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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의 <아무르>, 여름날의 슈베르트
다리우스 콘지, 말러, 슈베르트 <즉흥곡 3번>…
슈베르트 <즉흥곡 3번>에는 물결처럼 잔잔한 아르페지오가 이어진다.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 괴물과 싸우는 대신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둔해진 손 탓에 느린 속도로 삐걱이며 아르페지오를 따라갔으나 삐걱이는 와중에도 슈베르트의 선율은 아름다웠다. (2019. 09. 18)
음악이 아니었더라면 없었을 것들
나 피아노 치러 가야 해.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도 불쑥 이 말을 하고는 했다. 모두들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당 수업은 물론 소그룹에 속해 학기 내내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시험이 끝나 해방감에 들떠 학교 옆 몽파르나스나 뤽상부르공원을 가로질러 간 카페에서 샴페인과 와인을 마시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시간 계산을 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가면 오후 5시니까 음계 연습에 40분, 9시까지 베토벤 소나타나 쇼팽 에튀드를 몇 번 칠 수 있겠다, 라는 계산이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도 순식간에 상념에 빠지는 나에게 사람들은 말했다. “마음이 먼 데 가 있는 사람처럼 눈빛이 꿈꾸는 것 같아.” 자주 만나는 친구로부터 “너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피아노가 더 중요해?”라는 불만 섞인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철이 없었을 때라 친구가 상처를 받든 말든 “응, 그래”라고 답하면서도 미안한 줄 몰랐다.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을 하다 보면 시간이 휙 지나가 있다. 내가 음악에 가장 가까이 있고, 오로지 나만 존재하며, 가장 나답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여행을 떠나 한동안 피아노를 못 치다가 집에 돌아갈 때면 내 피아노가 절실히 그리웠다. 파리의 공항이나 기차역에 가까워지면 ‘당장 집에 가서 피아노 앞에 얼마나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어림짐작하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큰 무대를 앞두고 연습할 시간을 만들기 위해 인터뷰 시간대를 조정하고 싶어 하는 인터뷰이들의 요청대로 아침 8시 반에 호텔 조식을 같이 먹거나, 리허설이나 공연이 끝나기까지 밤 10시가 넘도록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 향수 브랜드의 파리 부티크에만 있다는 높이 2미터가 넘는 향 캡슐의 향기로부터 영감을 얻는다는 다리우스 콘지 감독은 알고 보니 부근에 사는 이웃이었다. 우리는 향수에 이어, 근처 카페에서 내놓는 산미가 강하고 꽃향기가 올라오는 원두에 밀도 높은 우유 거품을 올린 플랫 화이트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았다. 이어서 그가 열렬히 사랑하고 경배하는 영화에 대해 진심 어린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옥자>를 찍던 강원도의 밤하늘과 산세에 얼마나 다양한 검은색이 놓여 있었는지, 봉준호 감독이 틀어주었다는 소콜로프의 피아노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한 흥분이 깃들어 있었다.
처음부터 음악이 아니었더라면 성사되지 않았을 인터뷰였다. 그는 정중하지만 빈틈없이 완강한 거절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날은 마침 7월 7일, 말러의 생일이었다. 작곡가 친구와 “우리 악보 들고 만나서 같이 저녁 먹고 음악 들을까?” 한 날이기도 했다. 런던에서 런던 심포니를 이끈 하이팅크의 실연을 들은 이후, 거대한 우주를 연상케 하는 말러 <3번>에 매혹되어 있던 시기였다. 1악장이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거절 메시지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음반을 다 듣고 우주 여행자가 된 듯한 벅찬 마음으로 답을 보냈다. “<옥자> 말고도 <아무르>에서의 이야기도 궁금했고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언젠가 또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막 말러의 생일을 기념해 그의 <3번> 교향곡을 들었다. 인간은 작은 존재에 불과하고 오로지 예술만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영화로 또 만나기를 바란다”라고. 바로 그에게서 답변이 왔다. “말러를 들었나?” “오늘은 말러의 생일이라 의식을 치르듯,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몇 번을 들었나? 누구 지휘로??” “<3번>, 하이팅크 RCO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메시지가 연달아 이어졌고 그가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며칠의 침묵 이후 답변을 해온 날이 마침 7월 7일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때 말러를 듣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틀이 지나 세 시간 넘게 이어졌던, 그러고도 할 이야기가 남아 한참 아쉽기만 했던 인터뷰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을까?
