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 특집] 한정현 "우리가 만나기까지"
상상의 우주를 열어준 작가의 책 : 『퀴어 코리아』
나는 다시 한번 내가 문학 바깥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지워진 존재들. 그렇지만 분명 살아 있고 살고자 했던 존재들.
채널예스 100호를 맞이해, 커버를 장식했던 17인의 작가에게 상상의 우주를 열어준 책을 물었습니다. |
하나의 책은 온전히 하나의 책으로 시작되거나 남겨지지 않는다. 이것은 뭐랄까,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이 오로지 한 사람만의 서사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과 유사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가 되기까지 수많은 사건과 사람이 얽히고 마주쳐 비로소 현재의 ‘나’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한때 나는 문학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었다.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샤워할 때도 소설을 읽고, 같은 작가와 작품을 좋아하는 타인을 찾아 헤매었다. 마치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찾는 것처럼, 그렇지 않으면 소통이 어렵다는 듯.
그때 나에게 이론가들의 언어는 먼 별처럼 느껴졌다. 아름답게 빛나지만 어쩌면 실체 없는 것. 빛나는 별을 따라가는 것도 좋겠지만, 그런 인문학을 읽는 시간에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소설을 읽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와 전혀 다른 독서를 하는 타인의 등장과 개입은 내 삶을, 적어도 독서와 밀접한 게 내 삶이라면 그 일부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나는 문학과는 별 연관도 없고, 문학에 관심이 없는 그와도 이야기가 잘 통했던 것이다.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막연함은커녕 그가 쓰는 언어와 세상이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가 쓰는 언어와 세상은 나와 한참 멀게만 느껴지던 그곳에 있었다.
“문학이 아닌 바깥에서도 문학을 찾아봐. 그편이 재밌지 않을까. 결국 문학은 세상의 일이고 관계의 일이니까.”
이렇게 시작된 일이었다. 문학 외엔 아무런 관심도 의지도 없는 내 삶의 목록이 바뀐 것은 말이다. 그리고 과연, 문학은 도처에 있는 게 확실하긴 했다. 한번 유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목록은 이제 더욱 활발하게 그 반경을 넓혀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던 시대가 궁금할 땐 일제 강점기의 생활사를, 성소수자인 친구와 가까운 이들이 궁금할 땐 퀴어 이론을, 내 처지가 무엇인지 궁금할 땐 페미니즘사를,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계보는 역시나 대중문화사를, 날씨가 염려스러울 땐 기후학을 뒤졌다. 목록은 자주 업데이트되고 끝없이 움직였다.
『퀴어 코리아』를 이야기하려면 이와 같은 많은 역사들을 되짚어 봐야 한다. 이 책으로 오기까지 나는 무수한 다른 책들과 그 안의 인물들을 마주쳤다. 그런가 하면 또 그 책들을 추천해 준 사람들과 마주했고 그로 인해 사유했다.
맨 처음 나를 문화사의 언저리로 이끈 건 『쇼쇼쇼–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였다. 이미 세상에 없는 문화 연구자가 쓴 이 책은 1960년대의 극장과 70년대의 거리, 80년대의 암흑과 같은 사건들 속에 있는 한국 문화사의 단면을 순식간에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나는 가본 적 없는 그 시절의 극장과 당시의 거리를 온종일 그와 함께 걸었다. 뒤죽박죽 엉망인 듯 보이지만, 그 여느 시절보다 억압 기제에 맞선 폭발적인 힘이 있던 1970년대를 지나며 김추자와 마주쳤을 때였을 것이다. 나는 순간 잠시 잊고 있던 소설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녀가 상징처럼 새겨질 어느 장면을 말이다. 흔히 문화사에서 1970년대가 사실 한국 문화의 융성기였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독재 정권하의 정말 폭압적인 시대이기도 했다. 어떻게 사람들은 그렇게 내달리듯 저항하는 음악과 문학과 영화를 만들어 내고 소비했던 걸까? 하지만 저 책을 읽고 문화사에 대한 끝없는 궁금증을 만들어 내던 나는 비로소 그걸 깨달았다. 한번 맛본 어떤 자유는 내려놓기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관심은 내게 한국 대중문화가 무엇으로부터 왔는지를 알아봐 달라 요청했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 과거를 알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그 감정은 『일본 대중문화의 이해』라는 책으로 데려갔다. 한국 대중문화의 토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일본 대중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 그리고 이 책은 이제 한국인의 관점에서 일본 대중문화와의 연관성을 검토해 보자고 요청한다. 『일본을 금하다』는 그렇게 나를 1970년대 어느 부산의 가정집으로 데려간다. 눈에 보이지 않아 도저히 금할 수 없는 텔레비전 ‘전파’가 넘어와 일본 방송을 자유로이 시청하던 부산의 어느 가정집. 얼핏 〈태권브이〉인 줄 알았던 그 만화가 〈마징가 Z〉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모두 이 책 덕분이었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1997년이었으나 1970년대 부산의 그 집 안의 아이도, 나도 담을 넘어 들어왔다는 ‘월경’의 일본 대중문화가 나라에서 금지한 것인지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이렇듯 책들이 열어준 다채롭고 혼돈하고 그래서 ‘인정된’ 곳에서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더욱 재미난 새로운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내가 느낀 건 내가 알고 있던 역사나 사회사 안에서뿐 아니라 그 바깥에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이들은 문학 바깥에서 존재하지만 아직 그 안에서 생명을 얻지 못한 건 아닐까,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문화사를 좋아하고 이를 끝까지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부터 나는 학교를 넘어 다니며 수업을 들었다. 그 학기에 들었던 수업에서 나는 성 판매 여성들과 그 시기 문화사를 공부할 수 있었는데 그때 뵙고 여전히 인연을 이어가는 일본인 교수님께서 일러준 저자가 있었다. 내가 직전에 읽고 있던 책이 『근대 극장의 여자들』이었으므로, 나는 다카라즈카 가극단(여성으로만 구성된 일본의 가극단)의 서울 방문과 그에 열광하던 조선 소녀들에 대해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그것을 들은 교수님은 내게 자연스럽게 이런 말을 건네왔다.
“오, 어떻게 본다면 토드 A. 헨리 교수의 글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가만히 그의 이름을 검색했고 영어로 된 글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읽으며 나는 비로소 내가 문학 바깥에서 찾아 안으로 함께 들어오고 싶었던 존재가 무엇인지를 예감할 수 있었다. 분명 존재했지만 우리가 몰랐던 사람들. 근대를 살았던 퀴어의 존재. 거기 사람이 있었고,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도 존재했을 텐데 지워졌기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바로 거기 있었다. 나는 『소녀 연예인 이보나』의 마지막 부분에서 남창 관광이 있던 그 시절의 배경을 다듬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번역본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내가 문학 바깥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지워진 존재들. 그렇지만 분명 살아 있고 살고자 했던 존재들. 이 책 속에서 그렇게 나는 다시 문학의 바깥과 안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내게도 문학은 단독으로 홀로 빛나는 무언가가 아니라 안과 밖이 연결되며 점차 밝아지는 작은 반딧불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작고 소박한 존재들이 모여 산 전체를 밝히듯이 말이다. 나는 여전히 그리고 계속 역사 속에서 여성과 퀴어, 소수자의 존재를 찾을 것이다. 이것은 문학 안에서 시작된 건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나를 문학으로 이끌었으니까.
*한정현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등을 펴냈다. 오늘의작가상, 젊은작가상, 퀴어문학상, 부마항쟁문학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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