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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최은영, 빛이 있는 곳을 향한 회복의 목소리

<월간 채널예스> 2023년 9월호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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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지를 읽으면서 글을 썼을 때의 절실한 마음들 하나하나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소설 속 인물들이 저에게 계속 나아가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을 거는 느낌이 들어요. (2023.09.01)


렌즈와 인물 사이에 옅은 빛의 장막이 내려앉은 것 같은 사진. 두툼하게 손에 잡히는 7편의 소설. 이름을 가린 채 가판대에 누워있어도, ‘최은영’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 사이에 도열해 있어도 한눈에 알아챌 것 같은 ‘최은영스럽’고 ‘최은영다운’ 책.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비슷하고도 영 다른 이야기를 펼친다. 덮고 나면 애정과 미움이 엉킨 사이에서 지나간 시절의 어떤 구간에서 구석구석을 가로지르는 은근한 우애와 작은 연대, 언젠가 건네받은 친밀함이 피어오른다. 책 밖으로 새어 나온 희미한 빛은 우리가 늘 최은영 작가에게서 받아온 위로, 바로 그것일 것이다.



시간의 정렬 속에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지난 5년 동안 지면에 발표한 원고를 묶어낸 책인데요. 기분이 어떠세요?

그동안의 시간이 길게 느껴지진 않지만 글 쓰는 시기에 따라 상황은 달랐어요. 가장 큰 변화는 이사인데 전에 썼던 글과 후가 저는 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몫」, 「일 년」을 이사 전에 쓰고 「답신」부터 그 나머지는 이사 후에 썼는데 뭔가 쓸 때의 즐거움이 다르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두 시간이 합쳐진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예전 동네에서 보낸 시간이 비로소 마무리 된다는 기분도 들었어요. 

그 안에 팬데믹도 있었죠. 우리 모두가 처음 겪는 시기였는데요.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그 시간이 강제되니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글을 쓸 때는 그래도 좀 괜찮은데 쉴 때는 어디 출근하는 것도 아니어서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고립감이었어요.

녹록지 않은 시간 동안 마음을 지탱해준 건 무엇일까요?  

혼자 일하고 혼자 살다 보면 별로 웃을 일이 없어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데 그 애들이 저를 웃게 하고 위로를 줘요. 사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은 여행이었어요. 지금 과거형으로 말하잖아요.(웃음) 친구한테 맡기거나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고양이들과 떨어지기 싫어서 장기적인 여행은 잘 안 가요. 외박도 거의 안 하고요. 가장 좋아했던 것보다도 고양이가 훨씬 중요해요. 그만큼 고양이들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전작 『내게 무해한 사람』이 나왔을 때 제목의 후보로 두었던 것이 이번에는 표제가 되었어요. 당시에는 호기심을 못 끌 것 같은 제목이라고 반려됐는데 이번에 제목이 된 사연이 있다면요.(웃음)

안 그래도 제목을 정하면서 이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오르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이 제목은 빼야겠다 생각했어요. 이런 저런 제목을 떠올렸는데 이 모든 작품을 아우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제목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되었답니다.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의 개수가 항상 7개였어요. 우연일까요? 

개인적인 취향으로 양이 많은 책을 좋아해요. 단편집이나 에세이도 약간 볼륨이 있는 걸 선호하고. 이전 책들을 만들 때 일곱 편을 수록하니 느낌이 딱 좋더라고요. 이번에는 양으로 따지면 다섯 편으로도 될 것 같았는데 숫자를 맞추고 싶었어요.



그 시절의 마음을 알아차릴 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강사가 쓴 에세이 안에 그가 어릴 적 살던 풍경이 마치 ‘목탄으로 그린 큰 그림’처럼 묘사돼요. 어릴 적 살던 동네 중에 인상적인 풍경이 있다면요. 

어릴 때 여기저기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광명시예요. 주공 아파트 단지 안에서 계속 옮겨 다니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살았어요. 아이 때는 단지가 커 보이니까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것 같아요. 버스로 통학을 하게 되면서 광명사거리의 현란한 모습을 봤고 그 장면이 굉장히 자극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두 주인공은 강사와 학생이라는 다른 입장에 서 있지만 이들이 머무는 지형은 용산 참사라는 사회적 사건으로 두 사람을 데려가게 되죠.

항상 사람의 마음과 물리적인 공간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나 나와 가까운 사람한테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폭력적인 일이 생겼을 때 충격을 받고 상처를 받는다고도 생각했고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상처받은 줄도 모르면서 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두 사람이 혼자만 가지고 있던 경험을 나누는 점이 중요했어요. 학생에게는 평상시에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라 선생님을 더 오래도록 기억했을 거예요.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길 바랐는지 모른다.” 글의 후반부에 나오는 문장처럼 작가님에게도 앞날이 불투명할 때 불빛을 비춰준 사람이 있을까요? 

