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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그러라 그래, (넌) 그럴 수 있어. 근데 나도 그럴 수 있어! (G. 가수 양희은)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49회) 『그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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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예쁘게 차려서 네가 너 자신을 대접해라.' 좀 작은 것 같지만 중요한 거예요. 자기가 자기를 대접하는 거. 그리고 진짜 내가 뭘 할 때 즐겁고 뭘 하면 낫게 할 수 있는가를 찾아서 챙겨야 해. (2023.07.13)


노래를 만들고 부를 때마다 나는 바람을 떠올린다.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모를 바람이 엄청난 회오리바람이 되고 모든 걸 휩쓸어버리는 막강한 토네이도가 된다. 바람의 일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바람! 시작도 끝도 없는 바람. 바람의 시작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바람의 곳간을 누가 알까?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다. 인생도 바람 같은 것. 

바람은 볼 수도 없다. 나뭇잎이 흔들리고 머리칼이 나부끼면 바람이 지나간다고 알밖에. 우리 역시 바람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스치듯 지나가는 삶일 뿐! 누가 바람을 잡을 수 있으랴. 두 주먹을 펴보아도 빈 손바닥 가득 잔주름 많은 손금만 보인다. 바람처럼 스치면서 지나자. 한 번 불어가는 바람이 되어 머물지도 되돌아가지도 말자. 

어린 시절 노래로 품을 팔기 전, 우리 집 앞 느티나무에 기대어 노래하면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나무는 다 들어주었다. 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날 때, 나뭇잎이 사사사- 흔들리면 그게 꼭 나를 토닥거려주고 박수 쳐주는 것 같았다. 내 등을 토닥여준 바람처럼 누군가에게 나의 노래가 그런 응원이 되길 바라며 나는 노래에 바람을 담는다.

양희은 가수가 쓴 『그럴 수 있어』에서 읽었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가수 양희은 편>

"노래는 되불러주는 이의 것"이라 말하는 음악가를 모셨습니다. 한국 포크계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에세이 『그러라 그래』『그럴 수 있어』의 저자. 가수 양희은 님입니다.

황정은 : 벌써 2년 전인데요. 팬데믹 기간에 『그러라 그래』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내셨고, 이번에 『그럴 수 있어』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또 한 권 내셨어요. 기분이 어떠세요?

양희은 : 그냥 무덤덤해요. '책을 내야지!' 하고 원고를 쓴 게 아니라서요.

황정은 : 그러게 말입니다. 연재 원고였잖아요. 

양희은 : <월간 여성시대> 2년치 원고가 일단 있고요. 그리고 요즘 <한겨레>에 '양희은의 어떤 날'이라고 해서 한 달에 한 번 연재하고 있고, 그것도 마감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나던데요. 저는 치매 예방을 위해서 써요. 집중력,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을 모아서 정리하는 것, 그런 훈련이 필요할 것 같아요. 앞으로는.

황정은 :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마감을 지킬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능력이거든요. 

양희은 : 거대한 명제를 놓고 쓰는 분들을 보면 원고를 쓰기 위해서 담배를 세 갑을 태우고 막 이러신다고 그러는데 저는 비교적 그런 거 없이 멀뚱멀뚱하다가, 또 다큐도 보다가, 한 문장이 딱 떠오르면 그때부터 쓰기 시작해서 그날로 끝내지는 못해요. 사흘은 묵히는 것 같아요. 묵혀둬야만 좀 마음이 편안해요.

황정은 : 맞습니다. 저도 글 쓸 때 그렇게 써요. 항상 그날 쓴 글은 이튿날에 보면 개고할 부분이 보이고 그래요. 

양희은 : 그렇군요. 노래도 그래요. 취입할 당시에는 '오케이!' 그래서 오케이인 줄 알았죠. 다음 날 듣고 또 다음 날 듣고... 이미 기차는 떠나갔는데, 오케이가 나서 세상에 알려졌지만, 들을수록 그런 게 있죠. 그렇다고 계속 취입을 미룰 순 없거든요.

황정은 : 그렇죠, 소설은 그래서 나중에 책으로 나오고 나서 잘 안 보게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양희은 : 가수도 자기 노래 안 들어요. 옛날에는 LP를 '앨범'이라고 그랬거든요. 그게 살면서 사진 찍어서 모아둔 앨범 같아요. (사진 앨범을 보면) 당시에는 최고 멋쟁이처럼 친구들하고 멋 부리고 찍었는데 몇 년이 흘러서 보면 진짜 너무 우스워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잖아요. 그거랑 똑같아요. 앨범도 그 당시에 내가 세상을 보는 여러 가지가 담겨 있어서 정말 치기 방탕하고, 세상을 보는 시건방짐과 이런 게 그대로 있거든요. 노래 속에 있어요. 행간처럼 음과 음 사이에 있어요.

