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수 교수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는 같이 살아도 문제 없어”
『조현병의 모든 것』
지금 조현병 환자의 대부분은 우리하고 같이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요. 그 분들이 약을 잘 먹도록 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으면 많은 문제를 막을 수 있어요. (2021.06.15)
우리는 모르는 대상을 두려워한다. 그것이 어떤 존재이든 물질이든 현상이든,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기는 쉽다. 두려움이 깊어지면 차별과 배제를 낳는다. 조현병은 어떤가. 뉴스 속에서 조현병 환자는 ‘언제 어떤 (끔찍한)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우리는 이 병과 환자, 그 가족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조현병의 모든 것』에 따르면 조현병은 뇌의 질병이고, 100명 중 1명이 평생에 한 번 정도 걸리는 비교적 흔한 정신질환이다.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는 전혀 위험하지 않으며 치료를 통해 환자의 75%가 개선된다. 당뇨병과 마찬가지로 발병 원인이 한 가지가 아니고, 여러 해에 걸쳐 재발과 완화가 거듭되며, 약물 치료로 완치는 안 되더라도 대체로 통제는 잘 되는 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정보를 알지 못하고, 조현병과 그 환자들을 두려워한다.
“조현병 환자에게 공감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사실은 조현병을 그만큼 더 큰 재앙으로 만든다.” 『조현병의 모든 것』의 저자 E. 풀러 토리는 말한다. 정신의학자이자 조현병 연구의 대가인 그는 조현병의 원인, 진단과 증상, 치료, 예후에 관한 연구, 그리고 자신이 상담한 환자들의 사례를 총망라해 『조현병의 모든 것』을 펴냈다. 1983년에 처음 출간한 이후 현재까지 7판을 거듭하며, 35년간 축적된 상담 사례와 조현병에 관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을 담았다.
책의 감수를 맡은 권준수 교수(서울대학교 정신과학•뇌인지과학과)는 “국내에서 오래전에 번역이 되었어야 하는 책이 이제나마 소개되는 것은 크나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책처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조현병과 강박증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이자 세계적인 뇌의학자인 권준수 교수는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바로잡는 데 앞장서왔다. 저서로 『나는 왜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가 있다. 그는 『조현병의 모든 것』의 감수를 맡아 국내 실정에 맞게 일부 내용을 추가하고, 국내 조현병 환자와 가족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보완했다. 권준수 교수와 만나 『조현병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사회에서 조현병에 대한 인식은 어떤 것 같으세요?
현재는 굉장히 문제가 많죠. 조현병 환자라고 하면 그냥 범죄자 또는 중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 이렇게 생각하고 낙인을 찍는 거예요. 그게 굉장히 문제가 있고요. 사실 그런 사람들이 아주 일부예요. 대다수는 괜찮고 아주 일부만 문제를 일으키는 건데, 그 문제가 언론에 계속 나오니까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보는 거죠. 그 부분에 문제가 있죠.
조현병이 굉장히 희귀한 질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은데요. “100명 중 1명이 앓고 있는 비교적 흔한 정신질환”이라면서요?
전 세계적으로 평생 유병률이 100명 중에 1명이에요. 역학(epidemiology)에서는 되게 유명한 이야기예요. 역학이라는 게 발생률이 얼마나 되는지, 위험 요인이 어떻게 되는지, 그런 걸 연구하는 분야거든요. 그런데 조현병을 조사해봤더니,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1%로 확인됐어요. 100명 중에 1명은 평생에 한 번 정도 걸려요.
그런데 우리는 왜 조현병이 드물다고 오해할까요? ‘낙인’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감추고 있기 때문이겠죠?
