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알드 달과 팀 버튼의 마술 상자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영화를 보지 않은신 분들은 읽지 않으시기를 권장합니다.
■ 팀 버튼식 캐릭터
팀 버튼의 영화 대부분에서는 주인공의 역할이 뒤집어져 있다. 그의 출세작 <비틀쥬스>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생기넘치지만 제멋대로의 인간퇴치사 비틀쥬스였고 <배트맨>의 첫 번째 영화판의 주인공은 배트맨 또는 브루스 웨인이라기 보다는 화학 공장에 내팽겨져 웃는 얼굴로 살아가게 된 악당 조커(잭 니콜슨)였으며 <배트맨 2>는 외모 때문에 버림받은 펭귄맨과 고용주에게 실컷 이용되다 버려진채 복수심으로 똘똘 뭉친 캣우먼이 훨씬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가위손>의 주인공 에드워드 역시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주인공과는 거리가이며 팀 버튼 필모그래피의 최대 졸작이라고 할 수 있는 <혹성 탈출>마저도 미래의 원숭이 세계의 캐릭터들이 인간 캐릭터들보다 훨씬 생명력이 있어 보인다.
알려진 것처럼 로알드 달의 동화 <찰리와 초콜렛 공장>은 이미 1971년 멜 스튜어트 감독, 진 와일더 주연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바 있으며 가족 영화의 명작으로 남아 있다. 원작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팀 버튼은 자기 스타일의 변화를 새로운 작품에 부여했는데, 그 첫 번째는 월리 욘카(조니 뎁)의 비중이 크게 올라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71년작의 원제는




■ 윌리 욘카, 덜 자란 어른
윌리 욘카는 천재지만 덜 자란 어른과 같다. 조니 뎁은 인터뷰에서 욘카를 얼굴에 화장을 한 '지방 방송국 어린이 프로그램 사회자'의 컨셉을 따 왔다고 했는데, 71년작의 진 와일더에 비해서도 조니 뎁의 욘카는 아이들에게 더 쌀쌀 맞고 아이들을 괴롭히는데 꽤 즐거움을 느끼는 가학성(한편으로는 순수하고 한편으로는 더욱 잔인한 아이들의 그것)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아이들이 벌을 받을 때 묘한 웃음을 짓는 웡카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원작과 71년작의 욘카가 일종의 '거인'으로서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라면 팀 버튼과 조니 뎁의 윌리 욘카는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다. 물론 욘카는 부모(또는 가족)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와 공장을 거니는 아이들과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욘카는 '부모(Parents)'라는 단어를 말하지 못하는데 이는 욘카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비록 어른의 몸을 지니고 있으나 실제로는 아이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영화 속에서 욘카가 부모를 가진 응석받이 아이들에 대해 행하는 벌주기란 자신이 지니지 못한 부모를 가진 아이들에 대한 분노 또는 질투로 느껴지기도 한다. 욘카의 게임에서 승자가 되는 '찰리'는 4명의 조부모와 공동 생활을 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착한 아이'이며 이는 산업 사회에서 보편적인 핵가족 안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가지지 못한 미덕인 '절제'와 '배려'의 덕목을 찰리가 가지게하는 이유가 된다. 어쨌든 찰리 역시 욘카와는 다른 의미에서 현대적인 아이의 모습에서는 벗어나 있는 존재다.



■ 욘카의 가족 찾기 프로젝트?
팀 버튼의 영화에서 대폭 늘어난 욘카의 과거에 대한 장면들은 화려하고 원색적인 초콜렛 공장 시퀀스들과는 사뭇 다른 고딕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다. 욘카의 아버지인 치과 의사 닥터 욘카로 '드라큘라' 크리스토퍼 리가 캐스팅된 것 역시 유아적인 공포와 천진함을 뒤섞는 팀 버튼식의 유머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나름의 기승전결을 가진 욘카의 이야기가 영화에 첨부됨으로서 <찰리와 초콜렛 공장>은 표면적으로 진부한 '가족'으로의 귀환이라는 결론으로 향하는 듯 하다. 하지만 정작 욘카는 홀로 아버지를 찾지 못하며 오랜 기간 아들의 기사들을 스크랩해 놓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역시 욘카를 찾지 않는다. 둘의 만남은 '찰리'라는 캐릭터의 등장으로 가능해지며 욘카는 찰리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찾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욘카 부자는 모두 소통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찰리와 초콜렛 공장>의 '아버지'는 저 너머의 존재에 가깝다. 수십년이 지나 만난 아들에게 '치실을 한 번도 안했구나 ?'라고 이야기하는 아버지나 '한번도요 ~ '라고 대답하는 아들의 만남은 따뜻하기는 해도 완벽한 화해에 이르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팀 버튼식의 화해는 쑥스럽고 생뚱맞기까지 하다. 결국 영화의 라스트씬은 다소 엉뚱한 형태의 가족 구성으로 귀결되는데, 바로 찰리의 집이 욘카의 공장으로 옮겨 오는 것이다. 이건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가족 구성과는 거리가 멀다. 욘카가 찰리의 집으로 입양되거나 반대로 욘카가 찰리의 가족을 입양한 것같은 결말은 '우리 가족 만세'로 마무리되는 결말과는 어느 정도 거리감을 보여준다.



