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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58화 : 우리 목표는 그를 만나러 온 자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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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찍이 앞서 걷고 있는 방우창을 확인하자 조원은 임무 교대를 하고 그를 따랐고 미행하던 자는 빠지면서 야마시타 조장의 옆으로 붙었다. (2019.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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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안대길이 쓰다 달다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모친이 말아낸 뜨거운 국밥을 쟁반에 얹어 날라다가 건어물 행상 사내 앞에 내주며 말했다.


 “우선 국밥부터 자시우. 그러고 나서 장사를 하든지 말든지 해야 할 거 아니우?”


 “따는 그렇구먼요.”


행상도 금방 알아들었는지 씨익 웃으며 받았다. 그가 식사를 마치자 부엌 앞에 서서 지켜보던 안대길이 말했다.


 “일루 좀 들어와 보슈. 그 밴댕이 좀 봅시다.”


두 사람은 부엌 봉당에 가까이 앉자마자 눈초리와 말씨가 달라졌다.


 “어디의 누구슈?”


안의 말에 행상이 대답했다.


 “인천에서 공장 다니는 김근식이라구 하오. 방우창 동지는 정미공장에 잘 안착했고 조직과도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안이 아직도 긴장을 풀지 않은 채로 그에게 다시 물었다.


 “내게 무슨 다른 말은 전하지 않습디까?”


 “두쇠는 잘 있는가 안부를 묻습디다.”


안대길은 안심하여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들은 십분 안에 모임을 끝내야 했으므로 중요한 사항만 주고받았다. 헤어지기 전에 김근식이 말했다.


 “상해 쪽과 선이 연결 되었으니 국제당과 협의가 활발해질 겁니다.”


안대길은 원칙대로 행동했고 그와 방우창이 직접 만나는 일은 오랫동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머지않아 두쇠가 그쪽으로 갈 겁니다.” 


안은 그렇게만 말해 주었다. 


사실 야마시타 정탐조는 김근식의 이동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래서 꼬리를 달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집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부두에 나가 조 십장의 도움을 받아 행상 차림과 건어물 등속을 갖추고 부평까지 걸어서 인천 경내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부평에서 기차를 타고 영등포역에 내린 것이 이른 아침이었고 출퇴근하는 노동자와 사무원들로 역은 제법 붐볐다. 그는 실제로 그날 오전 내내 양평 당산 일대의 서민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행상을 했다. 김근식은 노련한 활동가였으므로 꼬리를 달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신이 행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시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정탐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랬다. 그리고 점심 무렵이 지나서 느지막이 오후 두 시쯤에 안대길네 밥집으로 찾아갔던 터였다. 또한 그는 귀로에도 부평에서 내려 지게를 진 차림대로 걸어서 인천 중심가를 피하여 한밤중에야 부두에 도착해서 차림새를 바꾸었다. 그가 귀가를 한 시간은 자정 무렵이어서 골목에는 인적이 끊긴지 오래였다. 


이이철은 종적을 놓친 이관수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류재익과 그는 아직 경성 관내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 듯했고 활동은 극도로 자제하고 있었지만 정리 중이었다. 그들 사이에 정리라는 것은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과 올바른 노선의 제시에 있었다. 우선 노출되지 않은 연결점들을 스스로 끊고 최소한으로만 남겨서 문건으로 지침을 전달했다. 필사된 간단명료한 문건은 외우거나 재필사 되어 전해졌다. 이철은 연락을 받고 경성으로 들어갔고 이전에 비상시의 장소로 정해졌던 동대문 바깥 동묘 부근으로 갔다. 전차에서 내려 동묘를 둘러싸고 번성한 도시 빈민들의 초가집 토막촌의 좁은 골목에는 늘 장사꾼들이 붐볐다. 그는 오후 다섯 시 반에서 여섯 시까지 이백 미터쯤 되는 길을 오르내리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가 세 번째로 골목길을 걷고 있는데 바로 맞은편에서 이관수가 걸어왔다. 이관수는 누빈 마고자에 날개를 젖힌 털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이철은 처음에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철이 막 그를 지나치려는데 그 농사꾼이 걸음을 멈추며 말을 걸었다. 


 “여보슈 길 좀 물읍시다.”


이철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이관수임을 알아채고는 대답했다.


 “예에 물어보슈.”


 “동묘가 어디쯤 되오?”


이철은 서슴치않고 그의 앞장을 서며 말했다. 


 “내가 시방 그리로 가는 길입니다. 따라오시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일행이 되어 토막촌 사이의 샛길로 들어서고 마을 외곽으로 나아갔다. 미행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들은 이미 가을걷이가 끝난 채마밭 들판으로 나아갔다. 주위에는 초겨울 날의 땅거미가 어둑하게 내려앉았다. 두 사람은 들판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용건은 간단했다. 체포된 정 아무개와 미야케가 접촉하던 국제당 선의 권모가 회합을 요청했으나 지키지 못했다. 남은 조직 중에 일부가 현장 파악을 위해서라도 그들과 함께 사업하는 것이 좋겠다. 문건은 조선공산당 재건협의회 이름으로 나가며 이후 그것이 장차 각 조직의 연합을 이룬 명칭이 될 것이다. 학생운동 부문을 맡았던 박 아무개 동지가 경성의 남은 오르그 간의 연락을 책임질 것이다. 문건은 이들 최소의 오르그들만 열람한다. 이이철도 그에게 인천의 현황을 보고했다. 


