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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건의 집돌이 소설가의 나폴리 체류기] 푸르게 물든 도시 나폴리

제6화. 스포츠가 무엇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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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올림픽을 보다가도 가슴 뭉클해하고 쉽게 눈물 흘리는 사람이다. 스포츠가 무엇이길래, 공을 차서 골대 안에 넣는 행위, 누군가는 '그깟 공놀이'라고 치부할 일에 사람들은 왜 그렇게 열광하는가? (2023.05.23)


이탈리아 나폴리에 3개월간 머무르게 된 INTJ 소설가는
90일 동안 나폴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격주 화요일 <정대건의 집돌이 소설가의 나폴리 체류기>가 연재됩니다.


나폴리 사람들에게 축구는 스포츠 그 이상이다 

나폴리에는 유명한 두 성인이 있는데 수호성인 젠나로와, 디에고다. 여기서 디에고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축구 선수 '마라도나'를 말한다. 지금이야 내 나폴리 구글맵에 수십 개의 맛집이 즐겨찾기 되어 있지만, 나폴리의 정확한 위치조차 모를 때 보았던 다큐멘터리에서, 나폴리에서는 마라도나가 신과 같다는 이야기를 별세계처럼 봤었다.

나폴리에 도착하고부터 온 도시에 새겨진 마라도나의 얼굴을 보며 이 말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디에고 마라도나. 그는 만년 중하위권 팀이었던 나폴리 축구팀을 두 차례 우승으로 이끌었다.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북부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던 나폴리 사람들에게 우승(스쿠데토)을 안겨주며 돈 많은 북부팀들의 콧대를 꺾어준 마라도나. 축구는 나폴리 사람들에게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나폴리 사람들은 미신을 믿기에 혹시라도 부정이 탈까 봐 미리 우승을 말하지 않아야 하지만, 그러기엔 3월부터 이미 압도적인 성적으로 이번 시즌 나폴리의 우승이 점쳐지면서 온 도시는 축제 분위기였다. 리그 종료가 아직 두 달이나 남아 있던 4월부터는 거의 매일 밤 폭죽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4월이 되자 볼거리가 늘어났다. 온 도시의 주택들 사이에는 푸른 천과 흰 천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런 것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고, 점점 더 도시가 푸른색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었다. 심지어 가로수들도, 벤치도, 차량 진입 방지 바리케이드도 파란색과 흰색으로 장식됐다. 빵집의 케이크도, 꽃집도, 개들이 입은 옷도, 웨딩드레스도 나폴리의 바다와 하늘을 닮은 나폴리의 상징색으로 파랗게 물들었다.


나폴리를 가득 채운 푸른색 천과 흰색 천

22~23 시즌이 시작할 때만 해도 나폴리의 우승을 점친 사람은 없었다. 기존의 간판 스타 여럿이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름이 덜 알려진 흐비차와 김민재 같은 몇몇 선수들이 영입됐다. 그런데 그 영입생들이 적응 기간도 없이 대활약을 펼쳤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감독 아리고 사키는 나폴리의 성과를 '기적'이라고 평하며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꿈과 위대한 결과 사이에는 항상 연관성이 있습니다."

마침내 압도적인 승점으로 나폴리가 33년 만의 우승을 확정 짓던 날, 온 도시에는 광란의 축하파티가 벌어졌다. 미사일이 폭격하는 듯한 폭죽 소리가 이어졌다. 2002 월드컵을 경험했던 나도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나폴리의 유니폼을 입고 이 순간을 지켜본 아이들은 결코 이 풍경을 잊지 못하고 다시 우승을 기다릴 것이다.

푸르게 물든 도시 속에서 사람들과 나폴리 응원가를 함께 부르며 나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덕분에 나는 나폴리에 관련한 노래를 '오 솔레미오', '산타루치아', '푸니쿨리 푸니쿨라' 외에 더 알게 되었다. 'Saro con te'와 'Un giorno all'improvviso'. 이 노래의 가사는 각각 이런 내용이다.

'당신과 함께할 거예요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 가슴에는 꿈이 있어요. 나폴리는 다시 우승할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당신과 사랑에 빠졌어요. 내 심장이 뛰었어요. 이유를 묻지 마세요. 시간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여기 있어요. 그리고 오늘도 그때처럼 난 도시를 지킬 거예요.'

모든 축구팀의 응원가는 엇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리버풀, 도르트문트 등 여러 축구팀의 응원가로 유명한 'You’ll never walk alone'(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처럼. 완벽한 개인주의자를 자처하는 나는 대학교에서 다 같이 응원가를 부를 때에도 부끄러움과 함께 동화되지 못했고, 군대에서 군가를 부를 때에도 그러했는데, 축구에는 왜 그런 거부감이 없이 동화되었을까. 내 생각에는 '누구라도'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포용 때문인 것 같다. 그 어떤 이방인이라도, 결함이 있는 사람도, 외톨이라도 어느 팀을 응원하게 될 때,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된다.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올림픽을 보다가도 가슴 뭉클해하고 쉽게 눈물 흘리는 사람이다. 스포츠가 무엇이길래, 공을 차서 골대 안에 넣는 행위, 누군가는 '그깟 공놀이'라고 치부할 일에 사람들은 왜 그렇게 열광하는가? 이 세상은 공정한 경쟁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룰 안에서 최선을 다해 벌이는 분투에 열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니 그 룰은 공정하고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스포츠 정신이다)


웨딩드레스 샵에서도 나폴리의 세 번째 우승을 기념하고 있다

나폴리의 구석구석 다양한 현수막과 깃발들은 참으로 볼거리였다. 그중에서도 선수들의 사진과 함께 'GRAZIE, RAGAZZI(고맙다, 얘들아)'라고 적혀 있는 현수막이 참 많았다. 그들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받는 스포츠 스타인데 뭐가 고맙다는 것일까. 문득 길을 걷던 도중 나폴리 시민들의 진심이 느껴져서 울컥했다. 우승은 나폴리 사람들에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긍심을 준 것이다. 마라도나도 그러했고, 지금의 나폴리 선수들도, 나폴리 사람들에게 축구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에 더 혼을 다해 뛰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라치에. 나폴리에서 맺은 인연들에게, 나폴리라는 도시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이 모든 기적 같은 일에는 마라도나의 은총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2020년 마라도나가 세상을 떠난 후로 그토록 염원하던 아르헨티나의 36년 만의 월드컵 우승과 나폴리의 33년 만의 이탈리아 리그 우승이 연달아 이어졌다. 나폴리 사람들이 간절히 염원했던 꿈을 실현하고, 자부심을 얻은 시기에 함께 지내며 나 역시 흠뻑 젖어 푸르게 물들었다. 온 도시가 자부심을 느끼고 고마워하는 것을 체험한 이 감각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제 푸른색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하트 이모티콘을 쓸 일이 있다면 푸른색 하트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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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대건

2020년 장편 소설 『GV 빌런 고태경』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소설집 『아이 틴더 유』를 출간했다. 다큐멘터리 <투 올드 힙합 키드>와 극영화 <사브라>, <메이트>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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