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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훤의 한 발 느린 집사람] 무리에 합류하기 위한 속도

<월간 채널예스> 202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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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리보다 항상 한발 뒤처져 있다. 집 안에서나 집 바깥에서나 그렇다. (2023.05.12)


나는 무리보다 항상 한발 뒤처져 있다. 집 안에서나 집 바깥에서나 그렇다.

이를테면 지금 나는 낯선 나라의 화장실에 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커피를 마신 친구 다섯 명은 카페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중이다. 왜 하필 떠나야 할 때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큰일이다. 마무리는커녕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왜 앉아 있냐고? 바깥에서 다섯 명이나 나를 기다린다는 엄청난 중압감을 견디면서? 어쩐지 시작될 것만 같아서다. 앉으면 아닌데 일어서면 다시 시작될 것 같은 느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화장실에서 나와 다급히 일행을 향해 걸어간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는 나를 본 다섯 명의 친구가 웃으며 일제히 손뼉을 친다. 

짝짝짝짝짝 

잔인한 녀석들, 왜 휘파람도 불고 헹가래도 하지. 내가 왜 박수 받는지 나도 알고 그들도 안다. 그들이 안다는 사실을 모르고 싶다. 

그럴 수 없어서 뻔뻔하게 두 손을 위로 번쩍 들었다 내린다. 낙오했지만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처럼.

글쓰기도 비슷하게 전개될 때가 있다. 곤란한 타이밍에 쓰고 싶어지는데, 샤워 중이거나 약속 시간 30분 전에 혹은 잠들기 직전 모호하게 쓸 이야기가 떠오르는 거다. 망설일수록 중요한 글감이라는 걸 더 강하게 예감할 뿐이다. 문장이 손끝으로 거의 다 온 것 같다. 잠들려던 참인데. 새벽 세 시에 굳이 일어나 LED 형광등을 켜고 눈을 비비며 키보드를 찾는다. 쓰기로 한다.

그러나... 야심 차게 쓴 첫 문장이 너무 평이하다. 재미도 없다. 젠장.

무언가 쓸 것 같았는데, 시작될 기미가 있었는데,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가. 일어난 게 아쉬워서 한 시간 넘게 붙들고 있다 다시 나이트 스탠드를 끈다.

나의 텍스트는 나보다 늘 느리다. 그 시차는 퇴고할 쯤에야 겨우 눈 안에 들어온다. 시를 쓰며 20년 후로 점프할 수도 있지만, 내내 뒤꽁무니를 쫓다 끝나는 날도 있다. 글쓰기는 그렇다. 내가 느리기 때문일 거다. 나는 내가 있는 자리에 자주 지각한다.

무리보다 내가 느린 건 어딜 가든 사진기를 들고 다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업 의뢰가 없을 때도 크고 작은 카메라를 챙긴다.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강박 같은 게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살다가 가지게 된 강박이다. 내 안에 너무 많은 말이 쌓였다. 상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것들은 방치돼 있었다. 울고 싶지 않아서 매일 걸었다. 걷는 동안 본능적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누적된 언어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인 줄 그땐 몰랐다. 이제는 목구멍까지 언어가 쌓이지 않아도 매일 찍는다. 친구들과 함께일 때도 찍는다. 보고, 멈추고, 빠르게 구도를 결정하고, 빛의 양을 조절하는 동안 찍는 사람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일행에게 미리 말해 둔다. 

친구들아, 내가 보이지 않더라도 먼저 가. 뒤따라갈게. 내가 너희를 찾을게.

사진을 다 찍은 나는 두 팔을 휘저으며 경보하거나, 가끔은 내달리듯 뛴다. 한 나라만큼 시차를 앓는 사람처럼 어떨 땐 그냥 멀찌감치서 걷는다. 그때 가능한 속도로 그들을 따라간다.

내가 조금 느리게 움직이면 누군가 이 사진 안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다.

뒤처진 나를 응시하는 송은 나의 친구다. 걸음은 빠르지만 송은 나와 다른

방식으로 느리다. 많이 듣고 오래 생각하고 조금만 말한다. 적게 말하기 때문에 느려 보일 수 있지만 그는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이제껏 해온 대화를 재빨리 따라잡거나 앞지르는 코멘트도 한다.

"중요하지 않으니까. 굳이 내 이야기까지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그게 편해."

송은 우리에게 사려 깊고 진중하지만 스스로에게는 느긋하다. 느긋하다 못해 자신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다 송의 이야기를 물으면 얼버무린다. 오직 타인만 주목해서 나로 시작되는 문장은 쓰지 않는 사람처럼. 그랬던 그가 사견에 가까운 말을 하거나, 평소보다 미세하게 들뜬 걸 볼 때 짜릿하기까지 하다.

송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절제하게 된 건 그의 직업 때문이기도 하다. 송은 기사에서 '나'를 지우고 들어내기 위해 수년간 훈련해 왔다. 한쪽에 치우치거나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지 않는 건 기자의 윤리이므로. 그럼에도 쓰는 사람이 자신을 다 감출 순 없으니까 떼어내고 또 떼어냈을 것이다. 일 바깥의 자신이 아주 조금 남아 있게 됐을 만큼. 기자로서 그가 너무나 미덥지만 나는 친구 송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퇴근 후에 그가 벌이는 일들을 더 많이 알고 싶다. 그가 쓰는 '나'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읽고 싶다. 더 많이 듣게 될 거라는 예감이 있다. 송은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한 것 같다.

