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서 보다가 일본어까지 전공하게 되었어요!
‘일본원서를 구입하는 사람들’이라는 클럽이 있다. 2004년 11월 21일에 개설된 이 클럽은 “재미있는 책 있으면 혼자 보지 말고 서로 소개해 가며 구입해 읽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모너아리 님에 의해 개설되었다.
200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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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형문자로 새겨진 수메르인의 점토판 중에는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어”라고 새겨진 글귀가 있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은 거의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들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어른들이 공들여 정립해 놓은 가치관을 부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지나치게 어른들의 뜻에 맞게 움직이면 ‘요즘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다’고 지적하며 그들이 지나치게 자기주장을 내세우면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걱정을 위한 걱정을 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 만난 세 명의 젊은 청년들을 보니 그 걱정은 어느새 질투로 바뀌었다.
YES24 커뮤니티 클럽 중에는 ‘일본원서를 구입하는 사람들’이라는 클럽이 있다. 2004년 11월 21일에 개설된 이 클럽은 “재미있는 책 있으면 혼자 보지 말고 서로 소개해 가며 구입해 읽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모너아리 님에 의해 개설되었다. 현재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중인 모너아리 님은 오프라인에서도 친분이 있는 클럽회원 노을님과 동행하셨고 그 외 트란퀼로님이 나오셔서 ‘일본원서를 구입하는 사람들’클럽의 조촐한 오프가 진행되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 일본문화가 깊숙하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대단히 많다. 모너아리 님이나 노을님, 트란퀼로 님의 공통점은 그런 애니메이션을 보고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화 <왕의 남자>를 보고 원작 『邇』를 궁금해 하는 것처럼 이 분들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원작인 만화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화책에 호기심을 느꼈다면 얼마든지 국내에 번역된 만화를 읽어도 되는데 이 분들은 굳이 일본 원서를 직접 구해 읽는다는 사실이다.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두세 달만 기다리면 국내 번역본이 나오는데 어렵게 일본 원서를 구입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트란퀼로 님은 수집가로서의 희열에 관해서 말한다.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더 매력이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아무래도 번역을 하다보면 원본에서 삭제되는 부분도 있고, 국내본과 차이점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런 부분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은근한 지적 우월감을 줍니다.”
반면 모너아리 님은 일본원작을 보는 것이 지적우월감을 줄 만큼 희소성이 있지는 않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찾아보면 일본원서 스캔해 놓은 것 찾아보기 어려운 일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꼭 원서를 사서 보는 이유는 아무래도 책이 좋아서겠지요. 일본원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뭐니 뭐니 해도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의 십대나 이십대는 인터넷 세대이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다고 개탄을 하는데 그렇게 개탄을 하는 사람들이 직접 그 세대와 마주해 보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모니터로 보는 책이 종이가 주는 질감을 어떻게 따라 가냐고 말하는 모너아리 님 같은 사람을 만나보면 젊은 세대에 대한 걱정은 한낮 기우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더군다나 좋아하는 것을 통해 장래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이 분들은 철없이 만화나 보고 있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던 선입견을 철저하게 부셔준다.
애초부터 일본어에 대해서 남다른 호감을 가졌던 탓에 일본원서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던 모너아리 님은 고교 시절에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통과했고, 동국대학교 서울 캠퍼스 일어일문학과에 입학한 후에 치른 JPT(일본어능력시험)에서는 945점을 획득했다고 한다. 아직까지 책값을 부모님께 타 쓰는 일은 용납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익월급의 반을 책값으로 쓴다고 하는 모너아리님은 이런 성과 덕분에 만화책 사보게 돈 달라는 말을 떳떳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작년에 사본 원서 값이 이백만원이 넘는 것 같다고 머리를 긁적이는 트란퀼로 님은 부모님께 만화 사보는 것을 이해받기는 어려웠다고 하지만 실은 트란퀼로 님 또한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였다. 재학 중인 고등학교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 캠퍼스 일본어학과 수시모집에 유일한 합격자가 바로 트란퀼로 님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하는데 트란퀼로 님은 일본어를 즐기는데 어찌 공부로만 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사람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노을님의 경우는 일본원서가 그야말로 순수 취미로만 머무는 경우인데 각종 장학금이나 상금을 받는 경우가 생기면 부모님이 그 돈에 대한 재량권을 주시는 덕분에 책 사보는 일이 비교적 수월했다고 한다. 대학생에 비해서 고등학생의 장학금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일본원서가 어른들 보기에는 만화 나부랭이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원서를 읽기 위해서는 일본어 공부를 하고 사전을 찾는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학습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노을님의 경우를 통해서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일본어를 좋아하고 더군다나 일본어 전공을 하고 있는 모너아리 님에게 일본어 공부를 하기에 적합한 책을 권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역시 만화가 최고라며 추천하고 있다. 