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교수 “삶이 만만치 않아서, 정치가 필요하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저도 정치에 무관심하고 싶은데요. 그게 가능하지 않은 것이 인간의 삶이더군요. (2021.11.11)
“삶이 그토록 고단한 것이니, 사람에 대한 예의는 타인의 삶이 쉬울 거라고 함부로 예단하지 않는 데 있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는 신작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프롤로그에 이렇게 썼다. 타인과 어울려 함께하지 않으면 도무지 살아남을 수 없기에 인간의 삶은 필연적으로 고단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살아내기로 결심하는 태도의 한가운데에 ‘정치’가 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공부란 무엇인가』 등의 전작으로 인간의 삶과 앎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졌던 김영민 교수가 이번에는 ‘정치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 살아있는 한, 어느 누구의 삶에서도 정치는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이번 책의 주제는 ‘정치’입니다.
정치외교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정치에 관한 교양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어쩌면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때마침 역대 가장 ‘비호감’ 대선이라는 말이 들리기도 하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우리의 삶이 만만치 않다는 것, 그래서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 정치에는 생각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라는 제목이 강렬하게 느껴졌어요. 어떻게 지은 제목인가요?
세상에 태어난 이후, 지속적으로 분투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잘 유지되지 않는 게 인간의 삶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본문에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이며, 그 문제를 다루는 데 정치 가 있다(19쪽)”라고 썼는데 출판사에서 그 문장에 특히 주목을 하셨어요. 부제인 ‘정치적 동물의 길’은 저의 제안이었습니다.
비단 ‘정치’라는 주제를 떠나 교수님께 특히 어렵다고 느껴지는 삶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삶의 어느 한두 문제가 어려운 게 아니라 삶 자체가 총체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해요. 어려움의 정도는 각기 다르겠지만, 삶이 어렵다고 느끼는 점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없을 거예요. 생활을 유지하려면 경제활동을 해야 하고,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남과 협력해야 하고, 아무리 스트레스가 쌓여도 제정신을 유지해야 하고, 허물어가는 육체의 건강을 보살펴야 하고, 때로는 삶의 의미까지 찾아야 하죠. 다들 이 삶을 어떻게 감당하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그 와중에 대통령이 되고자 선거에 뛰어드는 정신력은 또 어디서 오는 것인지(웃음).
책을 읽으며 정치를 외면하는 국민들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졌어요.
저는 정치를 냉소하거나, 혐오하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해요. 우리 앞에 펼쳐지는 현실의 정치는 그런 마음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죠. 동시에 그러한 냉소, 혐오, 외면 또한 애초에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 가능합니다. 무관심과 혐오는 다르니까요. 일단 ‘대면’을 했기 때문에 ‘외면’도 가능한 거죠. 삶의 여러 영역의 일들이 잘 해결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해결의 수단을 쥔 권력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이로써 정치에 대단한 관심을 쏟게 되지요. 그런데 이 관심을 배반해온 것이 정치의 역사이기도 한 것 같아요. 배반에 대한 분노는 한국 정치를 추동해 온 힘이기도 하죠.
코로나19는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거리의 집회에서 삶의 활력을 찾고, 내가 파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보다 큰 전체의 일부가 된 것 같아 가슴이 벅찰 수 있는 시절은 당분간 가버렸는지도 모른다(99쪽)”고 쓰셨는데요. 지금과 같은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정치에 참여해야 할까요?
거리에 나갈 수는 없지만 온라인으로 정치 공론장에 뛰어들 수 있어요.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던지는 방식이 아니라, 품위를 버리지 않으면서 정교한 정치적 논의를 해 나가는 체험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각종 매체에서도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죠. 특정 정파에 관한 의견으로만 기울어지지 않는 공론장이요.