황정은 :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 이 두 가지 말은 선생님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은데요. 타인을 인정하고 헤아리고 수용하려는 마음하고, 그리고 담대함을 다 담은 말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그 말들을 왜 자주 하게 되셨어요?

양희은 : 모르겠어요, 내가 왜 그러는지. 하여튼 후배들이 와서 나한테 일러바치는 일들이 좀 있어요. 자기네들이 살면서 황당하고 그런 거. 그러면 실컷 다 듣고 '아유, 그러라 그래' 그러다가 어떨 때는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너도 그럴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말버릇이 되다 보니까, 흉내 잘 내는 개그맨들이 제 흉내를 낸 거예요. 김영철이 특히 그렇게 과장해서 내 흉내를 내니까 오히려 내가 그 친구 거를 모사하고 있어요.(웃음)

황정은 : 선생님은 부지런히 쓰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20년 넘게 <월간 여성시대>에 글을 쓰고 계시고요. 다양한 매체에 기고도 하시고, 1993년에 첫 에세이로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을 쓰셨습니다. 선생님에게 쓴다는 것, 그리고 쓰는 시간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양희은 : 차분히 자기를 정리하는 시간.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그런 의미에서 참 좋은 치료법이기도 하고, 자기 객관화가 좀 되기도 하고. 써놓고 읽으면서 거의 드라마 보듯이...

황정은 : 나의 인생을.

양희은 : 저는 그런 건 좀 잘해요. 속어로 자뻑이 없어요. 자기가 자기한테 취해서 '괜찮아, 이 정도면' 이런 거 없어요. 항상 한 발짝 떨어져서 제 자신한테 '웃기지 마라', '너무 과장이야', '오바하지 마라' 항상 그런 게 있어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한 발 떨어져서 또 다른 내가 나를 보고 있어요.

황정은 : 선생님의 글은 읽는 사람한테 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양희은 : 좋죠?

황정은 : 네, 그래서 좋고요.

양희은 : 짧은 시간에 통독할 수 있죠. 3시간에서 3시간 반.

황정은 : 그렇습니다. 저는 한 3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책 한 권을 읽는 데. 그리고 아무 데나 펼쳐 들어서 바로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그런 글이었어요. 일단은 사람들이 아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말투가 있는데...

양희은 : 음성 지원.(웃음)

황정은 : (웃음) 맞습니다. 책을 펼쳤는데 찬조 출연으로 곁에 와 계시다.(웃음) 워낙에 글을 말하듯이, 지금 말씀하시듯이 편하게 쓰신단 말이죠. 비결이 있을까요?

양희은 : 말이 직업이니까요. 저는 1971년부터 마이크 앞에서 말을 했는데, 그 당시에는 원고가 없었어요. 

황정은 : 아, 그랬습니까? 

양희은 : 작가라는 건 없었어요.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작가를 붙여준 게, 1978년에 제가 처음이었어요. 항상 오프닝이나 엔딩 멘트는 직접 썼고요. 작가 없이 항상 내 얘기를 하고 내가 오프닝을 쓰고 또 엔딩을 쓰고, 그것이 사실은 1971년부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깊어요. 제가 (한국을) 떠나 살던 거, 여행하고 암 수술하고 이런 세월 빼면 4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거든요. 그렇게 말을 어쨌든 해야 되고, 한 번 뱉은 말은 주울 수가 없어요. 그런 것이 그냥 기본으로 훈련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황정은 : 오랫동안 작사도 해오셨잖아요. 저희가 언뜻 생각하기로는 가사를 쓰는 일이 시를 쓰는 것하고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론 어떻습니까? 선생님에게는 에세이 쓰기하고 가사 쓰기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비슷한지도 궁금해요.