겉으로 안 드러나죠. 드러나면 낙인 찍히고 이상하게 보니까, 대부분은 드러나지 않아요. (증상이) 아주 심하면 누가 보더라도 ‘조금 이상하다’ 생각하기도 하고, 또는 급성기에 아주 심하게 증상이 나타난다면 누가 보더라도 아는데요. 그렇지 않고 (증상이) 조금 좋아진 상태에서 후유증이 약간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냥 봐서는 몰라요. 다 보통 사람이에요. 우리 학생들이 실습 나와서 정신과 병동에 가면, 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이상한 세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들어가서 보면 똑같은 사람이에요. 오히려 주치의들한테 ‘아니, 저 환자분은 괜찮은데 왜 입원해 있어요?’ 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만큼 이제는 약도 좋아졌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하죠.
낙인을 찍을수록 우리 사회가 위험해지는 것 아닐까요? 환자들이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지 않을 테니까요. 실제로 그런 경우를 많이 보시나요? 치료 시기가 늦어져서 안타까운 경우가 있나요?
그런 경우는 굉장히 많죠. 특히 조현병은 증상이 굉장히 복잡해요. 크게 나누면 양성 증상과 음성 증상이 있는데요. 양성 증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에요. 환청, 망상, 말과 행동이 조리가 없고 충동적이고, 그런 것들이 양성 증상이에요. 음성 증상으로는 말이 없어지고요. 어떤 자극이 들어왔을 때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는 게 둔화돼요. 그게 아주 심해지면 감정이 그냥 납작해져요(flat). 아무런 감동이 없고 즐거움이 없어요. 대인관계가 없어지고요. 양성 증상이 나타나면 알 수가 있는데, 음성 증상은 가족들도 그냥 ‘쟤가 원래 성격이 저래, 그게 조금 심해졌어’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병원을 굉장히 늦게 오는 경우가 많아요. 대개는 양성 증상과 음성 증상이 섞여 있는데, 음성 증상이 주된 증상일 때는 조금 늦게 병원에 와요. 양성 증상이 있더라도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늦게 오는 경우가 많고요.
치료를 빨리 시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요.
연구를 해보면, 증상이 나타나고 치료를 시작할 때까지의 기간이 길수록 예후나 경과가 안 좋아요. 치료 받지 않은 기간을 DUP(Duration of Untreated Psychosis)라고 하는데,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이 기간이 짧을수록 예후가 좋아요. 그래서 『조현병의 모든 것』 같은 책이나 그런 걸 통해서 일반인들이 빨리 알아야 돼요. 알아서 빨리 치료를 받아야 예후가 좋거든요.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고 자꾸 낙인이 찍히니까 문제죠. 낙인이 찍히면 숨잖아요. 병원에 빨리 와야 되는데도 ‘병원 가면 정신질환 낙인 찍히니까... (병원에 안 가도) 좋아지겠지’ 생각하고 말거나, 또는 많은 사람들이 ‘그건 네가 조금만 마음을 굳게 먹으면 좋아지는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가족들도 그래요. 아이들이 힘들어서 병원 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도 ‘네가 이겨내야지, 네가 약해서 그래’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병원에 몰래 오는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인식이 중요하죠.
책의 초반에 “조현병 환자가 어떤 일을 겪는지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사자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뒤이어 조현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들이 실제로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어떤 괴로움을 토로하나요?
많죠. 환청 같은 게 대표적인 거고요. 우리 몸에 다섯 가지 감각이 있잖아요. 보통 사람들은 이 감각들에 자극이 있어야 느껴요. 그런데 조현병 환자들은 자극이 없는데 자극을 느끼는 거예요. 그게 환각이죠. 환각 중에 제일 많은 게 환청이에요. 청각이 예민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조현병 환자분들이 측두엽에 이상이 많아요. 초기에 청각이 예민해지는데, 요새 많이 주장하는 건 윗집에서 너무 시끄럽게 한다는 거죠. 보통 사람들은 괜찮은데 예민한 거예요. 청각이 예민해져서 그런 거죠. 그게 심해지면 ‘일부러 나를 괴롭히려고 저런다’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피해망상 같은 거죠. 그리고 자기를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 증상도 있어요. 그런 게 대표적인 거고, 그 외에도 증상들은 무지 많죠.
‘조현병의 10년 후 경과’에 대한 연구 결과가 실려 있는데, 치료율이 꽤 높은 것 같더라고요.
