈비뼈가 만져지더군요.(웃음) 그런데 연재 끝나고 그 살이 도로 쪘어요.”
『달을 먹다』가 창작되기까지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글을 쓰고 싶었고, 누군가가 그 글을 읽어주길 바라서 한동안 블로그 활동을 했다. 주로 책을 읽고 서평을 올렸다. 데뷔작 『달을 먹다』는 블로그에 올릴 생각으로 구상했던 작품이었는데, 연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일단 글을 다 쓴 다음에 나눠서 올릴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집필에만 7~8개월이 소요되었고,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는 처음 의도와는 다른 작품이 되어 있었다.
『달을 먹다』를 읽고 많은 이들은 최명희의 ??불』므 떠올렸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달을 먹다』에게 첫 영감을 준 작품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었다. “처음에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형식처럼, 월별로 음식 이야기를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열두 달을 채울 음식이 없어서, 계절로 바뀌었고, 이야기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습니다. ”
작가는 독자들이 『달을 먹다』를 읽고 『혼불』과 비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제가 굉장히 좋아한 작품이고, 여러 번 읽은 작품이긴 하지만 처음 『달을 먹다』를 쓸 때 특별히 『혼불』을 의식하지 않았거든요. 어떤 독자가 『달을 먹다』와 『혼불』이 ‘근친상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지적할 때까지 그 점을 전혀 몰랐어요.” 그는 최명희의 『혼불』에 비교 당하는 것 자체가 외람되다고 여겼다. “저로서는 영광이지만 지하에 계신 선생님이 속상해하지 않으실까요. 제 작품과 비교한다면요.(웃음)”
작가는 사람들이 『달을 먹다』를 읽고 ‘부성의 결핍’에 대해 지적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지적은 거의 없었다고. “저도 잘 몰랐는데, 『달을 먹다』를 쓰면서 내게 부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걸 느꼈어요. 『달을 먹다』에서는 ‘아버지다운 아버지’가 하나도 없어요. 제대로 자식을 돌보는 아버지가 없고, 권위를 가진 아버지가 없고, 존경할 만한 아버지가 없죠. 그런데 의외로 이 부분을 읽어내는 분이 드물었어요.”
두 번째 장편소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는 『달을 먹다』에 전혀 상반된 두 세계를 담고 싶었다. 비극과 희극, 양반 계층의 문화와 서민 계층의 문화를 담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원래의 아이디어는 두 개의 소설을 낳았다. 양반과 부유한 중인 계층의 문화를 배경으로 치명적인 사랑을 그린 비극적 이야기 『달을 먹다』와 올 상반기에 출간될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가제)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달을 먹다』가 양반과 부유한 중인 계층의 이야기라면, 이번 작품은 서민들의 이야기예요. 마당놀이처럼 흥겨운 이야깁니다. 『달을 먹다』가 만약에 떨어졌으면, 이 작품으로 다시 한 번 공모전에 도전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첫 작품이 덜컥 당선이 되었다. “솔직히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계속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쓸 거라는 질문에 지금 현대물을 쓰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특별히 조선 시대만 계속 쓸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확실히 역사 속의 어떤 부분을 이야기로 쓰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장편으로 등단하고, 두 번째 작품도 장편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작품도 장편이다. 앞으로 쓰려고 준비해 둔 작품 두 편도 모두 장편이다. “등단하고 단편 청탁이 들어왔는데 두 달 고민하고 못 쓰겠다고 거절했어요.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장편 쪽을 좋아해요. 단편은 거의 안 읽는 편이에요. 취향의 문제인데, 단편은 좀 허전하단 느낌이에요. 저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그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모두 다른 관점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그런 작품에 끌려요. 독자로도, 작가로도.”
2007년 『달을 먹다』로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김진규의 경우가 그랬다. 영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금단의 사랑을 하는 오누이와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가 손끝 야문 여인네의 자수 병풍처럼 펼쳐지는 『달을 먹다』가 지닌 빛나는 문학성보다 ‘단편 하나, 시 한 줄 써본 적 없는 아줌마의 겁 없는 도전’이라는 광고 문구에 현혹되었다.