언젠가 친구와 대학 때 영향 받았던 젊은 여자 강사분들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어요. 이야기의 끝은 “그 분들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였고요.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던 분들을 떠올리며 결국 이 글을 쓰게 된 거죠. 그 분들 중에 실제로 제 결정에 영향을 끼친 분이 계셨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지 갈등하던 때 그 분의 수업을 들으면서 문학에 가까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분 덕에 제가 결국 소설가로 길을 틀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몫」에는 교지를 편집하는 인물들이 나와요. 실제로 교지 편집부에 몸담았었죠. 그래서인지 주제에 견해를 펴는 일과 그로 인한 부침 등이 생생하게 느껴져요.

그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기질 중에 하나가 강한 책임감이라 그만두고 싶어도 그러질 못했죠. 가장 오래 한 사람이 되었을 때는 회의 때 진통제를 먹기도 하고 걷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다른 구성원과도 자주 싸우고 저 자신과도 사이가 안 좋았고요. 안타깝게도 뭘 해야 행복한지 아직 모르던 시절이었어요.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읽고 쓰는 일을 배웠어요. 아마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네요.(웃음)

글을 쓰다 막힐 때 환기 시켜주는 글이 있을까요?

이번 책에 추천사를 써 주셔서 하는 이야긴 아니고요.(웃음) 저는 항상 정희진 선생님이 특별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으면 여전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어요. 처음 읽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고도 특별하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엄청 기뻤어요.

대립하는 화자들은 각자 자신의 ‘몫’의 신념을 가지고 주장을 펼쳐요. 비단 교지 편집이 아니라 일상의 어떤 일에도 대입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20년 전 대학에 다닐 때는 여성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사치스럽고 부수적인 일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마치 여성주의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 진보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일인 것처럼. 자칭 진보적이라는 사람들도 부르주아적 발상이라 받아들였고요. 그런 상황에서 느꼈던 답답함이 있었어요. 어떤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할 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상대에게 박탈감을 주는 사람들과의 경험이 항상 마음 속에 남아 있었고요. 언젠가는 이 마음에 대해 그리고 싶었어요.

「일 년」은 동갑내기 두 여자의 같으면서 다른 시간을 오버랩해서 보게 돼요. 정규직 사원과 비정규직 인턴 사원, 떠나가는 사람과 남겨지는 사람이라는 관계성 안에서 나는 누구와 더 가까울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지수는 되게 외롭고 소외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인은 최선을 다해 기업에 들어갔는데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상황을 겪어요. 그럴 때 이 사람 마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냐면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게 돼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게 가슴 아파서 먼저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미움이 습관이 될 무렵 다희를 만나요. 다희 역시 열심히 살았고 언론 고시를 준비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서 취업 시기를 놓쳐버려요. 늦은 나이에 인턴 생활을 하지만 지수 보다는 조금 더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이 만약 정규직으로 함께 일했다면 전혀 다른 관계였을 거예요. 처지와 환경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상처 줄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시절인연이라고 하나요. 

인연이라는 것은 시간을 얼마나 많이 보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아무리 짧은 인연이라도 그 사람이 나에게 미쳤던 영향이나 서로 주고받았던 깊이가 있다면 그건 언제 까지고 가져갈 수 있는 의미가 있다고 믿어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인안대교의 터널에 들어설 때 두 사람은 침묵을 선택해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어요.

인천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밤에 긴 대교를 건너온 적이 있었어요.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여자 둘이 차를 타고 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예요. 이 두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거기서부터 이 소설은 시작됐어요.   

「답신」의 인물들은 극적이지만 오히려 가장 현실에 맞닿아 있는 것 같아 읽기가 괴로웠어요. 커뮤니티 게시판에 수시로 올라와서 사소하게 넘기지만 절망적인 이야기들이 부피감이 커진 것처럼.

여자들끼리 싸우는 걸 보고 역시 여자들 사이에 의리는 없고 결국 남자를 따라간다고 쉽게 말하잖아요. 이 이야기가 만약 네이트 판에 올라간다면 언니가 미쳤다는 의견이 많을 테고요. 흥밋거리로 소비하지 말고 왜 그런지 생각해봐야 된다고 봐요. 남자에게 학대 받으면서 이혼하지 못하는 여자들의 삶에는 어디에도 기댈 데 없는 사회적인 상황이 동반되요. 소설 속에서 언니가 자신을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지해 줄 수 있는 부모를 가지거나 지켜줄 수 있는 최소한의 어른이 있었더라면 적어도 착취당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른바 손가락질 당하는 여자들만의 잘못이냐고 말하고 싶은 거죠. 사회가 선택지를 빼앗았는데 뭐 어쩌라는 거야.(웃음)

편지 형식은 인물의 감정을 우선시한 결과로 보여요.  

여성 재소자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그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자기를 포기하고 갇힌다는 거예요. 평범하게 살다 남편의 폭력에 대한 정당방위로 수감되는 여자들. 지병이 있어도 약을 안 먹고 그대로 죽는 여자들. 어느 순간 내몰려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삶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비슷한 이유로 감옥에 갔다 온 누군가가 과거의 감정을 떠올리는 데 편지가 제격이었던 거죠. 그 편지는 부칠 수 없는 편지고요.  



