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읽어요? 말아요? 그 이유는?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저자 한승혜 인터뷰
스스로에게 '심심할' 시간을 주시면 책에서 점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 그간 운동이나, 모임, 영상매체 등의 다른 취미 활동에 썼던 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거죠.(2020. 07. 24)
우리나라 성인 연간 독서량은 겨우 6.1권. 독서 습관이 부족한 대중들은 모처럼 책을 읽으려 할 때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참조한다. 그런데 베스트셀러는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인 동시에 가장 무시당하는 책이기도 하다. 서평가들이나 학자들이 베스트셀러에 정식 서평을 남기는 일은 극히 드물다. 아무도 그 함량을 평가해주지 않는 가운데 많이 팔린 책이니 계속 잘 팔릴 뿐이다.
이 기현상에 답답함을 느낀 저자는 직접 최근 수년간 베스트셀러 순위를 장악한 책들을 꼼꼼히 읽어보기로 결심한다. “정말 베스트셀러는 함량 미달인 책일까”, “왜 사람들이 사보게 되었을까”, “어떤 점에서 위안을 받았을까?”, “이 책들은 과연 독자들의 욕망을 어디까지 총족시키는가” 등의 질문을 품고서. 1년 동안 이 질문에 끈질기게 매달린 결과가 바로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이다.
주례사 비평과는 거리가 먼 솔직하고 사정 봐주지 않는 책 평가가 인상적입니다. 그간에는 왜 이런 솔직한 서평이 드물었던 걸까요?
저도 늘 그 점이 궁금했는데요, 아무래도 '관행' 측면이 큰 것 같습니다. 현직 출판 관계자들이나 작가, 서평가들 하다못해 독자들마저도 대부분이 지나친 혹평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대개는 한 권의 책을 만드는데 얼만큼의 노력이 드는지를 알고 있기에 비판을 하는 것이 '미안하다'는 이유를 들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늘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책 뿐만이 아니라 본래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뭐든지 어렵거든요. 영화나 음반 혹은 연극이나 드라마 등의 창작물들 그 중 어떤 것도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없어요. 심지어 저자 한 명에 출판사 직원 몇 명이 고생하는 책 한 권하고 다르게 영상 매체에는 평균적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의 땀이 담겨있죠. 그런데도 평가는 가차 없어요. 대중은 당연하고 평론가들도 혹평을 마다하지 않고요.하지만 출판시장으로 오면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지죠.
아마 제가 책에 적은 바와 같이 아예 베스트셀러 자체를 책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일종의 경향성이 분명 우리나라 독서 문화 전반에 깔려 있지 않나 싶어요. 지금까지 그런 분위기가 없었는데 새삼스레 총대를 매는 것이 어색하거나 두려운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어쩌면 영상과 다르게 활자 매체는 시장 전반이 죽어가고 있으니 그 시장을 조금이라도 더 보호하기 위해 그러는 것일 수도 있고요. 독서광으로 소문난 이동진 영화평론가 역시 저서인 『이동진 독서법』에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영화에는 혹평을 할 수 있지만 책에는 안 좋은 책에 비평을 가하는 것보다 좋은 책을 발굴하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고. 저는 물론 동의하지 않지만요. 왜냐하면 그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근거가 '매체에 따른 차이가 있다' 정도 말고는 없거든요. 저는 죽어가는 출판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때로 과감한 비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무도 모르는 알려지지 않은 책을 일부러 찾아내서 굳이 조목 조목 따지고 들 필요는 없겠죠. 그럴 시간에는 이동진 평론가의 의견대로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고 보람있는 작업일 거예요. 다만 어떤 특정한 책이 몇 십만 부, 몇 백만 부씩 팔리기 시작하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독자 입장에서 아무런 가이드 없이 명성에만 기대어 선택한 책이 재미있을 확률은 극히 드물고, 재미없는 독서는 책에서 멀어지는 지름길이니까요. 따라서 '초보 독자'들이 보다 유의미한 참고를 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쉬운 용어로 베스트셀러를 설명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베스트셀러만 일부러 찾아 읽느라 분투하셨을 듯한데, 그 과정에서 인상적인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아요?