 “김근식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아, 그는 류 동지의 오랜 동무고 두 사람은 징역에서 만났다네. 우리 쪽 사람이지.”


 “그의 전달에 의하면 상해와 연결선이 있다는데요.”


 “인천이니까 그럴 수 있겠지. 그러나 그들은 국내 사정을 너무 모르니까 직접 연결은 피하도록 하게.” 


 “방우창 형은 우리 조직에서 일하면서 국제당의 김형신씨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인천으로 도피한 경위는 잘 아시지요?”


 “알고 있네. 그를 통해서 코민테른 울라디보스톡 극동부에서 나왔다는 권모의 조직과 만나보도록 하게.” 


이이철과 이관수는 용건을 마치자 저녁도 함께 먹지 못하고 왕십리 들판에서 헤어졌다. 이이철은 귀가하여 아내 한여옥과 논의했다. 그녀는 차라리 자기가 인천에 가보겠다고 말했지만 이철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김형신의 레포로서 최초의 연락자였고 김형신과 접선하면서 방우창이 드러나게 되었다. 따라서 아내는 이 일에 다시 연루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산달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이이철은 일전에 김근식이 전해준 인천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다. 그는 먼저 박선옥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박선옥은 그냥 수수한 평상복인 개화치마 저고리 위에 외투 걸치고 여사무원이나 여직공의 나들이처럼 인천으로 갔다. 역시 김근식은 오랜 활동가답게 약속장소도 범상치 않았다. 그녀가 간 곳은 교회당이었다. 박선옥은 예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성가대의 풍금 반주를 마치고 나오는 여성에게 접근했다. 박이 건어물 장수를 아시냐고 물었고 그녀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박선옥이 지난번에 그이가 팔고 간 밴댕이가 맛있었다고 하자 그녀는 안색을 바꾸었다. 그 여성은 동양방직에 다니는 김근식의 야체이카였다. 그날 저녁에 박선옥과 김근식은 만국공원에서 청춘 랑데부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이이철과 방우창이 만날 날짜와 시간이 정해졌다.


이이철은 매서운 추위가 시작된 십이월 중순에 인천으로 기차를 타고 갔다. 그는 어둠이 내려앉은 응봉산 초입에서 정각 여섯 시를 기다렸다. 


야마시타 조는 방우창을 집중적으로 사찰하며 결정적인 때를 노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미행과 잠복을 반복했다. 정미공장에 다니는 방은 비교적 일상이 규칙적이었고 별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주점에서의 모임도 차츰 뜸해지더니 장소를 바꾸거나 형식이 바뀌었는지 함께 모이지 않게 되었다. 야마시타 최달영은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다. 너무 뜸만 들이다가 다 된 밥을 아예 태워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이었다. 그들이 공작으로 운영하는 독서회 모임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장씨와 방우창의 동태를 사찰하면서 끈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야마시타가 숙소에 있는데 잠복 나갔던 조원이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방이 외출했습니다.”


 “뭐야 어디로?”


 “지금 미행 중입니다.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야마시타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누구나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아니면 방우창도 술 한 잔 생각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의 퇴근 후 외출은 매우 오랜만의 일이었다. 확인하고 돌아와도 별로 손해 볼 일은 아니었다. 그가 누군가를 만나고 자신이 확인하지 못한다면 이제까지의 고생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는 서두르며 신발을 꿰어 신고 거리로 달려 나왔다. 그들은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마 안가서 미행하는 조원을 따라 잡았다. 멀찍이 앞서 걷고 있는 방우창을 확인하자 조원은 임무 교대를 하고 그를 따랐고 미행하던 자는 빠지면서 야마시타 조장의 옆으로 붙었다. 


 “틀림없이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지금 거리 밖으로 빠지고 있지 않습니까? 술이나 밥을 먹으러 가는 게 아니란 말씀입죠.”


그들은 간격을 두고 방의 뒤를 쫓으면서 점점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응봉산 방향이었다. 응봉산의 만국공원 성공회 교회당 옆의 산책로를 향하여 그는 올라갔다. 그들은 어둠 속에 간신히 자취를 알아볼만한 거리에서 그가 오솔길로 접어들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서로 속삭였다.


 “우리는 여기 잠복해 있을 테니 자네가 가서 누구를 만나는지 확인해라.”


 “체포합니까?”


조원이 긴장해서 묻자 야마시타가 짜증을 냈다.


 “바카, 키워서 잡아먹자고 이 고생 아닌가. 확인만 해라.”


잠시 후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조원이 돌아왔다. 


 “누군가를 만났습니다.”


 “요오시, 방우창은 숙소로 돌아갈 게 틀림없고 우리 목표는 그를 만나러 온 자다.”


야마시타는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그 자는 인천 바깥에서 방을 만나러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되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숙박하지 않을 것이다. 여관이나 숙박업소에 흔적을 남기게 된다. 그렇다면 교통편은 두 가지다. 도보로 나가거나 경인 기차를 타는 길이다. 이 추운 밤에 걸어가지는 않을 것이며 분명히 기차역으로 간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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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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