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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북커버러버] 우리는 환원한다 -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

6화 -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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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상상하는 건 결국 환원하는 과정이다. 환원한 빈자리에 우리는 의미를 새로 채운다. (2023.07.13)


격주 목요일, 소설가 김중혁이 좋아하는 북커버를 소개하는 칼럼
‘김중혁의 북커버러버’를 연재합니다.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 책표지

음악을 열심히 듣고 음반을 부지런히 사 모으던 시절에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음반 커버만 보고도 내 취향의 음악인지 아닌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음반 가게에 가서 매대에 펼쳐진 음반을 쭉 훑어보면 대충 가늠이 됐다. 짙은 화장을 한 남자들이 단체로 등장하거나 야생 동물이 울부짖으면 보나마나 헤비메탈 음악이다. 사람의 상반신이 알맞은 크기로 들어가 있으면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일 확률이 높고, 만화풍의 도시 일러스트가 있으면 시티팝, 기하학 무늬와 모호한 형태의 도형이 등장하면 프로그레시브 음악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음악을 듣지 못한 채 새로운 음반을 사야 할 때 자주 써 먹던 기준이다. 정보가 전혀 없는 음악을 앨범 커버만 보고 사는 재미가 있었다. 실패하기도 했지만, 실패도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모노톤이나 강렬한 색이 많이 담기지 않은 풍경 사진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음반을 사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때는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음반을 집어들었던 순간이다. 이제는 패션 아이템으로 더 유명해진 <Unknown Pleasures>의 음반 커버를 보면서 나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림 속의 형태를 산맥이라고 생각한다면 포크 음악일까? 음파를 표현한 것이라면 일렉트로닉일까? 삐죽삐죽 튀어나온 것이 괴수의 뿔이라면 하드코어한 메탈에 가깝지 않을까? 내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음반 가게 사장님에게 물었다.



"이 음반, 장르가 뭐예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장님은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그냥 들어봐요. 무조건 좋으니까." 

"어떤 그룹이랑 비슷한 음악인데요?" 

"비슷한 게 어디 있어요. 다 다르지. 그냥 믿고 들어보라니까요." 

음반을 하나라도 더 팔고 싶어하는 사장님의 술책이라고 하기에는 목소리가 몹시 진지했다. 그날 밤, 나는 조이 디비전의 음악에 빠져들었고, 장르로 음악을 구분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음반 커버로 음악을 상상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조이 디비전의 음악은 '포스트 펑크'라고 알려져 있지만, 나는 장르의 이름이 조이 디비전의 음악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암울한 베이스 기타 소리와 세상을 질타하는 듯한 드럼과 우울의 극치에 도달한 보컬과 몽글몽글한 꿈을 꾸는 듯한 기타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설명하기 힘든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앨범 커버를 디자인한 피터 새빌에 대해서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피터 새빌은 디자이너이자 조이 디비전의 음악을 완성시켜 준 사람이었다. 조이 디비전의 멤버인 '버나드 섬너'가 천문학 책에서 찾아낸 이미지 하나를 피터 새빌에게 보내왔다. 처음으로 발견된 펄사에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모양이었다. 천문학자들은 펄사의 신호를 외계인의 것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정보가 없었다. 그야말로 미지의 신호였다. 피터 새빌은 주변을 까맣게 만들어서 이미지가 우주에서 막 도착한 것처럼 표현했다.

피터 새빌이 만든 <Unknown Pleasures>에는 앨범 제목이 적혀 있지 않다. 뮤지션의 이름도 없다. 펄사 신호만 어둠 속에서 외롭게 출렁이고 있다. 피터 새빌은 이렇게 말했다.

"그게 음반 커버처럼 보이지 않기를 원했어요. 젊은 세대는 이름표가 달린 것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젊은 세대가 이름표 달린 것을 좋아하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앨범에는 아주 어울렸다. 피터 새빌은 젊은 세대가 생애 처음으로 구매하는 첫 번째 예술품이 음반이라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앨범 커버가 컬렉션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음반 가게에서 CD를 고를 때마다 나는 나만의 예술 작품 컬렉션을 완성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북커버러버로서 책 역시 음반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생애 처음 구입했던 책의 표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 집에서 보았던 세계 문학 전집의 압도적인 색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범우사의 문고판은 단정한 형태가 주는 차분함을 알게 해주었고, 민음사에서 나온 책표지를 보면서 공간 분할의 묘미를 알게 되었고, 문학과지성사의 책표지가 아름다워서 나중에 이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음반 커버가 음악을 시각적 이미지로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북커버는 책 속의 수많은 생각을 한 장의 이미지로 환원시킨 것이라 생각한다.

최고의 북커버 디자이너 피터 멘델선드의 책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에는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수많은 감각을 재미있게 표현해 놓았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우리는 환원한다.(we reduce)

작가는 글을 쓸 때 환원하고 독자는 책을 읽을 때 환원한다. 우리 뇌는 환원하고 대체하고 상징하도록 되어 있다. 그럴듯한 신빙성은 가짜 우상일 뿐 아니라 다다를 수 없는 고지다. 그래서 우리는 환원한다.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환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세계를 파악한다. 인간이라서 그렇게 할 수 있다.

이야기를 상상하는 건 결국 환원하는 과정이다. 환원한 빈자리에 우리는 의미를 새로 채운다.

새 책을 구입하면 책장에 표지가 보이도록 세워둔다. 미술관에서 그러는 것처럼 한동안 북커버를 응시한다. 북커버가 담고 있을 수많은 세계를 상상한다. '환원하다'라는 뜻의 'reduce' 속 '-duce'는 라틴어로 '이끈다'는 뜻이다. 'duce'를 쓰고 있는 또 다른 단어 'introduce'는 소개하고 안내한다는 뜻이다. 북커버는 'introduce'의 역할도 하고 'reduce'의 역할도 한다. 우리는 북커버를 통해 책의 세계로 안내 받고, 다시 바깥으로 빠져나오면서 책의 세계를 환원한 다음 북커버를 응시한다. 북커버는 책의 시작이자 끝이다. 다 읽고 난 책의 북커버는 전과 다르게 보일 것이다.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
피터 멘델선드 저 | 김진원 역
글항아리
Joy Division - Unknown Pleasures (Collector's Edition)
Joy Division - Unknown Pleasures (Collector's Edition)
Joy Division
Warner MusicWarner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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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중혁(소설가)

소설 쓰고 산문도 쓰고 칼럼도 쓴다. 『스마일』,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뭐라도 되겠지』, 『메이드 인 공장』 등을 썼다.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

<피터 멘델선드> 저/<김진원> 역18,050원(5%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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