아아, 너무 많죠. 본문에도 적었긴 한데, 어떤 책들은 읽고 나서 정말로 몸이 아파오더라고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1년간 신경성 장염을 엄청 자주 겪었던 것 같아요. 독서가 주제로 떠오를 때마다 제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내용이 독서는 자발적이어야 하고, 책은 어쨌든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평소에 읽지 않는 책들을 억지로 읽는 작업이 정말 괴로웠어요. 동시에 그 책들을 읽는 시간에 읽고 싶은 책을 못 읽는 것도 안타까웠고요. 그러면서 이제 땅굴 파고 그러는 거죠. 내가 왜 그랬을까....왜 이런 책을 쓴다고 그랬을까......이러면서 출판사 대표님 막 원망하고. 그러니까 뭐 맛있는 거 사주시더라고요. (웃음) 아무튼 그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공감하게 되었달까요? 자기의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을 읽는 것이 이렇게 괴로운 작업이구나, 이러니 세상에 어떤 책들이 있는지, 그 중 무엇이 자기 취향에 맞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책에서 멀어지고 출판시장이 자꾸만 축소되는 것이 당연하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독서량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얼마나 읽으시는지? 이런 기획이 아닌 평소에는 어떤 책들을 주로 읽으시나요?
호기심이 많아 숙독보다는 다독을 하는 편이에요. 아, 이 책 정말 좋다, 정말 재미있다 생각하는 때가 많지만 동시에 세상에 어떤 재미있고 특이한 책들이 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거의 매번 새로운 책을 읽고, 읽다가도 다른 흥미가 생기면 금방 갈아타기도 하는데, 평균적으로는 이틀에 한 권 꼴 인 듯 하네요. 취향에 맞는 아주 재미있는 책, 특히 소설책 같은 것들은 모든 자투리 시간을 동원해서 하루에 끝내는 경우도 있고, 인문사회과학서적은 대개 분량이 많으니 조금 더 오래 걸리고요. 평소에는 주로 문학 서적을 많이 읽습니다. 그 안에서는 소설, 시, 에세이, 비평서, 만화책까지 그날 그날 내키는대로 읽고요. 인문사회과학서와의 비율은 7:3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주 좋아하는 책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기도 해요.
육아를 하면서 그 많은 책을 읽는다는 게 놀랍기도 하네요. 비결이 있을까요?
안 그래도 저보고 대체 잠은 언제 자냐고 묻는 분들이 가끔 계신데요, 사실 독서 자체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아요. 대략 하루에 2~4시간 가량? 솔직히 이게 아주 긴 시간은 아니거든요. 영화 한 두편 볼 시간인데, 보통 자기 전에 다들 TV 보거나 게임 하시거나 하지 않나요? 운동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저 같은 경우도 아마 다른 취미활동이나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온갖 자투리 시간을 대부분 독서에 써서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친구도 없고, 애들을 돌보느라 다른 취미활동도 못하니 그 시간에 책을 읽는 거죠. (웃음) 여러분도 친구가 없으면 책을 많이 읽으실 수 있습니다. 농담이고요.
다소 진지하게 말하자면, 책을 읽으려면 어느 정도 '심심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첫째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데, 매일 심심하단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거든요. 친구들이랑 놀이하거나, TV 보거나, 게임하는 시간 외에는 계속해서 심심하다고 그래요. 그러면 제가 말해주거든요. 사람은 가끔씩 심심할 필요가 있어. 그러고나면 뾰루퉁해 있다가 나중에 조용해서 보면 놀 게 없으니 결국 책을 읽고 있더라고요. 아마 지금은 어떻게 저렇게 책을 많이 읽지 하시는 분들도 스스로에게 '심심할' 시간을 주시면 책에서 점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 그간 운동이나, 모임, 영상매체 등의 다른 취미 활동에 썼던 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거죠. 물론 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억지로 무리해서 할 필요는 절대 없고요. 독서 역시 취미활동의 하나일 뿐이니까요. 요즘은 장거리 운전하면서 오디오북을 듣는 분들도 많이 계시더라고요.
