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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정의 옛 담 너머] 터치 마이 바디

현호정 칼럼 –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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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칠 상(傷)’안에는 해와 빛을 뜻하는 ‘양(昜)’자가 있고, ‘상줄 상(賞)’ 속‘尙(오히려 상)’은 집과 창문을 함께 그린 글자다. 사는 동안 내게 찾아들 상처들을 창 너머 해를 쬐듯 기꺼이 앓을 수 있을까. (2024.07.09)


현호정 소설가가 신화, 설화, 전설, 역사 등 다양한 옛이야기를 색다른 관점에서 읽으며, 현대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을 전합니다. 격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pexels.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동생은 많이 슬퍼했다. 몇 달이 지나자 특별한 원인 없이 심한 어지러움에 시달렸다. 마침 내가 점집에 다녀온 뒤라(5화 참고) 동생도 주소를 물어 찾아갔고, 무당은 동생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고. “어지럽네… 어지럽겠네….”

어떻게 아셨냐고 물으니 무당은 근래 할머니가 돌아가셨는지 되물었단다. 그렇다고 하니 무당이 답하기를, “할머니가 우리 ㅇㅇ이 불쌍하다고, 불쌍해서 어쩌나 어쩌나 하며 옆에서 계속 쓰다듬고 계시네. 그런데 죽은 사람 손은 가시 손이라,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만져도 산 사람 몸은 상하지. 할머니가 ㅇㅇ이 걱정하지 않게 잘 지내야 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세월호에 대한 원고1를 쓰느라 관련된 글을 읽던 새벽녘 나는 책상 앞에 엎드려 몸을 부수듯 울었다. 고(故) 이수빈 학생의 어머니 박순미 씨의 인터뷰를 보고서였다. 박순미 씨는 주변의 만류로 팽목항 시신 안치소에서 아이 시신을 보지 못했다. 장례를 치르러 안산으로 돌아온 뒤에야 겨우 수빈이의 몸을 마주할 수 있었다.

“와서 못 보면 한이 될 거 같았어. 내가 엄만데 왜 안 보여 주냐, 난 엄마라고. 우리 애기 눈 없고 코 없고 입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랬더니 (영안실에) 엄마 아빠 두 사람만 들어오라고 해요. (…) 수빈이 손을 잡으려 했더니 장의사가 내 손을 치는 거야. 안 된다. 왜 안 되냐. 아이 상하는 거 싫죠? 지금 만지면 아이 상합니다. 나는 수빈이 얼굴도 못 만졌는데 너무 속상했어요. 지금 후회하는 게 왜 천을 확 벗기지 못했을까. 아이 상한다는 말에 만질 수가 없는 거야.”2


한편 어떤 몸들에게 훼손의 아픔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공포로 남는가. 다친 기억을 흉터로 지닌 영(靈) 여럿이 주위를 맴돌면서도 정작 내 몸에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던 날도 있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한 포럼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불면증으로 이틀 밤을 꼬박 새운 채 이른 새벽 새마을호를 타고 광주에 도착했다. 호흡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편도와 비강이 부어 알러지비염약과 감기약을 먹어야 했는데 생리를 미루기 위한 경구피임약을 비롯해 기존에 먹던 약들이 이미 많아 크게 괴로웠던 기억이다. 첫날 저녁 일정을 마치고 나니 한 마디도 더 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단체에 양해를 구하고 저녁을 혼자 대강 먹었다. 잠을 자고 싶어서 몸이 상할 것을 알면서도 술까지 마셔 보았지만, 또 거의 자지 못했고 아침에 시계를 보며 잠시 119를 부르는 상상을 하다 포럼 장소로 향했다.

깨어 있을 때면 입에 늘 물고 있던 커피도 없었으므로 시간이 흐른다고 정신이 차려질 리 만무했다. 여름이었는데 몸이 안 좋아 그랬는지 냉방이 잘 되어 그랬는지 몹시 춥고 계속 소름이 끼쳤다. 잠든 것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닌 상태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위쪽 바닥에서 피가 흘러와 가까이 고이더니 곧 잘린 팔다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다녔다. 나는 평소 귀신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봤다고 놀라서 깽 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는 스스로 아주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뭘 어떻게 해도 어차피 아무것도 안 된다는 느낌이었다. 곧 누가 아주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결코 내게 닿으려 하지 않았고, 대신 그들은 자꾸 내 필통을 만졌다.

처음에는 만년필에 닿으려는 손가락이 느껴졌다. 옆자리 참석자가 펜을 빌리려는가 하고 돌아보았지만 나는 뒷자리 구석에 앉아 있었으므로 옆에 아무도 없었다. 조금 있으니 누가 또 만년필을 만지다 슬그머니 필통에 손가락을 걸어 자기 쪽으로 끌어갔다. 내가 다시 내 쪽으로 끌어오니 이번에는 그 손이 내 노트로 다가왔다. 나는 일정이든 메모든 일기든 한 노트에 적기 때문에 어쨌든 누가 남의 일기를 보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해서 노트도 슬그머니 팔꿈치로 눌렀다. 그리고 잠시 고민한 끝에 필통을 그들 쪽으로 조금 밀어주었다. 그러자 곧 필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내 약간 졸기 시작했고 그 잠이 너무 달콤해 푹 빠져들었다. 기묘한 평화와 공존이 얼마간 이어진 뒤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다시 양해를 구하고 함께하는 점심 자리에서 빠져 혼자 카페를 찾았다. 뜨거운 커피와 차가운 커피를 둘 다 시켜 번갈아 마시고 동물 모양 쿠키도 먹었다. 그러는 동안 메시지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친구 미섭이 지금 내가 있는 건물이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전남도청과 경찰청이 있던 자리에 지어졌음을 알려 주었다.

