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인생 훈련은 언제쯤 끝날까
앞으로도 계속 훈련하듯 살 것 같다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은 훈련이 끝났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내일 모레가 50이라는 사람이 아직도 여물지 않았느냐, 라며 한심하게 여겨도 어쩔 수 없다. 지금도 여전히, 매일 매일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2018. 12. 27)
“쉰 살의 나는 서른 살의 나와 다른 사람이고, 우리는 하루 중에도 그때그때 상황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서, 또한 호르몬 수치에 따라서 바뀐다. 우리는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 다르게 행동한다. 상사와 점심을 먹을 때와 부하직원과 점심을 먹을 때 다르게 행동한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즐거운 영화를 본 뒤에는 전혀 다른 도덕적 결정을 내린다…… 성격은 지울 수 없도록 새겨진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 『새로운 무의식』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 김명남 역 / 까치글방)
4,5년 지나면 내 나이 쉰이 된다. 믿기지 않는다. 세월이 어떻게 흘렀는지, 어떻게 40대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다. 이십 대가 끝났을 때, 아쉬움은 없었다. 레지던트 수련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만 가득했던 그 시절은 시간 가는 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수련을 받던 전공의 시절 가르침 중에 지금도 잊지 않고 되새기는 것이 있다. “환자에 대해 잘 모른다”라는 마음을 잃지 말라는 것. 정확한 진단부터, 치료 방침까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내가 정확히 알고 있다”라는 생각이 치유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것. 정확성을 키우기 위해 애써야 하지만, 모호성이 사람과 삶의 본질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30 대는 혼돈의 시간이었다. 인생 항로나 중요한 커리어가 내 바람대로 이루어진 게 없었다. 도대체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는지 지금 돌아보면 마치 남의 일처럼 신기하게 느껴진다. 30 대 초반, 전문의 자격증을 받자마자 입대를 했다. 경북 경산에 있던 육군삼사관학교에서 나름 고된 훈련을 받다가 무릎 관절염이 생겼고, 유격 훈련장의 낡은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났더니 폐렴에 걸려 기침과 가래를 뱉어내야 했다. 몸 쓸 일이 많지 않은 정신과 전공의 시절 급격히 늘어났던 뱃살이 삼 개월의 장교 훈련 뒤에 쏙 들어갔다.
군의관이 되어 처음 발령 받은 곳은 국군대구병원이었다. 대구에서 경산으로 들어가는 국도변 산중턱에 자리 잡은 그 병원에서 6개월 남짓 근무하다, 2003년 늦가을에 이라크 파병 통지서를 받았다. 대한민국 경상북도에서 적응장애나 우울증에 걸린 병사들을 치료하다가 갑자기 중동으로 가라는 국방부 장관의 직인이 찍힌 명령장을 받았을 땐, 충격보다 황당한 느낌이 앞섰다. “넘쳐나는 정신과 군의관 중에서 왜 하필이면 내가 이라크에게 가야 하느냐”고 상급자에게 따져 물었더니 “뭐 어쩔 수 있냐…… 가라면 가야지”라고 했다. 국방부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몇 달 있으면 딸이 태어나는데, 이라크에 나를 끌고 가면 처랑 애는 어떻게 하냐”고 통사정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쩔 수 있냐, 가라면 가야지”였다. 2003년 겨울과 2004년 봄까지 경기도 광주의 특전사 훈련소에서 3개월 정도 파병을 위한 훈련을 받았다. 하얀 눈이 떨어지던 어느 저녁, 연병장 한 면을 차지한 시멘트 계단에 앉아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이 지긋한 훈련은 언제쯤 끝날까’
성남에 있는 서울공항에서 대한항공 전세기를 타고 쿠웨이트에 있는 이름 모를 미군 기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또 훈련을 받았다. 이라크 주둔지에 들어가기 전에 주의 사항과 예측할 수 없는 교전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비교적 짧은 훈련을 받은 뒤 이라크 남부 나시리아에 있는 탈릴 공군 기지에서 3개월 정도 근무했다. 가끔 들리는 총성과 포성에도 그리 놀라지 않게 되었을 무렵, 우리나라 부대는 이라크 북부의 아르빌로 주둔지를 옮기게 되었다. 사단 하나가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는 큰 규모의 작전이라 쿠웨이트에 있는 미군 기지로 이동해서 또 다시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사격 훈련을 다시 받고, 부상자가 생기면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지, 교전이 발생하면 앰뷸런스와 차량들은 어떤 대형으로 모여야 하는지…… 황량한 사막 위에 세워진 앰뷸런스 안에 앉아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이 지긋한 훈련이 언제쯤 끝날까’
제대를 하고, 전공의 수련을 받았던 병원으로 돌아와 전임의 수련을 받고, 박사 학위를 받는 동안 30대는 다 흘러가버렸다. 훈련, 훈련, 훈련들을 통과하면서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돌아보면 그때의 삶은 특정한 목적지에 닿기 위해 자진해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아무런 설명도 없이 떠나라며 던져지는 모험이었다.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은 훈련이 끝났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내일 모레가 50이라는 사람이 아직도 여물지 않았느냐, 라며 한심하게 여겨도 어쩔 수 없다. 지금도 여전히, 매일 매일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길고 짧거나, 크거나 작은 수련과 훈련을 거치면서 정체성은 깎여 나갔고 나란 사람도 달라졌다.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느끼면서 매일 매일 나를 다듬고 있다.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거나 타인의 오해를 사거나, 어설픈 말들에 속아 넘어가거나,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지금도 훈련 중이다. 누군가 억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스며들 듯 겪으며 배우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 빨리 지나갔으면 했던 20대, 뭐가 뭔지 모른 채 흘러갔던 30 대, 그리고 사십이 되었지만 여전히 인생 훈련을 끝내지 못했다. 앞으로도 계속 훈련하듯 살 것 같다.
새로운 무의식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김명남 역 | 까치(까치글방)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가? 자신과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아가 충실하고 풍요로운 삶을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을 극복하고 싶은가?
정신과의사이고 몇 권의 책을 낸 저자다. 스트레스와 정서장애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진료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교수 생활을 9년 했고 지금은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의 원장이다.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김명남> 역18,000원(10% + 5%)
‘무의식’ 이라 하면 보통 정신분석을 연상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정신분석은 과학이 아니다. 프로이트 당대에는 무의식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뇌’에 대한 정보가 희소했기 때문에 연구 방법이었던 내성법, 자유 연상, 꿈의 해석 등은 체계적, 정량적, 재현 가능한 과학적 방법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