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 “좁은 뇌에서 벗어나 마음의 세계를 보다”
『뇌를 들여다보니 마음이 보이네』 이상현 저자 인터뷰
타인이나 그 어떤 것을 중심으로 보는 각각의 시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작은 자기중심의 세상에서 넓게 열린 세상으로 좀 더 나아가지 않을까요? (2020.09.25)
뇌는 우주와 닮아 있다. 각각의 점이나 따로 분리되는 영역이 아니라 무수히 연결된 선이 이루는 거대 네트워크라는 구조와 그 연결성에서 유사하다. 가정의학과 의사인 이상현 저자는 평소 수많은 환자를 만나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부지런히 뇌를 사용하는 데도 어느 순간부터 자꾸 사라지는 기억 때문에 뇌 공부를 시작했다. 생각과 욕구, 감정, 행위, 모든 것들이 뇌의 어느 부분에서 일어나는지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그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뇌의 작동 원리를 익히면 사람의 마음도 쉽게 알게 되리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어 사람의 심리와 명상에까지 파고들었다.
긴 시간의 공부 끝에 저자는 ‘나라는 존재가 하나의 점으로 다른 점들과 연결되듯이 뇌도 연결로 이루어진 작은 우주’라고 느꼈다. 이제 기억이나 감정이 뇌의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 애쓰기보다 그저 있는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봤다.
첫 책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가정의학과 의사이신데 어떻게 뇌와 마음을 연결하는 책을 쓰게 되셨나요?
학교 다닐 때부터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의과대학 다닐 때 암기해야 할 것은 많은데 그걸 잘도 기억하는 친구들 보면 아주 부러웠어요.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기억력에 자신이 더 없어지더군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 이름마저 갑자기 생각이 안 날 때가 있고, 환자나 전공의의 이름도 잘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생겼어요. 기억력이 점점 더 떨어지는 제 모습을 보면서 사라진 기억이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이러다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뇌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뇌의 여러 영역을 공부하다 보면 기억뿐만 아니라 감정과 관련한 신경전달물질들이 우리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을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조절 체계가 불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우울이나 불안 등 마음의 증세를 보이게 되고요. 치료에 이용되는 약물들도 이런 작용 기전에 따른 것들이지요.
하지만 마음은 작은 뇌에 갇혀만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뇌와 마음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마음을 보려면 작은 뇌를 벗어날 때(beyond the brain) 비로소 큰마음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기억에서 시작한 뇌 여행이 마음으로 이어지면서 『뇌를 들여다보니 마음이 보이네』 책이 나오게 되었네요.
평소 진료를 볼 때도 뇌와 마음을 공부한 것이 도움 되었나요?
외래에서 환자를 만나면 이곳 저곳 병원을 다니면서 각종 검사는 정상이지만, 여러 증세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 약물을 시도해보지만, 어떤 때는 약물치료로 한계가 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지요. 그럴 때 잠시 생각해봅니다. 이분의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뇌에는 어떤 생각들로 차 있을까?
그럴 때 환자에게 자신의 머릿속을 그려 보라고 합니다. 머릿속 모양을 해부학적으로 그리라는 것은 물론 아니고요. 머릿속 생각들을 그려보라는 것이지요. 대부분 생각은 많으나 그 생각들이 자신의 머릿속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그려본 적이 없어서 주저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제 머릿속을 그려서 환자에게 보여드립니다. 그러면 환자도 자신의 머릿속을 그리기 시작하지요. CT나 MRI와 같은 뇌 영상 검사로 뇌출혈이나 뇌종양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지만, 머릿속 생각을 볼 수는 없잖아요. 그럴 때 머릿속과 가슴 속에 어떤 생각과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주치의인 저와 제 환자가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첫 단추가 되기도 합니다.
