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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건의 집돌이 소설가의 나폴리 체류기] 좋아서 하는 일

제7화. 외곬이라는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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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거죠"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코로나 시기에 다시 짐을 싸던 그의 마음과,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나폴리로 돌아간 그 용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좋아서 하는 일' 그 단순함의 힘을 다시금 되새긴다. 그의 현재와 앞날을 열렬한 마음으로 응원한다. (2023.06.07)


이탈리아 나폴리에 3개월간 머무르게 된 INTJ 소설가는
90일 동안 나폴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격주 화요일 <정대건의 집돌이 소설가의 나폴리 체류기>가 연재됩니다.


나폴리에서 만난 청년 김진석 씨 

한국인을 볼 일이 거의 없던 나폴리 생활 중에 나폴리에 거주 중인 한국인 청년을 만나게 됐다.(나폴리에 거주 중인 한국인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김진석. 아무런 연고도, 한인 커뮤니티도 전혀 없는 나폴리에 홀몸으로 온 그는 양복점에서 일하며 일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한국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진석 씨는 1991년생이다. 패션 디자인과에서는 대부분 여성복을 위주로 다뤘고, 남성복에 대한 갈증이 있던 진석 씨는 양복이 유명한 이탈리아에 가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졸업을 하니 27살이었다. 진석 씨는 1년 반 동안 평택의 양복 배우는 곳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을 배우고, 토요일 아침에는 강남에 가서 이탈리아어 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2019년 4월, 이탈리아로 향했다.

한국에는 무궁무진한 종류의 학원과 컨설턴트가 있기로 유명하지만, 이 경우에는 연계해 주는 유학원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옷을 들고 자신을 받아주는 양복점을 찾아 북쪽의 밀라노부터 피렌체, 로마, 나폴리까지 문을 두드리며 내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나폴리의 한 양복점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가 퍼졌다. 전 세계가 위기에 처했지만 2020년의 이탈리아는 한때 사망자 수가 세계 1위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온 도시가 봉쇄되었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 진석 씨는 어쩔 수 없이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봉쇄가 풀리고 코로나가 어느 정도 완화되자 다시 나폴리로 돌아왔다.

양복에 대해서는 조금의 지식도 없고 관심도 없던 나로서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꿈을 향해서 아무 연고도 없는 나라의 낯선 언어를 배우고, 자신을 받아주는 곳을 찾아 이탈리아 전역을 다니며 문을 두드리고, 정보를 공유할 유학생 커뮤니티가 있는 것도 아닌 낯선 땅에서 홀로 3년째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내 마음을 움직였다. 대단하다, 멋있다는 감탄의 말이 절로 나왔다. 꿈과 현실에 대한 고민을 다룬 다큐멘터리 <투 올드 힙합 키드>를 만들고, 영화라는 보장되지 않는 꿈을 좇는 캐릭터를 그린 소설 <GV 빌런 고태경>을 쓴 나로서는 그를 인터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복점의 이름은 선생님의 이름인 '치로 피쪼(Ciro Pizzo)'

그가 일하는 사르토리아(양복점)에 찾아갔다. 양복점의 모습에 대해서 막연히 길에서 양복들이 쇼윈도에 걸려 있는 모습을 떠올렸지만, 나의 상상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아파트 같은 건물의 3층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양복점에서 치로 선생님과 진석 씨 단둘이서 일하고 있었다. 치로 선생님은 나를 편하게 대하며 반겨주었다.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올해로 78세인 사르토(재단사), 치로 선생님은 1944년생으로 10살 때부터 심부름으로 바느질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시대는 2차 대전 이후라 아주 어릴 때부터 일을 해야 했다. 그는 그렇게 6개 양복점에서 일을 배우고 26살에 처음으로 자신의 양복점을 하기 시작했다. 바느질은 68년, 개인 양복점 일만 52년째다.


마에스트로 치로 피쪼

요즘처럼 어떤 장사든 SNS 운영이 필수인 시대에 '사르토리아 치로 피쪼'는 SNS는커녕 구글 맵에조차 검색되지 않았다. 노쇠한 그는 사업의 번창에 그리 욕심이 없다. 고객이었던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양복을 맞추고, 그 아들이 자라서 또 아들을 데리고 오는 식으로, 지역 사회의 소개로 양복점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양복점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하고 일요일 하루만 쉰다고 했다. 심지어 토요일 저녁에는 진석 씨가 퇴근한 뒤 선생님이 남아서 더 일을 하고 퇴근한다. 한창때는 더 많이 일을 했다고 한다. 치로 선생님에게 '일을 하면서 어떤 때 가장 힘드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한 자세로 종일 바느질을 하기 때문에 거북목이 되거나 눈이 침침해지거나 하는 직업병 같은 답을 기대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답은 예상 밖이었다.

"일을 하지 않을 때가 가장 힘들어."

