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의 탄생] 이 책으로 시작해 봅니다
<월간 채널예스> 2023년 2월호
<월간 채널예스>가 기대하는 네 곳의 출판사 대표에게 물었다. 독자들에게 선보일 2023년 첫 책은? 새 책에 관한 두근거림이 문장마다 묻어 있었다. (2023.02.16)
<월간 채널예스>가 기대하는 네 곳의 출판사 대표에게 물었다.
"독자들에게 선보일 2023년 첫 책은?"
새 책에 관한 두근거림이 문장마다 묻어 있었다.
2022년 한 해 동안 11종의 책을 냈습니다. 황인찬 시인의 산문집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최희서 배우의 산문집 『기적일지도 몰라』, 손보미 작가의 『사라진 숲의 아이들』, 정세랑 작가의 『아라의 소설』 등 내고 싶은 좋은 책을 열심히 만든 한 해였습니다.
구병모의 미니 픽션 『입숨 로렘의 책』이 곧 출간됩니다. <웹진 안온>에 연재했던 이유리의 장편 소설 『좋은 곳에서 만나요』와 오정연의 장편 소설 『백채널링』도 상반기에 출간할 예정이고요. 한국 문학, 특히 소설 분야에 본격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시기가 될 것 같습니다. 임지은의 두 번째 에세이도 기대하고 있는 작품이죠. 신인 작가 정성은의 인터뷰집도 나올 예정인데, 젊은 작가의 새롭고 개성 있는 소설을 찾아서 펴내려고 합니다.
2022년 1월에 김신록 배우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웹진 <연극인>에 인터뷰를 연재하고 있는데 책으로 내고 싶다고요. 연재된 인터뷰를 살펴보니 여러 배우들의 연기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가 한 편 한 편 살아 있는 예술론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를 만나 추가 인터뷰를 제안하며 책을 진행하기로 했고, 그렇게 2023년 안온북스의 첫 책으로 『배우와 배우가』를 출간하기로 했습니다.
북 토크를 다양하게 열려고 합니다. 김신록 배우가 만난 인터뷰 속 배우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겠지요. 어떤 날, 어떤 배우들과 매칭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연극, 연기, 예술론이 탄생하리라 생각합니다. 21명의 배우들이 펼쳐낸 각각의 예술론을 편집해 카드 뉴스 등 마케팅 콘텐츠 자료를 다양하게 제작해 독자들과 공유할 생각이고요. 사인회도 열어 독자와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하려고 합니다.
한 배우의 연기론은 삶을 연구하는 모습과 닮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 편의 예술론으로 기록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삶을 보다 예술적으로 만드는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독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예술적인 삶'으로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2016년 겨울, 소설가 정지돈의 작은 농담으로 시작한 이름이에요. 장시간 책상 앞에 앉아 읽고 쓰는 사람들에게 수영은 참 좋은 운동이잖아요. 그러니 출판사엔 수영장이 딸려 있어야 한다고, 수영하며 원고를 보다가 손님이 찾아오면 여전히 물 위에 뜬 채로 "어, 왔어요?" 하고 인사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약간 허튼소리 같았지만, 어쩐지 그럴 법하게 들리는 말 덕분에 '스위밍꿀'이라는 이름의 출판사가 탄생했습니다. '풀'이 아니라 '꿀'인 이유는 꿀처럼 달콤한 미래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고요. 이후로 일 년에 한 권씩, 삶의 속도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말, 박솔뫼의 연작 소설집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를 출간했어요. 동면을 모티프로 하는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인물들이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또 시간은 어떤 모양으로 흘러가는지가 아주 감각적으로 그려져 있죠. 책을 만들면서 자연스레 저의 삶도 돌아보게 되었는데요. '지금 나는 이 순간과 얼마만큼 긴밀하고 생생하게 연결돼 있는가?'를 자주 묻게 됐습니다. 출간 후 SNS에서 후기들을 살펴보다 '박솔뫼 팬들은 어딘가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 같다.'라는 글을 발견했는데요. 이런 책을 만들 수 있게 되어서, 또 이런 후기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한 한 해였습니다.