맥주 초보에게 대개의 맥주 맛이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비유가 재미있었습니다. 독서 초보자들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선구안을 길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그럼에도 초보자들을 위한 좀 실패할 확률이 적은 책 선택법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아는' 누군가의 추천을 받는 것이에요. 베스트셀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많은 사람들이 읽지만 우리가 그 많은 사람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만약 내 입맛에는 에일이 맞는데, 사람들이 다들 맛있다고 해서 먹어봤는데 그 맥주가 라거라면 어쩌나요? 결국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의 추천은 실패할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영화만 하더라도 그렇잖아요.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너무나 차이가 나요. <분노의 질주>나 <스타워즈> 등의 빵빵 터지고 시원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감정선이 섬세한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같은 작품을 좋아하기는 힘든 것처럼요. 그러니까 결국은 내가 알고 나를 아는 누군가의 추천을 받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겠죠? 내 입맛에 에일이 맞다면, 나처럼 에일을 좋아하는, 나랑 비슷한 입맛을 가진 사람이 무엇을 마시는가를 잘 봐두었다가 따라 마시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친한 친구 중에 책을 많이 보는 신뢰할 만한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에게 추천을 받을 수도 있고, 혹은 SNS 등지에서 추천을 받을 수도 있고요. 요즘 SNS나 인터넷 서점에는 다독가나 애서가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내 취향에 맞는 사람들을 체크해 두었다가 그들이 읽는 책을 따라 읽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중요하게는, 추천을 받으면 반드시 메모를 할 것. 그러지 않으면 결국 까먹고 잊게 되니까요.
문학을 많이 읽으신다고 하셨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나요?
저는 이런 질문이 가장 어려워요. 이런 질문에 척척 대답하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취향이라건 고유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기분이나 생각처럼 매 순간 순간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사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없어요. 마음이 울적해서 위로가 필요할 때, 화가 나서 신랄한 냉소가 필요할 때, 어딘가 스산하고 텅빈 듯한 느낌에 빈 자리를 채울 필요가 있을 때, 그냥 경쾌하거나 밝은 느낌이 필요할 때, 그때 그때 머리에 떠오르고 생각나는 책들이 달라지거든요. 그리고 읽고 있을 때는 그 책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막 작가랑 사랑에 빠지는 거죠. 그러다가 다른 책 읽으면 그때는 또 그 책이 더 좋아지고요. (웃음)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 라는 건 사실 없어요. 그때 그때 달라지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꼽아보자면, 간결하고 위트있는 글을 좋아해요. 장엄한 대서사시나 격동적인 사건이 가득한 이야기들보다는 인간의 세세한 감정의 결, 소시민 사이의 사소하고 깨알같은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요즘 즐겨 읽는 작가는 케이트 쇼팽과 루시아 벌린이에요.
머리말에서 "세상에는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책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라고 쓰셨습니다. 아마 다음번에는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책에 대한 서평집이 나올 듯한데 계획은 어떠신지요?
이것은 제 징크스 중의 하나이기도 한데요, 제 취향이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제가 아주 좋아하거나 재미있게 읽은 책들은 얼마 안 팔리고 곧 절판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년에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를 열심히 읽고 주변에도 열심히 추천하고 선물했는데, 올해 그 중 한 권이 절판된 것을 보고 무척 마음이 아팠더랬습니다. 미야시타 나츠가 쓴 산골 체험 에세이인 『신들이 노는 정원』 역시 아주 재미있는데 거의 빛을 보지 못해 매우 아쉬웠고요. 앞서 언급했던 케이트 쇼팽이나 루시아 벌린 역시 그리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는 참인데요, 그래서 다음에는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책들, 이대로 묻히기는 아까운 책들에 대한 서평집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1쇄만으로 끝난 책 특집을 해봐도 좋을 것 같고 (웃음), 여성 서사에도 관심이 많은지라 여성 서사를 집중적으로 다루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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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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