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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특집 리뷰] 거긴 왜 여자가 없지 - 이서수 소설가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나, 블루칼라 여자』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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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어느 옷이든 원하는 걸 주워들어 입을 수 있는 권리가 처음부터 있었다. 단지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2024.04.30)


여성이 할 수 없는 일이 분명히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성별에 따른 직업 선택은 무의미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시대다. 때론 ‘끔찍한 혼종’이라는 표현이 이 시대를 가리키는 가장 정확한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 가지 사안을 두고 다양한 의견과 행태가 분출한다. 물론 생각의 다름은 당연한 것이고 돌출된 다름은 진화를 이끌기도 하지만, 특정 생각이 편견으로 굳어지면 구조적 차별이 발생한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나, 블루칼라 여자』의 출현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는 진해 케이조선, 거제 한화오션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구술 기록을 담은 책이다. 딱딱한 설명과 거리가 먼 노동자들의 생생한 입말이 독자의 귀에 스트레이트로 날아와 꽂힌다. 용접, 사상, 도장, 밀링, 밀폐 감시, 화기 감시, 현장 청소, 건물 미화, 급식, 세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노동의 슬픔과 기쁨을 곡진하게 담아낸 판소리 무대 앞에 앉은 기분이 든다. 그들의 삶에 휘몰아쳤던 고난과 자부심이 장단을 형성해 독자의 마음을 고양시키는 탓이다. 한편으론 ‘조선소’라는 낯선 세계가 위험천만한 우리네 일터로 치환되는 동시에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는 뼈아픈 자각이 일어난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불시에 일어나는 남성 동료의 성희롱에 대처하고, 임금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며, 여성 화장실 부족 등 남성 친화형으로 설계된 공간에서 겪는 곤란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일에 대한 자부심이 그들을 기어이 버티게 하고, 더 나은 노동 환경을 소망하게 만든다. “여자들이 다 할 수 있어도 남자들이 자기 직업을 뺏길까 싶어 안 시키는 일도 세상에는 많이 있겠다 싶어요”(p.76)라는 여성 용접 노동자의 고백은 성별에 맞는 직업을 택해야 한다는 편견을 시원하게 깨부수며 판도라의 상자를 활짝 열어젖힌다. 그리하여 모든 직업이 비슷한 무게와 형태로 만든 옷이 되어 우리 앞에 등장해 어서 나를 입어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은 즐거운 상상마저 불러일으킨다. 우리에겐 어느 옷이든 원하는 걸 주워들어 입을 수 있는 권리가 처음부터 있었다. 단지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나, 블루칼라 여자』 역시 남초 직군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화물, 플랜트 용접, 형틀 목수, 레미콘 운전, 철도차량정비원, 주택 수리 기사, 빌더 목수 등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존재를 의심했던 이들의 생생한 노동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 역시 마초적인 문화와 여성 화장실 및 여성 관리직 부족을 절감하고, 기량을 떠나 ‘아줌마’, ‘이모’ 등으로 호명되는 것에 발끈하며 때론 자기 검열에 시달린다. 그러나 자부심을 갖고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를 동지로 대하는 노조에 가입함으로써 자기만의 생존법을 찾아낸다. 어떤 이는 여성이기에 여성으로 행동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반면, 다른 이는 여성이기에 여성처럼 행동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부딪히면서 해봐야 더 잘할 수 있는 일인데, 저를 배려해 준다는 이유로 제 일까지 다 하는”(p.147) 상황이 싫었다는 속 깊은 고백도 기꺼이 들려준다. 무엇이 정답인지 고심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 장에 다다를 때쯤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여성 노동자들 안에서도 각자 생존 방식이 다르기에 행동의 우위를 가르려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차별적 시선임을 말이다. 다만 그들 모두가 공통으로 외치는 말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 업계의 여성으로서 살아남아 주면 좋겠습니다.”(p.204) 그들은 남초 직군의 여성 노동자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여성들의 도전을 끊임없이 독려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파편화되지 말고 연대해서 함께 목소리를 내어야”(p.149) 한다는 말로 남초 직군에 2030 여성의 유입이 막 시작된 현재를 뛰어넘어 미래의 청사진까지 제시한다.

어떤 상황이든 예외가 있는 법이라는 말로 퉁치고 넘어갈 게 아니라, 우리의 인식이 마치 컴퍼스처럼 제 깜냥과 지성만 한 크기의 원을 그려놓고 그 안에서만 형성되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위에 언급한 두 권의 책은 여성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거의 선택하지 않은 일이 있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거기서 여자가 뭐 해?”라고 묻는 대신 “거긴 왜 여자가 없지?”라고 질문하는 것이 당연해져야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과거에 비해 활발해졌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지만 남초 직군엔 해당되지 않은 말이었다. 차별적 시선이 사회 구조로 굳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한 시기에 때마침 마주친 두 권의 책은 한없이 반갑지만, 한편으론 여자와 남자 둘 다에 속하지 않거나 속하길 거부하는 이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뒤미처 든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집도 우리에겐 반드시 필요하다.



*필자 | 이서수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4년 단편소설 〈구제, 빈티지 혹은 구원〉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당신의 4분 33초》 《헬프 미 시스터》 《몸과 여자들》 《엄마를 절에 버리러》 등을 출간했다. 황산벌청년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이다.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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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블루칼라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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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서수(소설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4년 단편소설 〈구제, 빈티지 혹은 구원〉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당신의 4분 33초》 《헬프 미 시스터》 《몸과 여자들》 《엄마를 절에 버리러》 등을 출간했다. 황산벌청년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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