올해 스위밍꿀은 '나라는 작은 세계의 확장'을 모토로 운영됩니다. 그간 주로 소설 편집을 해오면서, 제가 읽는 것은 물론이고 경험하고 상상하는 영역까지 무척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깊지만 아주 좁은 세계를 일궈온 것인데요. 이 영역이 제게 안정감을 주는 것은 틀림없지만, 때로는 심심하고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2023년은 이 세계를 자연스럽게 넓혀 가기 위해 시리즈를 기획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과 우연들에 마음의 문을 열어놓으려고 합니다.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가 이것을 꼭 경험해 보면 좋겠다는 마음만으로 이것저것 추천하게 되잖아요. 또, 상대로부터 그런 추천을 받으면 아무런 의심이나 걱정 없이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고요. 덕분에 협소했던 나의 세계가 미세하게 벌어지고, 그 시야 속으로 이전과는 다른 세계가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치 생소한 사람을 팔로우 하면 전혀 다른 단어와 감각과 이미지가 타임라인으로 흘러들어 오듯 말이죠. 가까운 친구의 추천처럼, 또 약간 먼 듯해도 결국 나의 친구가 되고야 마는 친구의 친구의 제안처럼 스위밍꿀의 책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낯선 세계를 부드럽게 건넬 수 있으면 좋겠어요.
<친구의 친구는 친구> 시리즈로 북 디자이너 강혜림의 에세이와, 만화 편집자 김해인의 에세이가 동시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강혜림은 스위밍꿀의 친구, 김해인은 강혜림의 친구, 즉 친구의 친구죠. 스위밍꿀의 첫 에세이이기도 한데요.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설렘으로 두 사람의 에세이를 기다려주세요.
살짝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풍경, 딱 한 뼘 더 넓어진 세계. 이동진 평론가님의 느낌으로 추천해 보았어요. 하하.
2021년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라는 책으로 출판을 시작한 작은 출판사입니다. 앞으로 인문, 사회, 예술 분야의 논픽션을 중심으로 꾸준히 출판을 지속해 나가려 합니다. 필로우라는 출판사명은 필로(pillow) 북, 즉 베갯머리 책에서 따온 이름인데요. 가장 내밀하고 영감 어린 시간에 옆에 두고 싶은, '사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책들을 꾸준히 펴내고 싶습니다.
연말에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세라 망구소의 『300개의 단상』과 『망각 일기』, 두 작품을 출간했습니다. 망구소의 이 작품들이야말로 잠자리에 두기 좋은 책이 아닌가 싶어요. 시간과 기록의 의미를 상기하게 하는,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도, 한 해를 마무리하기에도 좋은 두 권의 책과 2022년의 마지막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작가의 첫 책'은 꽤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올해 상반기에 필로우에서 출간될 두 작품 모두 작가의 첫 책이에요. 봄에는 뉴욕의 문화 평론가 카일 차이카의 저작을, 여름에는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이자 큐레이터 앤디 필드의 저작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카일 차이카는 첫 책에서 미니멀리즘을 향한 열망을 탐구합니다. 앤디 필드는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며 달라진 만남(마주침)의 의미를 파고듭니다. 두 작가 모두 생소한 이름일 텐데요. 흥미로운 관점과 야심을 지닌 작가들이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소설가 제이디 스미스의 산문집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제이디 스미스의 산문집은 아직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데, 소설뿐 아니라 산문도 참 좋더라고요.