미섭은 그 영들로 추정되는 존재가 만지려 한 물건이, 그러니까 내가 그들에게 내어준 물건이 필통이라는 사실을 기꺼워했다. 그 이유는 나도 여러 번 들어 알고 있었다. 미섭도 필통에 관한 아프고 귀여운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미섭은 갑작스러운 공황 증세로 괴로워했다. 지안이라는 친구가 미섭을 도우려 했지만 공황에는 하임리히법이나 인공호흡 같은 게 통하는 것도 아니라 막상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고. 그러다 가방에서 인형 같은 재질의 필통을 꺼내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미섭아 혹시 내 필통 만질래? 푹신푹신해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날 내가 포럼에 들고 간 필통은 딱딱했고 그냥 하얀색 네모였다. 나는 그게 미안해서 굳어진 청포묵 같은 필통을 밀어주며 바람까지 잡았다. ‘이런 필통 처음 보시죠. 저도 이번에 사면서 아트박스에서 처음 봤어요.’ 조금 뒤에 또 물었다. ‘그때는 이런 필통 없었죠?’ 나는 거의 강요하듯 물었다. ‘솔직히 신기하시죠?’

그들이 내 필통에 집중하느라 잠시라도 아픔을 잊기를 바랐다.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통하던 방법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던 어느 날엔가 치매에 걸린 노인이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릴 수 있도록 그녀가 기억하는 몇 가지 사실 중 하나를 (“일본어로 꽃이 뭐예요?”) 반복해서 물어봤던 기억. 대답을 들을 때마다 침대 위에 먼지처럼 내려앉던 창백한 슬픔들. 내가 자꾸 꽃이 뭐냐고 물어 대니 한 번은 그 할머니가 대답 대신 자기 이불을 가리켰다. 꽃무늬 이불이었다. 수없이 많이 수 놓인 색색의 꽃들 가운데 할머니가 가리킨 꽃은 노란 꽃이었다. 그것은 나와 할머니의 중간에 피어 있었다. “아, 이게 꽃이구나!” 내가 웃자 할머니도 손가락으로 그 꽃을 만지며 웃었다. 나도 손가락을 내밀어 그 꽃을 만지며 조금 더 웃었다. 곧 할머니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건 우리가 이 장면을 다시 연습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할머니가 아프다고 말하며 울먹거렸다. “할머니, 이게 일본어로 뭐였죠?” 나는 방금 전까지 함께 만지고 있던 그것을 계속 만지며 물었다. 할머니는 내가 짚은 노란 꽃을 보더니 잠시 병자의 표정에서 학자의 표정으로 골똘해졌다.


“하나(花, はな).”


정작 나의 할머니가 치매로 아플 때 나는 그 곁에 없었다. 아프다는 몸을 주물러준 사람은 동생이었다. 자기를 키워 준 할머니가 해준 일 모두를 동생은 할머니께 돌려드렸다. 본인은 몰랐겠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동생은 어지러워할 때에는 슬퍼하지 않았다. 어지럼증을 앓을 때에는 슬픔을 잊어버렸다. 어쩌면 그걸 앓을 때에만 그랬다.

상한 몸은 끝까지 사랑하고 사랑받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상인지도 모른다. ‘다칠 상(傷)’안에는 해와 빛을 뜻하는‘양(?)’자가 있고, ‘상줄 상(賞)’ 속‘尙(오히려 상)’은 집과 창문을 함께 그린 글자다. 사는 동안 내게 찾아들 상처들을 창 너머 해를 쬐듯 기꺼이 앓을 수 있을까. 나는 남은 커피를 두고 포럼장으로 돌아갔다. 책상 위에 펼쳐 두었던 필통을 닫아 노트와 함께 가방에 집어넣고선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들과 닿는 몸이 나이기를, 그들이 하나의 나를 만지기를 바랐다. 잠시라도 좋으니 맞닿고 싶었던 차가운 손가락의 창백한 주인들. 그러나 포럼장은 이제 따스했고 활기로 웅성거렸다. 그들은 이미 여기 없었다. (아니, 내가 이제 거기 없었다.) 다만 늘 경계 너머로 피는 하나의 해가 있어 길고 무수한 손가락으로 전부를 어루만졌다.


1 현호정, 「제심(齊心)」, 『계간 문학동네 2024년 봄호 – 그렇게 우리는 10년을 살았다』, 문학동네, 2024. 

2 오준호, 『세월호를 기록하다』, 미지북스, 20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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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현호정(소설가)

『단명소녀 투쟁기』 『고고의 구멍』, 『삼색도』 등을 썼다. 2020년 박지리문학상, 2023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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