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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북커버러버] 아득한 책의 표정 - 『그래픽 디자인 매뉴얼』

4화 - 『그래픽 디자인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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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는 책으로 들어가는 문일까? 아니면, 책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 창문일까? 혹시, 본격적으로 책의 세계로 진입하기 전에 마음 준비를 하는 현관 같은 곳은 아닐까? (2023.06.15)


격주 목요일, 소설가 김중혁이 좋아하는 북커버를 소개하는 칼럼
‘김중혁의 북커버러버’를 연재합니다.


『그래픽 디자인 매뉴얼』 책표지

책표지는 책으로 들어가는 문일까? 아니면, 책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 창문일까? 혹시, 본격적으로 책의 세계로 진입하기 전에 마음 준비를 하는 현관 같은 곳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책 속의 세계를 외부로부터 견고하게 지키기 위해 만든 벽일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책 속의 내용이 상하지 않게 만들어둔 뚜껑일 수도 있겠고, — 책표지를 '책뚜껑'이라 부르기도 한다 — 책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안내판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책표지는 그중 하나일 수도 있고, 모든 것일 수도 있다.

책표지에는 대체로 문자와 이미지가 함께 담겨 있다. 문자만 있는 경우도 있고, (아주 가끔) 이미지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북 디자이너는 둘을 조화롭게 배치하려고 애쓴다. 북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책표지의 정의에 따라서 문자가 강조되기도 하고, 이미지가 도드라지기도 한다. 책표지를 벽으로 만들고 싶다면 이미지는 최대한 축소하고 문자를 확대한다. 안내판 같은 걸로 만들고 싶다면 문자보다는 이미지가 강조돼야 한다. 아니면 반대인가?


그림과 문자를 조합하는 것은 그래픽 디자이너가 

일하는 특별한 화성(harmonics)의 세계를 보여준다. 

두 가지 다른 그래픽 시스템을 통합하는 이 어려운 작업은 

디자이너의 직업적 특징이며, 디자인 교육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는 단서기도 하다. 

결합은 이례적으로 복잡하다. 복잡성은 관련된 두 시스템을 철저히 연구할 때만 명료해진다. 

_『그래픽 디자인 매뉴얼』 아르민 호프만


아르민 호프만의 글은 그래픽 디자이너의 고충을 설명하지만, 북 디자이너는 여기에 하나를 더해야 한다. '이례적으로 복잡한 결합'을 완성하기 위해 책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글을 읽어야 한다. 글을 다 읽지 않는 디자이너도 있겠지만, 꼭 필요한 작업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디자이너가 그렇게 작업한다. 책을 읽고, 그 속의 글에서 힌트를 얻거나, 글에서 받은 느낌을 이미지로 풀어놓는다.

어린 시절, 책의 아름다움 때문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북 디자이너 김경민 씨의 책 『날마다, 북디자인』에는 복잡한 결합에 대한 과정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편집자의 손을 거친 1차 원고가 들어오면 디자이너는 원고의 내용과 세부 스타일 등을 검토한 후 담당 편집자와 방향을 논의한다. 이미 회사 안에 세부적인 매뉴얼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원고를 검토하면서 받은 인상을 편집자에게 말해주면 편집자는 이런 방향이라고 수정 보완해준다. 원고를 받은 편집자가 첫 번째 독자라면 나는 그 편집자가 가공한 원고의 첫 번째 독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의견 교환과 조율의 과정을 잘 거치면 표지 작업을 할 때 수월하기도 하므로 이 과정은 꼭 거친다.

_『날마다, 북디자인』  김경민


책을 출간할 때 여러가지 즐거움이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정은 표지가 만들어질 때까지의 협업이다. 편집자가 내 글을 모두 읽고, 디자이너에게 보여주면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은 내 상상 속의 대화다.

"이번 글은 세모인 척하는 동그라미의 글 같지 않아?"

편집자가 이렇게 말하면 디자이너가 대꾸한다.

"나는 네모처럼 움직이다가 갑자기 화살표가 되는 글 같던데?"

편집자가 다시 묻는다.

"빌 에반스 음악 같지?"

"아니 난 브라이언 이노 같던데?"

"음... 그럴 수도 있겠네. 책표지 잘 부탁해."


나의 글을 모두 읽은 북 디자이너가 자신의 마음에 떠오른 이미지와 '톤(tone)'을 그래픽으로 그려오면,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난다.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고, 때로는 내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달라서 놀랄 때도 있지만, 그 불일치는 책을 낼 때에만 느껴볼 수 있다. 책표지는 내 글로 만들어진 2차 창작물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내 소설로 만들어진 드라마, 내 소설로 만들어진 음악처럼 내가 쓴 글로 만들어진 그래픽 작품 같다.

작가는 자신의 창작물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쓰는 동안 너무 많은 감정과 경험이 그속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이 코미디인지 비극인지도 단정하기 힘들다. 걸작인지 졸작인지도 판단할 수 없다.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해달라는 말을 들으면 화를 낸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어떤 거대한 덩어리'라는 것만 어렴풋하게 알고 있다. 작품의 구조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평론가고, 흐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편집자고, 이야기를 멀리서 보았을 때의 표정은 북 디자이너가 알고 있다. 작가 입장에서는 그런 존재들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작가에게 책표지는 북 디자이너가 그려준 풍경화일 수도 있고, 모든 곳을 돌아보고 난 다음에 그려보는 지도일 수도 있고,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처럼 드론으로 포착한 책의 아득한 표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래픽 디자인 매뉴얼
그래픽 디자인 매뉴얼
아르민 호프만 저 | 강주현,박정훈 역 | 최문경 감수
안그라픽스
날마다, 북디자인
날마다, 북디자인
김경민 저
싱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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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중혁(소설가)

소설 쓰고 산문도 쓰고 칼럼도 쓴다. 『스마일』,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뭐라도 되겠지』, 『메이드 인 공장』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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