대개 1/3로 생각을 해요. 1/3은 예후가 좋아서 약을 끊을 수도 있고, 1/3은 약을 끊으면 자꾸 재발하고 약간 문제가 있고, 1/3은 조금 문제가 많은 것으로 어림잡아서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약이 좋고 여러 가지 치료법이 있으니까 조금 더 좋은 쪽으로 옮겨가 있죠. 이 책에서는 25%로 이야기를 하잖아요. 25%는 약을 끊을 수 있고, 25%는 약간의 힘듦이 있지만 비교적 경과가 좋고, 25%는 조금 더 주의를 요하고 약간 후유증이 있거나 대인관계가 조금 힘들고, 나머지 25% 중에서 15%는 치료가 잘 안 된다고 봐요. 100% 중에서 15% 내외가 치료가 좀 안 되는 걸로 보는 거죠. 그리고 10%는 결국 자살이나 사고로 사망한다고 통계적으로 나오는데요. 조현병 환자분들이 자살하는 경우는 예측하기 어려워요. 우울증 환자가 자살하는 건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데, 조현병 환자의 자살은 예측하기 쉽지 않아요. 굉장히 충동적이에요. 그래서 막기가 쉽지 않아요.
이 책은 ‘조현병은 뇌 질환’이라고 말하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살면서 경험한 어떤 일들 때문에 정신 질환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조현병은 뇌의 질환이기도 하고 환경의 영향을 받기도 하죠. 둘 다 관련이 있어요. 뇌의 문제, 생물학적인 문제가 60~70% 정도를 차지하고 30% 정도는 외부의 환경 문제가 동반돼야 하는 거예요. 모든 질환이 다 그래요. 문제는 뇌를 무시하고 환경과 사회 문제만 이야기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100% 환자의 뇌 문제라고 할 수는 없어요. 뇌라는 게 동전의 앞뒤면 같아요. 한쪽에서 보면 물질이잖아요. 신경세포 같은. 다른 쪽에서 보면 마음, 정신, 행동 같은 게 나타나죠. 이게 같은 거라고요. 한쪽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당연히 다른 쪽이 바뀌죠. 우리가 우울하면 뇌가 바뀐다고요. 그리고 뇌 기능이 바뀌면 우울해져요. 둘 다 같은 현상이에요. 단지 아직 과학이 덜 발달돼서 신경세포 같은 물질적인 연결성에서 어떻게 추상적인 마음이나 정신이 나오는지 아직 모르는 거죠.
조현병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이 병에서만 유일하게 발견되는 증상도 없고요.
정신질환 중에서도 특히 어려운데요. 일단 유전적인 영향을 받아요. 임신이 1~3기로 나눠지는데, 1기는 주로 큰 장기가 발달하는 시기예요. 2기는 주로 뇌가 많이 발달하는 시기고요. 크게 보면, 보통 사람들은 1기와 2기에 뇌가 정상적으로 발달을 해요. 신경 세포가 이동을 하고 서로 연결하고 시냅스를 형성하는 게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요. 그런데 조현병 환자들은 시냅스 연결이 조금 엉성하게 되는 거예요.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신경 세포의 이동이 잘 안 돼요. 그렇게 됨으로써 뇌 발달에 약간 문제가 있는 거예요. 특히 뇌의 앞뒤를 볼 때 중간에 관련된 부분의 발달이 조금 문제가 있죠. 소위 말하는 외부 환경에 쉽게 손상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는 어떤가요?
