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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특집] 결정적 장면에 밑줄 긋기

<월간 채널예스> 202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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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화된 원작 소설을 읽는 묘미는 결정적 장면이 어떻게 눈앞에 펼쳐질지 그려보는 데에 있다. 여러분의 상상은 보답을 받았는가? 드라마와 영화 속 한 장면 그리고 해당하는 소설 속 구절을 나란히 감상해 보자.


〈반지의 제왕〉 영화파 vs 『반지의 제왕』 소설파. 이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당신은 어디에 속하는가? 어느 쪽에 더 이끌리는지 답하기 위해 영화를 재생하고 책장을 넘기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이야기와 또 한 번 사랑에 빠지고, 애초에 답을 찾고 싶었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는 자연스레 잊게 된다. 매력적인 캐릭터, 독특한 설정, 결말까지 내달리는 몰입력을 가진 문학 작품들이 부지런히 드라마화·영화화되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경계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즐길 마음가짐 하나뿐이다.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연출 이경미ㅣ극본 정세랑, 이경미ㅣ출연 정유미, 남주혁, 문소리, 유태오

〈보건교사 안은영〉의 안은영(정유미 분)은 ‘젤리’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고등학교 보건교사다. 드라마가 시작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그는 학생 오승권(현우석 분)의 뒷목에서 핀셋으로 무언가를 뽑아낸다. 그러고는 하트 모양의 물렁거리는 젤리를 보며 “아 XX, 이게 뭐지?”라며 욕설을 내뱉는다. 이 장면은 앞으로 우리가 목련고등학교의 지하실부터 옥상까지 순차적으로 마주하게 될 괴상한 기운에 대한 예고다. 동시에 시종일관 투덜거리면서도 무지개칼과 비비탄총을 들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간들을 구해 낼 안은영의 캐릭터를 가늠하게 한다. 영상 속에 그려진 젤리들은 귀여움 또는 기괴함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의 취향을 두루두루 만족시키며 호평을 얻었다.


“은영은 남학생의 목에서 뽑아낸, 동물성 물질을 내려다보며 작게 끓는 소리를 냈다. 욕이 되다 만 소리였다. 학교라서 매번 삼킬 뿐, 사실 은영은 욕을 잘하는 편이었다. 학생이 놀랄까 봐 차마 말을 못 했지만 그것은 어떤 알 수 없는 동물의 손톱, 비늘, 뼈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지음 | 민음사


ENA 제공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

연출 정지현, 허석원 | 극본 지아니 | 출연 김태희, 임지연, 김성오, 최재림

〈마당이 있는 집〉의 문주란(김태희 분)은 남편 박재호(김성오 분)의 지인 김윤범(최재림 분)의 부고에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장례식장은 남편 윤범의 죽음을 맞이한 추상은(임지연 분)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남편 재호를 믿지 못하고 있는 주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소설에서 상은이 주란을 도발하는 대화는 존댓말로 쓰여 있는 것과 달리, 드라마에서는 반말로 본격적인 협박이  이루어진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고조되는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은 곧이어 연대로 바뀐다. 전작 〈더 글로리〉의 ‘박연진’을 잊게 만드는 배우 임지연의 탁월한 캐릭터 해석 능력,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김태희의 합이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 당신 남편이 제 남편을 죽였다고 생각해요. 조만간 경찰도 그렇게 생각하게 될 거예요.” 여자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남편 장례식장에서 미소를 짓다니. 그 미소는 불경스럽고 불쾌했다.”