일본어는 한자표기가 많은데 일반 소설책에는 이 한자표기에 독음(요미가나)이 병기되어 있지 않아서 초보자가 읽기에는 애로점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만화책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독음이 병기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어 초보자의 경우 입문용으로 『だぁ!だぁ!だぁ!(다!다!다!)』를 추천하고 있다. 우연찮게 외계인 아이를 떠맡아 기르게 된 중학생 소년, 소녀의 이야기는 학교생활과 육아에 관련된 일상 언어가 등장하기 때문에 무리 없이 몰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어에 대한 매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책이 좋을까. 모너아리 님은 『赤ずきんチャチャ(빨간 망토 차차)』를 일본어 특유의 맛을 살린 만화로 꼽고 있다. 일본어로 꽃과 코는 똑같이 ‘하나’라고 읽는 동음이의어인데 ‘꽃다발’ 대신 ‘코다발’을 등장시켜 삽화와 언어가 적절히 어우러지는 언어적 유희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이런 맛을 번역본은 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원서를 읽게 된다고 클럽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일본원서를 구입하는 사람들’ 회원으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청했더니, 모너아리 님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電車男(전차남)』을 손에 들었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았지만 무심코 지나쳤었는데 노을님이 보고 있던 번역본을 보고 다시금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 『電車男(전차남)』은 아주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생 연애라고는 해보지 못한 소심남이 우연히 전철 안에서 술 취한 남자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는 여자를 도와주게 되거든요. 그 소심남이 아가씨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서 우물쭈물 거리며 오타쿠 게시판에 이 이야기를 올립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소심남을 도와주기 위해서 리플로 조언을 해주는데 그 조언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지역적으로는 일본과 우리나라라는 차이가 있지만 인터넷이 생활에 근간이 되고 있는 것은 같기 때문에 아주 친근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電車男(전차남)』이 가지는 또 다른 의미는 바로 일반적으로 매니아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함이 있는데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몰입하는 문화를 상징하는 ‘오타쿠’에 관해서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모너아리님의 『電車男(전차남)』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노을님은 YES24에서 구한 애장품 『스쿨럼블 설정집』을 펼쳐놓았다. 설정집이란 책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성격이나 구성에 대한 설명을 엮어 놓은 책인데 한정판으로 나오기 때문에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노을님의 설명이다. 모너아리 님이 『스쿨럼블 설정집』을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회원들 사이에서 이 책이 가지는 가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노을님이 내놓은 또 하나의 책은 『滿月をさがして(달빛천사)』였다. 원서로서는 처음 접한 책이기 때문에 애착이 간다는 『滿月をさがして(달빛천사)』는 일반적으로 순정만화에 속하는 책이다. 남자 고등학생이 순정만화를 보느냐는 질문에 노을님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한다. 신생아의 출산용품을 고르면서 딸은 분홍색, 아들은 파란색으로 한정시키듯 순정만화는 여학생들만 보는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필자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트란퀼로 님은 수시 합격을 한 뒤 떨어진 친구들 때문에 마음이 몹시 울적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 친구들에게 위로를 한답시고 한 마디 던지면 잘난 척이 되고, 가만히 있으면 또 무심한 친구가 되기 마련이다. 고3 특유의 감정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위로가 돼준 책이 있었으니 바로 『ARIA コミツク(아리아)』라고 하는 책이다. “흔히 『ARIA コミツク(아리아)』를 심신 안정용 코믹이라고 표현하거든요. 읽고 있으면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져요.”
이외에도 우리나라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 중의 하나인 시오노 나나미의 『チェ-ザレ.ボルジアあるいは優雅なる冷酷(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과 『ルネサンスの女たち(르네상스의 여인들)』을 들어보였다. 여자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었던 중세를 살면서 자신들의 능력을 암암리에 발휘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나 허망하게 스러져간 영웅의 이야기들은 젊은 트란퀼로 님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안겨줬다고 한다.
책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서 빌려주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외치는 이 분들은 책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남다른 정성을 보였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찍어놓은 서점 도장은 책에 대한 훼손으로 느껴진다고 말하는 모너아리 님은 읽을 때도 반드시 모서리 부분에만 손을 대고 속지에는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노을님은 책을 펼 때도 180도로 펼치지 않고 120도 정도만 펼쳐 책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한다고 한다. 이런 청년들 앞에서 인터넷이 책맹 세대를 양산하기 때문에 앞으로 종이책이 사라지고 말거라는 추측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억측에 불과하다.