담은 말하는 속도와 양이 송과 반대에 있는 친구다. 가벼운 즉흥 연주 같은 대화에서 담은 혼자 페스티벌 공연도 가능한 사람처럼 빼어난 성찰과 예상치 못한 관점의 보따리를 푼다. 으스대지 않고 하나씩 꺼내 보여준다. 글이 아니라 말이라는 게 놀라울 만큼 유려한 언어로.

거의 모든 자리에서 중요한 발언을 망치는 바람에 아쉬워하며 귀가해 온 나는 담이 그저 신기했다. 어떻게 모든 이야기에 정돈된 말을 할 수 있는지 담에게 물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은데. 나는 언제나 실패하고 있다고 느껴. 진실에 가까운 말로 가는 일에. 그래서 자주 후회해. 내가 너무 평범한 말들로만 시간을 때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이 무슨 놀라운 사유인가. 담은 평범한 말을 한 적이 없다.

생각을 멈추지 않기 때문은 아니냐고, 유구한 도서관처럼 관점을 가지런히 정돈해 두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담은 생각을 끄는 게 오히려 어렵지 않냐고 되물었다. 모두 아니라고 했다. 사고의 스위치를 자주 끄곤 하는 내가 중얼거렸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왜냐하면..."

담은 한참 생각했고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빈은 예민한 사람이다. 대체로 조용히 말하고 움직인다. 평소 조심스럽고 말수가 적은 그가 춤추는 모습도 상상이 잘 안되는데, 빈은 연극의 동선과 안무를 만든다. 내게 빈은 혼자 있을 때도 혼령처럼 소리 없이 움직일 것 같은 사람이다. 대체 어떤 안무를 만드는지 물었다.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요"

"저는 동작을 일일이 짜주지 못해서 극 안에서 배우가 움직일 수 있는 몇 둘레만 주어요."

그랬구나. 팔과 다리, 머리가 가리키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만 움직임은 아니지. 마음에서 시작되는 몸의 반경을 함께 상상하는 것일 수도 있지. 평소 기다리는 사람인 빈이 무대에서도 배우들 각자의 몸의 언어를 기다려준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런 일치가 반가웠다.

빈이 맡은 다음 작업은 좀비들의 사랑'이라고 했다. 공격 말고는 어떤 의지도 없는 것이 좀비의 특징인데, 사랑만큼 주체적인 행위도 없으니 그 모순을 어찌 건너갈지 궁금하다. 어떻게 해결할까. 그걸 고민하는 동안 빈은 얼마나 많은 좀비가 될까. 얼마나 많은 사람을 물고 뜯고 바라보고 애정하고 애처롭게 바라보고 이별할까. 고요하고 느린 빈이 느린 좀비의 몸을 담아낼 방식이 무척 기대된다.

옆에서 걷던 주가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주는 번역가다. 언어를 하나의 몸에서 다른 몸으로 옮긴다. 그는 이미 세 권의 책을 번역했고 여전히 정해진 시간에 매일 번역과 집필을 한다. 이 지난한 생활을 어떻게 계속할 수 있을까.

통번역 일을 맡을 때마다 나는 언어를 옮기는 일이 어떤 식으로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임을 깨달으며 절망했다. 그리고 웬만하면 다음에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번역은 저자가 구축한 마을의 처음으로 뒤돌아가 샅샅이 살피고, 그 위에 최대한 나란하게 그와 닮은 집들을 새로 짓는 노동의 반복이다. 표현의 뉘앙스, 리듬, 라임, 문화적인 뿌리와 레퍼런스, 표현의 입체성을 모두 놓치지 않으며 말이다. 불가능성 위에 지어지는 세계인 것이다.

"저한테는 완벽하게 번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때 마치는 게 중요해요."



그는 이 세계에서 느려도 계속 전진하는 게 가장 빠르다고 했다. 성실하게 매일 하려 한다고. 그리해야만 충분한 시간을 남겨 두고 초고를 마치고 퇴고를 하고 얼마큼 친절한 각주를 어디 달지 잘 판단할 수 있다고. 그런 주도 이따금 일을 미룬다고 했다. 그 말에 왜 안심이 되던지. 다른 분야의 프로들이 다급해지는 장면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건 왜인지.

집 안팎에서 한두 발 뒤처지는 나. 느리기 때문에 더 자세히 시작되는 송. 늘 빠르기 때문에 느려진다는 담.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는 번갈아 가며 서로를 보았다. 서로를 몰래 부러워하고 안도하고 질투하고 존경하며. 조심스러워서 몸을 천천히 지켜보는 빈과 언어의 두 몸 사이 시차를 꾸준히 견디는 주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서로의 속도를 호위하며. 신기해하고 또 조심히 걸으라고 말하며.

느슨하게 함께 여행한 사흘 동안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여러 길을 걸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짧았지만 여섯 명의 친구가 이곳에 왔었고 가끔은 촘촘하게 함께했다는 사실이 우리 사이에 공공연해질 즈음 우린 적절한 속도로 한 번씩 안고 헤어졌다.

느리고 빠르게 비행기와 허공이 서로를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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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훤(시인, 사진가)

시인, 사진가. 시집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양눈잡이』를 썼다. 사진 산문집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를 쓰고 찍었으며, 산문집 『사람의 질감』을 집필 중(2023년 출간 예정)이다. 미국 시카고예술대학에서 사진학 석사를 마쳤고 2019년 큐레이터 메리 스탠리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젊은 사진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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