태어나고 세월이 흘러 노화가 일어나는 전 과정에서 늘 따라오는 숙제는 나와 주변을 바로 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어떤 삶의 태도를 갖추면 좋을까요?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나는 나에게 왜 그리도 집착하게 될까요? 물리적으로 보면 나라는 존재는 피부라는 테두리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공간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책에서 ‘피부 자아’로 표현했는데, 그 피부 안 공간에 박혀 헤어나지 못할 때, 많이 우울해지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불안해지는 것 같아요.
뇌의 각 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나라는 존재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어요. 이번 책에서는 ‘함께 본다는 것의 경이로움’이란 글에서 두꺼비를 제가 처음 봤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제가 두꺼비를 보고 있지만, 두꺼비는 저를 객체나 주변 환경의 하나로 보고 살아가겠지요.
나를 중심으로 보는 시각은 내 시각이고, 타인이나 그 어떤 것을 중심으로 보는 각각의 시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작은 자기중심의 세상에서 넓게 열린 세상으로 좀 더 나아가지 않을까요? 피부 안 공간에서 벗어나 세상과 만날 때 비로소 나를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책에서 리더에 관해 이야기하며 “머리로 동의가 안 된 사람을 가슴으로 미워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생각을 내비치셨습니다. 작은 조직에서부터 폭넓게 우리 사회에까지 어떤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세상의 리더들은 자신의 자리에 대해서 두 가지 입장을 가집니다. 자신의 자리를 임시직이라고 생각하는 리더와 평생직으로 생각하는 리더이지요.
임시직으로 리더의 위치를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떠난 후 그 역할을 이어갈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러니 사람을 키우게 됩니다. 키운다는 말은 그 자리를 떠날 준비를 한다는 것이지요. 반면에 자기가 있는 자리를 평생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자리를 잃지 않고 지키기 위해 흔히 주위 사람들을 이용하려고만 하지요.
책에서 리더는 주인의식이 너무 투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썼는데요. 리더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도리어 그 조직을 위한 하인 의식이 투철해야 한다고 봐요.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처럼 주인 의식만으로 굳어져 조직과 자신을 일체화시키는 리더는 위험할 수 있어요.
떠날 때를 준비하기 위해 주위 사람을 키우는 인물, 내가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난 사람, 타인 혹은 세상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우리 사회의 리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서 뇌를 벗어나서(beyond the brain)라는 말을 했는데, 리더라면 자신을 벗어나(beyond yourself)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겠지요.
종종 머리와 마음이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큰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머리와 마음의 소리를 어떻게 적절히 듣고 판단하면 좋을까요?
저같이 선택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가혹한 질문인데요. 우둔한 저는 우답을 드릴 수밖에 없겠네요(웃음).
책의 ‘49를 버리는 용기’라는 글에서도 선택의 문제를 다루는데요. 인생은 최선책을 얼마나 잘 선택하느냐가 아니고, 차선책을 얼마나 잘 선택하느냐로 결정됩니다. 왜냐하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책은 선택하면 되고, 선택할 수 없는 최선책은 포기하면 되니까 고민거리가 되지 않지요. 그러나 우리가 사는 문제는 고만고만한 차선책들이 여러 개 놓여 있어서 머리가 무거워지지요. 하나의 선택은 하나의 포기를 의미합니다. 두 손이 있어서 양 손에 쥐고 있는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고민과 갈등의 늪에 빠지게 되지요.
선택이 어려운 것은 포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선택 갈등을 겪어 괴로워하는 환자들을 만나면 저는 그것이 중요한 문제라면 지금은 선택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할 때 선택하는 것은 잘못된 포기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요. 일단 머릿속이 조금 맑아진 후 선택하도록 권해요. 흙탕물이 가만히 두면 가라앉듯이 생각을 차분히 내려놓은 후 맑아진 상태에서 선택할 때 지혜로운 선택에 가까워지겠지요.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코로나로 인해 무거운 감정에 억눌려 지쳐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무기력증, 막막함, 막연한 분노와 예민함, 답답함과 같은 감정이 온 세상을 에워싸고 있는데요. 계속해서 마음 공부를 하시는 입장에서 이럴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면 좋을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TV 뉴스를 보면 온통 안 좋은 소식들로 꽉 차 있습니다. 사람은 보는 것으로 마음이 이루어지고, 먹는 것으로 몸이 형성됩니다. 요즘처럼 안 좋은 뉴스들을 주로 보게 되는 때에는 마음도 따라서 어둡고 무거워집니다. 여러 생각과 걱정이 머릿속에 들어차게 되지요. 생각을 비워야 한다고 쉽게 말은 하지만 이렇게 머릿속에 꽉 찬 걱정과 생각은 비우기가 어려워요.