『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디스테이션 제공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연출 김희정ㅣ극본 김희정 | 출연 박하선, 김남희, 전석호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주요 배경은 폴란드 바르샤바다. 남편 도경(전석호 분)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일상이 무너진 명지(박하선 분)는 사촌 언니의 선의 덕에 잠시 집을 떠나 이곳에 머무르게 된다. 제목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주인공이 스마트폰의 인공 지능 비서 ‘시리(siri)’와 대화를 주고받던 중 문득 듣게 되는 말이다. 영화 속의 명지는 폴란드에서 유학 중인 친구 현석(김남희 분) 앞에서도 자신이 느끼는 상실감을 온전히 털어놓지 못하는 상태다. 현석과 헤어진 후 또다시 홀로 남은 명지는 마치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마주한 듯 테이블에 앉아 시리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슬픔에 빠진 사람과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이는 인공 지능이 끊어지는 듯 이어가는 소통에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시리에게 ‘고통에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시리는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늘 그렇듯 ‘제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당신도 영혼이 있나요?”라고 했을 땐 ‘정말 좋은 질문’이라고, “그런데 전에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하고 딴청을 부렸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ENA 제공

드라마 <행복배틀>

연출 김윤철, 김준권ㅣ극본 주영하 | 출연 이엘, 진서연, 차예련, 박효주, 우정원

〈행복배틀〉은 초호화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자녀들을 ‘헤리니티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학부모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 스릴러물이다. 어느 날 송정아(진서연 분), 김나영(차예련 분), 오유진(박효주 분) 세 사람은 말 그대로 누가 더 행복한지 경쟁을 시작한다. SNS에 가족과 함께하는 완벽에 가까운 일상을 매 순간 전시하는 그들에게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게시물이 ‘좋아요’를 많이 받는 것보다 상대의 약점을 잡는 일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드라마가 시작되면 헤리니티 영어 유치원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으며 미소를 짓는 유진을 보게 된다. 행복을 연기하는 이 모습은 앞으로 벌어질 비극의 전조다. 드라마에서는 주요 인물들이 SNS에 올리는 게시물이 화면에 함께 나타나 시청자들이 한층 더 몰입하게 된다.


“남편이 나를 얼마나 끔찍하게 사랑하는가. 시댁에서 얼마나 대우와 존중을 받고 있는가. 아이 키우기는 얼마나 수월한가. 육아 스트레스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가.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하고 사랑스러운가. 얼마나 풍부하고 탄탄한 인간관계를 누리고 있는가. 이 모든 것들이 행복배틀의 주요 지표로 작용했다. 그리고 행복배틀이 벌어지는 주요 무대는 SNS였다.”

『행복배틀』 주영하 지음 | 고즈넉이엔티


KBS2 제공

드라마 <일의 기쁨과 슬픔>

연출 최상열ㅣ극본 최자원 | 출연 고원희, 오민석, 강말금

〈일의 기쁨과 슬픔〉의 강안나(고원희 분)는 중고 거래 앱 ‘우동마켓’을 운영하는 판교의 한 스타트업에서 일한다. 어느날 안나는 우동마켓에서 ‘거북이알’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요주의 인물 이지혜(강말금 분)를 만난다. 만남의 시작은 중고 거래가 이루어지는 길 위이지만, 긴 대화를 나눈 끝에 다다른 곳은 어딘가 이상한 육교다. 도로를 가로지르지 않아 아무도 길을 건널 수 없는 이 육교는 실제로 2009년경 판교 택지 개발과 함께 만들어진 조형물이라 전해진다. 원작 도서 표지에서 일러스트로 먼저 만나본 육교가 눈앞에 펼쳐질 때, 시청자들은 주인공들 곁에서 함께 걷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길을 건너기 위해 함께 육교에 올랐다. 그런데 계단을 다 올라가고 나서 어딘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육교가 길 건너편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다시 우리가 있던 쪽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육교가 도로를 가로질러야 하는데, 도로와 평행하게 놓여 있었다. 거북이알이 내게 물었다. “이상하네. 이걸 육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지음 | 창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듄>

