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영 “지금 이 순간도 언어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언어의 줄다리기』 저자
이 책은 뜨겁다. 그리고 강렬하다. 또 이 책은 우회로를 택하지 않고 곧바로 과녁을 향해 나아간다. 과녁으로 향하는 예기는 전율마저 전한다. 정조준한 과녁은 바로 우리의 언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차별적이고 비민주적인 언어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좀 더 정확히 파고든다면 그 언어들 속에 숨어 있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향한 뜨거운 시선일 것이다. (2018. 11. 07)
이 책 저자 신지영 교수의 베이스 캠프는 고려대학교다. 그는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영국유학을 거쳐 모교인 고대에서 교수가 되었다. 그는 런던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이후에는 음성공학과 언어병리학 탐구에 매진했다. 언어의 탐험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인문학자의 꿈을 키우며 그 꿈을 키워 후배들에게 나누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하다. 그래서 그는 언어학자의 고유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소통을 위해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 갇히지 말고 언어의 감수성을 키워 우리의 언어를 아름답게 바꿔나가야 한다는 게 이 책이 겨냥하는 예리한 시선이다. 잘못된 표현이 있더라도, 차별과 비민주적인 요소가 가득한 단어가 넘쳐나고 있음에도, 헌법정신이나 시대정서에 정면으로 배치하는 단어가 일상에서 쓰인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수정하거나 없애기가 참으로 어려운 우리 현실에서 던지는 강렬한 메시지를 함께 들어보자.
책 제목이 신선하면서도 생소하다. 언어가 줄다리기를 한다는 발상이 특이하다. 언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
이런 말을 할까, 저런 말을 할까. 이 단어를 쓸까, 저 단어를 쓸까. 우리는 늘 말을 하며, 글을 쓰며 망설입니다. 그 망설임이 마치 줄다리기 경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니 이런 말을 쓰자, 저런 말을 쓰자 하는 줄다리기 경기가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같은 개념을 두고 서로 다른 이름을 붙이자고 하는 언어의 줄다리기 경기 말입니다. 그리고 그 경기를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객관적으로 관전하면서 경기의 맥락을 살펴보니 경기 뒤에 숨어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읽혔습니다. 그래서 언어의 줄다리기 경기를 해설하는 해설자가 되어 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처음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초였습니다.
우리 사회 언어사용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이 강한 것 같다. 저자의 주장처럼 우리 언어표현에 많은 문제가 있는가?
우리의 언어 표현에 많은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의식 사이에 큰 격차가 생겼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의 의식이 진보한 만큼을 우리의 언어가 따라가지 못해서 생긴, 의식과 언어 사이의 격차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아주 짧은 시간에 엄청난 사회적 진보를 이루어왔습니다. 그래서 그 진보적인 생각을 언어가 못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무조건 배워서 따라해야만 하고, 그래서 습관화가 됩니다. 습관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이라서 우선 자각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자각을 한 후에도 그 습관을 바꾸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언어도 똑같습니다. 새로운 생각을 담기에 맞지 않는 낡은 언어들이 많지만, 너무나 익숙하게 학습되어 문제의식을 갖기 어렵게 만듭니다. 오히려 문제의식을 갖는 것 그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고 이상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그리고 별것도 아닌 것에 민감하게 군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회의 진보 속도가 빠를수록 언어와 사회의 격차는 커지게 마련이지요.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사회적 진보를 이루었으니, 당연히 우리의 언어에는 우리의 생각을 담기에 부족한 언어 표현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민주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단어이기에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무엇이고 어떻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나?
미국은 독립하면서 새로운 정치제도를 만들었고, 그 정치제도를 통해 국민이 뽑은 국가의 대표자를 어떤 이름으로 부를까를 고민했습니다. 봉건주의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적인 사고를 담을 수 있는 용어를 고민하다가 ‘president’ 즉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일본에서 번역되면서 봉건주의적인 세계관을 담고 ‘대통령’, 즉 ‘크게 거느리고 다스린다’는 사람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주권자가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대통령에 의해 거느려지고 다스려지는 존재가 된 것이지요.
결국,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일본 사람들이 당시의 봉건주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번역한 봉건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단어인 것입니다. 일본은 지금도 왕이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봉건군주제를 청산하고 민주공화국을 지향하며 만들어진 새로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런 대한민국이 봉건군주제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꼭 짚어야 할 문제입니다. 결국,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에게 남겨진 순화대상 단어입니다. 그럼 이 단어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저는 책에서 ‘대한민국 대표’라고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더 좋은 표현이 무엇일지 우리 모두 고민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일제강점기의 유산이며, 매우 비민주적인 단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최근 페니미즘 열기가 거센 상황인데, 이 책에도 여성에 대한 성차별 언어표현을 많이 지적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공론화할 의지가 있는가?
물론, 공론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차별적인 언어 표현은 과거 우리들의 성차별적인 의식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표현들이 학습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요. 그런데 이렇게 이어진 성차별적인 언어 표현은 성차별적인 의식을 고착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헌법 제11조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우리 사회는 성차별이 없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우리 사회를 성차별이 없는 사회로 만들고 싶다면 성차별적인 언어 표현을 없애야 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합니다. 성차별적인 언어 표현을 추방하지 않고 어떻게 성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우리가 성차별이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면 언어 표현 속에 숨어 있는 성차별적인 이데올로기를 자각하고 그 자각을 바탕으로 그러한 표현들을 공론화하여 바꿔나가야 합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므로 공론화를 통하지 않고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언어학자로서 전공과목에 대한 연구에도 바쁠 텐데 이번 책과 같은 대중적 글쓰기를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언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아주 높습니다. 언어가 중요하다고 모두 입을 모읍니다. 하지만 막상 언어의 문제를 꼬치꼬치 따져 들어가려 하면 뭐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심각하게 따진다고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렇게 된 데는 국어학자들의 책임도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어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심각한 것인지를, 선언적으로가 아니라 대중들의 눈높이와 요구에 맞게 풀어쓴 책이 과연 얼마나 되나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어의 중요성은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꼬치꼬치 따져 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대중들과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펴내기까지 많은 곡절이 있어 집필 4년여 만에 출간했다고 들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가?
이 책을 처음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2014년 4월이었습니다. 같은 제목의 대중 강연을 하면서 청중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5년부터 2016년 사이에 학생처장을 맡게 되면서 시간을 내기 어려워 진척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2017년이 돼서야 다시 집필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2017년이 다 가기 전에 꼭 마치겠다던 다짐은 다짐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더 시급한 논문이 집필을 가로막기 일쑤였고, 매일매일의 일상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꼭 쓰지 않아도 되는 책이지만 꼭 쓰고 싶은 책이어서 늘 마음 한편이 무거웠죠. 그러다 대학 동기의 출판 제안을 덜컥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족쇄를 차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좋은 편집자와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또 후속작을 낼 준비를 하고 있는지?
언어의 줄다리기 경기는 매일매일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줄다리기가 있는지 찾아보는 습관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 표현 속에 버려야 할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습관은 우리 사회를 더 성숙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제 겨우 책이 나온 상황이라 아직 후속작을 계획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룬 언어의 줄다리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언어의 줄다리기는 언어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힘이 축적되면 다른 표현으로 확장하여 언어의 줄다리기 후속편을 내거나, 더 시간이 지난 뒤에 이 책에서 다루었던 표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후’편을 준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언어의 줄다리기신지영 저 | 21세기북스
‘크게 거느리고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는 이 언어 표현은 ‘국민을 주권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한다.
관련태그: 언어의 줄다리기, 신지영 교수, 우회로, 과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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