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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환의 제주에서 우리는] 나이 먹는 일의 어려움

'전종환의 제주에서 우리는'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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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처럼 웃는 그를 보며 나도 그처럼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걸 이루진 못하더라도 사소한 이익에 나를 잃지는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2023.05.15)


격주 월요일, <채널예스>에서 ‘전종환의 제주에서 우리는’을 연재합니다.
6개월 육아 휴직을 낸 아빠 아나운서 전종환이 제주 일상을 이야기합니다.



요즘 김대호 MBC 아나운서의 인기가 높다. 그는 2011년 <신입사원>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아나운서가 됐는데, 최근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혼자서 잘 살아가는 모습이 방송되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퇴직금을 미리 털어 인왕산 기슭에 내 한 몸 편히 머물 집을 마련했다. 마당에는 술과 안주를 즐길 요량으로 포장마차를 차렸고 텃밭에서는 직접 먹을 채소를 재배한다. 중고로 산 봉고차가 그의 자가용이고 출퇴근은 자전거를 이용한다. 그라고 해서 세상의 시선에 아예 무감하겠냐만, 그래도 보통의 우리보다는 자신의 진짜 마음에 좀 더 충실히 사는 듯 보였다.

방송 혹은 유튜브를 통해 김대호 아나운서의 방송을 본 사람들은 "나까지 편해진다"거나 "힐링 된다"는 종류의 댓글을 남겼다. 일반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에게는 남다른 재미나 권위 혹은 명성을 요구하게 마련인데, 그에게는 그런 종류의 특징들은 없었으나 힐링이 있었던 셈이다. 나를 잃지 않고 사는 게 어려운 세상이어서 그런가? 자신만의 호흡으로 살아가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쾌감을 느끼는 듯 했다. 이런 반응에 대해 김대호 아나운서는 "지금 이런 주목은 아나운서라는 이미지 때문에 생기는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며 담담하게 반응했다. 자신의 인기를 해프닝이라고 평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아마도 그가 살며 구축한 내공 덕분에 가능한 말이었을 것이다.

알고리즘의 안내에 따라 나는 10년 전 쯤 김대호 아나운서가 나왔던 예능 프로그램을 다시 보게 됐다. 입사한 지 몇 년 안됐을 시점의 방송이었는데, 지금보다 조금 더 순해 보이는 그가 맑은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한 선배가 후배 모두를 집으로 초대했는데 오직 그만이 선약이 있어 가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럴 수 있는 이야기지만, 10년 전만 해도 남들이 다가는 선배 집들이에 별 이유 없이 불참하는 건 예능의 소재가 될 만큼 별난 경우였고, 관점에 따라 사회생활을 못하는 캐릭터로 소비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대호 아나운서는 모두가 일정을 취소하고 선배 집으로 몰려가는 게 진짜 이상한 것 아니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확히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만약, 예전 방송에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간 쓸개도 내 줄 법한 욕망을 드러냈다면, 지금 그가 보여주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진심을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그 때나 지금이나 자신을 지켜가며 같은 방법으로 살고 있는데, 다만 변한 게 있다면 세상의 관점이고 대중의 관심일 것이다.

나의 모습을 지키고 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 그러면서도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생각해본다.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할 테고, 고유한 특성을 지닌 나를 세상으로부터 지켜나갈 뚝심이 필요할 것이며, 세상의 변화에 나의 보폭을 맞추는 유연성 또한 있어야할 것이다. 이 어려운 일을 잘 해내기란 단언컨대 쉽지 않다. 좀처럼 줄지 않는 인정 욕구와 더 높은 자리를 향한 욕망, 매일 새롭게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무지가 우리의 판단을 흐린다. 잘못된 판단과 그로 인해 헛나간 말과 행동은 그동안 쌓아온 평판을 무너뜨린다. 평판이란 게 쌓기는 어려우나 잃기는 쉽다. 훌륭한 직업인이었던 나의 선배들이 어딘가에 걸려 넘어져 속절없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는 건 얼마만큼 애달픈 일이며, 나 역시 무너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 애달픔은 도리 없이 커진다. 나이를 잘 먹어간다는 건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인 MBC에서 기자로 일할 때의 일이다. 당시의 보도국장은 보직을 맡은 부장들 모두가 노조에서 탈퇴하기를 요구했다. 한 부서의 장으로 일하는 것과 노조의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게 문제가 없다는 오랜 세월의 룰을 거스르는 정치적 요구였다. 당시 내 부서의 부장은 10여 명의 부장단 중 유일하게 보직 사퇴를 택했다. 그건 그의 유별난 노조 사랑 때문이 아니라, 보직의 자리와 노조원의 자격을 맞바꾸자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제안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그는 평소 사석에서 자발적인 노조 탈퇴 의사까지도 내비쳤던, 다시 말해 노조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던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보직을 내려놓고 노조원 자리를 지켰다. 그 행동에 대한 결과는 몇 년에 걸친 한직 발령이었다. 나는 야근을 할 때면 선배를 찾아가 이런 저런 고민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청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정말 궁금해서 "혹시 당시에 노조를 탈퇴하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으시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한 뒤 환히 웃으며 "살면서 부끄럽고 후회되는 일이 참 많은데, 그건 내가 선택한 일 중 가장 잘한 행동 같은데..."라고 겸연쩍게 말했다. 소년처럼 웃는 그를 보며 나도 그처럼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걸 이루진 못하더라도 사소한 이익에 나를 잃지는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제주에서의 하루는 길다. 해가 뜨는 걸 보고 해가 지는 걸 보는 날이 많다. 시간이 많으니 생각도 많아진다. 과거를 소환해 내 행동을 반추해보고 미래의 시간을 끌어와 미리 살펴보기도 하는데 살피고 살펴도 내 남은 시간들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는다. 산다는 건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돌이켜 보니 젊은 시절에는 이보다는 수월했다.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잘 웃으면 어렵지 않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세상은 나이 먹은 이들에게 더 많은 걸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건 아마도 품격, 책임, 절제, 중용, 너그러움, 유머와 같은 덕목들일 텐데 이중 무얼 더 앞세워야 할지 사안마다 다르기 때문에 늘 새롭고 또 어렵다. 색달 해변의 일몰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나이 먹기의 어려움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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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전종환(아나운서)

MBC 아나운서. 에세이 『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을 썼다. 6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하고 아내와 아들과 제주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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