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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의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꼬마에게 보내는 편지

<월간 채널예스> 202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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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는 그날, 꼬마가 나의 자아일 것이라는 오래된 오해에서 벗어났다. 꼬마는 나의 중요한 분신이되 나 자신은 아닌 것이다. 진정한 나 자신은 나의 회복과 발전을, 궁극적인 자유와 해방을 원할 것이다. (2023.08.04)

일러스트_김미화

문제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적어도 나에게 문제가 존재하긴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다. 나는 그 문제가 어린 시절의 상처, '해리 포터'에서 영원히 울부짖는 '모우닝 머틀(Moaning Myrtle)'처럼 나의 내면에서 비명과 통곡을 멈추지 않는 꼬마의 존재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꼬마의 상처가 치유에 이르고 끝없는 통곡과 비명을 멈추는 날, 나의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나 자신의 실체가 알고 보면 그 꼬마라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십 대 후반에 이른 점잖은 중년 여성 소설가 심윤경이지만 실상 그 자아는 한평생 M에게 억압당하고 기만당한 삶에 분노하여 파들파들 떨고 있는 꼬마다. 꼬마를 콕 찌르기만 하면 그 아이는 곧바로 찢어질 것처럼 외칠 것이다.

"억울해!"

꼬마는 억울하다. 자유를 빼앗긴 것이, 생각과 행동을 억압당한 것이, 모든 일에 눈치 보고 주눅 들어 살았던 것이, 언제나 야단맞고 모욕받고 박탈당했던 것이 억울하다. 그 모든 것이 다 사랑이며 너를 위한 것이라는 말을 믿었던 것이 가장 억울하다. 꼬마는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에서 과거 속으로 소멸되지 않고 현재에도 영원히 억울하다고 울부짖으며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되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실체요 본체라고 생각했다. 오해받고 모욕당한 꼬마가 곧 나니까, 꼬마의 억울함을 들어주고, 그 아이의 서러움을 이해해 주는 것, 그 아이가 더 이상 억울하지 않고 서럽지 않다고 선언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내가 해방되는 길이라고 믿었다.

어느 날 그게 아닐 수도 있음을, 우연히 깨달았다.

나는 애주가다. 평소에 맥주나 와인 한 잔을 앞에 두면 세상 행복하고, 중국 음식을 먹을 때는 고량주를 곁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주는 즐기지 않고, 몇 달 동안 술 생각을 아예 까먹고 지내기도 한다. 술보다는 안주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한잔 나누는 것도 좋고, 어느 날 문득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는 것도 좋아한다. 폭음이나 주정과 거리가 멀고 의존 성향이 없는 평범하고 모범적인 음주자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10년에 한 번쯤, 알딸딸하게 기분 좋은 정도를 넘어 주체할 수 없도록 취해 버리는 날이 생긴다. 어느 날 나는 처음 만나는 분과 저녁을 함께하게 되었는데, 불길하게도 약속 장소가 중국 음식점이었고, TV 화면에는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초현실적인 장면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처음 만난 우리는 갑자기 세계 질서와 한반도의 미래와 인간의 운명과 본성까지 논하는 열띤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저녁 9시 이후의 일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분은 액정이 깨진 휴대폰과 운신하지 못하는 나를 집까지 무사히 배달하는 데에 성공했고, 남편은 나를 이어받아 물을 먹이고 밤새 등을 두드려서 살려놓는 데에 성공했다. 10년에 한 번쯤 일어나는 망신스러운 대폭음의 밤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때 틀림없이 이어지는 운명은, 그다음 날 아침에 피할 수 없이 중요한 일정이 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다음 날 아침에 나는 새로 꾸리는 독서 클럽의 첫 모임이 약속되어 있었다. 다행이랄까, 다른 술을 섞어 먹지 않고 순수하게 고량주만 마셔서, 반쯤 죽었다 깨어났지만 숙취가 아주 심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소 어질어질하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하며 아주 조신하게 모임 장소로 나갔다.

처음으로 만나 눈이 반짝반짝한 신입 회원님들은 궁금한 것도 많아서 그날따라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알코올의 충격으로 뇌 기능이 저하되어 말을 알아듣고 대답하기에 2초쯤 시간이 걸렸다. 나는 평소보다 좀 더 신중하게 듣고 대답하면서 그럭저럭 티 나지 않게 대화를 잘 넘기고 있었다. 내가 지난 5년 동안 겪었던 글 막힘 현상과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하자(그때는 내가 난독증에 이른 것을 아직 모르던 때였다) 신입 회원들은 무척 놀라고 안타까워했는데, 한 분이 이런 제안을 해주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에세이에서 읽었는데요. 그분도 역시 한 글자도 써지지 않는 슬럼프를 겪으며 몹시 고통스러웠다고 해요.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아침 일찍 카페에 가서 평소 마시지 않던 에스프레소 한 잔을 원샷 했는데, 카페인발이었는지 눈이 번쩍 떠지면서 갑자기 글이 다시 써지기 시작한 거예요. 이후로 아침 일찍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원샷 하고 글을 쓰는 루틴이 만들어졌고, 그렇게 흐름을 되찾고 슬럼프를 극복하셨다고 해요. 작가님도 그런 방법을 써보시면 어떨까요?"

