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람 판사 “처음 만나는 판사의 실무 이야기”
『판결문을 낭독하겠습니다』 도우람 저자 인터뷰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었던 사건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판단이 어려워도 맡은 사건에 결론을 내리는 게 판사의 역할이니까요. (2020.08.12)
법정 드라마나 영화에서 판사는 주로 법정에 선 엄숙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재판이 판사 업무의 대부분일 것이다, 라고 어렴풋이 짐작하고요. 물론 재판은 사건 처리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판사들이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좌절하며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은 바로 자신의 공간, 사무실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재판 외에, 판사는 어떤 일을 할까요?
도우람 판사님은 판사의 업무를 중심으로 그동안 궁금했던 법원의 판단들까지 『판결문을 낭독하겠습니다』에 세세하게 써 내려갑니다. ‘워라밸’을 꿈꾸고, 육아 휴직을 가며, 부장(판사)님과 ‘티키타카’를 하는 9년 차 직장인, 도우람 판사님께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책에서 ‘오늘도 야근일까’ 고민하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다 굳은 어깨를 스트레칭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 엿보여서 새로웠습니다. 평소 일상을 살짝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이들이 어리고, 아빠를 싫어하지 않아서 보통 가족과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화가 시작되기도 하고요. 따로 또 함께 노는 셈이지요. 혼자 시간을 보낼 때면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봅니다.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이라 일주일에 한 권쯤 읽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휴식을 위해서는 침대에서 뒹굴면서 유튜브를 보는 것이 최고죠. 스포츠나 게임 영상을 주로 봅니다.
법원에서 진행하는 모의재판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예전에 근무했던 작은 법원은 여름방학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흘 일정으로 법원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모의재판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대상으로 하기에 이해하기 쉽습니다. 판사, 변호사, 검사, 당사자 등으로 역할을 나누고 대본을 읽기만 해도 재판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재판의 참맛을 경험할 수 있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 목적(판사라면 공정한 판결, 검사라면 범죄인의 처벌, 변호사라면 무고한 피고인의 변호와 형량의 감소겠지요)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학생들도 흥미를 가졌고, 저도 보람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포기하고 싶었던 사건이 있으신가요?
판단이 어려운 사건은 정말 많습니다. 특히 저처럼 쉽게 설득되는(?) 사람의 경우 원고와 피고의 말이 모두 맞는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법리적으로는 한쪽의 주장이 맞지만, 실상 다른 쪽이 억울한 사건도 적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구제가 어려운 경우지요.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었던 사건은 없습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판단이 어려워도 맡은 사건에 결론을 내리는 게 판사의 역할이니까요. 다만 다수의 당사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기록의 양이 많아지고, 당사자들에 대해 개별적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정이 다르니까요.
예를 들어, 주상복합 주민들이 앞의 빌딩 때문에 생기는 반사광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빌딩을 가진 회사가 배상해야 할 손해인지도 쟁점이었습니다만, 손해를 인정해도 입주민들의 집이 남향인지, 북향인지, 몇 층인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등 사항이 전부 달라 손해액을 어떻게 산정할지도 문제였습니다. 이런 사건은 가급적 피하고 싶지만, 한 단계씩 해결해 나갈 뿐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판결문의 기능 가운데 자기 검열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법연수원 교수님들과 법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부장님들께 누누이 들은 말입니다만, 판결문은 논리적인 틀 안에서 작성됩니다. 허점이 있으면 읽는 사람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습니다. 판결문에는 문제가 발생한 상황은 무엇인지, 쟁점은 무엇인지, 그 쟁점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는지,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가 드러나야 하기 때문에, 판결문을 쓰면서 이러한 내용을 빠뜨리지 않으려고 스스로 점검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가 가장 중요하겠지요. 부장님과 협의를 거쳐 오류를 수정함으로써 논리적인 완결성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판례를 바꾸어나가고자 고심하는 판사들의 노력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일선에 있는 판사들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주로 일했던 1심 재판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1심 판사들은 정의와 구체적인 타당성을 주로 고민합니다. 그 과정에서 판례를 찾아보겠지요. 문제 된 쟁점에 판례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판례가 있다고 해도 담당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1심 판사들은 기존의 판례들을 숙지하여 정의롭고 구체적으로 타당한 판결을 하려고 하겠지요.
하지만 1심 판사들이 어떤 판결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판례를 바꾸거나 새로운 판례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과 다른 판결을 했지만 당사자들이 항소와 상고를 하지 않으면 대법원의 재판을 받지 않습니다. 새로운 판례가 될 가능성이 없지요. 대법원이 내린 판결이 판례가 되는 것이지 1심과 항소심의 판결은 사례일 뿐입니다. 대법원까지 올라가서 판결을 받더라도 대법원이 보기에 기존의 판례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도 판례가 바뀌지는 않겠지요. 정리하자면, 1심 판사들이 의식적으로 판례를 바꾸어 나가려고 하기보다는 개개의 사건에서 정의를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바뀌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변호사나 검사보다 판사의 업무에 만족하며 일할 수 있을까요?
검사와 변호사, 판사는 법조계를 구성하는 세 바퀴입니다. 어느 직역을 선택할지는 과거 사법연수생들, 또는 지금의 로스쿨생들이 가진 큰 화두일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3가지 직업 모두 매력적이면서도 하는 일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개인마다 성격과 기호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직역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제가 어떤 이유로 판사를 선택했는지 말씀드리면 결정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검사를 꿈꾸었고, 군법무관 시절에는 변호사를 희망했던 전력이 있으니까요.
제가 검사가 되지 못하겠다고 느꼈던 것은 검찰청에서 검사시보로 일할 때였습니다. 피의자들을 조사하는 게 주된 업무였는데, 저는 잘못을 엄벌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 이해, 공감하는 감정을 더 많이 느꼈습니다. 훌륭한 검사가 되기는 어려웠던 것이죠. 변호사의 길을 단념했던 것은 과정보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결국 소송 승리를 통해 클라이언트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데 조금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판사는 재판 과정 자체가 중요하고 판결에는 ‘좋은’ 판결은 있지만 ‘승리’라는 개념이 없어서 스트레스가 조금 덜한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판사라는 직업의 장점과 단점을 간략하게 말씀해주세요.
판사의 최고 장점은 자율성과 독립성입니다.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위법관도 후배 법관에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판사 각각이 하나의 독립기관으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판결합니다. 단순히 판결을 내리는 데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재판 절차나 순서, 업무의 비중이나 시기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소신껏 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러한 특성은 단점이기도 합니다. 주어진 사건만 처리하기 때문에 업무 특성상 수동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재판의 중립이나 공정을 해할 가능성이 있는, 아니면 그런 우려를 부르는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매사에 조심해야 하지요. 이런 특성 때문에 활동력이 넘치는 분들이 보기엔 약간 답답한 측면이 있지요. 그만큼 안정감이 있다는 것은 장점이 될 수 있겠고요.
* 도우람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2012년부터 판사로 일했고 민사합의부, 형사합의부, 민사 단독판사를 거쳐 현재 고등법원 민사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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