양희은 : 에세이는 펼쳐 쓰고 노랫말은 접어 쓰는 거죠. 일단 먼저 멜로디가 나왔으면 거기 맞춰야 된다는 제한이 있고, 어떤 경우에는 가사가 먼저 나오고 멜로디가 붙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멜로디가 있는 데다 가사를 붙이기도 하고, 또 작사 작곡을 다 하는 사람 중에는 동시에 나온다고도 해요. 사람마다 다 다른데 저 같은 경우에는 멜로디에 가사를 많이 붙이죠. 어떤 얘기는 그냥 한나절에 다 나와요. 얼마 걸리지도 않아, 한 시간도 안 걸려. 어떤 건 며칠 밤을 머리털을 쥐어뜯어야 되는 경우도 있어요. 시보다는 쉽겠죠. 왜냐하면 시는 순전히 머리, 가슴으로 하지만 우리는 선율이 주는 어떤 영감이 있거든요. 어떤 선율을 딱 들으면 '아, 노을! 해질녘!' 이렇게 단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아침' 이런 식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멜로디가 있어요. 그럴 경우엔 조금 쉬워요.

황정은 : 노래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요. '아침 이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김민기 선생님이 부른 노래가 너무 매혹적이라서 현장에서 찢어진 악보를 주워다 연습을 하셨다는 이야기도 너무 놀라웠고, 책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이 노래가 양희은 선생님의 노래가 된 과정이 『그러라 그래』에 실려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번 책에서는 그 뒤의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젊은 날에 어쩌다가 휘말린 시위대의 물결 속에서 사람들이 부르는 '아침 이슬'을 들으신 거잖아요. 저 앞에서부터 그 노래가 마치 파도처럼 다가온 거죠. 선생님에게 그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습니다.

양희은 : 진짜 깜짝 놀랐어요. 신촌 로터리에서부터 이렇게 들리는데, 내가 부른 그 '아침 이슬'은 아니더라고. 왜 똑같은 노래가 이렇게 다르지? (싶었어요) 나는 그 날을 스틸 사진처럼 간직하다가 나중에 '노래라는 게 어떤 사회성을 가질 수도 있구나, 개인의 서정뿐 아니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될 경우에는 노래의 무서운 힘, 어떤 사회적인 연대, 묶어주는 힘, 이런 것이 될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다음에 노래의 운명 같은 걸 생각하게 됐어요. 나하고는 상관없는 그 노래의 운명. 노래마다 명줄이 있어요. 5년 가는 노래, 10년 가는 노래, 100년 넘도록 살아남는 노래... 그런 게 있죠. '아침 이슬'은 어쨌든 그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 뭔가 우글우글거리는 어떤 거를 표출할 수 있는 노래로 사람들이 그 노래를 선택한 것 같아요. 

황정은 : 그러게 말입니다.

양희은 : 그렇죠? 그건 노래를 만든 사람이나 노래를 세상에 처음 부른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다른 일이에요.

황정은 : 이번 책을 통해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내셨지만 사람들, 특히 후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이 담으신 것 같습니다. 4장에 실린 글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용납하고 사랑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혹시 있을까요?

양희은 : 끝 간 데까지 가야죠. 그래야지 떨치고 올라오지. 마음의 끝 간 데까지 가면 이제 일어나서 비척거리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거기서 계속 진흙탕에 코를 처박을 수도 있죠. 그거는 함부로 단언 못해.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기본이 돼야지. 난 그런 면에선 대승보다는 소승 쪽이에요. 자기가 자기를 일으키고 두 발을 딱 버텨야 손잡아서 누구도 끌어줄 수 있는 거지, 자기도 흔들리고 무게 중심 못 잡고 그러는데 자기 같은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겠어요. 그렇게 보면, 나도 참 나를 사랑 안 하는 사람 중에 하난데, 가장 사랑하는 사람한테 하듯이 네가 너한테 해줘라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밥을 예로 들면 예쁘게 차려서 네가 너를 대접을 해라. 이런 거 참 작은 것 같지만 중요한 거예요. 자기가 자기를 대접하는 거. 그리고 진짜 내가 뭘 할 때 즐겁고, 뭘 하면 그래도 조금 낫게 할 수 있는가를 찾아서 챙겨야 돼. 즐거움을 자꾸 만들어야 돼요. 좋아하는 걸 할 때 기쁜 거, 그런 걸 만들어야 돼.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위로하고 대접해 주는 거지.



*양희은

세대와 장르를 뛰어넘는 53년 차 가수. MBC 라디오 <여성시대>를 24년째 지키고 있는 라디오 DJ이기도 하다. 꽃과 나무를 사랑하고, 혼자 떠나는 여행을 즐기며, 이른 아침 사람 없는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이 기쁨이다.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있어야 살아 있는 노래가 나온다고 믿는다. 자신이 부르는 노래와 삶이 다르지 않은 가수, 보이지 않지만 쉼 없이 부는 바람처럼 머무르지 않는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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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양희은 저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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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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