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패키지의 진화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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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슬슬 차세대 DVD를 준비하는 분위기죠. 문제는 아직 미래가 흐릿하다는 것이지만요. 블루레이가 주가 될 것이냐, HD DVD가 주가 될 것이냐, 아니면 범용 플레이어가 포맷 전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할 것이냐에 대한 토론에, 여러분도 자기만의 의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오늘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바로 DVD 포장 말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DVD 케이스 포장의 진화는 놀랍지 않습니까? 정확히 같은 크기의 디스크를 담는 음악 CD는 비슷한 길이의 시간을 거쳐 오는 동안 거의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네모난 주얼 케이스에 만족했지요. 디스크의 수가 늘어나면 케이스의 크기를 늘리면 그만이었습니다. 저가판이 나오면서 같은 크기의 케이스 안에 디스크를 두 개 넣는 편법이 생겼지만 그뿐이었죠.

하지만 DVD 케이스의 진화 방향은 훨씬 흥미진진했습니다. CD처럼 하나로 수렴되지 않았죠. 특히 디스크가 서넛을 넘어가는 시리즈물은 거의 시즌마다 새로운 포장법이 발명되었습니다. 정확히 같은 숫자의 디스크를 담으면서 첫 시즌보다 후반 시즌 세트의 두께가 절반 정도 줄어드는 걸 보는 것도 이제는 놀랍지 않습니다.

CD와는 달리 DVD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한 건 시리즈물 덕택이었을 겁니다. 음악 CD는 기껏해야 한 장이나 두 장이죠. 오페라는 세 장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보통 두 장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시리즈 DVD는 그 몇 배나 되는 디스크가 필요했고 이들을 다루려면 상상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곧 수많은 아이디어가 생겼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다양한 포장 디자인이 탄생한 것이죠. 그만큼이나 중요한 건 DVD 포장이 DVD 포맷보다 훨씬 유연하게 창의력을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포장이야 아이디어를 내서 모양만 바꾸면 되지만 포맷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지요.

슈 박스를 이용한
<섹스 앤 더 시티> DVD 패키지
하지만 전 그럼에도 여전히 불만스럽습니다. 보통 DVD는 여전히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이지요. 일반적인 DVD 케이스는 여전히 얄팍하기 짝이 없는 디스크 한 장을 담은 것치고는 지나치게 크고 지나치게 두껍습니다. 차세대 DVD 케이스는 이전보다 조금 더 작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덜 불만스러운 건 아니죠. 저처럼 수백 개의 DVD를 집 이곳저곳에 쌓아둘 수밖에 없는 사람은 이 공간 낭비에 황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더 공간 절약이 되는 작은 케이스에 DVD를 넣고 원래 케이스를 버릴 것이냐? 그럴 수도 없지요. 하여간 시리즈에서는 자유롭기 그지없던 상상력이, 그래도 다수고 표준인 한 장짜리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공간 절약의 방향으로 디자인이 흐르지는 않죠.

세상에는 수많은 다양성을 허용하는 영역이 있고 일관된 표준을 고집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는 말할 수 없죠.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다양성과 일관된 표준 모두 필요합니다. 하지만 (1) 거기엔 균형점이 존재하고, (2) 다양성을 허용하는 편이 사는 게 더 재미있습니다. 사용자로서는 더 편하기도 할 거고요.

DVD라는 매체가 영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세월이 지나면 DVD 안에 영화나 음악을 담아 감상하는 것 자체가 유행에 뒤지는 때가 오겠죠. 하지만 그러는 동안 이 작은 디스크를 담는 케이스가 어떤 식으로 진화할지 추측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차세대 DVD 시대가 온다고 해서 디자인의 압력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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