더 중요한 것은 공론장에서 각자 어떤 입장을 어떻게 펼치느냐겠죠. 동문서답, 거친 어법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정치 현실의 정황은 매우 복잡합니다.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가 연루되어 있는 문제제기들도 현재진행형이고, 집권당 검찰총장이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죠. 자기 당이 배출한 대통령을 기소한 전직 검찰총장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한편, 이른바 진보 대학생 단체가 그 후보를 공식 지지하기도 하고요. 그 어느 때보다 더 깊고 정교한 생각과 상상력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정치계에서도 MZ세대가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습니다. 젊은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젊은 정치인이 필요한 이유는 적어도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듯합니다. 하나는 젊은 세대의 열망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 젊은 정치인이 등장하여 그 세대의 열망을 대표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기성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을 찾고자 하는 열망에서 오는 것이죠. 현재 우리나라 정당들이 표방하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대체로 빈약한데, 정치 사상에 관심이 있는 젊은 세대가 뛰어들어 그 이데올로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하루아침에 갑자기 정치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일찍 입문하여 좋은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과정이 잘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4부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파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다민족, 동성애, 여성, 인구, 아파트, 윤리, 유사가족, 전염병, 중앙과 지방, 신분 등은 현실에서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한동안 한국 정치를 정의해나갈 키워드예요. 사람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고, 좀 더 지적인 고려가 필요한 사안들이죠. 이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칼럼계의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으세요. 여러 매체에 발표된 교수님의 칼럼을 모두 모아 두는 사람들도 종종 보았고요. 사람들이 교수님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잘 모르겠어요. 저보다는 독자들이 대답해주면 좋을 질문인데요. 언젠가 강연이 끝나고 3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분께서 책에 사인을 요청한 적이 있어요. 그분이 저에게 “저희 시어머니와 시어머니 친구들이 사인을 받아달라고 부탁하셔서 왔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아 내 책을 읽는 노년층의 독자들이 있구나’라고 깨달았죠. 얼마 전에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저자 사인이 있는 신간을 자신에게 보내주면 대학생이 되고 나서 저에게 디저트를 사주겠다고 하더군요(웃음).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의 분포가 다양하다는 점에서 볼 때, 아마 각기 다른 이유로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 추측해요.
교수님의 글은 결론이 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통쾌하거나, 유머러스하거나, 찔리는 등 평범하지 않은 시선으로 글이 마무리되는데요. 글을 잘 마무리하는 교수님만의 비결이 있을까요?
복잡한 결을 가진 삶의 맥락을 단순화하는 글, 그래서 독자의 편견을 강화하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아요. 그걸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삶에는 ‘예측가능한 법칙’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아이러니’가 많습니다. 그 아이러니를 함께 생각해보자고 권유하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단정적인 결론을 내지 않게 되는 듯 해요.
요즘 자주 하는 생각, 고민이 있으세요?
저의 직업 활동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대학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이 터져 나올 뿐 아니라, 팬데믹으로 인해 기존의 대학 교육 방식이 큰 도전을 받았죠. 이러한 와중에 대학에서 가르친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또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새삼 생각하는 중이에요.
마지막으로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저도 정치에 무관심하고 싶은데요. 그게 가능하지 않은 것이 인간의 삶이더군요.
“어떻게든 다 잘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가? 나 하나만큼은 평범하고 은은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거기에 정치는 없다. 세상에 혼자 그냥 잘되는 일은 없다. 잘되고 있다면, 누군가 정념과 에너지와 인생을 갈아 넣었기 때문이다. 뭔가를 위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갈아 넣을까 고민하는 데 정치가 있다.” _(19쪽)
*김영민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브린모어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중국정치사상사 연구를 폭넓게 정리한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2017)를 출간했다. 『중국정치사상사』는 영어 저서의 한국어판 번역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국내 독자를 위해 영어판과는 다른 문체로 다듬고 큰 폭으로 원고를 수정 집필한 새로운 중국정치사상사이다. 이 외에도 산문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2018), 논어 에세이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2019)을 비롯해 『공부란 무엇인가』(2020)를 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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