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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지금 시작하는 생각 인문학』2편 모방, 창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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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과 창조 활동은 이미 만들어진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며, 새로운 아이디어는 늘 기존의 것과 결합해서 탄생합니다. 즉 모방 없이 창조는 불가능합니다. (20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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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신만이 창조한다. 우리는 단지 모방할 뿐.”
_ 미켈란젤로

 

『우리말 유의어 사전』 에서 ‘모방’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반대말에 위치한 단어로 ‘창조’가 나옵니다. 이렇듯 모방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창의성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흔히 모방을 단순히 베끼기, 따라 하기, 아류와 같이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는 경우도 많지요. 창의성과 모방을 대립된 개념으로 보는 이유는, 모방이 독창성(originality)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독창성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완전한 새로움을 의미한다면 그런 생각은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독창성이 완전한 새로움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것을 확장하거나, 다른 부분에 응용하는 것 그리고 유추하는 것 자체로 독창적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컴퓨터와 인간의 차이를 말할 때, 컴퓨터는 입력되지 않은 정보를 출력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 역시 입력되지 않은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능력이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을 생각해냈다고 여기지만, 사실 과거 언젠가 뇌에 입력되어 있던 것들입니다. 단지 그 사실을 기억해내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면 컴퓨터와 달리 인간만이 지닌 독창성은 우리의 어떤 능력으로 가능한 것일까요?


바로 그것은 인간의 연결하는 능력 때문이라고 합니다. 존재하는 것들을 빌려와 연결하는 능력, 그것이 창의적 사고의 근간인 것이죠. “창의적 아이디어란 낡은 요소들의 새로운 결합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관련성을 볼 줄 아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 말은 『아이디어를 내는 방법』 을 쓴 제임스 양(James Young)의 말입니다. 모방이 창조 과정에 필수불가결하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유사성을 어떻게 찾아내고 새롭게 연결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은 창조라는 것이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처럼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수많은 창의적 산물들이 이를 입증해주듯이 상상과 창조 활동은 이미 만들어진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며, 새로운 아이디어는 늘 기존의 것과 결합해서 탄생합니다. 즉 모방 없이 창조는 불가능합니다. 모방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이끄는 긍정적인 모방 행위를 막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창의성을 이끄는 모방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 삶에 연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창의적인 삶을 위한 두 번째 질문은 ‘나는 모방하는가’입니다.

 


모방의 과정에 배움이 있다


사생화를 그릴 때 세부사항에 지나치게 몰두해 중요한 점을 간과하면 안 될 텐데, …그래서 바르그의 방법론을 다시 공부하기로 했단다. 그는 강한 선과 형태, 단순하고 섬세한 윤곽을 사용한 화가야….(1881년 7월)


바르그의 <목탄화 연습>을 꾸준히 따라 반복해 그려본 결과, 인물 데생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개념을 얻게 되었다. 측정과 관찰, 주된 선들을 찾는 방법을 배우게 된 거지. 그래서 지금까지는 완전히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것들이 차츰 가능해지기 시작했단다. 고마운 일이지.(1981년 9월)

_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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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형 모방이 창의적 삶에 의미 있는 이유는 배움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창의성은 먼저 배움에서 시작합니다. 어떤 분야든 경지에 오르기까지 사람들은 끊임없이 기존의 지식을 배우고 익힙니다. 이러한 배움이 창의성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것이지요. 고흐의 편지에서 나타나듯, 많은 예술가가 창조의 벽에 부딪혔을 때 기존 대작들을 수없이 모방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 과정이 단순히 ‘남의 것을 따라 하는 일’을 넘어서 그다음 창조의 길을 알려주었다고 말합니다.


나만의 것을 만들어가는 배움의 과정으로 모방을 인식하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창조 과정을 방해하는 행위로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따라 하는 과정을 통해 대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작품을 만들거나 문제를 푼 사람의 입장을 떠올리며 창조 과정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고 그의 스타일이 자신과 맞는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모방 행위는 독창성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단순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자칫 처음부터 완전히 멋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역시 창의적이지 못해’라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기보다 (“만약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보았기 때문이다.”라는 아이작 뉴턴의 유명한 말을 빌리자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기 위해 일단 거인에게 다가가 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요? 기존 지식의 답습과 모방 과정은 창조적 작업의 토대가 될 테니까요.

 

 

 

 

*  이화선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만난 ‘창의성’의 세계에 깊이 매료되어 이 공부에 빠지게 됐다. 자신만의 생각을 세상에 내보이고,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성장 욕구’라는 강력한 동기를 발견했다. 또한 일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으로서 창의적 태도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도 주목했다. 이후 15년 넘게 예술, 문학, 과학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창조적 삶을 산 인물들의 사고 과정을 연구해왔으며, 창의성에 관한 학문적 고찰과 실제 삶에 적용하는 방법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석, 박사 졸업을 하고 창의적설계연구소(CREDITS), 한국예술종합학교, 성균관대학교 다산창의력센터에서 선임연구원으로,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창의적 관점과 사고, 영재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와 100여 회가 넘는 대학 및 기업체 특강을 해오고 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로 10여 년간 창의성 교양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강의는 10년 연속 인기 강의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 시작하는 생각 인문학 이화선 저 | 비즈니스북스
15년 넘게 창의성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의 통찰과, 이를 바탕으로 10여 년간 수천 명에게 강의해온 생각수업의 핵심을 담아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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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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