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를 잡는 개, 삼족구
다른 것들은 모두 다리가 넷인데 삼족구만이 다리가 셋이었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못난 것이지 신비할 것이 없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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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엔 두 발로 걷고, 저녁 무렵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이냐?”

이 수수께끼는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냈던 것으로 신화에 나오는 수수께끼 중 가장 유명하다. 이 질문에서 사람들을 가장 당황케 하는 대목은 ‘저녁 무렵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라는 부분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세 발로 걷는 동물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답은 실제가 아니라 은유 속에 있었다.

“그건 사람이지! 어릴 때는 두 손과 두 발로 기어 다니고, 커서는 두 발로 걸어 다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지팡이를 짚어서 세 발로 걸어 다니게 되니까."

달에 사는 유일한 생명체는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인줄로만 알고 있다가 그 옆에 벌을 받은 항아가 변신한 두꺼비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설마 그 뜨거운 태양 속에도 동물이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 했다. 그런데 그 태양 속에 ‘삼족오(三足烏)’라 불리는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스핑크스의 수수께끼가 생각났다. 인간에 대한 은유로서가 아닌, 진짜로 세 발 달린 동물이 신화 속에서는 뚜렷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족오(三足烏) 고구려 벽화에 그려져 있는 삼족오는 고대 동아시아에서 태양신으로 널리 숭배되어온, 태양 속에 살고 있는 세 발 달린 까마귀이다. 고구려 각저총 3호분 천장.
날짐승은 대부분 두 발이고, 길짐승은 대부분 네 발이다. 세 발은 이러한 보통의 동물과 다르다는 점에서 기이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당연히 신성한 동물일 수밖에 없다. 두 발이어야 할 까마귀가 발을 하나 더 가져 태양이라는 신성한 공간에 존재하게 되면서 신성한 동물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은 고구려의 벽화에 안착하면서 민족의 정기가 된다.

여기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다시 한번 발휘해보자. 네 발의 길짐승을 이번에는 다리를 하나 없애서 세 발의 길짐승으로 만들면 어떨까? 과연 이를 통해 또 다른 상징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설퍼 보이는 이러한 상상은 꽤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동물이 다리가 셋인 개, ‘삼족구(三足狗)’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삼족구는 저 멀리 태양 속에서만 존재했던 삼족오보다도 훨씬 가까이서 우리와 함께 했던 신성한 동물이었다. 무대는 중국이다.

중국 고대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은 폭군으로 그 명성이 자자했다. 대개 폭군 곁에는 요염한 여자가 있게 마련이다. 고고하고 표독하며, 뜨거운 동시에 얼음 같고, 조용한 가운데 격동이 있으며, 진한 아름다운 속에 잔학함이 깃들어 있는 독부(毒婦) 달기가 그 주인공이다. 오랑캐 나라에서 공물로 보내온 달기는 주왕의 혼을 완전히 빼앗아버렸다. 주왕의 포악함은 이 달기를 만나면서 한층 더 심해져 갔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기름을 발라 미끈거리는 둥근 구리 기둥을, 그 아래에 숯불을 지펴 달군다. 그리고 주왕을 비방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여 그 위를 걷게 한다. 온전히 건너면 살려준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미끄러져 화염 속에서 생을 마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포락지형(?烙之刑)인데 달기가 이를 보고 마냥 즐거워했다고 하니 주왕으로서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학정이 심해지고 그것이 대부분 주왕 곁에 있는 달기에 의해서 조장된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왜 달기는 포락지형을 좋아한 것일까? 측은지심을 가진 인간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의문은 더욱 깊어갔다. 여기서 사람들은 달기가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니라면 첫 번째로 짚이는 것이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이다. 주왕이 너무 색을 밝힌 나머지 그녀가 구미호의 변신임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야 의문이 말끔히 사라진다. 구미호는 사람을 잡아먹고 살기 때문에 적당히 구워 놓은 시체를 먹이로 보았을 것이고, 이 때문에 포락지형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심의 눈길이 달기 주위를 감싸고돌아도 달기는 전혀 근심하지 않았다. 주왕의 여자인 자신을 감히 누가 어쩌지는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 한 사람, 강태공만이 마음에 걸렸다. 당대 최고의 책사 강태공만은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강태공을 없앨 계교를 꾸몄다. 주왕에게 구슬로 지은 집을 갖게 해달라고 생떼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구슬로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주왕의 물음에 달기는 강태공을 지목했다. 강태공에게 구슬로 집을 짓게 명령한 다음, 그럴 수 없다고 하면 그것을 이유로 죽일 심산이었다. 주왕의 부름을 받고 입궐한 강태공은 주왕의 곁에 서 있는 여인이 구미호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리고는 구슬로 집을 충분히 지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는 물러 나와서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달아난 강태공은 세월을 낚는 낚시에 몰두하다가 주나라 문왕을 만나 그를 보좌하게 되었고, 무왕 때에 이르러 은나라를 치기 위한 역성혁명을 일으켰다. 군사를 이끌고 주왕과 달기에게로 향하는 강태공의 옷자락 속에는 세 발 달린 개인 삼족구가 숨겨져 있었다. 마침내 궁궐까지 들이닥친 강태공은 삼족구를 풀어 달기를 찾게 했다. 이러저리 뛰어다니던 삼족구는 구석진 방에 숨어 있던 주왕과 달기를 발견하고는 사납게 짖으며 달려들었다. 달기의 목을 물고 늘어지더니 세차게 내팽개쳐 버렸다. 팽개쳐진 달기의 몸은 축 늘어져 차츰 꼬리 아홉 달린 여우로 변하더니 이내 죽어버렸다. 물론 주왕 역시 강태공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렇게 은나라는 멸망하고 주나라가 중원을 지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달기(○己) 중국 은나라 주왕의 애첩이었던 달기는 성격이 포악하고 잔혹해 구미호가 변신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다.
강태공이 주 무왕을 보필하여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의 천하가 되도록 한 실제 역사 이야기에 슬그머니 삼족구를 집어넣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달기를 천년 묵은 여우로 둔갑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포락지형이라는 잔혹한 형벌이 맥락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강태공실기姜太公實記> 등의 중국 이야기에서는 원래 강태공이 신병(神兵)을 몰아 달기를 죽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우리나라로 전해지면서 삼족구로 변한 것이다. 이로 볼 때 삼족구는 둔갑한 여우를 알아보고 죽일 수 있는 신성한 동물로, 우리 민족의 독특한 상징임에 틀림없다.