삼십 대 후반의 주부, 소설가가 되다
별다른 문학 수업을 받지 않은 삼십 대 후반의 주부. 일찍 결혼해 중학교에 다니는 딸이 있고, 평범하게 살림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소설을 쓰기 시작해, 작가가 되었다. 이것은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위의 말은 사실의 일부 부분만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재능도 필요하다. 하지만 숙련이 필요한 창조 작업에 재능은 시작점에 불과하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근거로 말한다면,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에 3시간씩 한다면 십 년이 걸린다. 김진규는 분명 그 1만 시간을 거쳤다.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길고도 지루한 수련을 거쳤으리라고 분명히 믿는다. 그 증거가 이번에 나온 그의 책,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다.
처음은 낡은 책들로 가득한 아버지의 책장.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과 해독이 불가능한 문자들이 가득한 책이 그를 매혹시켰다. 그 막연하게 아름다운 세계를 그는 늘 두려워하면서 욕심을 냈다. 그렇게 책의 세계에 들어간 그의 20대 때는 활자 금단 증상에 시달렸고, 서른이 넘어서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아니, 우울증 때문에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수수방관하지 않기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그는 책을 읽었고,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을 썼고, 느낀 점을 글로 옮겼다.
그런 그이기에 ‘소설 한 편으로 대박을 쳤다’는 세간의 평가가 불편했다. 운 좋게 당선되었다는 질시 아닌 질시도 느껴야 했다. “단편이나 시를 쓰지 않았을 뿐이지 계속 글을 썼어요. 일기도 쓰고, 독서 노트도 쓰고, 뭐든 생각이 나는 것들은 다 노트에 끼적거렸습니다. 쓰지 않을 때도 문장을 떠올렸어요. 이런 상황, 이런 풍경은 어떤 단어를 써서 묘사해야 할까를 멍하니 생각할 때가 많았어요. 그리고 계속 이야기들을 마음에 품었어요. 앞으로 소설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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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에 매달렸으면서 왜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을까? 거기에 그는 명쾌하게 답했다.
“글을 못 썼으니까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훨씬 일찍 두각? 나타내잖아요. 저는 그 흔한 백일장에서도 상을 못 탔어요.(웃음) 중고등학교 때 글 잘 쓰는 친구가 옆에 있었는데 아직도 그 친구 시의 첫 구절을 기억해요. ‘아, 이 정도는 써야지 글 쓰는 사람이 되는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죠. 인내심도 부족했고, 체력도 달렸고. 조급증이 있어서 빨리 결론을 내고 싶어 하는 편이었고요.”
그런 그가 작가가 된 건 독서 덕이리라. 그가 읽었던 수많은 책들, 그 책 속의 단어와 문장, 단락이 그의 것이 되었다. 스티븐 킹의 말을 빌리자면, 독서가 그의 ‘연장통’인 셈이다. 활자중독이라고 할 만큼 그는 책을 읽었다. ‘이러다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섭게 책을 읽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읽고 싶은 책만을 읽진 못한다. 작가가 된 후에는 작품을 위해 읽어야 할 책만 읽기에도 바쁘다고. “그 점이 제일 아쉽네요.”
김진규의 이른 자서전,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채널예스에 ‘김진규의 활자중독’이라는 칼럼으로 연재된 글을 엮은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독서로 풀어간 김진규의 때 이른 자서전이다. 소설가들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는 걸 가장 힘들어한다. 굳이 수많은 장르 중, 허구를 택한 건, 허구를 방패와 갑옷 삼아 이야기를 죄책감 없이 할 수 있어서다. 설사 누군가 그 이야기의 진위를 묻는다면 ‘그건 소설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쓰는 건 다르다. 자기 이야기에는 ‘자기’만 등장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상처를 입게 된다. 그는 본능적으로 모든 상처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가족들 이야기를 많이 썼는데 마음이 편하진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상처 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좋은 이야기만 쓴 게 아니니까. 아직 어머니께 책을 드리지 못했어요. 언니가 ‘그러면서 다 털고 가는 거지.’ 말해줬지만요. 그렇게 쉽게 떨쳐낼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첫 책이 나올 때는 사뭇 기분이 달랐다. 기쁘기도 했지만 부끄럽기도 했다.