연출 드니 빌뇌브ㅣ각본 에릭 로스, 존 스페이츠, 드니 빌뇌브 | 출연 티모시 샬라메, 레베카 퍼거슨, 오스카 아이작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 소설”이라는 프랭크 허버트의 『듄』을 드니 빌뇌브 감독이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원작의 팬들은 과연 방대한 우주 대서사가 스크린에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해했다. 마침내 2021년에 개봉한 영화 〈듄〉은 총 6권으로 구성된 『듄』 신장판 시리즈의 첫 번째 책 중에서도 일부 분량을 담고 있다.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샬라메 분)와 그의 아버지 레토 아트레이데스(오스카 아이작 분)는 우주에서 가장 귀한 자원이 있는 스페이스 사막에 갔다가 거대한 모래 벌레로부터 쫓기는 이들을 구해 낸다. 영화 속 두 사람이 비행 기계 오니솝터에 겨우 올라타 내려다보는 모래 벌레의 모습은 이를 지켜보는 관객까지 압도해 버린다.


“뭔가 새로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작게 속삭이는 듯한 소리, 쉿쉿거리는 소리, 뭔가가 모래에 부딪히며 주르르 미끄러지는 듯한 소리였다. “벌레예요.” 폴이 말했다.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더 빨리 움직여요!” 폴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ㅣ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연출 올리비아 뉴먼ㅣ각본 루시 알리바 | 출연 데이지 에드가 존스, 테일러 존 스미스, 해리스 딕킨슨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주인공 카야(데이지 에드가 존스 분)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습지의 오두막에서 가족이 모두 떠난 후 홀로 살고 있다. 카야는 별도로 고등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습지 주변으로 형성된 생태계에 대해서는 해박하다. 특히 그는 새의 깃털 같은 표본을 수집하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는 걸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등걸에 수직으로 꽂혀 있는 깃털을 발견하게 된다. 카야는 본래 자연의 순리대로라면 새의 깃털이 땅에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호기심과 반가움을 지니고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이후로도 매일같이 그 자리에 새로 꽂혀 있는 깃털이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한다. 카야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시작될 것임을 암시하는 순간이다.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드넓은 대자연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편안함을 느끼던 관객들은, 습지 바깥의 세상을 조금씩 궁금해하기 시작하는 카야에게 이입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저 대수롭지 않아 보였을 것이다. 까마귀 깃털쯤으로 짐작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카야는 그 비범한 깃털을 알아보았다. 왜가리과인 그레이트 블루 헤론의 눈썹이었다. 눈 위로 우아하게 휘어져 머리 뒤까지 뻗쳐 있는 깃털이다. 연안 개펄에서 가장 특별한 한 조각이 바로 여기 눈앞에 있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ㅣ김선형 옮김 | 살림출판사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원더>

연출 스티븐 크보스키 | 각본 스티븐 크보스키, 스티브 콘래드, 잭 쏜 | 출연 제이콥 트렘블레이, 줄리아 로버츠, 오웬 윌슨

〈원더〉의 주인공 어기 풀먼(제이콥 트렘블레이 분)은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날, “지금 있는 곳이 싫으면 있고 싶은 곳을 떠올리라.”는 엄마(줄리아 로버츠 분)의 조언에 따라 우주에 있는 걸 떠올린다. 어기가 우주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주에 가려면 반드시 헬멧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선천적 얼굴 기형을 가진 그는 자신의 얼굴을 다른 사람들이 빤히 쳐다보는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 그렇지만 일 년 중 가장 좋은 날은 모두가 가면을 쓰는 날인 핼러윈이라고 생각한다. 우주복을 입고 친구들의 환호를 받으며 길을 걷는 시간은 전부 어기의 상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관객들은 이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기도 하는데, 소년이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에 공감하고 독특한 상상력을 함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365일이 핼러윈이면 좋겠다. 그러면 누구나 항상 가면을 써도 된다. 그러면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가면 속의 얼굴을 보기 전에 서로에 대해 알 수 있을 텐데.”

『아름다운 아이』 R. J. 팔라시오 지음 | 천미나 옮김 | 책콩(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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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해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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