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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훤의 한 발 느린 집사람] 한 칸씩 밀려나는 과거

<월간 채널예스> 202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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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지만 계속해서 과거가 되는, 한 칸 씩 밀려나는 시간을 가두고 싶었던 인간은 사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계속 만들고 있다. 지나간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여러 형태의 언어가 있지만, 사진이나 영상만큼 정확하게 그 일을 하지는 못 한다. (2023.06.09)


바로 그 장면이다. 오랫동안 찍고 싶었던 바로 그 사진이 되기 위한 피사체가 모두 저기 있다. 빛도 완벽하고 이 광경을 재현할 수는 없다.

일행의 속도에 맞춰 발 빠르게 그것을 지나친 사진가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저건 찍어야 하는데... 꼭 찍었으면 했던 사진인데... 하지만 처음 본 사이인데 여섯 명이 나 때문에 멈출 수는 없다. 일 때문에 만난 편집자들과 마케터들, 그리고 대표를 기다리게 할 순 없는 일이다. 초면에 너무 무리한 부탁이다. 그러나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기만 하면 되는데...

망설이던 사진가가 말한다.

"저기 정말 죄송한데 먼저 가셔요. 제가 지금 꼭 찍고 싶은 사진이 있어서..."

사진가는 가방을 들고 뛰어간다. 아까 그 자리로 되돌아가니 아직 거기 있다. 영문을 모르고 누워 있는 노인들 그 옆을 뛰노는 아이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새 두 마리. 강과 집과 도로의 경계를 없애는 적당한 안개. 완벽한 구도가 보인다. 두 개의 시간이 존재하는 듯 느껴지는 장면이 착시를 만드는데, 그 착시는 시공간이 희미해지는 상태를 대변하는 것 같다. 지금 작업 중인 시리즈에 중요한 메타포처럼 쓸 수 있는 사진이다.

다시 연출할 수 없는 종류의 풍광을 찍을 땐 우선 찍어야 한다. 타이밍이 중요하니까. 새가 날아가기 전에 셔터를 눌러야 한다.

도착하자마자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고, 파워 버튼을 누른다. 켜는 동안 조리개 값을 빠르게 생각하고 동시에 ISO 버튼을 400으로 바꾼다. 셔터 속도는 1/60인데 평소 흔들리지 않고 찍으니 괜찮다. 조리개 값을 맞추자마자 빠르게 셔터를 누르려 는데 새가 날개를 펼친다.

악 안 돼!

여러 번 셔터를 누른다. 이미 멀찌감치 날아가는 새 반대편에서 나는 고갤 숙이고 결과물을 확인한다.

...... 흔들렸다.

뷰파인더를 확인하며 직감한다. 다시는 이런 사진은 찍지 못할 것이다.

평소 머릿속으로 수십 번 그려본 사진인데, 천운처럼 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그걸 놓쳤다.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렇게까지 원한 건 아니라고, 이런 은유는 또 만들 수 있다고 주문 외듯 나를 설득한다.

맞닥뜨렸지만 갖지 못한 장면의 목록은 그렇게 하나둘 늘어간다. 놓친 것에 너무 절망 않는 법을 사진가는 배우게 된다. 장면은 또 올 것이다. 물론 똑같은 장면은 오지 않는다.

간절히 원했던 70년대 가구가 있어 당근마켓에 로그인했다.

키워드 등록을 해 두었는데 마침내 알림이 울렸다. 4년 전 사진으로 보고 홀린 듯 뒤져보았지만, 네 해 동안 도무지 찾을 수 없던 바로 그 의자였다. 다른 의자보다 다리가 조금 더 낮지만 등받이가 둥글고 길며 사람 허리처럼 묘하게 커브가 있는, 독특한 의자였다. 곤충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비파를 닮기도 했다. 첨예하지만 상냥한 실루엣이랄까. 재작년 어느 가구 전시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생각보다 너무 비싸 망설이다 귀가한 뒤로 몇 년째 머릴 떠나지 않는 의자... 바로 그 의자가 당근마켓에 있었다.

나는 비슷한 현기증을 느꼈다. 선뜻 사기엔 역시 너무 비쌌다.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간절히 원해온 의자인데요. 조금만 가격을 낮춰주시면 제가 구매하겠습니다. 정말 사고 싶은데 저에게 굉장히 큰돈이라 여쭙니다. 답신 기다리겠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손에 땀이 났다.