앞에서 언급한 카일 차이카의 미니멀리즘에 대한 책이에요. 원제는 'The Longing for Less: Living with Minimalism'인데, 한국판의 제목은 아직 확정 짓지 못했습니다. 제목에 '미니멀리즘'이라는 키워드를 넣어야 할지부터가 고민인데요. 저부터 끌리지 않는 데다 왠지 집에 쌓아 놓은 물건을 정리하고 이메일을 지우라는 이야기가 나올 것만 같고, 이런 콘텐츠는 이미 주변에 너무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미 상업화되고 지루한 개념이 되어버린 미니멀리즘의 의미를 전복하는 것이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카일 차이카는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훨씬 더 풍부하고 가치 있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며,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시간과 공간의 형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내용에 걸맞게 미니멀리즘이라는 키워드를 새롭게,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인과 마케팅 방향을 고민 중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번역본을 받아 듦과 동시에 이사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물건을 정리하고 이메일을 지우라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적을수록 낫다(Less is more)'라는 오래된 잠언을 숭배하고 있는 중입니다. 매일같이 버리거나 다시 주워 오거나, 필요한 물건을 찾거나 찾지 못하는 혼돈 속에서 이 텍스트를 만지고 있습니다. 책이 출간될 무렵에는 주위의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로 거듭나고 싶다면 카일 차이카의 책을!
편집자 두 명이 차린 작은 출판사로 2019년에 첫 책을 내서 지금까지 17종을 출간했습니다. 한 권 한 권 출간하면서 자연스레 '돌봄', '다양성', '당사자성'이라는 키워드가 생겼는데요. '다양한 가치를 일깨우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모토 아래 교양서와 에세이 위주로 출간하고 있습니다.
사실 2021년보다 2022년의 출간 목록이 저희 색깔도 더욱 뚜렷하게 담기고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훌륭한 책이 많아서 내심 기대가 컸는데, 아쉽게도 그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많은 독자가 알아봐 준 책들이 있었는데, 『마이너리티 디자인』은 <조선비즈> 김지수 기자와 진행한 인터뷰가 화제를 모았고, 『착한 아이 버리기』는 학습과 성취 위주가 아닌 돌봄의 관점에서 육아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이 읽어주셨습니다.
올해는 미술관 관람이 취미인 시각 장애인과 함께 여러 예술품을 보며 장애, 예술, 공존에 관해 생각해 보는 논픽션을 준비 중입니다. 빈곤 저널리즘상을 수상한 <아사히신문> 기자가 섭식 장애와 알코올 의존증 등 중증 정신 질환을 앓는 아내를 돌본 20년의 시간을 담아낸 르포도 있는데, 처절한 돌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현재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팬이 많은 브래디 미카코 작가의 책들도 출간할 예정입니다. 다다서재의 대표작이자 꾸준히 읽히고 있는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시리즈에 미처 담지 못한 10대들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첫 책은 『프리즌 서클』(가제)입니다. 일본의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는 다큐멘터리인데, 저자는 오랫동안 교정 시설을 취재하며 진정한 갱생의 의미와 방법을 탐구해 온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사회 운동가 사카가미 가오리입니다. '새로운 교도소'를 표방하며 대화를 통한 갱생을 시도한 '시마네 아사히 사회복귀촉진센터'를 10년 동안 취재한 결과물로, 일본에서도 교도소를 장기 취재한 다큐멘터리는 이 작품이 처음입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가 범죄자들을 벌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언젠가 돌아올 그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는 고민하지 않는 것 같아 의문스러웠는데요. 이 책이 그 의문에 많은 답을 주었습니다.
사실 『프리즌 서클』은 일본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원작입니다. 일본 쪽 SNS에서 워낙 극찬하는 평이 많아 궁금하던 참에 마침 온라인 상영이 있어 볼 수 있었습니다. 교도소와 수용자라는 생소한 세계를 그린 작품에 연결, 대화, 돌봄의 가치가 담겨 있어 굉장히 인상 깊었고, 한국에도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바랐죠. 그런데 마침 일본에서 책으로도 출간되었고, 읽어보니 영화와는 다른 의미로 굉장히 좋은 책이라 이건 꼭 우리가 한국에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죄와 마주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연결과 대화와 돌봄이라는 사실을 이 책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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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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