삼족구 이야기는 패망한 나라의 어두운 역사를 초자연적인 상상의 세계로 끌어들여 철저히 깔아뭉개려는 승리한 자의 역사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둔갑한 여우에 의해서 나라가 망했다고 함으로써 이미 그 나라는 천명을 잃었었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심어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역사상 패망한 나라를 여럿 두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유의 이야기는 훌륭한 창작 소재가 되었다. 아직도 강원도에서는 궁예 이야기 속에 이 삼족구의 이야기가 그대로 보존되어 전해지고 있다.

궁예가 강원도 철원 쪽에 후고구려를 세우기 위해 궁궐터를 잡으려 하였다. 원래는 금학산을 안으로 정하고 고암산을 뒤로 삼으려 했는데, 부인의 충고를 따라 그 반대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고암산을 뒤로 하고 금학산을 안으로 삼았다면 풍수학상 천 년을 지속할 수 있는 나라가 됐을 텐데 그만 여자의 말을 들어 금학산이 노여워하는 바람에 30년 만에 끝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궁예의 판단을 흐리게 한 때문인지 궁예가 왕이 된 지 20년 쯤 되었을 때 구미호에 의해 궁예의 왕비는 죽임을 당하고 대신 여자로 변신한 구미호가 왕비 노릇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여우의 농간을 알아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달기만큼 아름다웠던 모양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왕비의 아름다움이 갑자기 찬란해지면서 왕비 앞의 궁예는 그만 어린아이가 되고 말았다. 왕비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하게 되었다. 원래 사람고기를 좋아한다는 여우가 둔갑한 왕비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 무척 즐거워하며 웃곤 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궁예 역시 무척 즐거워했다고 한다. 잘못한 일로 잡아들인 사람들을 죄의 경중과 관계없이 무차별 처형하게 되는데, 특히 잔인하게 죽여야만 더욱 좋아하여 점점 더 처참하게 사람들을 죽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신들은 왕비의 이러한 악독함을 보고 차츰 구미호가 둔갑한 사실을 눈치 채게 되었다. 물론 아무도 궁예에게 이를 얘기하지는 못했다. 급기야 무슨 방책이 없나 하고 비밀리에 의논을 하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삼족구가 변신한 여우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백방으로 삼족구를 찾아 나선 대신들은 서울 송파의 어느 집에서 뒷발이 둘, 앞발이 하나인 개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찾아가서 보니 젖 떨어질 만큼 되었는데도 전혀 자라지 않은 그야말로 조그만 강아지였다. 그럼에도 발만은 유난히 커다랗고, 거기다 눈알은 빨개서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무서웠다.

삼족구를 구한 대신들은 조회가 있는 날, 도포 소매 속에 몰래 넣어 가지고 들어갔다가 꺼내 놓았다. 삼족구가 비호처럼 달려들어 왕비의 목을 물어뜯으니 왕비가 곧 여우로 변하여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 소문을 듣고 여우가 정치를 해서 죄 없는 사람들을 불에 태워 죽였다고 분개했고, 민심은 서서히 궁예를 떠나가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궁예는 결국 망하고 말았다.


삼족구는 삼족오를 접했을 때와는 또 다른 감흥을 전해 준다. 다른 것들은 모두 다리가 넷인데 삼족구만이 다리가 셋이었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못난 것이지 신비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우리의 이러한 생각과 달리 삼족구 역시 삼족오 못지않게 신이하고 신성한 동물로 본다. 태양과 같은 접근불가능한 곳이 아닌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며 사악한 존재인 구미호를 물리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말이다.

뭔가가 부족한 듯이 느껴지는 것이 오히려 신비한 능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과잉이 아닌 결핍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다. 이야기에는 항상 이러한 전복의 묘미가 있어 우리를 즐겁게 한다. 꼬리가 하나도 아니고 아홉씩이나 달린, 넘쳐도 한참을 넘치는 능력을 지닌 천년 묵은 여우가, 불과 이제 막 젖을 뗀, 그것도 다리가 하나 부족한 몸으로 태어난 조그마한 강아지 삼족구에게 보기 좋게 당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충분한 매력을 지녔다. 모자람이 때로는 넘치는 사악함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이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 #설화
17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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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여신

2012.10.25

3이라는 숫자가 성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삼족구, 삼족오가 신성시
여겨졌던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생각보다 서양문물이 동양으로 들어오기 전이라도 뭔가
공통적으로 그런 의미들을 부여하는 것은 비슷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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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4.20

삼족구라는 동물 이름은 들어본 적은 없네요. 달기가 여우였다는 이야기 봉신연의인가? 거기서 본 듯한 느낌이 들어요. 확신은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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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4.03

구미호가 존재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벽화에 삼족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으니 ㅎㅎ 공작의 모습이니 신성한 존재로 모셔졌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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