셀러가 메시지를 바로 읽었다. 하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원래 내 것이던 걸 잃어버린 사람처럼 온갖 불안감에 휩싸였다. 가진 적 없는 물건에 이렇게 절박해지다니. 욕망은 우리에게 이상한 일들을 한다. 저 돈 주고 저걸 살 상황이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저렇게 우아한 의자는 아마 다시 만나지 못할 거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떡하지. 그냥 사겠다고 할까. 미친 척하고 사자. 어쩌면 벌써 다른 구매자가 나타났을 거야. 그러니 서둘러야 해. 하지만 잘 생각해 봐. 이건 네가 의자에 써본 가장 큰 금액보다 훨씬 웃돌고... 아무래도 무리야. 만 원 이만 원 아끼려고 버스 탔던 밤들을 생각해 보라고... 하지만 이 의자를 십 년 동안 쓰게 된다면?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지 않을까? 이 금액을 십으로 나눠봐. 합리적이지 않니?

그래. 사야겠다. 의자 하나에 누가 이런 돈을 쓰냐고 책망 당해도 상관 없다. 그간 기다려 온 시간을 생각해 보라. 평생 후회할 거다.

아... 죄송한데 그냥 제가 구매하겠습니다!!!!!

메시지를 쓴 지 40분 만에 셀러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가 답신을 보내왔다.

죄송합니다. 원래 제시한 가격에 구매를 희망하는 분이 있어 그분과 예약을 진행 중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아둔할까... 다시 만나지 못할 걸 알면서...

한 번 맞닥뜨렸지만 갖지 못한 물건의 목록은 그렇게 하나둘 늘어간다. 놓친 것에 울지 않는 법을 구매자는 배우게 된다.

중고 제품은 특성상 같은 물건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시간 때문이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오래된 제품도, 어느 시기에는 여러 수량으로 제작된 구하기 그리 어렵지 않은 제품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낡게 하고 폐기하는 성질이 있다. 대부분의 물건은 망가지거나 낡아 버려지거나 되팔린다. 버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디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물건은 빛을 보지 못하다가 이사 가는 날 집 앞에 덩그러니 남겨진다.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는 상태다. 폐기된다는 건 그 존재를 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필요의 감각을 잃는 것.

오래된 물건 대부분은 그렇게 시간에 휩쓸려 가고 중고 시장에서도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

시간과 밀접한 또 다른 대상은 사진이다. 사진은 물리적으로 시간을 밀봉하는 매개다. 찍혔기 때문에 남는 표정들, 공간들, 날씨와 시대와 정서들. 지금 살고 있지만 계속해서 과거가 되는, 한 칸 씩 밀려나는 시간을 가두고 싶었던 인간은 사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계속 만들고 있다. 지나간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여러 형태의 언어가 있지만, 사진이나 영상만큼 정확하게 그 일을 하지는 못 한다. 여기에서 정확성은 얼마큼 사실적으로 남느냐에 기반한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다 다른 사건으로 기억되기도 하므로 '사실'은 그것을 읽는 대상에 따라 변한다. 그러니까 사진이 기록하는 건 시간의 표면 정도일 거다. 하지만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사람들이 시간의 표피라도 가질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축복인가.

멈추지 않는 시간은 그런 식으로 보관될 수도 있다.

사진도 시간의 소실성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한데, 사진 또한 어딘가 보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화된 사진도 파일로 저장되는 사진도 물리적인 자원을 요구한다. 그리고 전전하던 사진들은 자연스럽게 잊히고 망각된다. 그것을 간직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 또한 천천히 사라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찍는다. 시간 앞에 무력하면서 재현되지 않는 순간을 열망한다. 같은 가구를 다시 사지 못하게 될까 봐 웃돈 주고 50년 된 의자를 사는 사람의 마음과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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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훤(시인, 사진가)

시인, 사진가. 시집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양눈잡이』를 썼다. 사진 산문집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를 쓰고 찍었으며, 산문집 『사람의 질감』을 집필 중(2023년 출간 예정)이다. 미국 시카고예술대학에서 사진학 석사를 마쳤고 2019년 큐레이터 메리 스탠리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젊은 사진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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