비록 각자 가지고 있는 꿈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본원서를 구입하는 사람들’ 클럽 회원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현실 속에서 미래에 대한 발판을 조금씩 마련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논어의 옹야(雍也)편에서 말하기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이 젊은이들의 꿈은 남들보다 몇 발짝 더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YES24 커뮤니티 클럽 중에는 ‘일본원서를 구입하는 사람들’이라는 클럽이 있다. 2004년 11월 21일에 개설된 이 클럽은 “재미있는 책 있으면 혼자 보지 말고 서로 소개해 가며 구입해 읽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모너아리 님에 의해 개설되었다. 현재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중인 모너아리 님은 오프라인에서도 친분이 있는 클럽회원 노을님과 동행하셨고 그 외 트란퀼로님이 나오셔서 ‘일본원서를 구입하는 사람들’클럽의 조촐한 오프가 진행되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 일본문화가 깊숙하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대단히 많다. 모너아리 님이나 노을님, 트란퀼로 님의 공통점은 그런 애니메이션을 보고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화 <왕의 남자>를 보고 원작 『邇』를 궁금해 하는 것처럼 이 분들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원작인 만화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화책에 호기심을 느꼈다면 얼마든지 국내에 번역된 만화를 읽어도 되는데 이 분들은 굳이 일본 원서를 직접 구해 읽는다는 사실이다.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두세 달만 기다리면 국내 번역본이 나오는데 어렵게 일본 원서를 구입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트란퀼로 님은 수집가로서의 희열에 관해서 말한다.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더 매력이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아무래도 번역을 하다보면 원본에서 삭제되는 부분도 있고, 국내본과 차이점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런 부분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은근한 지적 우월감을 줍니다.”
반면 모너아리 님은 일본원작을 보는 것이 지적우월감을 줄 만큼 희소성이 있지는 않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찾아보면 일본원서 스캔해 놓은 것 찾아보기 어려운 일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꼭 원서를 사서 보는 이유는 아무래도 책이 좋아서겠지요. 일본원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뭐니 뭐니 해도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의 십대나 이십대는 인터넷 세대이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다고 개탄을 하는데 그렇게 개탄을 하는 사람들이 직접 그 세대와 마주해 보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모니터로 보는 책이 종이가 주는 질감을 어떻게 따라 가냐고 말하는 모너아리 님 같은 사람을 만나보면 젊은 세대에 대한 걱정은 한낮 기우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더군다나 좋아하는 것을 통해 장래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이 분들은 철없이 만화나 보고 있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던 선입견을 철저하게 부셔준다.
애초부터 일본어에 대해서 남다른 호감을 가졌던 탓에 일본원서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던 모너아리 님은 고교 시절에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통과했고, 동국대학교 서울 캠퍼스 일어일문학과에 입학한 후에 치른 JPT(일본어능력시험)에서는 945점을 획득했다고 한다. 아직까지 책값을 부모님께 타 쓰는 일은 용납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익월급의 반을 책값으로 쓴다고 하는 모너아리님은 이런 성과 덕분에 만화책 사보게 돈 달라는 말을 떳떳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작년에 사본 원서 값이 이백만원이 넘는 것 같다고 머리를 긁적이는 트란퀼로 님은 부모님께 만화 사보는 것을 이해받기는 어려웠다고 하지만 실은 트란퀼로 님 또한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였다. 재학 중인 고등학교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 캠퍼스 일본어학과 수시모집에 유일한 합격자가 바로 트란퀼로 님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하는데 트란퀼로 님은 일본어를 즐기는데 어찌 공부로만 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사람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노을님의 경우는 일본원서가 그야말로 순수 취미로만 머무는 경우인데 각종 장학금이나 상금을 받는 경우가 생기면 부모님이 그 돈에 대한 재량권을 주시는 덕분에 책 사보는 일이 비교적 수월했다고 한다. 대학생에 비해서 고등학생의 장학금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일본원서가 어른들 보기에는 만화 나부랭이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원서를 읽기 위해서는 일본어 공부를 하고 사전을 찾는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학습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노을님의 경우를 통해서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일본어를 좋아하고 더군다나 일본어 전공을 하고 있는 모너아리 님에게 일본어 공부를 하기에 적합한 책을 권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역시 만화가 최고라며 추천하고 있다. 일본어는 한자표기가 많은데 일반 소설책에는 이 한자표기에 독음(요미가나)이 병기되어 있지 않아서 초보자가 읽기에는 애로점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만화책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독음이 병기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어 초보자의 경우 입문용으로 『だぁ!だぁ!だぁ!(다!다!다!)』를 추천하고 있다. 