대부분은 태어나도 크게 문제가 없어요. 문제없이 그냥 자라요. 그러다가 사춘기가 되면, 그러니까 10대 후반에서 20대 길게는 30대 초반까지, 뇌가 급격하게 바뀌는 시기예요. 호르몬의 변화도 있고, 상당히 인지 기능이 많이 필요한 시기예요. 그 전까지는 뇌가 단순한 기능만 하다가 그때가 되면 추상적인 사고를 하게 돼요. 보통 사춘기가 되면 갑자기 철학적인 생각도 하게 되고 그러잖아요. 그러면서 고민도 하고요. 그때 뇌가 ‘가지치기(pruning)’를 해요. 그 전까지는 신경 세포를 막 연결을 하다가, 그때가 되면 필요 없는 연결을 가지치기하는 거예요. 가위로 자르는 것과 똑같아요. 나무가 겨울을 나려면 쓸데없이 영양분을 사용하는 걸 잘라야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필요 없는 걸 잘라주는 거예요. 그런데 조현병 환자들은 그때 과도하게 가지치기를 한 거예요. 연구를 해보면 필요한 것도 가지치기하는 현상이 나타나요. 뇌는 취약한데 스트레스나 인지 기능은 늘어나고, 막 가지를 쳐서 엉성하게 돼 있고, 일종의 이완(loosening)이 되면서 연결이 느슨해지고, 그러니까 견디지 못하고 병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10대 20대에 많이 발병하는군요.
네. 어릴 때는 잘 생기지 않고 나이 든 사람도 잘 생기지 않아요. 그때(발병 시기)를 잘 넘기면 소위 말하는 조금 약한 뇌를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병에 안 걸리고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조현병은 외부 환경과 뇌가 둘 다 관련이 있는 거죠. 그래서 증상들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거예요. 뇌가 여러 군데 다 관련돼 있고 이완(loosening)돼 있으니까 증상도 다양한 거죠.
조현병 환자라고 하면 집 안에만 틀어박혀서 아무런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 책을 보면 환자가 아닌 사람들과 똑같이 노동을 하고, 결혼 생활을 하고, 심지어 연구 활동도 하더라고요. 실제로 그런 경우가 적지 않은 거죠?
있죠. 제 환자분들 중에도 당연히 회사 다니는 분들도 많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외국의 경우에는 유명인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낙인을 없애는데 도움이 되죠. 한 교수는 TED 같은 강연에 나와서 조현병을 앓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계속 교수 생활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어요.
언론에서 조현병 환자와 관련된 뉴스를 다룰 때, 아쉬움이 느껴지지는 않으세요? 보도 방식이 어떻게 바뀌면 좋을까요?
그건 언론에서 이미 다 알고 있죠. 예를 들면 자살한 사람을 보도할 때의 지침이 있잖아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지침을 따라서 자살이라는 말을 안 쓰잖아요. 방식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도 않고요. 그런 것처럼 조현병과 관련해서도 약간의 지침이 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죠. 언론은 당연히 이슈가 되는 걸 다루고 싶겠지만, 그런 것 말고 다른 것도 언론에 낼 수 있거든요. 조금 다른 것을 다뤄야 되고, 다루더라도 조현병을 사건 사고와 동일시하면 안 되죠. 대개 약을 안 먹고 재발했을 때 사고가 생기는 거고, 또 재발을 하더라도 막을 수가 있는데 지금은 그걸 막지 못하는 시스템인 거거든요. 그런 게 문제인데 마친 그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처럼 보도하는 건 문제가 있죠. 뉴스를 보면 경찰에 몇 번이나 연락을 해서 왔는데도 사고를 못 막은 경우들이 있잖아요. 그러면 경찰에 문제가 있는 거죠. 그리고 그걸 다루는 법이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그런 걸 다뤄줘야 되는데, 그런 건 놔두고 마치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그건 문제가 있는 거죠.
이 책에 보면 ‘피의자’가 조현병 환자일 때는 그 점을 밝히면서 ‘피해자’일 때는 굳이 밝히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돼요.
그렇죠. 맞아요.
실제로 조현병 환자가 강도, 강간 등의 범죄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면서요?
그렇죠. 사고가 많이 날 수 있죠.
예전에는 이 병의 이름이 ‘정신분열병’이었죠?
