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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특집] 조예은 "첫 SF와 마트 안의 도서관"

상상의 우주를 열어준 작가의 책 :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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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미래와 우주와 생명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그게 내가 처음 접한 SF였다.


채널예스 100호를 맞이해, 커버를 장식했던 17인의 작가에게 
상상의 우주를 열어준 책을 물었습니다.



2001년, 내가 살던 도시에 대형 마트가 들어섰다. 부지 면적 5만 3,553㎡ (1만 6,200평), 매장 면적 1만 3,223㎡(4,000평)에 이르는 대형 프랜차이즈 마트는 아직도 전국을 통틀어 최대 점포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오픈일에는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 도시에 살던 내 나이 또래라면 당시 그 마트의 등장이 얼마나 화제였는지 기억할 것이다. 드넓은 주차장 한편에서는 재래시장 상인들이 시위를 벌였고, 100원을 넣어야 사용할 수 있는 철제 카트들의 바퀴 소리는 압도적이었다. ‘해피’가 두 번 들어가는 중독성 짙은 CM송은 아직도 머릿속에 자동 재생된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쾌적한 마트의 출현에 마냥 들떴다.

그곳에는 모든 게 있었다. 익숙하거나 낯선 식자재들, 정갈하게 진열된 통조림과 향신료, 저마다 신선함을 뽐내는 과일들, 레토르트 식품 포장지에서조차 반짝반짝 빛이 났다. 층수는 주차장을 제외하면 지상 2층으로, 1층이 식자재와 생활용품들이라면, 2층에는 장난감과 전자기기, 인테리어 가구가 주였다. 푸드 코트는 1층 계산대 근처에 있었는데, 그 앞에는 작은 도서 코너가 자리했다.

내 기억으로, 진열대가 두어 개에 불과한 그 서점에 어린이용 도서관이 생긴 건 마트가 오픈하고 시간이 좀 지나서다. 말이 도서관이지 감자탕집 한쪽에 붙어 있는 놀이방 정도 크기의 파본이라 팔지 못하게 된 어린이용 만화책 몇 권을 가져다 놓은 게 전부였다. 어른들은 그곳에 칭얼거리는 아이를 내려놓고서 유유히 장을 보러 떠났다. 뛰거나 우는 아이도 분명 있었지만 대부분은 최면에 빠진 듯 만화책에 몰입했다. (놀이방을 관리하는 직원도 있었다. 책을 가지고 싸움이 일면 중재해 주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을 부모가 올 때까지 달래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스 로마 신화 』 『어린이용 삼국지』 『어린이용 탈무드』 같은 시리즈 만화들이 유행하던 때였다. 부모님은 만화책을 절대 사주지 않았고, 도서관은 집에서 멀었을뿐더러 인기 만화책들은 한번 대출이 나가면 제때 반납되는 법이 없었다. 마트 안의 작은 도서관은 내가 만화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런 사정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아니면 『그리스 로마 신화』가 워낙 인기를 끌었기 때문인지 그곳에는 언제나 어린이들이 넘쳐났다. 인기가 많은 만화책을 보기 위해서는 눈치 싸움을 해야 했고, 내 손의 만화책을 힐긋거리거나 당당히 내놓으라고 하는 다른 아이를 깨끗이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뻔뻔함도 필요했다. 나는 평일이고 주말이고 틈만 나면 마트에 가자고 부모님을 졸랐다. 그 도서관이 일종의 서점 마케팅이었다면 충분히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한참 재밌게 읽던 부분에서 내용이 끊긴 아이들은 장을 다 보고 돌아온 부모님을 붙들고 다음 권을 사달라고 바닥을 구르거나 오열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언젠가부터 진짜 도서관처럼 책장에 신간들이 주기적으로 입고되었다는 점이다. 담당 직원들이 꽤 큰 애정을 가졌던 건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그 뒤로 아이들을 위한 독서 공간이 있는 마트는 보지 못했다. 서울보다 저렴한 땅값으로 얻은 3,553㎡의의 부지 덕에 가능했던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마트 안의 그 작은 도서관은 어린이들이 어떤 장벽도 없이 놀이처럼 책장을 넘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이었다. ‘우주를 열어준 책’이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바로 이 비좁은 도서관에서의 독서에 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읽은 책 전에 읽은 다른 책들도 있었지만, 나에게 대형 마트 안의 작은 도서관은 ‘가장 즐거운 독서’의 첫 기억이었다. 나는 즐거운, 혹은 즐거웠던 기억으로 현재를 사는 사람이다. 설령 그 대상이 이제는 즐겁지 않다고 한들, 즐거움으로 인한 몰입의 경험은 회상만으로도 나를 어떤 고양 상태에 올려놓는다. 그러니 그 도서관에서 만난 책들 중에 꼽아보겠다. 두 개의 어린이 만화와 한 권의 SF 소설집이다. 처음 떠올렸을 땐 너무 통일성 없는 조합이 아닌가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렇게까지 현재 내 취향의 기원과 같은 책도 없을 것 같다. 기대하시라. 그건 바로,

초인기 시리즈 『으악! 너무너무 무섭다!』 와 『만화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고 당시 최고 베스트셀러였던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단편집 『나무 1, 2』다. 