「파종」은 가장 덜 정치적이며 개인적인 이야기로 읽혀요.

『밝은 밤』을 냈을 때 인터뷰를 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가 쓰러진 이야기를 꺼내게 됐어요. 임종을 준비하던 순간의 기억이 굉장히 강렬했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 오랜만에 떠올린 거죠. 그때 느꼈던 건 ‘내가 정말 잊고 싶어했구나’였어요. 더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 가기 두려워 주변을 맴돌던 기억, 다른 아이들이 너무 어려 보였던 감정들이 새로이 떠올랐어요. 어린 날의 내가 소설의 토대가 되었어요.

「이모에게」에서는 오래 산 여자의 인생이 그려져요. 동시대 여성에서 그 너머로 시선을 널리 두기 시작했나 봐요.   

맞아요. 40살이 되니 시간을 상대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전에는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거든요. 또 늙음이 관념적이었다면, 이제는 구체적으로 다가와요. 엄마만 봐도 그렇고 제가 좋아하는 선배들이 노년이 되어가는 거예요. 시선이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아요.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은 한 여성과 그의 가족, 해외로 넓어진 문제 의식까지 가장 다층적인 편이었어요. 

홍콩과 싱가폴의 부유층이 다른 나라에서 온 입주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데서 오는 문제에 대해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어요. 주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갈 곳이 없어 다리 밑으로 내몰리는 모습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밝은 밤』을 쓸 때 논문을 찾으면서 우리나라 농촌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 걸 알게 되었어요. 딸이 많은 집안에서 열 살 언저리의 소녀들을 서울에 식모로 보낸 일들이요. 여성들이 노동 착취와 임금 체불, 온갖 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거죠. 그들이 이제는 노년이 되었을 텐데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들이 삶을 돌아보며 어떤 마음을 가질까 떠올려 보기도 했고요. 그런 것들이 합쳐져 이 이야기로 태어났어요.  

양경언 평론가는 해설에서 「파종」, 「이모에게」,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을 ‘돌봄 3부작’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이 세 소설을 관통하는 정서는 ‘돌봄’일까요?  

세 편 모두 국가에서 돌봄이라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인 노동으로 전가가 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여성의 돌봄 없이는 사회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걸 더욱 실감해요. 여성의 노동을 하찮게 깔보는 문화는 도대체 어디서 온 건지 항상 의문을 갖고 있고요. 엄마로 태어나 자식을 아끼는 것이 당연한 본능이라고 말하는 것에 반기를 들고 싶었어요. 혈연으로 그치는 게 아닌 더 넓은 개념의 돌봄에 대해 생각해볼 시기인 것 같아요.



글이라는 다정함

소설 속 인물들은 글에 관한 강의를 듣고 교지를 만들고 편지와 드라마를 써요. 

수록된 글들을 썼을 때가 작가 생활을 시작한지 5년째 될 즈음이라 글 쓰는 것에 굉장히 집착하고 있었어요.(웃음) 글이란 뭘까? 나는 왜 쓰는 걸까? 같은 생각을 종일 하고 있으니까 어느새 작품들 속에 항상 글이 들어간 것 같아요.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가 독자들에게 어떤 책이 되었으면 좋겠나요?

“이렇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바라도 소용 없다는 거 아시죠?(웃음) 이 책을 읽고 자신도 몰랐던 마음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면 좋겠어요. 저에게는 ‘이제 정말 작가로 사는구나’라는 실감을 갖게 해준 책인데요. 한 편 한 편에 다 애정이 있어서 그런지 교정지를 읽으면서 글을 썼을 때의 절실한 마음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소설 속 인물들이 저에게 계속 나아가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을 거는 느낌이 들어요.

여성이 피사체인 사진, 공통된 색감 등 지금까지 나온 다섯 권의 책을 한데 세워 두면 작가님 만의 부드러운 결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져요. 

저희 아빠가 항상 이야기 하세요. 조상님께 감사하라고.(웃음) 함께 하는 분들의 도움이 정말 커요. 책 디자인에 있어서 저의 제안은 원색은 안 된다는 것과 일러스트보다는 사진이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강렬한 색은 저나 제 소설과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썰렁한 대답이 되겠지만 언제나 그냥 사진이 좋았고요. 이런 요청을 잘 알아주신 실무자분들 덕분인 거죠.

올해로 데뷔 10년이네요. 작가님에게 이 숫자는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대견함과 놀라움. 처음에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었어요. 데뷔작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때그때 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어요. 한번 어긋나면 영영 기회를 잃을까 두려웠고요. 그래서 무리를 했던 적도 있었어요. 놀랍게도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너무 금방 간 것 같고 지금까지 산 40년 중에 가장 나답게 사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한 사람으로서도 작가로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어요.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그 빛이 사라진 후, 나는 아직 더듬거리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림해보곤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도. 나는 그녀가 갔던 곳까지는 온 걸까. 아직 다다르지 않았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44쪽




*최은영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5년 만에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출간했다. 이전 작품으로는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과 장편소설 『밝은 밤』, 짧은소설 『애쓰지 않아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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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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