이 병 자체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옛날부터 이 병이 어떤 병인지 (관찰한) 역사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의 큰 역사적인 게 오이겐 블로일러(Eugen Bleuler, 스위스 정신의학자)가 schizophrenia라는 병명을 만든 거예요. schizo라는 게 찢어진다, 분열된다(splitting)는 뜻이에요. phrenia는 횡경막(diaphragm)이고요. 옛날에는 정신이 심장이나 간 같은 횡경막 근처에 있다고 생각해서 이름을 그렇게 붙인 거예요. schizophrenia, 정신이 분열되는 찢어지는 병이라고. 왜 그렇게 생각했냐 하면 조리가 없거든요.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분열돼 있어요. 생각은 이렇게 하는데 행동은 다르게 하고, 생각은 이런데 감정은 다르고. 기쁜 일이 있는데 슬퍼하거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히죽히죽 웃는 식이에요. 분열돼 있는 거죠. 그래서 schizophrenia라고 이름 붙였고, 그걸 일본 사람이 그대로 번역해서 정신분열병이라고 한 뒤로 한자 문화권에서는 그 병명을 사용했어요.
지금의 병명으로 바꾸는 데 많은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으로 바꾸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정신이 분열된다’라는 게 보통 말이 아니잖아요. 낙인을 찍는 거라고 생각해서 제가 대한조현병학회 이사장을 할 때, 당시는 대한정신분열병학회죠, 그때 병명개정위원회를 만들었어요. 환자 보호자, 변호사, 언론인, 정신과 의원, 임상심리학자, 사회사업가 등이 모여서 몇 년 동안 작업을 했죠. 이미 일본은 ‘통합실조증(Integration Disorder)’으로 병명을 바꾼 뒤였어요. 사고와 감정이 통합이 잘 안 되는 병이라는 뜻이에요. 그때 여러 논의를 해서 결국 바꾼 이름이 ‘조현병’이에요. 조현(調絃)이라는 게 거문고나 기타의 줄을 튜닝하는 건데, 그게 잘 돼야 옳은 소리가 나잖아요. 우리 뇌도 신경 세포가 연결이 잘 돼야 하는데 엉성하게 연결되면 문제가 생기는 걸 비유적으로 표현했어요. 그리고 옛날부터 연상이완(loosening of association)을 정신분열병의 핵심적인 하나의 현상으로 관찰했거든요. 말을 하는데 조리가 없고 생각의 연결이 이완돼 있는 걸 관찰해서 굉장히 중요한 현상이라고 봤어요. 그러니까 ‘조현’이라는 말이 둘 다를 설명하는 거죠. 현상학적으로도 엉성한 걸 설명해주고, 실제로 뇌의 어떤 이유도 설명하고요.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도 많을 것 같습니다. 동시에 이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할 거고요.
가족의 지원이 굉장히 중요해요. 조현병 환자분들한테도 가족들이 중요하고, 그 가족들의 스트레스나 정신건강도 중요해요. 가족들도 굉장히 힘들거든요. 무조건 가족들이 환자한테 어떻게 해야 된다고 말하는 건 맞지 않아요. 그 분들도 환자로 인한 스트레스가 무지 많아요. 그것도 다뤄줘야 돼요. 환자 중심으로 생각하면, 병이 잘 치료될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도와줄 건 도와주고 지원을 해줘야죠. 너무 간섭해서 ‘너 이렇게 해야지, 왜 그렇게 못 하냐, 약 계속 먹어야지’ 계속 그러면 스트레스 받아요. 그런 것보다는 약간 객관적으로 떨어져서 힘든 걸 도와주고 혼자 하는 걸 지켜봐 줄 수 있는 여유를 조금 가져야죠. 그래야 가족들도 스트레스가 덜해요. 요새는 연세 드신 보호자 분들이 많아지니까 본인이 죽고 난 다음에 환자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이야기를 많이 해요. 지금은 보호자가 돌보고 있지만 보호자가 죽고 나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이 없는지, 그런 것도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책을 읽으면서 상상해봤어요. 만약 내 가족 중에 조현병 환자가 있다면 어떨까. ‘너희 가족이 다 떠안고 가족 안에서 해결하라’고 한다면, 너무 외롭고 절망적일 것 같아요. 사회에서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우리가 현재 주장하고 있는 거예요. 소위 국가책임제 비슷하게 돼 있는데요. 정신건강복지법에 보면 보호자의 의무 비슷한 게 나와 있어요. 이런 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는 보호자가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건데, 강제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걸 (보호자가) 책임지는 것처럼 되어 있다고요. 모든 걸 다 보호자한테 떠넘기고 있는 거예요.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입원시키는 것도 보호자가 책임을 져야 되고, 그래서 보호자가 부담이 많은 거예요. 문제가 있죠. 이 결정을 국가가 하라고 요구하는 게 ‘사법입원제도’예요. 보호자에 의한 ‘비자의 입원’이 아니고, 국가가 보고 입원 치료가 필요하면 결정하라는 거죠. 그걸 안 하고 자꾸 보호자한테 떠넘기다 보니까 나중에 보호자한테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의사도 문제가 생기고, 다 문제인 거예요. 그런데 국가가 손 놓고 있는 거예요. 보호자가 늙고 세상을 떠난 다음에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런 문제도 공공의료에서 책임지라는 거예요. 그걸 지금 못하고 있는 거예요.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요. 합의해야 할 많은 문제들 중에 하나는 ‘조현병 환자들의 행동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일 거예요. 굉장히 어려운 문제죠.