평소와 같았으면 나는 그 말에 깃든 깊은 애정과 염려를 느끼고, 그 방법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마음속으로 가늠해 보았을 것이다. '아니야, 그런 걸로 잘될 리가 없어' 하는 익숙한 위축감에 신속하게 도달했겠지만, 아무튼 그런 식의 따뜻한 염려와 권유를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고, 나에게는 심리적으로 늘 오가는 익숙한 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나의 뇌는 갑자기 과량 투여된 알코올과 싸우느라 정상적인 상태에 아직 돌아오지 못했고, 작동 속도가 평소보다 2초가량 느렸다. 뇌가 익숙한 방식으로 작동하기까지 간격이 벌어진 그 2초 사이에, 마음속에서 처음 듣는 낯설고 되바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왜? 누구 좋으라고?"

나는 잠시 고통을 참는 것처럼 몸을 웅크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 들려온 놀라운 목소리에 큰 충격을 받아서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날 독서 클럽을 큰 실수 없이 잘 마쳤다. 실수는커녕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는데, 나의 자아라고 생각했던 꼬마가 실제로는 나의 회복을 바라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일러스트_김미화

꼬마는 내가 회복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지점이었다.

내가 회복되어 필력을 되찾기를 간절히 원하는 한편으로, 때로 회복을 두려워하기도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는 별걸 다 두려워한다. 영영 회복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동시에, 완전히 회복되어 멀쩡해질까 두려워한다. 내가 완전히 회복된다면 M은 나의 상처나 아픔이 가짜였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것 때문에 나는 완전히 회복된 나를 상상할 때 심란해지고 마는 면이 있었다. 그건 상당히 회복에 이른 지금 실제로도 내가 수시로 밸이 꼴리곤 하는 부분이며 내가 처한 현실이다.

하지만 꼬마가 나의 회복을 아예 바라지 않았다면, 그런 비틀린 내심을 깜찍하게 숨기고 오로지 상처받은 피해자로 행세하고자 한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피해자이기만을 원한다면, 그건 다른 이야기였다. 회복을 두려워하는 것과 회복을 원치 않는 것은 다르다.

M은 내가 쓰는 글이 그의 영광에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고, M의 영광과 반대로 가는 글이라면 차라리 읽고 쓰지 못하는 게 낫겠다고 서슴없이 저주를 퍼부었다. '나'라는 한 존재의 모색과 발버둥을 자신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으로만 가늠하는 M의 마음은 어리석음이고 사악함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꼬마 또한 나의 몸부림과 투쟁이 자신의 상처에 복무하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던 셈이다. 자신의 상처를 퇴색하게 할까 봐 회복 좋아하시네, 누구 좋으라고 하고 은밀히 훼방 놓는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M이나 다르지 않은 어리석음과 사악함이 아닌가?

그리하여 나는 그날, 꼬마가 나의 자아일 것이라는 오래된 오해에서 벗어났다. 꼬마는 나의 중요한 분신이되 나 자신은 아닌 것이다. 진정한 나 자신은 나의 회복과 발전을, 궁극적인 자유와 해방을 원할 것이다. 상처에만 집착하느라 그 상처가 아물지 않기를 바라는 꼬마는 나 자신이 아니다. 그날 나는 나 자신과 거의 구분 짓기 어렵도록 밀착되어 들러붙어 있었던 꼬마를 분리해 내어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데에 생애 처음으로 성공했다. 전날 밤 북미 정상 회담 뉴스에 흥분해 폭음해 버린 고량주의 작용이 아니었다면 나는 은밀하게 종알거리는 꼬마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자주 할 일은 아니겠지만 폭음도 뜻밖에 인생의 중요한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때부터 천천히, 나는 회복으로 향하는 방향을 재설정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M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길이어야 했지만 마찬가지로 꼬마의 눈먼 고집과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 방향이어야 했다.

M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꼬마는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꼬마야. 너의 상처와 아픔을 알아.

그것이 거짓이거나 가짜가 아니라는 걸 알아.

하지만 네가 너이기 위해 그 상처가 꼭 필요한 건 아니야.

너는 놀라운 아이야.

너는 빛나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가졌고,

고난 속에서도 그걸 잃거나 포기하지 않았어.

오히려 상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너만의 방식을 키웠어.


아이들의 웃는 얼굴 뒤에 숨은 눈물과 상처를 꿰뚫어보는 눈을 가졌고,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방법을 터득했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 어루만지는 노래를 불렀어.

너는 너를 도와준 사람들을 알아보았고,

그들이 너를 도와준 방법들을 빠짐없이 기억해서 다른 사람에게 베풀었어.

너는 M이라는 칼날 같은 바위를 디디고 오른 피 묻은 맨발의 전사야.

너처럼 용감한 아이가,

그깟 상처 따위 움켜쥐고 있지 않아도 돼.

보내버려. 웃어도 돼.

다시 노래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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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심윤경

소설가. 장편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영원한 유산』, 『설이』 등과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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