■ '부모 없음'의 쾌활함
애초부터 전복적인 요소를 지닌 로알드 달의 현대적인 동화들은 공포와 유머의 경계에 서 있는 팀 버튼식 영화에 더 없이 적절한 소재로 <찰리와 초콜렛 공장>에는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욘카와 동행하는 버릇 없는 아이들의 네 명의 부모들은 하나같이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일 뿐 아니라 버릇 없는 아이들을 만들어낸 원흉들에 불과하며 찰리와 동행하는 조 할아버지(리처드 켈리)는 찰리의 친구와 같은 존재(그는 찰리에게 욘카의 공장으로 가는 골든 티켓을 얻게하는 것에서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다. 말 할 것도 없이 욘카는'아버지'와는 매우 거리가 먼 인물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기 위해 찰리에게 도움을 요구하는 욘카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영화 구조 속에서 '부모'를 제거함으로서 얻어지는 불안정한 쾌활함이다. 사실 <찰리와 초콜렛 공장>의 백미는 '나쁜 아이들 벌주기'의 호화로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움파룸파들의 노래들과 함께 말썽꾸러기들은 각각의 죄목에 어울리는 벌을 받고 관객들은 그 모습을 보며 즐겁게 키득거린다. 물론 로알드 달과 팀 버튼 그리고 관객들이 벌이는 즐거운 이지메의 경험은 아슬아슬한 불량스러운 일탈의 즐거움을 전해준다. 아이의 입장에서 못된 아이들을 혼내주는 것 그것이 <찰리와 초콜렛 공장>에서 벌이는 본질적인 즐거움일 것이다.
우리가 팀 버튼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버튼식의 엔딩이 아니라 그가 그려내는 독특한 감수성의 매력이다. 다행스럽게도 팀 버튼 영화의 마술적인 매력은 <찰리와 초콜렛 공장>에서도 여전하다. ★★★☆





여름용 블록버스터라고는 하지만 팀 버튼의 영화의 매력은 DVD의 메뉴 화면에서도 독특함을 뽐낸다. 움파 룸파족(딥 로이)이 조종하는 초콜렛 공장의 공정을 따라 움직이는 듯 구성된 메뉴 화면 역시 무척 재치있게 구성되어 있다.






온통 마술 상자같은 화면은 예상보다 날카로운 편은 아니다. 작품 자체가 비현실적인 공간들을 창조하고 있으며 색감 역시 자연스러움 보다는 인공적인 느낌으로 조정되어 있기 때문에 의도된 화면을 선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2005년도의 흥행작답게 화면에는 잡티가 전혀 없는 깔끔하고 아름다운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여러 매체에 1.85:1로 알져진 바와 달리 화면비는 1.78:1의 화면 사이즈를 선보인다. ★★★★


영어와 태국어 돌비 디지털 5.1 EX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역시 입체감이 더 강조되면서 흠잡을 데가 거의 없는 사운드 퀄리티를 선보이며 대니 엘프만의 음악이 펼쳐지는 장면들에서는 여지 없이 그 위력을 선보이고 있다. 다만 전 가족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영화답게 임팩트를 강하게 표현하기 보다는 부드럽고 경쾌한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주력하고 있다. 정말 아쉬운 점은 한국어 트랙이 없다는 점. 국내 DVD 시장의 협소함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최소한 가족과 같이 볼 만한 영화들에는 한국어 트랙이 실렸으면 한다. ★★★★





















화염과 화려한 액션으로 수놓은 블록버스터의 시즌에서 <찰리와 초콜렛 공장>이 블록버스터로 만들어진 것은 다른 맥락이다. 팀 버튼은 화려한 액션 시퀀스를 만들기 보다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더욱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다행스럽게도 <찰리와 초콜렛 공장 DE>는 그런 팀 버튼의 영화 세계를 탐구하는데 큰 무리가 없는 훌륭한 퀄리티의 영상과 음향을 전해준다. 아쉬운 점은 서플먼트의 양보다는 질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헐리우드 영화들에서 제공되는 기본적인 서플먼트들은 수록되어 있으나, 작품의 원작자나 연출자인 로알드 달과 팀 버튼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부가 영상이 수록되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준다. 특히 작품에서 두드러진 분야인 미술과 특수 효과들에 대한 좀 더 충분한 설명이 수록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준다. 분명히 기본 이상의 퀄리티를 주고 있지만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 약간 아쉽다. 아울러 풀 스크린 버전으로만 출시된 71년작 <초콜렛 천국>의 와이드 스크린 에디션의 출시를 기대한다.
|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 영화, 공연, 음악, 미술, 대중문화, 여행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비쥬
2006.10.04
어쩜 그 개성강한 얼굴이 매번 바뀔수있는지.... 분장사의 노력만은 아니겠죠? 팀버튼의 영화는 왠지 찾아봐지진 않아요 하지만 우연히든 아님 볼게 없어서 억지로 빌리던간에(갠적으로시대물을 좋아해서리) 보면서 입이 떡벌어진답니다 왠지 개성있는 천재라는 말이 떠오르네욬ㅋㅋㅋ 화려한 색체와 어린이 등장 인물이 많아 어린이 영환줄 알았는데 어른용 동화 더군요 자기자식 잘키우라는 교훈이 담긴........ 어떤 사람은 영어 원작 읽던데 저는 번역본부터 도전해야겠네요
코믹도치
2006.02.09
책 요리하는 마녀
2006.02.08
소마님 반갑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싸이월드에서도 페이퍼를 쓰시고 계시죠? 저 역시 '영어동화의 세계'를 발행하면서 소마님의 글을 종종 본 것 같아요. 팀 버튼의 환상력 정말 대단하죠. 늘 우수어리지만, 번뜩이는 그 무엇.... 팀버튼처럼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있는 소마님 글이 그래서 좋더군요.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