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자를 위한 함바집, '함바데리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언니, 밥 먹고 가』 에리카팕 저자 인터뷰
이 책 속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단정하게 잘 지어진 성공담이라기보다 일이 좋았다가 싫었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에 바뀌지만, 결국 일에서 성과를 내고 보람을 얻는 것이 기쁨인 그냥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 이야기이다. (2023.08.10)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해가는 여성 노동자에게 식사를 차려준다는, 이른바 건설 현장 '함바집' 콘셉트의 인터뷰 프로그램 <함바데리카> 프로젝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까? 『언니, 밥 먹고 가』는 <함바데리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다양한 직군의 여성 노동자 11명과 브랜드 마케터 김키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민철의 대화를 담은 책이다. 이 책 속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단정하게 잘 지어진 성공담이라기보다 일이 좋았다가 싫었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에 바뀌지만, 결국 일에서 성과를 내고 보람을 얻는 것이 기쁨인 그냥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 이야기이다. 하지만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위해 분투하는 이들이 함께 나눈 밥상 위 이야기에는 특별한 반짝임과 짙은 온기가 느껴진다. KBS 일반인 관찰 예능 프로그램 <요즘것들이 수상해>에서도 소개된 이 흥미로운 프로젝트의 기획자이자 대화집 『언니, 밥 먹고 가』의 저자 에리카팕을 만나보자.
『언니, 밥 먹고 가』를 통해 작가님을 처음 접하는 독자분들께는 '에리카팕'이라는 이름도, '함바데리카'라는 공간도 생소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작가님과 '함바데리카'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요리먹구가 라는 직함으로 요리와 게더링을 기반으로 한 여러 가지 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하고, #텍스트셰프 라는 직함으로 요리조리 맛깔난 글을 쓰기도 하는 에리카팕입니다. '에리카팕'이라는 이름은 2017년에 독립 출판을 시작하면서 짓게 된 필명인데, 지금은 이 이름이 본명보다 익숙해서 대부분 저를 '에리카나 팕님'으로 많이 불러주세요. 많이 궁금해하시는 제 본명은 '박지윤'인데요. 기라성 같은 동명이인 선생님들이 많이 계셔서 저만 검색되고 싶은 마음에 중학교 때부터 영어 학원에서 쓰던 영어 이름으로 지은 필명입니다.(에리카박이라는 영어 선생님도 계시더라고요!) 아무래도 '팕'은 안 계시지 싶어, '에리카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함바데리카'는 여성분들을 두 분씩 저희 집으로 초대해서, 함바집 콘셉트로 밥을 차려드리면서 일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한 프로젝트입니다. 7년 동안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다가 2021년 7월에 마침내 퇴사를 하고, 돈도 있고 시간도 있고 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도 있다는 상태에서 감행했던 프로젝트예요. '나만 이렇게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고 사는 건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고 만족하고 사는 걸까?' 같은 궁금증이 늘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그래서 밥을 차려드리고 일과 커리어에 대한 귀한 이야기를 밥값으로 받았습니다.
<함바데리카> 프로젝트를 대화집으로 엮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처음 <함바데리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사실 유튜브로 만들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밥도 차리고 인터뷰도 정리하고 영상도 편집한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한 팀이 오시면 기본 4~5시간은 함께 이야기했던 양이라 영상 리소스도 대단히 많았고 품이 대단히 많이 드는 일이라 혼자서는 다 해낼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총 20팀 중에 10팀 정도 진행했을 즈음에는 영상이 아니라 텍스트로 이 이야기들을 세상에 꺼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에리카팕의 중구난방>이라는 개인 유료 뉴스레터를 통해서 함바데리카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공유하게 됐었고요. 그러던 당시에 요리책, 에세이 등 여러 가지 선택지를 제안받았는데, 책을 만들 수 있다면 함바데리카 프로젝트를 책으로 남기는 게 그 당시의 저에게나 또 참여해주셨던 인터뷰이분들에게나 가장 좋은 선택일 거라고 생각해서 대화집을 만들게 됐어요.
도서의 시작을 여는 '함바데리카'의 레시피들에 눈길이 가는데요, 메뉴 선정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자신있는 요리들이셨을까요?
당시에는 사실 한식에는 그렇게 자신만만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해가는 여성 노동자를 위한 함바집'이 콘셉트이었기 때문에, 노동 현장에서 드시는 음식들을 많이 탐구해봤어요. 가장 힘이 나게 하는 제육볶음을 비롯해서 노동 현장에서 부담 없이 많이 드시는 한식 메뉴들을 기본적으로 보게 된 것 같아요. '된장찌개', '호박전', '막걸리' 같은 메뉴를 구성하게 됐어요.
'함바데리카'에서 이뤄지는 대화들을 보면, 서로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깊은 속내까지 마음편히 털어놓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방문자들이 이렇게 편안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하는 작가님의 비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지만 '같이 밥 먹은 사이'라는 점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식당에서 식사한 게 아니라 제가 직접 차려드린 밥을 드셨기 때문에 조금 더 저한테 마음을 열어주시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또, 저희 집은 알록달록하고 물건도 많아요. 그게 아늑한 다락방 같은 분위기라 마음이 편해진다는 말씀도 많이 해주시기도 했고요.
『언니, 밥 먹고 가』를 읽으며 누군가는 잘해내고 있다는 위로를, 누군가는 더 나아가야겠다는 자극을, 누군가는 잘 할 수 있다는 응원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했습니다. 작가님께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 것, 또는 얻으신 건 무엇일까요?
『언니, 밥 먹고 가』의 에필로그를 마무리하고 몇 달 후에 <유퀴즈 온 더 블록>에서 이금희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인생은 너무나 남루한 것이어서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괜찮은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있지 않다면 우리는 견딜 수 없다." 제가 함바데리카를 마무리하면서 느낀 점과 같은 결의 말이었습니다.
에필로그에도 썼지만 고민이 없는 시기, 고민이 없는 분이 없었어요. 그래서 누굴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누굴 무시하거나 깎아내릴 권한도 그 누구에게도 없고요. 우리가 서로 할 수 있는 일은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것, 더 자세하게는 좋은 말, 좋은 맛을 나누는 것이 가련한 존재들끼리 인생을 잘 사는 작지만 엄청난 일인 거죠. 꼭 함바데리카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좋은 맛, 좋은 말을 나누셨으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언니, 밥 먹고 가』를 통해 함바데리카에 방문하게 될, 오늘도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해나가고 있을 여성 노동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 미! 잘! 하! 고! 있! 다!
자신의 세계를 건설해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생각을 오래 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잘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반짝이는 인사이트로 가득 찬 작가님의 다음 프로젝트도 기다려집니다. 계획하고 계신 다음 활동이 있으실까요?
정확히 계획하고 있는 일은 아니지만, 기회가 있다면 대학생들 또는 20대들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의 직업 또는 상태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시기를 꼽자면 20대더라고요. 전공과는 상관없이 그 시기에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가 커리어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서 지금 20대들은 어떤 경험을 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응답하라 1994>에 나오는 하숙집 같은 느낌으로 '하숙데리카'라는 이름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에리카팕 1990년 9월 8일생. 김연아와 생일이 3일 차이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2017년 5월 25일 독립 출판을 시작하며 '에리카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7년 동안 적성에 안 맞는 회사를 다니며 소셜 다이닝 프로젝트 <잇어빌리티>를 병행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퇴사를 감행. 지금은 '요리먹구가'라는 스스로 만든 직함으로 요리와 개더링(gathering)을 기반으로 한 여러 가지 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최근에는 '텍스트 셰프'라는 새로운 조합으로 요리조리 맛깔난 글을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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