아르페지오, 느리게 삐걱이며…
눈물이 많은 편이라 자주 많이 울지만, <아무르>를 보았던 어느 겨울날처럼 울다가 쓰러져 구급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일이 또 있을까. 피아노를 그만두고 한참 동안 말러 <6번>을 들었다. 곡의 부제대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비극이었다. 거실을 온통 차지한 피아노를 보면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를 만나도 한순간에 소리가 먼 데서 들렸고 풍경은 무채색으로 변했다. 해 뜨기 전에 집을 나서서 어두운 저녁에야 지친 몸으로 돌아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뚜껑이 닫힌 피아노 위에 어지럽게 쌓인 악보들을 보면 매일 이렇게 한 뼘씩 음악으로부터 멀어지는구나, 좌절감이 밀려왔다. 점점 이유 없이 화가 차올랐고 원래도 날 서 있던 성격이 더 사나워졌다.
어둡고 막막하고 파괴적인 말러 <7번>을 듣고 나면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4번>과 첼로 협주곡도 자주 들었다. 교향곡 <4번> 속 사정없이 날뛰는 음표들이 면도날처럼 피부 속에 들어와 박히는 순간마다 알 수 없는 쾌감이 들었다. 첼로 협주곡의 카덴차 첼로 솔로 파트처럼 한없이 무언가를 일그러뜨리고 처절하게 구기고 부수고 싶었다. 겉으로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일상을 버텼지만 내 안에는 세상 모든 것과 불화하는 흉포한 괴물 한 마리가 있었다. 점점 덩치가 커지는 그 괴물이 다스려지지 않는 날에는 메트로를 기다리던 플랫폼에서 알 수 없는 충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대로 뛰어들어 저 아래에 처박혀버리면 괴물도 죽고, 다 끝나겠지….
<아무르> 덕분에 연습하기 시작한 슈베르트 <즉흥곡 3번>에는 물결처럼 잔잔한 아르페지오가 이어진다.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 괴물과 싸우는 대신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둔해진 손 탓에 느린 속도로 삐걱이며 아르페지오를 따라갔으나 삐걱이는 와중에도 슈베르트의 선율은 아름다웠다. 해가 유난히 짧은 겨울 내내 피아노 앞에 앉아 즉흥곡의 아르페지오를 연습했다. 메트로놈을 켜고, 한 음표를 두 번씩, 부점 스타카토, 음표 둘씩 묶어서….
2주가 넘는 부활절 방학을 알차게 보낼 생각으로 시작한 계약직 업무가 끝나는 날이었다. 회사의 부사장이 따로 나를 불렀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라며 그의 막내 아들이 피아노 레슨을 안 받으려 하는데, 혹시 아이의 연주를 들어봐 줄 수 있냐는 이야기였다. 그의 거실에 진짜 벡스타인 피아노가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발동해 그러겠다고 답했다.
주말에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피아노에 도통 흥미가 없었다. 짧은 바흐 인벤션 외에는 아무것도 칠 마음이 없었다. 청음과 이론이 싫고, 지겨운 바흐만 치게 하는 음악원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도 했다. 우아한 문양이 아로새겨진 보면대와 색이 바래지 않은 상아와 흑단으로 된 건반을 바라보았다. 1940년대에 수공으로 만들어진 피아노는 관리가 잘된 덕에 세월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한 곡 들려주세요.” 열 살 소년의 부탁에 피아노 앞에 앉았다. 브람스 에튀드로 손을 풀며 손끝에 상아 건반의 감촉을 느끼다가 나도 모르게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시작했다. 누군가의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두 개뿐인 페달이 어색했지만 겨울 내내 매달린 덕분에 나쁘지 않게 곡을 마칠 수 있었다. 뺨이 상기된 아이는 사뭇 감동받은 얼굴이었다. 자기는 언제쯤 이걸 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바흐 인벤션이 손에 익으면, 이라고 답하자 아이의 눈이 빛났다. 더 쳐주세요, 라는 부탁에 바흐 평균율과 스카를라티 소나타를 쳤다. 흑단과 상아로 만들어진 건반들이 손끝에 낯선 감각을 남기며 황홀하게 깊은 소리를 내주었다.
그해 여름, 학기말 시험을 마치자마자 바로 슈베르트 <즉흥곡 3번>으로 레슨을 시작했다. 추위를 견디며 연습했던 곡으로 여름을 맞이했다. 매번 아이가 아르페지오를 좀 더 익숙하게 속도를 내어 연주할 때마다, 이렇게 듣는 슈베르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르미카엘 하네케, 장-루이 트랭티냥, 엠마누엘 리바 | 아트서비스
‘폭력의 탐구자’에서 ‘사랑의 거장’으로 돌아온 미카엘 하네케, 그가 이야기하는 사랑! 칸영화제를 눈물바다로 만든 두 노배우의 혼신의 열연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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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피아노와 법학을 공부했다.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접하고 글로 남긴다. 바흐와 말러, 바그너, 피나 바우슈를 위해 지구 어디든 갈 수 있다. 인터뷰집 <예술이라는 은하에서>를 썼다.
<미카엘 하네케>,<장-루이 트랭티냥>,<엠마누엘 리바>29,700원(10%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