집은 가난했고, 늦둥이로 태어나 위의 형제들보다 뭐하나 잘난 것도 없는 아이였다고 그는 책에서 고백했다. 아픈 아버지와 억센 어머니, 머리가 좋고, 재주도 많았지만 형편 때문에 대학을 가지 못한 형제들이 그의 상처였다. 열심히 뒷바라지 해 줘서 대학까지 다녔지만 번듯한 사회인도 못되고 전업주부가 되어, 형제들의 기대를 배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부채의식과 죄의식은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작가가 되어서 조금은 형제들에게 보답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장편소설 쓰기보다 칼럼을 쓰는 것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소모가 더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칼럼을 연재하면서 매 마감마다 머리를 쥐어뜯었어요. 처음엔 이 주에 한 번씩 쓰는 거였는데 마감이 얼마나 빨리 돌아오던지. 아파서 한 달 정도 쉰 적도 있었고, 나중에는 삼 주에 한 번씩 원고를 보내기도 했어요. 이 칼럼을 쓰면서 속으로 많이 앓았어요. 소설을 쓰면서도 살이 안 빠졌는데, 이 칼럼 쓰면서 살이 빠졌어요. 옆구리에 갈비뼈가 만져지더군요.(웃음) 그런데 연재 끝나고 그 살이 도로 쪘어요.”
『달을 먹다』가 창작되기까지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글을 쓰고 싶었고, 누군가가 그 글을 읽어주길 바라서 한동안 블로그 활동을 했다. 주로 책을 읽고 서평을 올렸다. 데뷔작 『달을 먹다』는 블로그에 올릴 생각으로 구상했던 작품이었는데, 연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일단 글을 다 쓴 다음에 나눠서 올릴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집필에만 7~8개월이 소요되었고,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는 처음 의도와는 다른 작품이 되어 있었다.
작가는 독자들이 『달을 먹다』를 읽고 『혼불』과 비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제가 굉장히 좋아한 작품이고, 여러 번 읽은 작품이긴 하지만 처음 『달을 먹다』를 쓸 때 특별히 『혼불』을 의식하지 않았거든요. 어떤 독자가 『달을 먹다』와 『혼불』이 ‘근친상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지적할 때까지 그 점을 전혀 몰랐어요.” 그는 최명희의 『혼불』에 비교 당하는 것 자체가 외람되다고 여겼다. “저로서는 영광이지만 지하에 계신 선생님이 속상해하지 않으실까요. 제 작품과 비교한다면요.(웃음)”
작가는 사람들이 『달을 먹다』를 읽고 ‘부성의 결핍’에 대해 지적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지적은 거의 없었다고. “저도 잘 몰랐는데, 『달을 먹다』를 쓰면서 내게 부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걸 느꼈어요. 『달을 먹다』에서는 ‘아버지다운 아버지’가 하나도 없어요. 제대로 자식을 돌보는 아버지가 없고, 권위를 가진 아버지가 없고, 존경할 만한 아버지가 없죠. 그런데 의외로 이 부분을 읽어내는 분이 드물었어요.”
두 번째 장편소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는 『달을 먹다』에 전혀 상반된 두 세계를 담고 싶었다. 비극과 희극, 양반 계층의 문화와 서민 계층의 문화를 담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원래의 아이디어는 두 개의 소설을 낳았다. 양반과 부유한 중인 계층의 문화를 배경으로 치명적인 사랑을 그린 비극적 이야기 『달을 먹다』와 올 상반기에 출간될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가제)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달을 먹다』가 양반과 부유한 중인 계층의 이야기라면, 이번 작품은 서민들의 이야기예요. 마당놀이처럼 흥겨운 이야깁니다. 『달을 먹다』가 만약에 떨어졌으면, 이 작품으로 다시 한 번 공모전에 도전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첫 작품이 덜컥 당선이 되었다. “솔직히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계속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쓸 거라는 질문에 지금 현대물을 쓰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특별히 조선 시대만 계속 쓸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확실히 역사 속의 어떤 부분을 이야기로 쓰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장편으로 등단하고, 두 번째 작품도 장편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작품도 장편이다. 앞으로 쓰려고 준비해 둔 작품 두 편도 모두 장편이다. “등단하고 단편 청탁이 들어왔는데 두 달 고민하고 못 쓰겠다고 거절했어요.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장편 쪽을 좋아해요. 단편은 거의 안 읽는 편이에요. 취향의 문제인데, 단편은 좀 허전하단 느낌이에요. 저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그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모두 다른 관점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그런 작품에 끌려요. 독자로도, 작가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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