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 샐린저의『호밀밭의 파수꾼』
200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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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림 그리는 직업을 가졌고 그림 그리는 걸 매우 좋아합니다만, 그림을 직접 그릴 때보단 좋아하는 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을 감상하거나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들을 때 조금 더 즐거워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렸을 때의 성취감이라든가, 단 한 분일지라도 진심으로 좋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마음을 전달받을 때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순수했던 아마추어 시절처럼 흰 종이에 무언가를 채워 넣는 것만으로도 무척 재밌고 행복해서 시간가는 줄 몰랐던 것과는 다르게, 나만을 위한 그림보다는 누군가를 위한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느껴지는 부담감과 거기서 찾아오는 스트레스로 그림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취미가 직업이 되었을 때 찾아오는 전형적인 딜레마랄까요? (뭐 그래도 여전히 즐겁게 그리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그런지 하루를 시작하려고 책상에 앉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도 마감해야 할 일이나 데이트 중인 여자에 대해서가 아니라, Radiohead인가 Pearl Jam인가 아니면 Stan Getz인가 Duke Jordan Trio인가 아니면 자우림인가 Mr.children인가를 두고는 CD를 들었다 놨다 하며 무엇을 먼저 들을지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무거나 먼저 듣고 하나씩 차근차근 들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힘들게 별걸 다 고민하시는군!’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이렇게 무얼 들을지 고민하는 것도 혼자 노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고 그날의 바이오리듬을 정하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작업이냐에 따라 그날의 선곡이 바뀔 만큼 저에게 작업과 음악은 큰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최근엔 Beatles의 유럽판 16CD Box Set을 구해서는 어린아이 만지듯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꺼내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MP3로 변환해서 itunes로 들으면 간편하지만 개인적으론 구입한 CD는 정성스레 꺼내 CD플레이어로 들어야 제 맛이라 생각하고, 곡 하나하나 가치 있고 소중하게 여겨져 좀 더 긴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끔 주위에서 음반을 사서 듣는 걸 보고는 ‘뭐 하러 그걸 돈 주고 사?’라는 눈빛을 보이면 참 안타깝고 씁쓸하고 무언가 당연해야 할 행위가 엉뚱한 데 소비하는 형태로 둔갑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많은 분이 그러시겠지만, ‘비틀즈’ 하면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가 가장 먼저 떠오르실 텐데요. 전 ‘존 레논’ 하면 imagine 같은 히트곡보단 역시 『호밀밭의 파수꾼』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20여 년 전 마크 채프먼이 존 레논을 살해하고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유유히 읽었던 책으로 유명한데요(기사를 살펴보니 들고 있었다는 기사도 있고,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말도 있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저야 비틀즈 세대라 하기엔 조금 어린 편이지만, 처음 이 사건을 접하고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땐 꽤 큰 충격이어서 몇 번을 신중하게 곱씹으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애초에 이 책에서 살인의 동기 같은 걸 찾으려 했던 건 아니지만, 마크 채프먼의 암살 동기가 ‘거짓과 가식에 대한 콜필드의 절규 때문’이란 말에 좀 더 다른 시선으로 샐린저가 홀든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고민하게 됐고, 또 미국의 많은 젊은이와 영화 <컨스피러시>에서 멜 깁슨이 연기한 ‘제리 플레처’가 왜 그토록 열광했는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아 카잔 감독이 영화화하자고 했을 때 “홀든이 싫어할까 봐 두렵다”라는 멋진 말을 한 샐린저를 동경할 수도 있었고요. 많은 분이 읽으셨겠지만 아직 안 읽어보신 분은 한 소년을 통해 위선적이고 불결한 사회를 비판하는 샐린저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번역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민음사의 책보단 문예출판사 판이 좀 더 『호밀밭의 파수꾼』과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토머스 핀천이 J.D 샐린저의 필명이라는 대단한 소문이 있었다는 글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완벽한 거짓말이라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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