우연찮게 외계인 아이를 떠맡아 기르게 된 중학생 소년, 소녀의 이야기는 학교생활과 육아에 관련된 일상 언어가 등장하기 때문에 무리 없이 몰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어에 대한 매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책이 좋을까. 모너아리 님은 『赤ずきんチャチャ(빨간 망토 차차)』를 일본어 특유의 맛을 살린 만화로 꼽고 있다. 일본어로 꽃과 코는 똑같이 ‘하나’라고 읽는 동음이의어인데 ‘꽃다발’ 대신 ‘코다발’을 등장시켜 삽화와 언어가 적절히 어우러지는 언어적 유희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이런 맛을 번역본은 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원서를 읽게 된다고 클럽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일본원서를 구입하는 사람들’ 회원으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청했더니, 모너아리 님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電車男(전차남)』을 손에 들었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았지만 무심코 지나쳤었는데 노을님이 보고 있던 번역본을 보고 다시금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 『電車男(전차남)』은 아주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생 연애라고는 해보지 못한 소심남이 우연히 전철 안에서 술 취한 남자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는 여자를 도와주게 되거든요. 그 소심남이 아가씨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서 우물쭈물 거리며 오타쿠 게시판에 이 이야기를 올립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소심남을 도와주기 위해서 리플로 조언을 해주는데 그 조언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지역적으로는 일본과 우리나라라는 차이가 있지만 인터넷이 생활에 근간이 되고 있는 것은 같기 때문에 아주 친근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電車男(전차남)』이 가지는 또 다른 의미는 바로 일반적으로 매니아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함이 있는데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몰입하는 문화를 상징하는 ‘오타쿠’에 관해서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모너아리님의 『電車男(전차남)』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노을님은 YES24에서 구한 애장품 『스쿨럼블 설정집』을 펼쳐놓았다. 설정집이란 책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성격이나 구성에 대한 설명을 엮어 놓은 책인데 한정판으로 나오기 때문에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노을님의 설명이다. 모너아리 님이 『스쿨럼블 설정집』을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회원들 사이에서 이 책이 가지는 가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노을님이 내놓은 또 하나의 책은 『滿月をさがして(달빛천사)』였다. 원서로서는 처음 접한 책이기 때문에 애착이 간다는 『滿月をさがして(달빛천사)』는 일반적으로 순정만화에 속하는 책이다. 남자 고등학생이 순정만화를 보느냐는 질문에 노을님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한다. 신생아의 출산용품을 고르면서 딸은 분홍색, 아들은 파란색으로 한정시키듯 순정만화는 여학생들만 보는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필자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트란퀼로 님은 수시 합격을 한 뒤 떨어진 친구들 때문에 마음이 몹시 울적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 친구들에게 위로를 한답시고 한 마디 던지면 잘난 척이 되고, 가만히 있으면 또 무심한 친구가 되기 마련이다. 고3 특유의 감정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위로가 돼준 책이 있었으니 바로 『ARIA コミツク(아리아)』라고 하는 책이다. “흔히 『ARIA コミツク(아리아)』를 심신 안정용 코믹이라고 표현하거든요. 읽고 있으면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져요.”
이외에도 우리나라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 중의 하나인 시오노 나나미의 『チェ-ザレ.ボルジアあるいは優雅なる冷酷(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과 『ルネサンスの女たち(르네상스의 여인들)』을 들어보였다. 여자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었던 중세를 살면서 자신들의 능력을 암암리에 발휘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나 허망하게 스러져간 영웅의 이야기들은 젊은 트란퀼로 님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안겨줬다고 한다.
책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서 빌려주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외치는 이 분들은 책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남다른 정성을 보였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찍어놓은 서점 도장은 책에 대한 훼손으로 느껴진다고 말하는 모너아리 님은 읽을 때도 반드시 모서리 부분에만 손을 대고 속지에는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노을님은 책을 펼 때도 180도로 펼치지 않고 120도 정도만 펼쳐 책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한다고 한다. 이런 청년들 앞에서 인터넷이 책맹 세대를 양산하기 때문에 앞으로 종이책이 사라지고 말거라는 추측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억측에 불과하다.
비록 각자 가지고 있는 꿈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본원서를 구입하는 사람들’ 클럽 회원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현실 속에서 미래에 대한 발판을 조금씩 마련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논어의 옹야(雍也)편에서 말하기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이 젊은이들의 꿈은 남들보다 몇 발짝 더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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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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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