한평생 일을 해온 그는 일 외에는 쉬는 것도 노는 것도 잘 모르는 것이다. 양복점 이곳저곳에는 손주들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는 평생 바느질 기술로 딸 셋을 키워내고 가정을 이뤄냈다. 은퇴 계획에 대해 물어보자, 이제 휴식을 취하며 어디 좋은 곳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은 일을 정말 사랑하고 더는 일할 수 없을 때까지 하고 싶다고 했다. 한평생 한 가지 일을 하며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다른 길에 곁눈질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일하는 양복점의 풍경

우리가 살아갈 시대는 평생직장 개념이 없고 이직이 잦은 시대라고 한다. 장인의 밑에서 기술을 배우는 일은, 최근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조차 하지 않는 일이다. 기술을 배우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졸업을 한 27살 무렵, 인생의 갈림길에 선 청년 김진석 씨를 상상해 봤다. 누구나 준거 집단과 비교하기 마련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가치를 좇는 한국에서, 주변 또래들이 다들 취업문을 두드렸을 텐데, 그 시기 진석 씨의 생각이 궁금했다.

"같은 전공을 한 친구들 중에 진석 씨 같은 길을 선택한 분은 거의 없지 않아요?"

"그렇긴 하죠. 그런데 요즘 전공 살려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말 그대로 순수하게 기술을 배우려는 마음. 진석 씨도 기술을 배워 돌아와 한국에서 자신의 양복점을 차리겠지만,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며 인증된 증명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양복점을 연다고 해서 시장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그래도 기술을 배우면 굶지는 않겠지, 하는 단순함과 우직함, 순수함. 내 경탄은 그가 '보기 드문' 청년이라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대개 그렇지 않으니까. 결과에 대해 단기간에 성과를 보고 싶어 하고, 들인 노력만큼의 대가가 있기를 바란다. 가령, 해외에 나가 박사 학위를 따고 돌아오면 그 학위를 통해 한국에서 어떤 종류의 일자리를 갖게 된다거나 하는,(이마저도 어렵지만) 예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석 씨의 경우, 그렇지 않은 종류의 일이었다.

진석 씨는 3년 정도 이탈리아에서 더 일을 배울 예정이라고 했다. 의아한 것은 졸업과 학위를 위한 3년짜리 커리큘럼이 있다거나, 선생님이 '이제 더는 배울 것이 없으니 하산하라'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해 물으니 진석 씨는 '자신의 기술이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할 때까지, 라고 했다. 그것은 '자신이 만족할 수준'이라는 주관적 기준인 것이다. 

진석 씨는 이탈리아에 머무르는 3년 동안 여행을 다녀본 일이 없다고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을 하므로 진석 씨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치로 선생님의 바느질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있는 그는 가봉을 할 때 가장 많이 배운다고 했다. 진석 씨는 퇴근 후 밤에 집에 돌아와서도 자신의 옷을 만드는 연습을 했다. 내가 어쩜 그럴 수 있느냐고, 이 모든 일에 대해 멋지다고 하자 진석 씨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좋아서 하는 거죠. 제가 좋아서."



많은 이들이 재능에 대해 의심하고 전전긍긍한다. 나도 한때 작가들의 인터뷰나 에세이를 찾아다녔고 내게 두 가지 말이 각인되어 있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은 자기 아들의 사례를 들려준다. 아들이 색소폰에 관심을 보여 레슨을 시켰는데, 지켜보다가 7개월 후 합의 하에 레슨을 중단했다. 아들이 색소폰 연습을 게을리해서가 아니라 '정해준 시간에만 하는 것'을 보고 오래 못 가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자신에게서 어떤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눈이 빠질 정도로 몰두하게 마련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그만큼의 시간을 쏟지도 않았으면서 징징거릴 이유가 없어지는 느낌이다. 또한, 인터뷰집 『데뷔의 순간』에서 최동훈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분명히 할 수 있다. 나는 '하면 된다'는 말보다 '하면 는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다. 재능은 의지가 만드는 것이다."


김진석 씨와 마에스트로 치로 피쪼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10살 때 살아남기 위해 바느질을 배우던 치로 선생님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앞으로 이렇게 살겠노라고 이탈리아 전역을 찾아다닌 진석 씨의 선택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리고 기술에 대해 새삼 생각했다. 나 또한 나이 들어서도 쓰임이 있기를 바라며, 평생 일을 하고 싶다. 나는 기술을 성실히 연마하고 있는가.

진석 씨는 한국에 돌아와서 양복 일을 할 것이다. 나는 옷에 대해서는 조금의 식견도 없지만, 평생을 우직하게 일밖에 모르는 치로 선생님 곁에서 성실함을 몇 년 동안 보고 배운 진석 씨라면, 양복을 맞출 일이 있는 누군가에게 믿고 소개해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직하다'는 말의 사전적 정의에는 '어리석음'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 약삭빠르지 못함, 외곬이야말로 진정한 재능이 아닐까. 진석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영화 속 캐릭터 같다고 감탄했지만 그 삶을 진정으로 살아내는 것은 편집된 픽션과는 다른 일이다. 진석 씨는 "좋아서 하는 거죠"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코로나 시기에 다시 짐을 싸던 그의 마음과,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나폴리로 돌아간 그 용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좋아서 하는 일' 그 단순함의 힘을 다시금 되새긴다. 그의 현재와 앞날을 열렬한 마음으로 응원한다.



유혹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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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저 | 김진준 역
김영사
데뷔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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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감독조합 저 | 주성철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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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대건

2020년 장편 소설 『GV 빌런 고태경』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소설집 『아이 틴더 유』를 출간했다. 다큐멘터리 <투 올드 힙합 키드>와 극영화 <사브라>, <메이트>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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