네,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데요. 기본적으로, 병의 증상으로 인한 행동이라면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조현병 환자가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원인이 굉장히 다양해요. 예를 들면 ‘저 사람이 나를 해치려고 하는구나’라는 피해망상이 있어서 굉장히 불안해하고, 그래서 자기가 먼저 공격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 경우는 병의 증상 때문에 한 행동이기 때문에 책임을 묻기 어려워요. 그건 거의 심신상실, 심신미약이죠.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죠. 똑같이 보는 거예요. 그런데 조현병 환자가 증상이 다 좋아졌는데, 부모하고 이야기하다가 화가 나서 어떤 일을 저질렀다면 그건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죠. 병하고 관계없이 한 일이니까요. 또 술을 먹고 어떤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죠.
『조현병의 모든 것』을 읽으면 이 병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될 텐데요. 그 결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면 좋을 것 같으세요?
지금 조현병 환자의 대부분은, 어떻게 보면 약간 내성적이고 대인관계에서 조금 힘들어하고 자신 없어 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오히려 착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하고 같이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요. 그 분들이 약을 잘 먹도록 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으면 많은 문제를 막을 수 있어요. 물론 약만 먹는다고 해결은 안 되죠. 그렇지만 약이 재발을 막는 데 가장 중요해요. 지금 사고를 일으키는 아주 일부의 환자들이 약을 안 먹어서 병이 재발하고 증상이 나타나서 문제를 일으키는 거거든요. 그리고 같이 잘 살아가면 낙인도 덜하고 환자분들도 겉으로 드러낼 수가 있잖아요. 그러면 약도 꾸준히 먹을 수 있단 말이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사건 사고도 줄어들고 치료받는 것도 자유롭게 되니까 선순환으로 갈 수 있어요. 그게 안 되고 낙인이 찍히니까 자꾸 숨고, 자신이 환자라는 걸 드러내기 어려우니까 약 먹는 걸 꺼리고, 악순환으로 가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도 조현병에 대해 조금 이해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요새 조현병이라고 하면 마치 괴물처럼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실제로 보통 사람하고 똑같다니까요. 그런 걸 잘 이해할 필요가 있는 거죠.
*권준수 서울대학교 정신과학·뇌인지과학과 교수이자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현병과 강박증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이자 세계적인 뇌의학자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1998년,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에서 뇌 영상술을 이용한 정신질환의 기전을 연구했고, 이를 계기로 현재까지 정신질환의 조기 발견, 조기 치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서울대학교병원에 강박증 클리닉을 열어 전문적인 치료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지난 30년간 연구자이자 치료자로서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을 바로잡는 데 앞장서왔다. 특히 대한조현병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정신분열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줄이기 위해 조현병(調絃病)으로 병명을 변경하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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