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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식물 생활

에세이란 참으로 신기한 분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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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외할머니처럼 장을 담가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그런다면 나는 이것을 가리켜 엄마의 식물 생활이라고 부를 테다. (2019. 0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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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의 일이다. 한 출판사에서 에세이를 계약했다. 처음엔 “내가 쓴 잡글이 책이 될 수가 있을까?” 싶었지만 일 년 가까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아아, 에세이란 참으로 신기한 분야구나 싶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기하게 생각한 것은 내가 쓴 글에 그림이 붙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추리소설을 쓴다. 소설 본문에 그림이 들어가는 건 코난 도일이나 겪을 수준의 횡재다. 그런 내 책에 그림이 들어가다니, 것도 나를 그림으로 그렸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나를 그릴 작가의 이름은 안난초. 인터넷을 찾아보니 일러스트레이트 외에 웹툰도 그리고 있었다. 작가의 웹툰 제목은 『식물 생활』 . 다정한 푸른 녀석들이 잔뜩 사는 세상의 이야기였다, 작가는 식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 이야기로 웹툰을 그렸다.
 
4월, 이 웹툰이 책으로 나온다기에 바로 예약 구매해서 받았다. 그랬더니 식물의 이름표가 따라왔다. 어린 시절 화분에 “이 꽃의 이름은 무엇입니다.” 같은 식으로 적어 놓곤 했던 플라스틱 이름표 말이다. 마침 이 이름표가 제격일 화분이 집에 있었다. 최근 엄마가 꽃을 심은 스티로폼 화분.

 

얼마 전 읍사무소 앞에서 작은 축제가 열렸다. 정확한 명칭까지는 모르겠다. 4월이니까 벚꽃축제 아니었을까. 서울에서 벚꽃 축제 하면 여의도가 떠오른다. 한강변을 가득 메운 벚꽃나무. 만개한 나무 아래 꽃을 구경하는지 사람을 구경하는지 구별하기 힘든 복작복작한 풍경. 이곳은 다르다. 읍사무소 앞 작은 마당과 그 앞 좁은 2차선 길을 막고 물건과 포장마차가 서는 정도로 축제란 명칭을 붙인다.
 
축제에서 엄마는 봄꽃 묘종을 몇 개고 사왔다. 작년 이맘 때 샀던 플라스틱 화분에 세 개를 심고, 나머지는 얼마 전 딸기를 샀을 때 받은 스티로폼 박스에 심었다. 나는 이 스티로폼 화분에  『식물생활』  사은품으로 받은 플라스틱 이름표를 꽂으며 어렸을 때 옛날을 떠올렸다. 

 

 

 


초등학생 때까지 안산에 살았다. 아버지가 만화가라서 예술인 아파트에 좋은 조건으로 입주할 수 있었다. 이곳에 살 때 엄마는 베란다에 식물을 잔뜩 키웠다. 어렸을 때 기억이라 확실치는 않지만 내 키만 한 나무도 몇 그루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베란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런 화분이 가득한 곳 끄트머리, 창고 앞에는 장독이 몇 개고 나란히 줄 서 있었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는 직접 장을 담갔다. 우리 집에도 외할머니가 담근 장이 있었다. 그렇게 담근 고추장 된장은 우리 집 베란다에서 일 년 간 먹을 귀중한 양식이 됐다. 나는 이 고추장으로 떡볶이를 해먹었다. 직접 담근 고추장은 가만 두면 위에 하얗게 곰팡이가 펴고 아래쪽엔 물이 고였다. 나는 그런 고추장의 하얀 곰팡이를 살살 벗겨낸 후, 아래쪽의 물을 피해 진득한 장 부분만 퍼서 냄비에 담았다. 떡과 오뎅을 넣고 적당히 끓여 먹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장독은 없어졌다. 내 키만한 나무(이제는 성인이라 허리춤까지 오는 수준의 나무들이겠지)도 없다. 나란히 선 화분에 담긴 꽃들을 보자니 옛날처럼 베란다를 꾸미고 싶어진다. 엄마를 졸라 다시 한 번 베란다 가득 나무를 심고 장독을 놓으면 어떨까.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처럼 장을 담가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그런다면 나는 이것을 가리켜 엄마의 식물생활이라고 부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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