그럴 때 저는 생각을 비우려 애쓰지 말고 주위에 펼쳐지는 것들을 충실히 느껴보자고 합니다. 저는 이것을 오감 쉬프팅, 오감 전환이라고 하는데, 과거나 미래에 대한 반복되는 생각의 늪에서 나와서 호기심 가지고 지금 나를 둘러싼 환경과 모든 것을 느껴보는 것이지요. 즉, 생각 집중을 감각 집중으로 바꾸면 어느새 생각 중독에 빠졌을 때는 느끼지 못한 세상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조금 더 들어가서, 오감 중 종일 눈으로 보느라 혹사당하는 시각과 입으로 먹을 때 사용하는 미각을 잠시 쉬게 해보면 어떨까요? 나머지 청각, 촉각, 후각에 집중하는 방식인 ‘청촉후’ 명상을 책에서 좀 더 상세히 소개해놓았습니다. 직장 문제로 걱정이 많아 잠을 못 이루는 분에게 청촉후 명상을 알려드리고 함께해본 적이 있어요. 다행히 다음 외래에 오실 때 얼굴이 훨씬 편해지셨고, 중요한 삶의 결정도 지혜롭게 내리셨더군요. 이처럼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을 없애려 싸우지 말고, 지금 느껴지는 감각을 호기심 어린 아이처럼 느껴보는 '오감 전환'을 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뇌를 들여다보니 마음이 보이네』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주제로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여기에서 확장하여 더 깊이 다뤄보고 싶은 주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여러 큰 목소리들로 시끄러운 세상입니다. 누구나 평화로운 세상을 바라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지요. 세상만 시끄러운 것이 아니고 여러 고민과 생각들로 우리 마음과 머릿속도 시끄럽습니다. 그 속에서 고요를 느끼는 순간들을 자주 가져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고요'를 주제로 책을 쓰고 싶습니다. 생각과 생각 사이, 소리와 소리 사이, 들숨과 날숨 사이에 고요가 머물지요. 아니, 고요라는 큰 도화지에 여러 가지 것들이 그림을 이루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동양의 산수화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것은 여백인데, 우리는 검은 먹물만 그림으로 인식하곤 합니다. 사실 가장 큰 공간은 하얀 여백인데 말입니다. 고요도 이런 여백과 비슷하다고 봐요. 생각과 생각 사이나 그 밑바탕에는 고요가 깔려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생각으로 꽉 차 시끄러운 머릿속에서 고요하게 나와 세상을 바라볼 방법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이번 책에서 ‘내알바’ 마음챙김을 소개했는데요. ‘내알바’는 내려놓고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음 책을 쓴다면 ‘내알바’를 통한 고요에 이르는 방식을 조금 더 펼쳐보고 싶습니다.
*이상현 노인의학을 전공한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연세대학교 의대 가정의학과 임상교수로 연세대학원 노화과학연구소에서 ‘뇌와 노화’를 가르쳤다. 환자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아 자신이 치매에 걸릴까 걱정되어 뇌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UNC에서 노인의학을 연수하며 인지기능을 공부하는 가운데 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몸도, 마음도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마음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건강증진센터 소장이자 공공의료사업단장으로 KBS 〈건강 365〉, 〈건강플러스〉, 〈라디오 주치의〉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여 건강 상담 활동을 했다. 함께 쓴 책으로 『온 가족이 함께 읽는 노인병 클리닉』, 『우리 가족 주치의 굿닥터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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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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