앞의 두 개에 비해 마지막 책은 좀 뜬금포로 보일 수도 있겠다. 확실히 『나무』는 어린이들이 주로 이용하던 그 책장에 영 뜬금없이 자리했다. 내 생각에는 딱히 읽으라고 가져다 둔 것이기보다는, 워낙 베스트셀러였던 탓에 서서 읽는 사람들이 많아 훼손된 책을 임시로 두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책을 처음 접한 날을 꽤 생생히 기억하는데, 난생처음으로 롯데리아가 아닌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세트를 먹은 날이었다. 아빠와 엄마를 쇼핑 보낸 뒤 유유히 도서관에 들어와 앉았는데 그날따라 읽을 만한 게 없었다. 대부분 다 읽은 책들이었고, 신간은 순서를 빼앗긴 후였다. 책장을 훑던 중에 『나무』의 표지가 들어왔다. 그건 평소 내가 읽는 책에 비해 너무 두껍고 글자도 많았지만, 표지의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었다.

결국 책을 뽑아 들고  『그리스 로마 신화』 신권을 읽고 있는 아이의 근처에 자리 잡고 앉았다. 어른들의 베스트셀러를 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 공간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더랬다. (물론 그 와중에도 눈은 만화책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이는 읽는 속도가 느렸고, 쉽게 일어날 생각도 없어 보였다. 다행히 『나무』에는 중간중간 일러스트들이 들어 있던 걸로 기억한다. 지루함에 일러스트들을 먼저 훑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푸르스름한 용액 안에 잠겨 있던 뇌, 햄스터 집 같은 유리관 안에 들어 있는 남녀, 지구보다 거대한 외계인의 손, 무수한 유리구슬들…. 몇몇 그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뒤늦게 그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인간과 미래와 우주와 생명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그게 내가 처음 접한 SF였다.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읽었다.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설명이나 쉽게 상상이 어려운 장면을 곰곰이 곱씹고 짜 맞춰 보는 것 또한 재미였다. 엄마는 한 시간이 훌쩍 넘어서 카트를 가득 채운 채 돌아왔다. 내가 만화책이 아닌 줄글로 된 베스트셀러를 읽는 걸 알고는 사줄까 묻길래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은 한 번도 그렇게 물어본 적 없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으로, 나는 책과 함께 집에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대부분 읽었다. 『뇌』 『아버지들의 아버지』 『개미』 『천사들의 제국』…. 사실 너무 어렸을 때라 지금은 무슨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의 내가 뭘 제대로 이해하며 읽었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그때 매료된 건 정교하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이나 인물의 갈등, 사건의 해결보다는 활자로 묘사된 낯선 세계를 더듬는 행위 그 자체였던 것 같다. 그러다 간혹 저자의 어떤 의도나 마음에 와닿는 부분을 발견하면 전율했다. 이 에세이를 청탁받고 기억을 되짚으면서야 알았다. 내 몰입의 가장 첫 기억에 SF라는 장르가 있었다는 걸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 몰입의 즐거움은 중학생이 되면서 각종 일본 드라마와 퇴폐미 가득한 십 대가 나오는 하이틴 드라마, 혹은 연금술사와 요괴, 백발의 미소년 퇴마사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으로 넘어갔다)

거기에 지금 와서 떠올려 보면, 부지런히 챙겨 읽은  『으악! 너무너무 무섭다!』 시리즈는 내 취향의 시작과도 같지 않았나 싶다. 전혀 무섭지 않은 그림으로 그려진 섬뜩한 이야기들을 보는 게 왜 그렇게 즐거웠던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나는 많은 길을 돌고 돌아 그 두 장르를 모두 즐기는 창작자가 되었다. 신화를 닮은 초월적인 애정과 갈등에, 현실의 괴담과 유머에, 그리고 우주를 넘나드는 낯선 상상력에 심장이 뛴다.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대형 마트 안의 그 작은 도서관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묵은 기억을 되새겨 보며 불현듯 조금 씁쓸해졌다. 고향의 대형 마트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신도심에 또 다른 브랜드 마트가 들어서면서 사람이 줄었다. 서점 코너는 사라진 지 오래고, 도서관 자리에는 세일 상품을 파는 매대가 들어섰다. 나에게 가장 작은 도서관이 그랬듯, 요즘의 아이들에게도 설레며 방문할 수 있는 간소한 문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공간이 늘기는커녕 수시로 줄어드는 도서관 예산과 문화 산업 지원금 때문에 말이 많은 요즘이다. 내가 머무는 동네만 해도 체육센터는 여러 개가 있는데 걸어서 갈 수 있는 구 내 도서관이 없다. 나의 첫 책을 떠올리며, 지금 아이들의 첫 책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본다. 처치가 곤란해 대충 꽂아놓은 책 한 권이 어떤 아이의 미래에 나무처럼 가지를 뻗어 우주를 열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조예은

제2회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에서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로 우수상을, 제4회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서
 『시프트』로 대상을 수상했으며 최근작으로는 안전가옥의 첫 번째 장편소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과 『스노볼 드라이브』, 소설집 『칵테일, 러브, 좀비』『트로피컬 나이트』가 있다. 좋은 이야기에 대해 고민하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중이다.



나무
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 | 뫼비우스 그림 | 이세욱 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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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예은(소설가)

소설가.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칵테일, 러브, 좀비』, 『트로피컬 나이트』 등을 썼다. 스릴러, SF, 호러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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